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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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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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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누리가 체스판을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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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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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다소 뾰로통한 눈길로 그걸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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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세는 이미 그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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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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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렸을까. 지누리가 신중하게 다음 수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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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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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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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기물을 탁 내려놓으며 게임을 끝냈다. 실은 진작에 끝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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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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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들려오는 단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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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말도 안 된다며, 벌떡 일어나 체스판 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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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이 빠져나갈 길이 없나 고심하다가, 완전히 막혔다는 걸 확인한 후에서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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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몇 대 몇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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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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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한 번을 안 봐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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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보던 부부장과 부장. 두 사람이 조용히 속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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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방적인 흐름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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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임으로 한 판 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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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반달 같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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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홍빛 입술은 꽉 다물려 있었다. 입술이 미묘하게 삐죽 튀어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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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은 중앙으로 팍 모였고, 눈망울은 올망졸망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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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게 그리 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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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보기보다 승부욕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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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원하는 거 아무거나 들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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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적당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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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든 질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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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지누리가 생각 이상으로 게임을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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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이쪽이 잘하는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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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너무 쉽게 끝나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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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랑 하면 하는 맛이라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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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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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걔 생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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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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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상체에 힘을 빼며 등을 의자에 푹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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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피시방이 아니라, 상담실에서 보드게임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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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로, 혼자서 하는 게임은 어딘가 재미가 없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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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렇게 다 같이 있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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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피방이 아니더라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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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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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승호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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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랑 단둘이 공부하러 간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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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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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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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하루 놀아주는 게 어디 덧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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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승호에게 호감이 있다지만, 이솔도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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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짜 힘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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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좀 풀러 게임 좀 같이해달라는 게, 그리 못할 일이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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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할래? 골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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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양손 가득 보드게임을 든 채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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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야말로 이기겠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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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블도 있고, 과일 게임도 있고. 아니면 원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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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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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그것들을 보며 슬쩍 눈을 좁혔다.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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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상담부에 보드게임이 이리 많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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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개 정도가 아니라, 반쯤 보드게임 카페를 차려도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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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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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가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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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보여도 다 상담에 필요한 것들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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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은 상자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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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보드게임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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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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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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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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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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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눈길이 ‘상담 신청서’가 놓인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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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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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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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가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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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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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턱끝이 이리저리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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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민이 되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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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시험기간에 바쁜 사람을 붙잡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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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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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아직 한 달 반이나 넘게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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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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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언니, 상담 신청서 어떻게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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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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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닥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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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에 들어온 이승아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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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이솔과 나를 둘러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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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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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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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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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어지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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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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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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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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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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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이어지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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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식 주러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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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보다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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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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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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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그걸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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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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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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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승아가 들고 온 접시 위를 보고 눈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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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것밖에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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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이라고 들고 온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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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한 조각과 애매한 양으로 따라진 오렌지 주스 두 잔이 전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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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먹을 거 다 떨어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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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으쓱 올리는 이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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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당당한 걸 보니, 정말 집에 남은 간식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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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쿠키 두 개 중, 하나 정도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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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하나를 먹은 모양이다. 이승아의 미니미가 혀를 낼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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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부스러기가 입가에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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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먹고 싶으면 직접 가서 사던가. 편의점 바로 코 앞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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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엄지로 현관을 가리켰다. 나는 팔뚝을 슥슥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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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 와주면 안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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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가기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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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줄게. 가는 김에 니 꺼도 하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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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딜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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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상관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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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총총 다가오더니, 고개를 귓가에 가까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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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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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아서 고개를 뒤로 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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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본인도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내 어깨를 한 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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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소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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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집에 둘만 있으시게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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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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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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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처 생각 못 했다. 이승아가 갑자기 들이닥친 게 내심 당황스러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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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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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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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야 상관없긴 한데······그러면, 잠깐만 나갔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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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미니미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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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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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보다 못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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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챙기고 밖으로 나설 채비를 하다가, 잠시 뒤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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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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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거만 있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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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주스가 담긴 컵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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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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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괜히 시키기 미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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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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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필요 없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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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콤 감자칩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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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발을 쭉 뻗고 앉으며, 당당하게도 요구해 왔다. “아니다. 더 비싼 거 사 오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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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미니미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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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안 사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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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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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없이 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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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잘 적당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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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이승아에게 한마디를 남긴 후, 편의점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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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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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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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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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떠난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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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과 이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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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사람만이 남은 이 공간은, 묘한 어색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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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이 침묵이 마음에 들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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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바닥에 앉은 채로 멈췄다.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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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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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왼편으로 눈을 힐끔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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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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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앉아 있는 이승아. 네일을 꼼지락거리며 보고 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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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견은 다시 봐도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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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녀티가 남아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이대에 맞는 청순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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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이승호의 여동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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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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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목울대만 꼴딱꼴딱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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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화제를 떠올리려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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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없을까. 재밌게 할 법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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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공항에서 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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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이승아가 고개를 치켜올리며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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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응.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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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그 동아줄을 냉큼 붙잡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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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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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야. 성이 ‘이’고, 이름이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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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이솔 언니···. 이름이 저랑 비슷하네요. 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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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아. 