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883 lines
16 KiB
Markdown
883 lines
16 KiB
Markdown
|
||
인원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
||
|
||
사방이 고요해졌다.
|
||
|
||
모두가 그녀를 바라본다.
|
||
|
||
그리고 그 중심에서, 천여울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
||
|
||
|
||
|
||
에리엘의 신성이 그녀 안에 깃든 순간이었다.
|
||
|
||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후보가 아니다, 여신의 그릇으로써 차곡차곡 그 힘을 쌓아갈 것이다.
|
||
|
||
|
||
|
||
“기분은 어때?”
|
||
|
||
|
||
|
||
나는 천여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
||
|
||
|
||
|
||
천여울은 천천히 눈을 떴다.
|
||
|
||
풀린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
|
||
|
||
|
||
“…황홀해.”
|
||
|
||
|
||
|
||
천여울이 조용히 속삭였다.
|
||
|
||
열이 오른 얼굴, 살짝 풀린 눈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고, 숨은 조금 가빠 있었다.
|
||
|
||
|
||
|
||
신앙심이 강한 그녀로서 최고의 충족일 것이다. 행복감이 있을 수밖에.
|
||
|
||
|
||
|
||
-또각.
|
||
|
||
|
||
|
||
그때, 천여울의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
||
|
||
로브 자락이 바닥을 스친다.
|
||
|
||
|
||
|
||
루크 주교였다.
|
||
|
||
|
||
|
||
그는 잠시 천여울을 바라보더니, 말없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
||
|
||
|
||
|
||
“…성녀시여.”
|
||
|
||
|
||
|
||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
||
|
||
|
||
|
||
“에리엘 님의 뜻이 머무셨습니다.”
|
||
|
||
|
||
|
||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
||
|
||
|
||
|
||
“이제 더는 후보가 아닌 진정한 성녀로 거듭나셨음을, 아르카디아 교단을 대표하여 경축드립니다.”
|
||
|
||
|
||
|
||
천천히 고개를 든 주교의 눈엔, 믿기지 않는 감격이 서려 있었다.
|
||
|
||
|
||
|
||
그 순간, 천여울을 지지하던 교단 인원들이 자연스레 손뼉을 쳤고, 건너편의 용사 세력도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마지못해 박수를 보탰다.
|
||
|
||
|
||
|
||
성녀와 용사가 정식 지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내려진 신탁을 온전히 수행해야만 한다.
|
||
|
||
그러나 천여울은 그 절차조차 뛰어넘어 버렸다. 물론, 명목상 수행을 하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명목일 뿐이다.
|
||
|
||
|
||
|
||
아직 요한은 후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
||
|
||
이걸로 성녀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
||
|
||
|
||
|
||
그런데 그 순간.
|
||
|
||
|
||
|
||
내 소매 끝이, 사르르 당겨졌다.
|
||
|
||
|
||
|
||
“해인아아….”
|
||
|
||
|
||
|
||
익숙한 음성.
|
||
|
||
조심스럽게 소매를 붙잡은 그녀는 양손으로 내 팔을 살짝살짝 흔들고 있었다.
|
||
|
||
|
||
|
||
“끝나고… 약속 있어?”
|
||
|
||
|
||
|
||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
||
|
||
|
||
|
||
질문보다는, 부탁에 가까운 말투였다.
|
||
|
||
말끝은 살짝 올라가 있었고, 눈빛은 평소보다 더 또렷했다.
|
||
|
||
|
||
|
||
“커흠!”
|
||
|
||
|
||
|
||
루크의 반대편에서 용사 파의 주교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끊었다.
|
||
|
||
|
||
|
||
“성녀로 거듭나셨으니, 몸가짐을 더 정숙히 하셔야…”
|
||
|
||
|
||
|
||
하지만 그녀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
||
|
||
|
||
|
||
“있냐고오오.”
|
||
|
||
|
||
|
||
말을 있는 힘껏 늘리며 투정을 부린다.
|
||
|
||
게다가 손까지 살짝살짝 흔들며 다시 묻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
||
|
||
|
||
|
||
“어, 해야 할 게 있어서.”
