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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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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천여울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에리엘의 신성이 그녀 안에 깃든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후보가 아니다, 여신의 그릇으로써 차곡차곡 그 힘을 쌓아갈 것이다.

“기분은 어때?”

나는 천여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천여울은 천천히 눈을 떴다.

풀린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황홀해.”

천여울이 조용히 속삭였다.

열이 오른 얼굴, 살짝 풀린 눈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고, 숨은 조금 가빠 있었다.

신앙심이 강한 그녀로서 최고의 충족일 것이다. 행복감이 있을 수밖에.

-또각.

그때, 천여울의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로브 자락이 바닥을 스친다.

루크 주교였다.

그는 잠시 천여울을 바라보더니, 말없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성녀시여.”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에리엘 님의 뜻이 머무셨습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제 더는 후보가 아닌 진정한 성녀로 거듭나셨음을, 아르카디아 교단을 대표하여 경축드립니다.”

천천히 고개를 든 주교의 눈엔, 믿기지 않는 감격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천여울을 지지하던 교단 인원들이 자연스레 손뼉을 쳤고, 건너편의 용사 세력도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마지못해 박수를 보탰다.

성녀와 용사가 정식 지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내려진 신탁을 온전히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천여울은 그 절차조차 뛰어넘어 버렸다. 물론, 명목상 수행을 하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명목일 뿐이다.

아직 요한은 후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이걸로 성녀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소매 끝이, 사르르 당겨졌다.

“해인아아….”

익숙한 음성.

조심스럽게 소매를 붙잡은 그녀는 양손으로 내 팔을 살짝살짝 흔들고 있었다.

“끝나고… 약속 있어?”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질문보다는, 부탁에 가까운 말투였다.

말끝은 살짝 올라가 있었고, 눈빛은 평소보다 더 또렷했다.

“커흠!”

루크의 반대편에서 용사 파의 주교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끊었다.

“성녀로 거듭나셨으니, 몸가짐을 더 정숙히 하셔야…”

하지만 그녀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시선을 나에게 고정했다.

“있냐고오오.”

말을 있는 힘껏 늘리며 투정을 부린다.

게다가 손까지 살짝살짝 흔들며 다시 묻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어, 해야 할 게 있어서.”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알았어….”

잠깐의 침묵.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루크 주교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아마 눈치채셨을 테지만 에리엘님의 티아라입니다. 흡수는 잘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다시 천여울에게 시선을 돌려 살펴봤다.

그녀는 눈을 똘망하게 뜬 채 고개를 갸웃했다.

“네… 뭐, 케어가 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담담하게 던진 말에, 루크 주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말해도 감사가 부족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해인 님은, 저희에게 늘 도움만 주시는군요.”

주교는 고개를 낮추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르카디아는 결코 은혜를 좌시하지 않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반드시… 만족하실만한 방향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상관없었다.

적어도 직접 키워내고 있는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대가도 필요 없었다.

호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내가 살려고 하는 거다. 살려고.

그 말에 함께 루크 주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의 뒤에 줄지어 서 있던 성녀 파의 성직자들 또한 일제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눈앞의 천여울마저도 싱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으로 가져온 뒤, 천천히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나 또한 고개를 살짝 숙여 답했다.

“수고하세요.”

이런 분위기가 딱히 불편하다는 건 아닌데,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


협회의 최하층, 윤채하는 감탄하며 들어섰다.

“와….”

정해인의 판단은 맞았다. 윤채하가 카페에 얌전히 앉아 있을 리 없었다.

로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의 손에 목덜미가 붙잡혀 협회의 최하층으로 끌려왔다.

도착 직전까지도 볼거리는 1층에 더 많았다며 투덜거리던 그녀는, 막상 도착한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벽 너머, 고요하게 떠올라 있는 하나의 구체.

“마법? 현상? 이건 대체….”

윤채하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협회에서 시행한 정밀 검사 결과, 마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겉에 붙은 마기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만 정해인은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이 구체는 엄연히 악신의 잔재.

이해 불가능한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정해인이 윤채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그녀의 권능이면 굳이 건들지 않고도 분석할 수 있기 때문.

벽 너머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의 권능 아 프리오리(A priori)가 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부터는 그녀의 몫이다.

“한 번 맘대로 해봐.”

정해인이 조용히 말했다.

윤채하는 뭔가에 홀린 듯, 유리 벽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대신, 절대 건들면 안 돼.”

당부의 말에,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구체는 마치 살아 숨 쉬듯, 낮게 울리며 반응했다.

“눈으로만 분석해.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해도 돼.”

윤채하의 눈이 크게 열리며 눈동자가 타올랐다.

‘마력 덩어리.

선도, 악도 아닌 그 자체로 모순인 마력의 덩어리였다.

윤채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신중하게 그 구조를 해체하듯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권능이 그 뜻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뜯어보려는 찰나….

-파지직!

구체가 순간적으로 진동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야!”

정해인의 외침과 함께.

윤채하의 시야가 새까맣게 뒤집혔다.


그녀는 다시금 눈을 떴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낯선 공간에 떨어졌다.

하얀 구름. 빛으로 가득 찬 천정. 향긋한 꽃향기.

발아래 펼쳐진 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꽃밭.

그녀는 거대한 낙원 한복판에 서 있었다.

‘천국?

그게 윤채하의 평가였다.

구체를 분석하던 중 정신이 끊겼는데, 눈을 뜨자 이곳이다.

사방은 찬란한 빛으로 가득했고, 공중에는 작은 천사들이 날아다닌다.

하얀 기둥, 황금빛 천장.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한 공간이다.

그녀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묘하게, 안정되는 기분.