이승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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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그리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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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계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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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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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난번에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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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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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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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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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마음속으로 콧김을 훅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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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외워두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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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동생 있다는 말에, 미리 인별로 찾아봐 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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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늘은 다른 친구분들은 안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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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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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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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봤던 다른 두 분 있잖아요. 그분들도 오빠 친구 아니에요? 되게 친해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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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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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과 지누리를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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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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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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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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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빼놓고. 이승호와 둘이서 공부하는 이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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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공부하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라고 말하기엔 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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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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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 오늘은 둘이서 하기로 했어. 승호가 잘 가르쳐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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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귀 끝에 미약하게 열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떠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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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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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승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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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공부 잘 가르치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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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승아 너한테는 한 번도 안 가르쳐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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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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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그것이 서운하지도 않은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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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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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지간이면 보통 그렇죠. 글고 저도 오빠한테 배우긴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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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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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그게 보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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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이라 그런 건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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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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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책상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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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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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아래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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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게 입에 들어오니, 차츰 긴장이 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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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서, 둘만 있어도 나름 안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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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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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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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오빠한테 호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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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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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이솔의 입이 스르르 벌어졌다. 하마터면 주스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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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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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가 삐걱삐걱 옆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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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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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진지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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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건 뭐라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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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부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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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다른 말로 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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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떠오르는 차선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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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그 탓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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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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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입술을 앙다물고, 이승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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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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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붉어진 두 뺨이, 그걸 대신 말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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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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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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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고백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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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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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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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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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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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지금이 말하기 딱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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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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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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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얼굴 위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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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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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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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이솔 쪽으로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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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마주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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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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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 고백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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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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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농담이 아니라는 듯한 담대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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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망울은 정확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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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목울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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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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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은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 치마 끝자락을 살짝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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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한 심정 속에서, 그녀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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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 고백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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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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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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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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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슥 벌어졌다. 이솔의 얼굴 위로 멍한 표정이 점차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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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얘한테 뭔가 실수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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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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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런 게 아니고선, 그런 말을 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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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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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뻐금거리던 이솔은, 눈매가 추욱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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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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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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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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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본 이승아가 당황하며 양손을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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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백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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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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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다시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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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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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하라면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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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려면 안 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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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하지 말라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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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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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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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곤란한 듯,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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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꾸물거리며 시선은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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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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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눈을 감은 이승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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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고 있냐며, 불만 어린 어투로 중얼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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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냥 빠르게 말할게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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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확 찌푸리며, 이승아는 벽에 탁 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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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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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그 기세에 끌려가듯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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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저희 오빠가 엄청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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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그 언젠가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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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때가 이승호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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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도 모를 고열에 시달려서, 밤중에 응급실로 실려 간 적이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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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열은 금방 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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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쯤부터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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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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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저희 오빠는 연애 감정 같은 걸, 거의 못 느끼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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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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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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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행동이 그대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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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에도 놀라지 않을 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안 놀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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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놀랐다기보다. 현실감을 잃고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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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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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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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시선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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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승아였지만. 그 어투만큼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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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거짓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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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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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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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말없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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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썸녀가 고백한 걸, 그대로 차 버렸거든요. 둘이 원래 되게 좋은 사이였는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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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증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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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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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이지만, 신경 쓰이는 화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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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금은 잠시 넘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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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서 어디 문제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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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병원에서 그런 건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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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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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또 멀쩡하거든요. 화날 때 화내고, 맛있는 거 먹으면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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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자체는 크게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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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감정의 기준치가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 흐려졌다고 해야 하나···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상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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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로 성향 자체가 뒤바뀐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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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로맨스로 점철된 드라마도 잘 보던 사람이, 그날 이후로는 어딘가 재미없다며 영화를 선호하기 시작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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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이하였던 성적은 갑자기 올라가고, 안 하던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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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만화에 나올법한 등가교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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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얻은 대가로, 감정의 한 부분이 흐릿해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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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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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섣부르게 고백해 봤자. 좋은 답은 못 들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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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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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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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걸로는 꿈적도 안 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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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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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라면 언니랑 단둘이 약속 잡았을 때부터 호들갑 떨었을 텐데. 저 인간은 미동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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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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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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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학습지를 꺼내 들던 이승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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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백하지 말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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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통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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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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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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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갑작스러운 화제에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탓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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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귈 상대로는 오빠는 추천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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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그런 조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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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보답받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언니도 아직 호감일 뿐이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찾는 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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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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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이승아의 목소리가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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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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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고개를 슬그머니 치켜들었다. 어딘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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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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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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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알아차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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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내린 선택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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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때도 그렇고, 수학여행의 아쿠아리움에서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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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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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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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한순간, 숨을 후— 들이키며. 