|
||
|
||
|
||
|
||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
|
||
|
||
|
||
“알았어….”
|
||
|
||
|
||
|
||
잠깐의 침묵.
|
||
|
||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루크 주교를 바라봤다.
|
||
|
||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
||
|
||
|
||
|
||
“아마 눈치채셨을 테지만 에리엘님의 티아라입니다. 흡수는 잘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
||
|
||
|
||
|
||
다시 천여울에게 시선을 돌려 살펴봤다.
|
||
|
||
그녀는 눈을 똘망하게 뜬 채 고개를 갸웃했다.
|
||
|
||
|
||
|
||
“네… 뭐, 케어가 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
||
|
||
|
||
|
||
담담하게 던진 말에, 루크 주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
“……몇 번을 말해도 감사가 부족할 겁니다.”
|
||
|
||
|
||
|
||
그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
||
|
||
“해인 님은, 저희에게 늘 도움만 주시는군요.”
|
||
|
||
|
||
|
||
주교는 고개를 낮추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
||
|
||
|
||
|
||
“아르카디아는 결코 은혜를 좌시하지 않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반드시… 만족하실만한 방향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
|
||
|
||
|
||
“네. 그러세요.”
|
||
|
||
|
||
|
||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상관없었다.
|
||
|
||
적어도 직접 키워내고 있는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대가도 필요 없었다.
|
||
|
||
|
||
|
||
호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
||
|
||
내가 살려고 하는 거다. 살려고.
|
||
|
||
|
||
|
||
그 말에 함께 루크 주교가 고개를 숙였다.
|
||
|
||
그러자, 그의 뒤에 줄지어 서 있던 성녀 파의 성직자들 또한 일제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
|
||
|
||
|
||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
||
|
||
|
||
|
||
눈앞의 천여울마저도 싱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
|
||
그녀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으로 가져온 뒤, 천천히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
||
|
||
|
||
|
||
나 또한 고개를 살짝 숙여 답했다.
|
||
|
||
|
||
|
||
“수고하세요.”
|
||
|
||
|
||
|
||
이런 분위기가 딱히 불편하다는 건 아닌데, 취향은 아니었다.
|
||
|
||
|
||
|
||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협회의 최하층, 윤채하는 감탄하며 들어섰다.
|
||
|
||
|
||
|
||
“와….”
|
||
|
||
|
||
|
||
정해인의 판단은 맞았다. 윤채하가 카페에 얌전히 앉아 있을 리 없었다.
|
||
|
||
로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의 손에 목덜미가 붙잡혀 협회의 최하층으로 끌려왔다.
|
||
|
||
|
||
|
||
도착 직전까지도 볼거리는 1층에 더 많았다며 투덜거리던 그녀는, 막상 도착한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
|
||
|
||
벽 너머, 고요하게 떠올라 있는 하나의 구체.
|
||
|
||
|
||
|
||
“마법? 현상? 이건 대체….”
|
||
|
||
|
||
|
||
윤채하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
||
|
||
|
||
|
||
협회에서 시행한 정밀 검사 결과, 마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
||
|
||
겉에 붙은 마기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한다.
|
||
|
||
|
||
|
||
‘그래도 조심해야….’
|
||
|
||
|
||
|
||
하지만 정해인은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
||
|
||
이 구체는 엄연히 악신의 잔재.
|
||
|
||
이해 불가능한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
||
|
||
|
||
|
||
그게 정해인이 윤채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
||
|
||
그녀의 권능이면 굳이 건들지 않고도 분석할 수 있기 때문.
|
||
|
||
|
||
|
||
벽 너머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
||
|
||
그녀의 권능 아 프리오리(A priori)가 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다.
|
||
|
||
|
||
|
||
지금부터는 그녀의 몫이다.
|
||
|
||
|
||
|
||
“한 번 맘대로 해봐.”
|
||
|
||
|
||
|
||
정해인이 조용히 말했다.
|
||
|
||
윤채하는 뭔가에 홀린 듯, 유리 벽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
||
|
||
|
||
|
||
“대신, 절대 건들면 안 돼.”