그때였다.

[오셨군요.]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 윤채하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녀의 눈앞, 높고 장엄한 왕좌에 여신이 앉아 있었다.

금빛의 긴 머리칼과 자애로운 미소.

그리고 황금 장식으로 둘러싸인 신성한 로브.

그 여신은 천천히 왕좌에서 내려와, 윤채하에게 다가왔다.

[지혜의 눈을 가진 자, 그대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 자입니다.]

“… 제가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윤채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당신이 온 것 또한, 위대한 운명의 일부분입니다.]

여신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대의 뜻으로, 그대만의 정의를 실현하세요.]

그리고 여신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마치, 선택을 기다리듯.

윤채하는 갑작스럽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곱씹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가끔 듣고는 했다.

특별한 인물들이 ‘시스템’의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

자신 역시 어렸을 적, 시스템의 총애를 받아 권능을 얻었다.

그것이 바로 [아 프리오리]였다.

그러나 뭔가, 확연히 다르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공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친절한 여신.

그런데도, 그녀의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강하게 경고음이 울렸다.

너무 완벽하기에, 오히려 가짜 같다.

‘잡지 마!

정해인이 심어둔 몸속의 그 기운이, 작게 타오르며 반응했다.

그 뜻은, 명백한 거부였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정해인은 없었다.

적어도, 옆의 그가 없는 이상 결정을 내리는 건 왠지 싫었다.

최근 들어 그녀는 많은 부분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지금 이 순간.

그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는 괜찮아요.”

윤채하가 조용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별로 시간이 없네요.]

여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눈빛은 더 이상 자애롭지 않았다.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작은 천사들이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작디작은 그 손들. 그러나 그 손끝에 쥐어진 창이 일제히 윤채하를 향한다.

“…싫다고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거절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숨이 막혀왔다.

꽃밭에서 퍼지는 향이 머릿속을 흐리게 한다.

기분 좋았던 그 향이, 이젠 구역질 나는 달콤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신이 다가왔다.

손은 여전히 내민 채였지만, 눈빛은 한기를 머금은 채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했고, 다리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안…돼….

권능 [아 프리오리]가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마치 깊은 늪에 빠진 듯 빠르게 가라앉았다.

윤채하는 항거할 수 없는 기운에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화르륵.

심장에서 타오르던 작고 선명한 기운이, 순간 폭발하듯 솟구쳤다.

그 불꽃은 그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퍼졌고, 윤채하를 감싸는 투명한 장막이 형성됐다.

-쎄애애액! 팅! 팅!

순식간에 날아든 수십 개의 창이, 장막에 닿는 순간 빗겨나간다.

“하아… 하아….”

그녀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 안 가득 익숙한 냄새가 채워졌다.

꽃의 향이 아닌, 그의 향.

[아… 이런.]

눈앞의 여신이 작게 탄식했다. 그리고.

[그분이... 또!! 실망하시겠어요!!!]

외침과 동시에,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애롭던 얼굴이 찢어진 웃음으로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말이 끝나자, 윤채하의 눈이 활짝 열렸다.

[권능: 아 프리오리(A priori)가 활성화됩니다!]

거대한 낙원이,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화려한 꽃밭은 피로 물든 양귀비밭으로.

천사들의 미소는 찢어지며, 그 안에서 촉수와 이빨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한순간만이라도! 망설였다면! 됐을 텐데!!]

여신의 황금빛 로브가 찢기며 검은 베일로 바뀌었고, 피부엔 붉은 문양이 피어올라 마침내 눈동자가 전부 붉게 물들었다.

[사도(使徒) 아리아의 유혹을 이겨냅니다!]

[그대가 이겨낸 시련과 위업에 찬사를 보냅니다.]

눈 앞에 떠오른 메세지.

어렸을 적, 권능을 각성한 그 순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진짜, 시스템이다.

그때, 윤채하의 몸과 이 낯선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며 분리되기 시작했다.

빛의 틈.

그곳으로, 누군가가 손을 뻗어 그녀를 강하게 깨웠다.

“일어나!! 윤채하!!”

날카롭고도 익숙한 목소리.

그녀의 눈앞에, 정해인의 얼굴이 있었다.

당황한 듯 조금 벌어진 입, 걱정으로 가득한 눈.

그녀가 고개를 올리자, 허공에 문구들이 떠올랐다.

====

[권능: 아 프리오리 (A priori)]

①꿰뚫는 눈

ㅡ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다.

② 선험적 지식

ㅡ본질은 이미 정해져 있다.

③ ??? (미해방)

====

막혀 있던 세 번째 슬롯.

그 봉인이 풀어졌다.

유리 벽 너머에서 고요히 떠 있던 구체가 갑작스레 파동을 일으켰다.

그 빛줄기가 벽을 뚫고 윤채하의 가슴으로 직선처럼 빨려 들어갔다.

순간, 정해인의 눈이 커졌다.

“!”

그는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눈 앞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패러독스 스펙트럼(Paradox Spectrum)을 습득합니다.]

[선도 악도 아닌, 존재 자체가 모순인 에너지의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권능: 아 프리오리 (A priori)와 감응합니다!]

[ ③ 허기의 탐구자 ㅡ 있는 대로 먹어 치우고, 분석하고, 흡수합니다.]

“아….”

윤채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해인은 그 소리에 곧장 반응했다.

“윤채하! 너 기절했었어.”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당황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윤채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말없이.

누가 자신을 지켜줬는지.

방금 전, 그 광기 어린 공간 속에서 누구의 기운이 자신을 감쌌는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었다.

윤채하는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조심스레 웃었다.

“응… 괜찮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정해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