내뱉을 말을 일부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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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대로, 이쪽에서 보낸 고백으로 잘 안될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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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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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내게 고백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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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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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말하고 나니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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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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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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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자신은 점진적인 연애를 하고자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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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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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방 안. 이승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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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눈이 깜빡거렸다. 발가락이 꾸욱 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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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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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표정이 부끄러움으로, 미약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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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는 이쪽이 다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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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스푼을 그대로 퍼먹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로맨스 드라마가 굉장히 보고 싶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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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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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의 광경이 머릿속에서 다시금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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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살짝 떨어진 회색빛 머리카락. 그 사이로 보이는 동공으로 비치는 풋풋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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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미묘한 음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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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하나가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차고도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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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물 한 편 뚝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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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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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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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삑삑거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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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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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한 손에는 흰 봉투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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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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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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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혼자 애니메이션 보던 중, 부모님이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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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색하며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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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새끼. 넌 용돈 절반으로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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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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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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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어이없다는 듯 의문 부호를 떠올렸다. 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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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 온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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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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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그걸 보고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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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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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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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냉큼 그걸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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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 든 간식이 이것저것 많았다. 뒤적거리다가 매콤 감자칩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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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눈치껏 사 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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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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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을 살피던 이승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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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집중 안 될 것 같다고, 먼저 돌아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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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이솔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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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말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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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뽀짝한 모습으로 돌아와선, 다다다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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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가면서 안 마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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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의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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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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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간식을 선반 위에 정리하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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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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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끄러움이 많은 언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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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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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선반을 정리하던 이승호가 떠보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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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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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은 여전히 선반 위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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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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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괜히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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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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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돼서 말하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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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지금 내가 말하는 편이 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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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신 상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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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받았을 때 이리저리 설명하며 거절하는 것보다는. 구차하게 이승호가 직접 말하는 것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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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른 사람이 말하는 편이 신빙성이 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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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처를 주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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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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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도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있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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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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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에 손을 괸 이승아가 헛웃음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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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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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중에 연애 감정만 흐릿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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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가 생겨난, 저 이상할 정도로 기민한 눈치와 등가교환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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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디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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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아가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 이승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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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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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뭘 당당하게 지나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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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눈을 찌푸리며 그를 추궁했다. 당당하게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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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도와줬으니까, 너도 나 좀 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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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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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잠시 침묵했다가, 주춤주춤 몸을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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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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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휴대폰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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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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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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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본 이승호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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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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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다음 주 주말에 여기에 부스 열 생각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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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축제. 일정 기간마다 여는, 모든 오타쿠들의 오프라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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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물들을 사고팔거나, 코스프레를 볼 수 있는 이벤트 회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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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행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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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장래 희망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주기적으로 이곳에 참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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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입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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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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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행사 뛰는 거 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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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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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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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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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세면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헹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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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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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솔의 행동과 생각을 종합해 보자면, 그건 이미 호감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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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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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호감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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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문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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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상으로 내가 뭘 한 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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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떠올리자면, 중간고사 때 사소한 도움을 준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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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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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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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 앞에서 얼굴을 슥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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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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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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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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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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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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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이승아가 이쪽을 보고선 가던 길로 지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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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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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잇··· 왜 아침부터 지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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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총총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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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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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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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닌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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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수건을 들고 얌전히 물기를 닦은 뒤,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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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민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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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모가 영향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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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잘생겨서 반했다고 하기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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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생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예인 뺨칠 정도로 생긴 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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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엔 나보다 잘생긴 애들이 많았다. 외모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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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거라면 이솔은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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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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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다니며 빵을 우물거리던 이승아가 쩝쩝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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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한테 다 말해뒀으니까, 다음 주 행사 빠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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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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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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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행사가 주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바비도 조금 준다니까. 크게 불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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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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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리얼을 접시에 붓다가 눈을 좁혔다. 반대편에 이승아가 떡하고 앉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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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왜 여기서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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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잘 안 먹는 애가 앉아 있으니, 더 이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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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할 수도 없으니까, 일단 가만히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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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이상형 같은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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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돌연 그런 물음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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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뿜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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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라도 있으면 나중에 솔이 언니한테 슬쩍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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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미니미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계략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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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난 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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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가끔 말을 이상하게 끊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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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시리얼을 향해 신경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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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해야 할 대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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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뜬금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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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안 들린다는 가정하에, 이게 가장 적당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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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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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가 오물거리던 입술을 멈췄다. 무안한 듯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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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읍··· 너무 성급하게 꺼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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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마가 턱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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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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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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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리얼을 와그작 씹으며 생각했다. 슬슬 이승아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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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내게 신경 써주는 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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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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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나름의 템포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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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보기엔 느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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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관계에 벽을 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부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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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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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보다 인간관계에 느리고, 조심스러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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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생각이 들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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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관계 맺음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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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를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동안 잘 지내왔던 친구들과 전부 멀어졌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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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썸녀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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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이건 생각하지 말자. 그리 좋은 기억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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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감정적 거리감을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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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경험으로 몸에 밴 습관에 가까웠다. 