|
||
|
||
|
||
|
||
당부의 말에,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
-우우웅….
|
||
|
||
|
||
|
||
구체는 마치 살아 숨 쉬듯, 낮게 울리며 반응했다.
|
||
|
||
|
||
|
||
“눈으로만 분석해.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해도 돼.”
|
||
|
||
|
||
|
||
윤채하의 눈이 크게 열리며 눈동자가 타올랐다.
|
||
|
||
|
||
|
||
‘마력 덩어리.’
|
||
|
||
|
||
|
||
선도, 악도 아닌 그 자체로 모순인 마력의 덩어리였다.
|
||
|
||
윤채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신중하게 그 구조를 해체하듯 분석하기 시작했다.
|
||
|
||
|
||
|
||
그녀의 권능이 그 뜻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뜯어보려는 찰나….
|
||
|
||
|
||
|
||
-파지직!
|
||
|
||
|
||
|
||
구체가 순간적으로 진동했다.
|
||
|
||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
||
|
||
|
||
|
||
“야!”
|
||
|
||
|
||
|
||
정해인의 외침과 함께.
|
||
|
||
윤채하의 시야가 새까맣게 뒤집혔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녀는 다시금 눈을 떴다.
|
||
|
||
|
||
|
||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낯선 공간에 떨어졌다.
|
||
|
||
|
||
|
||
하얀 구름. 빛으로 가득 찬 천정. 향긋한 꽃향기.
|
||
|
||
발아래 펼쳐진 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꽃밭.
|
||
|
||
|
||
|
||
그녀는 거대한 낙원 한복판에 서 있었다.
|
||
|
||
|
||
|
||
‘천국?’
|
||
|
||
|
||
|
||
그게 윤채하의 평가였다.
|
||
|
||
|
||
|
||
구체를 분석하던 중 정신이 끊겼는데, 눈을 뜨자 이곳이다.
|
||
|
||
|
||
|
||
사방은 찬란한 빛으로 가득했고, 공중에는 작은 천사들이 날아다닌다.
|
||
|
||
하얀 기둥, 황금빛 천장.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한 공간이다.
|
||
|
||
|
||
|
||
그녀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
묘하게, 안정되는 기분.
|
||
|
||
|
||
|
||
그때였다.
|
||
|
||
|
||
|
||
[오셨군요.]
|
||
|
||
|
||
|
||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 윤채하의 머릿속을 울렸다.
|
||
|
||
|
||
|
||
그녀의 눈앞, 높고 장엄한 왕좌에 여신이 앉아 있었다.
|
||
|
||
|
||
|
||
금빛의 긴 머리칼과 자애로운 미소.
|
||
|
||
그리고 황금 장식으로 둘러싸인 신성한 로브.
|
||
|
||
|
||
|
||
그 여신은 천천히 왕좌에서 내려와, 윤채하에게 다가왔다.
|
||
|
||
|
||
|
||
[지혜의 눈을 가진 자, 그대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
||
|
||
[당신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 자입니다.]
|
||
|
||
|
||
|
||
“… 제가요?”
|
||
|
||
|
||
|
||
갑작스러운 칭찬에 윤채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
||
|
||
|
||
|
||
[그렇습니다.]
|
||
|
||
|
||
|
||
[이곳에 당신이 온 것 또한, 위대한 운명의 일부분입니다.]
|
||
|
||
|
||
|
||
여신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
||
|
||
|
||
|
||
[그대의 뜻으로, 그대만의 정의를 실현하세요.]
|
||
|
||
|
||
|
||
그리고 여신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마치, 선택을 기다리듯.
|
||
|
||
|
||
|
||
윤채하는 갑작스럽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
||
|
||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곱씹었다.
|
||
|
||
|
||
|
||
갑작스러운 상황, 가끔 듣고는 했다.
|
||
|
||
특별한 인물들이 ‘시스템’의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
|
||
|
||
|
||
|
||
자신 역시 어렸을 적, 시스템의 총애를 받아 권능을 얻었다.
