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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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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전광판에 커다란 이름이 떴다.

[세미파이널 2경기]

[윤채하 vs 가일]

윤채하의 시선이 그 이름 위에 멈췄다.

칼로스 랭킹 11위 출신의 검사.

가일이었다.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밌겠네.”

“가일 정도면 윤채하랑 비빌만 하지.”

하지만 그 중심에 선 윤채하는,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뻔하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긴장도, 설렘도 없다.

오히려 살짝 지루했다.

승부의 끝이, 너무나도 쉽게 그려지는 게 싫었다.

다들 이 경기를 향해 기대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한쪽 손끝이 부드럽게 들어 올려진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음성이 울리고, 동시에 윤채하의 입술이 열렸다.

“그럼, 갈게.”

다음 순간, 경기장이 타올랐다.

땅 위를 기어가는 불꽃, 허공을 가르는 열기.

열기가 벽면을 타고 솟아올랐고, 시야는 순간적으로 증기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일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서도 출구를 찾아야 했다.

흐트러진 시야, 뒤엉킨 열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일점돌파.

이상하리만치, 그녀에게 향하는 정면만큼은 열려있었다.

‘너무 열려 있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질감을 느낄 새도 없이 가일은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칼날을 쥐고, 전신을 실어 그 틈으로.

그리고.

  • 쾅!!

폭발음과 함께, 가일이 튕겨 나갔다.

순식간에 관중석을 보호하는 방어벽에 박히며 전투 불능 판정.

심판석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경기장 바닥엔 윤채하의 불꽃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진다.

“뭐야 방금…?”

“가일이 한 방에 밀렸어…?”

열기 속, 불꽃이 잠잠해지고 무대 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후….”

윤채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무대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감탄했다.

그녀는 최근 내 공격을 수없이 받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뭔가 배웠는지.

그녀는 정면을 의도적으로 열어둔 채, 가일의 돌격을 유도했다.

마치 '여기로 오던가.'라는 느낌으로, 길을 터놓고.

그리고 정면에서 받아냈다.

완전히, 그리고 매끄럽게.

[전투 종료]

[가일 전투 불능]

시스템 음성이 울리고, 윤채하의 주변의 불꽃이 서서히 꺼진다.

지친 기색 하나 없다.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느낌.

'성장.'

그녀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

  • 와아아아아아!!

반대편 경기장에서 터져 나온 함성.

관중들이 고개를 돌린다.

전광판에 떠오르는 반대편 경기장의 상황.

[주서준 승리]

다음 상대가 정해졌다.

예상대로, 윤채하와 주서준의 결승전.

이제, 결승만이 남았다.

결승은 바로 내일. 다음 날 이곳에서 똑같이 치루어진다.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짐을 정리해서 경기장의 복도로 나왔다.

어깨에 둘러메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멀리서 인기척과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웅성대기 시작한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인파를 뚫고 그쪽에서 오는 윤채하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한 곳만을 정확히 겨눈다.

바로 나.

나는 그녀에게 축하의 한마디를 건넸다.

“이긴 거 축하….”

  • 텁.

그녀는 말도 없이 내 앞까지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툭 내밀어 내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가자. 방 잡아놨어.”

“어디를.”

“훈련장.”

“…….”

확신이 서려 있는 말투.

방금 경기를 마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눈빛은 차분했고, 뺨은 희미한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 돼?”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며들어 있다.

벌써부터, 다음 전투를 상상하고 있는 눈빛이다.

나는 살짝 웃으며, 그 손목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괜찮아. 오늘은 푹 쉬어.”

그녀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오늘은 쉬라고? 그럼… 내일 아침….”

“내일도 안되지, 바로 경기 준비해야 되잖아.”

“…그럼, 나는 어떡해??”

그녀의 목소리에 살짝 화난 기운이 스쳤다.

“이제 훈련 안 해도 돼. 내가 알려주고 싶은 건 다 알려줬어.”