잠깐의 시간으로 고쳐질 체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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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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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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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솔을 떠올리며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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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비틀며 뭐라도 하고자 하는 녀석을 떠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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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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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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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바뀌고자 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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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위기감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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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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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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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하나둘 등교하는 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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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흑색 세계’가 공개되고 나서 제일 크게 변화된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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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신아영 주변으로 서 있는 사람들의 성비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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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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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은밀히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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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들은 멀리 떨어져서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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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이라이트 뉴튜브에 올라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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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이 두런두런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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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부탁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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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드라마 얘기를 핑계로 말을 걸어오는 남학생이 부쩍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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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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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 이거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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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걸어들어오며 손에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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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남자애들이 자연스레 제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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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나 이솔이 오면 그들도 은근슬쩍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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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은근히 눈치를 주고, 이솔은 대놓고 자기 자리에서 비키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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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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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를 하나 집은 신아영은 내심 지누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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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먹자 조금은 참을 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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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까지 앞으로 약 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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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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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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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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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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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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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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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대편 복도 끝에서 걸어오던 이솔과 딱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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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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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행동이 멈췄다. 덜컥 떨리는 것이 여기까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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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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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미니미도 행동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이즈가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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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거리는 걸음걸이. 하루 종일 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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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몸 안 좋은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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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눈썹을 구부리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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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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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삐걱삐걱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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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는 정반대다. 전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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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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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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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의 노이즈가 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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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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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쪽팔’ 이나 ‘민망’같은 단어가 섞여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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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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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승아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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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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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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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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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로는 알아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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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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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아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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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에서 가방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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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연습 있어서. 솔아 이거 좀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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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사유서를 이솔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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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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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는 건, 또 멀쩡히 잘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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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빠지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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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의 미니미가 작은 기타 케이스를 고쳐 매며 눈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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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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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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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길거리 공연이라도 할 생각인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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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나 먼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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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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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리를 뜨는 지누리를 향해, 잘 가라며 적당히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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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둘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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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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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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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말없이 끄덕였다. 가방을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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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긴장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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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생각이 안 읽히니, 확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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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의 부실까지 다다랐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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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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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먼저 부실로 들어가 보라며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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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방향을 보니 볼일이 급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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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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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끄덕이며 먼저 부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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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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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자, 카드 게임을 하고 있던 부장과 부부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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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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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카드 뭉치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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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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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아. 너한테 상담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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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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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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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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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책상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 흰 봉투가 하나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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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이런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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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상담을 하면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었다. 내담자가 상담 내용을 원하는 사람에게 말할 권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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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승호라면 알아서 잘하겠지······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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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탓인지, 미니미의 생각이 일부만 드문드문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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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카드 게임에 관련된 생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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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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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약서를 쓴 후, 상담 신청서를 그걸 펼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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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거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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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적힌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의아함에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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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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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아무도 없는 복도까지 온 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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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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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벽에 등을 붙였다. 어느새 진이 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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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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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쓸어내리다가. 정신 차리자며 볼을 가볍게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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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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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꾀병이나 핑계가 아니라, 합법적인 연유로 동아리도 빠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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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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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수업이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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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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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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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계단을 토도도도 내려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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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앞에서 살짝 속도를 줄이며 눈웃음을 지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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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후로 들어온 순간, 빠른 경보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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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여느 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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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문을 열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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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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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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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장인 박민지가 제일 먼저 그녀를 맞이했다. 그 말에 부실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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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도 있고, 그 옆에 부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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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리는 연습한다고 안 온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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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로 이솔이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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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잠시 의문을 가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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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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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솔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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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가 살짝 젖어있다. 어디서 세수라도 하고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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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왔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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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그녀를 보고 눈썹을 들썩이고선 살짝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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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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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보다는 조금 어색한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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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디서 공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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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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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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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건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엉덩이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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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랑 상담이 잡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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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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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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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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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의 눈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 방울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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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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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거리가 생겨서···. 오늘 상담 받기로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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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미안하다는 듯 양손을 모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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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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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눈을 좌우로 굴렸다. 평소보다 조금 초조해진 듯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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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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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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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1 상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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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러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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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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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은 승호 얘가 더 잘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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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이솔의 어깨를 부드러운 손길로 짚었다. 가볍게 선을 따라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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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리고 솔이 너는 공부해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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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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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말고사가 한 달 하고도 반밖에 안 남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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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착실히 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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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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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의 입술이 앙 다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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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공부는 민지 언니가 봐주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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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시선으로 옆을 슬쩍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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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지는 카드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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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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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의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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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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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이솔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걸 방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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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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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래,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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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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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이승호를 데리고 안쪽 상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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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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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닫이식 문을 조용히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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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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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틈새 사이로 이솔의 벙찐 얼굴이 살짝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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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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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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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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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이쪽도 열심히 기다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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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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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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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하루만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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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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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아, 이 정도는 이해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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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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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후···.”