|
||
|
||
그것이 바로 [아 프리오리]였다.
|
||
|
||
|
||
|
||
그러나 뭔가, 확연히 다르다.
|
||
|
||
|
||
|
||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공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친절한 여신.
|
||
|
||
그런데도, 그녀의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강하게 경고음이 울렸다.
|
||
|
||
|
||
|
||
너무 완벽하기에, 오히려 가짜 같다.
|
||
|
||
|
||
|
||
‘잡지 마!’
|
||
|
||
|
||
|
||
정해인이 심어둔 몸속의 그 기운이, 작게 타오르며 반응했다.
|
||
|
||
그 뜻은, 명백한 거부였다.
|
||
|
||
|
||
|
||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
||
|
||
그러나, 정해인은 없었다.
|
||
|
||
|
||
|
||
적어도, 옆의 그가 없는 이상 결정을 내리는 건 왠지 싫었다.
|
||
|
||
|
||
|
||
최근 들어 그녀는 많은 부분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지금 이 순간.
|
||
|
||
그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
|
||
|
||
“저는 괜찮아요.”
|
||
|
||
|
||
|
||
윤채하가 조용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
|
||
|
||
|
||
[그럴 리가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별로 시간이 없네요.]
|
||
|
||
|
||
|
||
여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눈빛은 더 이상 자애롭지 않았다.
|
||
|
||
|
||
|
||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작은 천사들이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
|
||
작디작은 그 손들. 그러나 그 손끝에 쥐어진 창이 일제히 윤채하를 향한다.
|
||
|
||
|
||
|
||
“…싫다고요.”
|
||
|
||
|
||
|
||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거절이었다.
|
||
|
||
|
||
|
||
그러자, 서서히 숨이 막혀왔다.
|
||
|
||
|
||
|
||
꽃밭에서 퍼지는 향이 머릿속을 흐리게 한다.
|
||
|
||
기분 좋았던 그 향이, 이젠 구역질 나는 달콤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
||
|
||
|
||
|
||
여신이 다가왔다.
|
||
|
||
손은 여전히 내민 채였지만, 눈빛은 한기를 머금은 채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
||
|
||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했고, 다리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
||
|
||
|
||
|
||
‘안…돼….’
|
||
|
||
|
||
|
||
권능 [아 프리오리]가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마치 깊은 늪에 빠진 듯 빠르게 가라앉았다.
|
||
|
||
윤채하는 항거할 수 없는 기운에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
||
|
||
|
||
|
||
그때였다.
|
||
|
||
|
||
|
||
-화르륵.
|
||
|
||
|
||
|
||
심장에서 타오르던 작고 선명한 기운이, 순간 폭발하듯 솟구쳤다.
|
||
|
||
그 불꽃은 그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퍼졌고, 윤채하를 감싸는 투명한 장막이 형성됐다.
|
||
|
||
|
||
|
||
-쎄애애액! 팅! 팅!
|
||
|
||
|
||
|
||
순식간에 날아든 수십 개의 창이, 장막에 닿는 순간 빗겨나간다.
|
||
|
||
|
||
|
||
“하아… 하아….”
|
||
|
||
|
||
|
||
그녀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
||
|
||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 안 가득 익숙한 냄새가 채워졌다.
|
||
|
||
|
||
|
||
꽃의 향이 아닌, 그의 향.
|
||
|
||
|
||
|
||
[아… 이런.]
|
||
|
||
|
||
|
||
눈앞의 여신이 작게 탄식했다. 그리고.
|
||
|
||
|
||
|
||
[그분이... 또!! 실망하시겠어요!!!]
|
||
|
||
|
||
|
||
외침과 동시에,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
자애롭던 얼굴이 찢어진 웃음으로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
|
||
|
||
그 말이 끝나자, 윤채하의 눈이 활짝 열렸다.
|
||
|
||
|
||
|
||
[권능: 아 프리오리(A priori)가 활성화됩니다!]
|
||
|
||
|
||
|
||
거대한 낙원이,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
||
|
||
|
||
|
||
화려한 꽃밭은 피로 물든 양귀비밭으로.