그녀의 눈빛에 순간 불안감이 스친다.

“채하야.”

나는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지금은 너한텐 나보다, 네가 스스로 해야 할 게 더 많아 보인다.”

그 말에,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술을 다물고, 조용히 눈을 내리깐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뒤, 윤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그녀는 그렇게 돌아섰다.

나는 그 등을 조용히 바라봤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세상이 인정한 천재니까.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번진다.

달빛은 반쯤 가려진 커튼 사이로 살짝 비치고, 조용한 기숙사 안엔 아무 소리도 없다.

윤채하는 그날 훈련을 완전히 망쳤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웠다.

베개 위에 이마를 댄 채,

조용히 머리를 ‘콩. 콩. 부딪힌다.

  • 콩.

  • 콩.

벽에 뻗은 다리가 느릿하게 ‘톡. 톡.

무의식적으로 리듬을 타며 흔들린다.

  • 톡.

  • 톡.

입술은 단단히 깨물려 있었다.

‘쉬라고?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드러운 말투.

스르륵 손목을 떼던 그의 손길.

말없이 건네던 그 눈빛.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걱정 해주는 것 같아 좋았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듣고 나니

몸은 더 뜨거워졌다.

윤채하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당겼다.

손끝이 이불 끝을 조심스레 감는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눈을 감자, 오늘의 전투가 다시 떠올랐지만, 이내 때려치웠다.

영양가가 하나도 없었다.

생각은 금세 방향을 틀었다.

‘내일은 결승.

그 순간, 눈꺼풀 아래에서 떠오른 건 오늘 경기의 상대도, 내일 있을 상대도 아닌 며칠 동안 그녀를 수십 번, 수백 번 넘게 꺾어내던 사람.

정해인.

그 모든 타격의 감각이, 머릿속에 선명했다.

숨이, 조금 뜨겁다.

“하….”

달뜬 숨이 가볍게 흘러나왔다.

심장은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고동쳤다.

몸에는, 식을 줄 모르는 열기가 서서히 번졌다.

윤채하는 두 손으로 이불 끝을 꼭 쥐며, 속으로 되뇌었다.

‘만족이 안 돼.

그의 궤적을 마음속에서 다시 되새기며, 몸 안의 열을 조심스레 식혀가며.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잠에 들었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

아카데미의 중앙 경기장엔 이미 인파가 가득했다.

좌석은 만석이었고, 입석 구역조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오늘의 마지막 대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천재 마법사의 전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 유명한 마탑까지도.

그 순간.

전광판이 천천히 밝아졌다.

[윤채하 vs 주서준]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순간, 경기장 전체가 숨을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윤채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가볍게 숨을 고르고, 시야의 끝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이 있다.

주서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이번에는 내가 이길게.”

주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에는 의지가 실려있다.

그는 한 번도 윤채하를 이긴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지금껏 그는 늘 그렇게 말해왔고, 그에 대한 윤채하의 반응은 늘 비슷했다.

시큰둥한 얼굴, 혹은 조용한 무반응.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니.”

반면, 윤채하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조용히 타오르는 표정이었다.

“오늘만큼은, 절대.”

기대하고 있었다.

주서준은 윤채하의 표정을 읽고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웬일이야.”

처음이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보이는 것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관중석은 숨을 삼켰다.

천 명이 넘는 인원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조용해졌다.

  • 와아아아아아!!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함성이 폭발했다.

두 천재 마법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캐스팅에 돌입했다.

윤채하의 발밑에서 붉은 마나가 맴돌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화염 창 수십 개가 허공을 가르며 형성된다.

그 창끝마다 불꽃이 튀고, 열기가 일렁인다.

  • 쉭, 쉭, 쉭.

그와 동시에, 주서준의 앞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검푸른 마나가 나선처럼 엮이며 공중에 떠오르고, 그 중심에서 하나의 거대한 구체가 천천히 고동친다.