|
||||
|
||||
문을 닫은 신아영은 고개를 숙였다. 두 눈망울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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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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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국은 저질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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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쿵. 심장이 뛰었다. 이마가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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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건 이솔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일탈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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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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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둘 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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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스읍··· 후우···.”
|
||||
|
||||
신아영은 가슴 부근을 살살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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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정하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기껏 일탈을 저지르며 그를 데려왔으니.
|
||||
|
||||
“우리 뭐 할래?”
|
||||
|
||||
신아영은 상담실 안쪽, 책상 밑에 있는 사물함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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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에 수북이 쌓여있는 상자들을 둘러봤다. 그것들을 하나씩 탁자 위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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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보니까 할 건 이것저것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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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둘만으로 할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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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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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가 귀를 문지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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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왕 할 거면 사람 많은 게 더 재밌지 않나?”
|
||||
|
||||
의자에서 슬쩍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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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으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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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단지 그 동작은 끝까지 완수되진 못했다. 신아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
||||
|
||||
“···아.”
|
||||
|
||||
신아영은 짧은 단말마를 내뱉었다.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제가 한 행동에 스스로 놀란 듯 눈을 떨었다.
|
||||
|
||||
“···다들 공부한다고 바쁠 거야.”
|
||||
|
||||
그런 변명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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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게다가.
|
||||
|
||||
“개인 상담이잖아.”
|
||||
|
||||
신아영은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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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금은 상담에 집중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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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이승호의 대꾸는 없었다.
|
||||
|
||||
말없이 신아영의 주변을 슥 살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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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래.”
|
||||
|
||||
곧 힘을 풀고 도로 앉았다.
|
||||
|
||||
“···근데, 괜찮겠어?”
|
||||
|
||||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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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의 물음에 신아영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신경을 집중했다.
|
||||
|
||||
“아니, 상담이니까.”
|
||||
|
||||
이승호는 책상 위에 올려진 보드게임을 하나씩 옆으로 정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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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지한 내용이라면 선생님이 더 잘할 거고, 상담 자체는 민지 선배나 부장이 더 수월할 테니까.”
|
||||
|
||||
이승호가 재잘재잘 말을 전달했다. 신아영은 그 말에 어깨에 힘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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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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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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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게 별거 아닌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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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갑이니까 오히려 신청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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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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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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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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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때로는 부장이나 부부장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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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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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부에 다니는 동갑이라 해봐야. 이승호, 지누리, 이솔··· 이렇게 세 사람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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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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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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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두 사람한테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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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솔은 공부 때문이라도 바쁠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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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누리는 그리 상담을 잘할 것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담이랍시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
||||
|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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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승호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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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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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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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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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만 있어서 게임이 재미없을까 봐 그런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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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드게임도 생각보다 둘이서 할 수 있는 거 많은데? 카드 게임도 있고, 블록 게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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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아영은 이런저런 보드게임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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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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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고 미리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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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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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에 세워져 있던 상자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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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둘 중에 뭐? 하나는 블록 게임이고 이쪽은 카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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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쫑알거리며 박스를 위로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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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난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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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케, 그럼 이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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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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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그가 고른 보드게임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선. 나머지 박스들은 모조리 안쪽으로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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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게임도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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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내려다보던 이승호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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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번에 들여놓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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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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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지 언니한테 추천한 게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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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게임을 살지 고민하길래 말해두었다. 보니까 재밌을 것 같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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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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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박스에서 부품을 밖으로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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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테트리스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게임이었다. 게임이 끝난 시점에서 더 많은 땅을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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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을 숙지하기도 쉽고, 블록도 알록달록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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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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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신아영은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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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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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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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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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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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소리와 함께 블록이 차곡차곡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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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는 와중에 이승호가 블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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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니가 보드게임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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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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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방을 더 좋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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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의 말에 신이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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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보드게임도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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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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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답이 없었다. 그냥 말없이 반달 같은 눈을 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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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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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찔린 듯 목소리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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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피방을 좋아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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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vs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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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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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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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까지 빠르게 세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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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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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느릿하게 진실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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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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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그럴 줄 알았다며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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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블록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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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보드게임도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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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변명을 해봤지만, 이미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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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블록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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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그는 슬쩍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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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평소에도 하는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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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뭐,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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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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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하지. 같이 할 사람도 없고. 최근에 상담실 오면서 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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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별생각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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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보니까 이것도 이것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온라인 게임과는 또 다른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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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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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블록을 내려놓았다. 이걸로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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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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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 단말마를 내뱉었다. 게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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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 수를 세어보니 신아영이 먹은 땅의 개수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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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이렇게 못해. 혹시 상담이라고 봐 주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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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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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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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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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돌처럼 움직이지 않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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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눈을 미묘하게 좁히더니, 일자로 닫혀있던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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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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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 있어서 ‘미니미’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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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특화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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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읽힌다는 시점에서부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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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알 수 있으니, 가벼운 상담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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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담자의 상태가 나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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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내용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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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점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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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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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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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미니미는 드문드문 끊어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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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쭉— 이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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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좀처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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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야 작게 줄어든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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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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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신아영의 스트레스 해소가 거의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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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딴에는 보드게임으로 해결해 보려 한 듯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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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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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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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피시방 게임을 하러 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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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한 도움은 될지 몰라도. 큰 변화를 노리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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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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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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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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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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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을 늘이면 늘릴수록 그 탄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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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심리적 부담은 그즈음에 도달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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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게임으로 해결하기엔 무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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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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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턱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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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른 게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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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방금까지 하던 보드게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 행동에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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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 없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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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터덜터덜 다른 보드게임을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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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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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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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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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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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상을 살짝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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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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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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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의문 부호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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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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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재미없었어? 