|
||
|
||
천사들의 미소는 찢어지며, 그 안에서 촉수와 이빨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
||
|
||
|
||
|
||
[한순간만이라도! 망설였다면! 됐을 텐데!!]
|
||
|
||
|
||
|
||
여신의 황금빛 로브가 찢기며 검은 베일로 바뀌었고, 피부엔 붉은 문양이 피어올라 마침내 눈동자가 전부 붉게 물들었다.
|
||
|
||
|
||
|
||
[사도(使徒) 아리아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
||
|
||
[그대가 이겨낸 시련과 위업에 찬사를 보냅니다.]
|
||
|
||
눈 앞에 떠오른 메세지.
|
||
|
||
어렸을 적, 권능을 각성한 그 순간 이후 처음이었다.
|
||
|
||
그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
||
|
||
|
||
|
||
진짜, 시스템이다.
|
||
|
||
|
||
|
||
그때, 윤채하의 몸과 이 낯선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며 분리되기 시작했다.
|
||
|
||
|
||
|
||
빛의 틈.
|
||
|
||
그곳으로, 누군가가 손을 뻗어 그녀를 강하게 깨웠다.
|
||
|
||
|
||
|
||
“일어나!! 윤채하!!”
|
||
|
||
|
||
|
||
날카롭고도 익숙한 목소리.
|
||
|
||
그녀의 눈앞에, 정해인의 얼굴이 있었다.
|
||
|
||
|
||
|
||
당황한 듯 조금 벌어진 입, 걱정으로 가득한 눈.
|
||
|
||
|
||
|
||
그녀가 고개를 올리자, 허공에 문구들이 떠올랐다.
|
||
|
||
|
||
|
||
====
|
||
|
||
[권능: 아 프리오리 (A priori)]
|
||
|
||
①꿰뚫는 눈
|
||
|
||
ㅡ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다.
|
||
|
||
|
||
|
||
② 선험적 지식
|
||
|
||
ㅡ본질은 이미 정해져 있다.
|
||
|
||
|
||
|
||
③ ??? (미해방)
|
||
|
||
====
|
||
|
||
|
||
|
||
막혀 있던 세 번째 슬롯.
|
||
|
||
그 봉인이 풀어졌다.
|
||
|
||
|
||
|
||
유리 벽 너머에서 고요히 떠 있던 구체가 갑작스레 파동을 일으켰다.
|
||
|
||
그 빛줄기가 벽을 뚫고 윤채하의 가슴으로 직선처럼 빨려 들어갔다.
|
||
|
||
|
||
|
||
순간, 정해인의 눈이 커졌다.
|
||
|
||
|
||
|
||
“!”
|
||
|
||
|
||
|
||
그는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눈 앞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
||
|
||
|
||
|
||
[패러독스 스펙트럼(Paradox Spectrum)을 습득합니다.]
|
||
|
||
|
||
|
||
[선도 악도 아닌, 존재 자체가 모순인 에너지의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
||
|
||
[권능: 아 프리오리 (A priori)와 감응합니다!]
|
||
|
||
|
||
|
||
[ ③ 허기의 탐구자 ㅡ 있는 대로 먹어 치우고, 분석하고, 흡수합니다.]
|
||
|
||
|
||
|
||
“아….”
|
||
|
||
|
||
|
||
윤채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
||
|
||
정해인은 그 소리에 곧장 반응했다.
|
||
|
||
|
||
|
||
“윤채하! 너 기절했었어.”
|
||
|
||
|
||
|
||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당황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
||
|
||
|
||
|
||
윤채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
||
|
||
잠시, 말없이.
|
||
|
||
|
||
|
||
누가 자신을 지켜줬는지.
|
||
|
||
방금 전, 그 광기 어린 공간 속에서 누구의 기운이 자신을 감쌌는지.
|
||
|
||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었다.
|
||
|
||
|
||
|
||
윤채하는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
그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조심스레 웃었다.
|
||
|
||
|
||
|
||
“응… 괜찮아.”
|
||
|
||
|
||
|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정해인을 바라보았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