“……!”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숨을 삼켰다.

“… 압축 연산?”

주서준의 특기. 돌파관창.

윤채하의 화염 창은 수십 개로 퍼지며, 전장을 장악하려 한다.

반면, 주서준은 그 모든 것들을 정면에서 뚫겠다는 방식이다.

두 마나가 내뿜는 압력에 공기가 일그러진다.

마치, 두 사람의 공간 사이에 거대한 틈이 생긴 것처럼.

그리고 시작은, 윤채하였다.

“가자.”

윤채하가 작게 속삭이자, 화염 창 하나가 빠르게 궤도를 그리며 날아든다.

그걸 신호로, 수십 개의 창이 폭풍처럼 쏟아진다.

창들이 허공을 타고 휘몰아친다.

그러나.

  • 쾅!!!

주서준의 돌파관창이 그 중심을 찢으며 전진했다.

화염 창 여러 개가 동시에 부딪혔지만, 마나의 결이 다르다.

윤채하의 마법은 타오르는 성질. 주서준의 마법은 녹이며 관통하는 성질.

서서히 정면이 뚫린다.

윤채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주서준의 입가에 확신에 찬 미소가 번졌다.

  • 파르르르르…!

하지만 그 순간.

윤채하가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러자.

수십 개로 나뉘었던 화염 창 중 하나가.

공중에서 멈칫하더니, 모든 창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전부, 정면으로.

“……!”

주서준의 표정이 굳는다.

화염창이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진다.

점점 두꺼워지고, 길어지고, 짙어진다.

그것은 단순한 창이 아니었다.

붉게 타오르는 하나의 장창(長槍).

그리고 그 끝은, 태양처럼 고동친다.

  • 화르르륵!!

정해인의 고유 기술.

카테나치오의 변형, 팔랑크스.

윤채하는, 그 기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재해석했다.

‘어때?

그녀는 이 기술을,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었다.

그리고 이 첫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에게.

폭발음이 전장을 휘감는다.

화염의 장창이 돌파관창을 짓누르고, 꿰뚫고, 찢어버렸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누가 이겼지?”

마탑의 인원도, 칼로스와 가온의 교수진들도 궁금해할 때.

연기가 천천히 흩어졌다.

타오르던 열기가 가라앉고, 전장은 서서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

파괴된 마법진의 흔적 위, 주서준은 주저앉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승자는 명확했다.

윤채하는 서있고, 주서준은 주저앉아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파편 더미 속에서 고개를 들어, 조용히 웃었다.

“…멋있다. 채하야.”

질투도, 아쉬움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인정.

주서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윤채하가, 마음을 먹기 시작한다면, 스스로가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지금.

확실하게 마음을 먹어버린 모양이었다.

윤채하는 주서준을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고마워.”

감사였다.

그가 없었다면, 정해인이 이토록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또한, 진심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윤채하의 짧은 인사에, 주서준의 눈이 살짝 떠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디 있어?

관중석을 훑는다.

지금의 이 승리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누군가를 찾는다.

한 사람.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는 유난히 선명했다.

조용히, 아주 작게 웃고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잘했어.

그의 입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그 한마디가, 귓가에 울리듯 선명하게 들려온다.

윤채하의 심장이 조용히 고동쳤다.

수없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그는 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시선 하나에, 온몸이 다시 뜨거워진다.

윤채하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숨이 가빠졌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의 권능인 아 프리오리로도 분석할 수 없다.

논리로, 분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샘물처럼 솟아나, 조용히 터져나온다.

어쩌면, 저 멀리 서 있는 그를 향해.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았다.

가끔, 세상에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온몸으로 느껴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아주 최근에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미지의 감각이 주는 충만함이 너무도 벅차고, 기분 좋았다.

​윤채하는 조용히 웃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된다는 게.

그 이름 석 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온몸의 감각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게.

이렇게나···.

황홀한 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