역시 이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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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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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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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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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상담하러 온 거잖아. 여기서는 잘 안될 것 같아서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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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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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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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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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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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었지. 상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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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큼큼거리며 눈을 굴렸다.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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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잊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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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쭈뼛거리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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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그래도 되는 거야? 막 밖으로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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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상담한다고, 부장한테 말해놓으면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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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라고 해서 은밀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앉아서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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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밖에서 행해지는 상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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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집중 안 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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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으로는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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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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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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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밖에서 들려오는 노이즈가 내 고막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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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들리는 건, 아마··· 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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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는 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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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진짜 정신 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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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신아영부터 해결하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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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자.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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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일어나, 의자를 책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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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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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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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신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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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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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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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빠져나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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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승호의 말대로 부장한테 말하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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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솔의 신경이 쓰이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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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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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고개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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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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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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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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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의 물음에 신아영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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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전 잠시 편의점에 들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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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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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골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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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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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냉동고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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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는 기다리다 못해, 편의점을 둘러보며 아이 쇼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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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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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슬그머니 그를 향해 눈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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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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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이승호는 자신의 상담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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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물을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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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고민인지, 내가 직접 말하기를 기다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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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아니라면, 상담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걸 눈치채고 안 꺼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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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뭐가 되었든, 고마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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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이승호와 같이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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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랑 있으면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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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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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짧은 고민 끝에 초코바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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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싼 아이스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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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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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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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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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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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의점에서 나오며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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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들려오는 노이즈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나마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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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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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포장지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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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까 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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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것 때문인지. 이전보다는 노이즈가 차츰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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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미니미의 말을 대략 해석할 수준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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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마. ‘맛있네’ 정도의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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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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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힐끔 신아영의 어깨 위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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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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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앉은 미니미가 우물우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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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표정이 어딘가 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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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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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오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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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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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의 목적을 다시 되짚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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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들려오는 노이즈를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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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면, 신아영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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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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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로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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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외부의 과도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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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하나는 그러한 시선을 의식한, 연예인 딸로서의 이미지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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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녀는 게임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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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실수를 해도 주변의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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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그게 잘 안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나은 방안이 없을까 궁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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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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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몸 쓰는 게 제일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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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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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 같은 부류에게는 하면 안 되겠지만, 신아영에게는 은근 통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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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근처에서 할 만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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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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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새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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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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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문 신아영이 그제야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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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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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스케이트 잘 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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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조금 더 이어가다가 신아영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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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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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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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줄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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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렸-- 때 몇 번-----으니까 괜--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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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집중했다. 어렸을 때 몇 번 타서 괜찮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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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타는 건 아닌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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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면 오히려 좋다. 신아영은 조금 더 본연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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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스링크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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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싫으면 다른 데로 가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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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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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담은 어디까지나, 내담자의 의견이 중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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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아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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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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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괜찮은 건지, 아니면 눈치를 살피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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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바로 가도 되나 싶어서. 아무것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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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복은 미리 갈아입었고, 장갑은 가서 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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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럴 줄 알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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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체육 교과가 든 날은 체육복으로 하교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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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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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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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이동한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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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신아영과 함께 아이스 링크 건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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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부터 달랐다. 차가운 냉기가 숨 쉴 때마다 느껴졌다. 어딘가 겨울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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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그런가 널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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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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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그다지 없고, 대부분이 초등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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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가 몰리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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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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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진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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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뒤따라 들어오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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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주 오는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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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안 오지. 재작년인가 한 번 탄 적 있긴 한데···.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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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이후로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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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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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한편으로는 그게 조금 씁쓸한 미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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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연예인인 탓에, 가족끼리 이런 곳에 자주 오지는 못한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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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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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 도착하자, 신아영이 빠르게 카드를 꺼내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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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하기도 전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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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표를 끊고, 다음은 스케이트 대여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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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아영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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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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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한 250 정도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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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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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네. 240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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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뒤꿈치를 들어 발바닥을 살피더니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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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하나. 240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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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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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분이 빠르게 스케이트 두 켤레를 꺼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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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260 하나. 이게 24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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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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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받아 들고 앉을 곳을 찾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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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에 비치 되어있는 헬멧도 챙긴 후. 장갑도 하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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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옆의 비어 있는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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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신발을 스케이트화로 갈아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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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들어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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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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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어색한 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미니미도 따라 뒤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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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좀 웃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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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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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빙판 위에 발을 내디딘 순간, 몸이 기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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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틀거리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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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질 듯이 떨리던 중심이 차츰 안정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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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줄 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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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랜만에 타니까 적응 안 돼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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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눈썹을 찌푸리며 괜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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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끝은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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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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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 놓지 말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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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신아영의 눈이 당황한 듯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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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허벅지는 갓 태어난 기린처럼 안으로 구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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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일로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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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벽면으로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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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난간에 몸을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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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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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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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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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라 당황한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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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호기롭게 난간에서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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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지, 발을 세차게 뒤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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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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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그대로 미끄러져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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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바닥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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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라가던 나는 곧바로 벽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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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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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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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눈이 주변을 휙휙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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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상태를 돌아보는 것보다. 그걸 은연중에 우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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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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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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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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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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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쪽팔렸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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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의 표정이 우울함을 넘어, 눈동자가 물방울처럼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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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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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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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되어 있던 미니미의 표정이 차츰 풀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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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링크에서 넘어지는 건,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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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함은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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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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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자신감이 붙은 이후로는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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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중심을 잘 잡고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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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제법 탄다고는 말할 정도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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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배우는 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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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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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던 신아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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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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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날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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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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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으로 인한 해소인지, 주변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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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느 쪽이든 잘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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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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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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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에,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짝.짝. 박수 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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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입술이 부루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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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놀리지 말라며 내 어깨를 툭툭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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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좀 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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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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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후들거리던 걸 진짜 동영상으로 남겨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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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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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부 사람들이 봤으면 빵 터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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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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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이 불만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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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조금 더 빠르게 달려보겠다며, 빙상 위에서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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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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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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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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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르게 앞으로 내달려, 신아영의 팔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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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 않고, 옆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도록 부드럽게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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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빠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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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 사사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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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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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들끼리 논다고, 앞도 제대로 안 보고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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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삐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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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타나 두 아이를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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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놀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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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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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게 뭐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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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애들이 많을 때부터 좀 조심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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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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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이 끌려가는 걸 지켜보다가, 신아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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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삐끗하진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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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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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얼굴로 있던 그녀는 날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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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빙상 위였기에 아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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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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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놀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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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에게선 짤막한 노이즈가 작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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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는 금방 잦아들었다. 신아영의 미니미는 숨을 후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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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 깜짝 놀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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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데, 상당히 놀랐는지 눈동자가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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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한 자세로 벽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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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씨···쪽팔려. 괜히 신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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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울상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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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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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를 겸 밖으로 나가볼까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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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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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빨리 따라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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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씩씩하게 앞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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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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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몸짓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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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괜찮을는지 걱정이 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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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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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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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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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빙판 위를 나아가던 신아영이 스르르륵 벽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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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제법 익숙해진 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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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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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선을 뒤로 돌리며 눈썹을 위로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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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러지···? 좀 더 타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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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빙판 위를 툭툭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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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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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라고 말하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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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여섯 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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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벽에 붙어 있는 전자시계를 가리켰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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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가서 밥도 먹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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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는 시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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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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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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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네? 벌써 그렇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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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즐기고 있던 모양이다. 시간의 흐름도 깜빡할 정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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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뿌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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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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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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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복 음이 울렸다. 그건 내 배에서 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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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망함에 크흠— 헛기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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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었다. 움직였더니 상당히 허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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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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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리를 신아영도 들은 건지. 둥그런 눈매 위로 웃음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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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배고팠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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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미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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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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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영이 먼저 앞장섰다. 빙판을 한 바퀴 돌아 출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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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에 내딛자 부드럽게 나아가던 얼음 위와 달리, 삐뚤거리는 감각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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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아두었던 자리까지 걸어가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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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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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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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헬멧을 벗다 말고, 머리 위로 도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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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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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데구루루 굴려서 주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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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땀 때문에 헝클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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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아··· 완전 땀 범벅이야··· 냄새 안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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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머리를 만지던 미니미가 울상을 지었다. 찝찝한 것인지 눈썹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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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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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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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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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며 적당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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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펭귄처럼 뒤뚱뒤뚱 화장실로 향했다. 스케이트화를 벗는 것도 잊고 급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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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이,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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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족쇄를 벗은 듯이 몸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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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신아영의 노이즈도 해결했겠다. 마음이 더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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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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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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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하는 건지. 신아영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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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지쳐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홀짝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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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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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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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헝클어졌던 머리는 뒤로 묶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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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취제라도 뿌린 건지, 시원한 비누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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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하게 화사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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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 챙겨다니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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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급한 대로 해결했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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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가 묶을 머리를 뒤로 찰랑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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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까지 제 상태에 동요하더니, 지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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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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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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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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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오자. 조금 어둑해진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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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애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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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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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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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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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7시가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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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뜩이나 움직인 뒤라 허기가 졌기에, 웬만하면 여기서 사 먹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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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래도, 물어보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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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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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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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아영에게 의견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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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서 밥 먹고 갈래? 지금 버스 타면 늦게 도착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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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 그럴 생각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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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아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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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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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고픈 것은 신아영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
||||
|
||||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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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이다음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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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먹을래?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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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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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 식당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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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만 둘러봐도 무엇을 말해도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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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팍 생각나는 게 없네. 나는 아무거나 잘 먹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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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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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짜 뭐 먹지··· 얘는 어떤 거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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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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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가 나를 힐끗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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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을 신경 쓰는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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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나도 당장 생각나는 게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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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때 좋은 방법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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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하나씩 읊어볼 테니까 괜찮은 거 짚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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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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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개를 들어 거리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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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 표지판의 메뉴를 하나씩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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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자··· 당장 보이는 건. 햄버거, 떡볶이, 김밥··· 저기에 파스타집이 있고···.”
|
||||
|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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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아영이 말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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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매하네··· 그걸로는 배가 안 찰 것 같은데··· 얘 배고픈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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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니미가 턱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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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아영이 좋아할 만한 걸 말했는데. 영 시큰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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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쪽에는 돈코츠 덮밥도 있고 닭갈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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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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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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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미가 허리를 빠짝 세웠다.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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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닭갈비 부근에서 반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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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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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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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만, 신아영의 입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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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 어. 이거.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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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니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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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입을 뻐금거렸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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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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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마지막 메뉴를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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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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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거라면 나도 좋아하는 메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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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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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군다나 밥을 먹고 싶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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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응응, 닭갈비 좋다.”
|
||||
|
||||
냉큼 끄덕이는 신아영. 낯빛에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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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정이 내려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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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린 곧바로 닭갈비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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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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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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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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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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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 이쪽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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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직원분은 방긋 웃으며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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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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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친절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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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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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직원의 미니미가 피곤함에 찌든 표정으로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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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속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친절히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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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게 직업정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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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는 직원이 안내한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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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먹을까?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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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그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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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중앙에 놓인 메뉴판을 보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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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본이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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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도 그걸로. 주문은 기본 두 개로 한다? 사리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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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사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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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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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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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픈 탓에 뭘 먹어도 다 맛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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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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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손을 들어 올리며 직원을 불렀다. 여기는 키오스크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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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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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이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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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거 주문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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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기본 닭갈비 2인분에다가 라면 사리 추가로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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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맵기는 어느 정도로 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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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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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그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다가, 내게로 시선 돌리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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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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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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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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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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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계산표 위에 글자를 끄적이더니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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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닭갈비 2인분에 라면 사리 추가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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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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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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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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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방긋거리는 미소를 짓다가, 직원이 완전히 사라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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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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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하품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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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링크장에서 격하게 움직인다고 피곤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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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다 눈썹을 움찔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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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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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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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니미가 내 쪽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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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못 본 척해줘야 할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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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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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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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아래로 다리를 은근히 뻗었다. 쭈욱 펴진 허벅지가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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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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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게 스트레칭을 끝낸 신아영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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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피로했지만, 정신은 무거운 잡념이 사라지고 말랑말랑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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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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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링크라길래 처음에는 어떤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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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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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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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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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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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졌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엉덩이가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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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잘 타게 되었을 때는 어딘가 신이 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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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애들이 쌩쌩 지나갔을 때. 이승호가 확 잡아끈 것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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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그걸 떠올리며 가만히 턱을 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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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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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휙 끌려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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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준 거였다지만, 그렇게 간단히 끌려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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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팔뚝을 작게 쓸어내렸다. 그가 붙잡았던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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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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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떠올리자니 왜인지 민망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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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찬 손바닥을 체육복 위로 슥슥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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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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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틈에 앞치마를 들고 온 이승호가 둘 중 하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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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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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걸 조심스레 받아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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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서 있는 이승호를 살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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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가 위로 들렸다. 조금 각도가 가파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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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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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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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좀 큰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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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심히 살피니, 확실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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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때의 기억과 비교하자니 커진 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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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걸 지금 알아봤는지 모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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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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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에 이승호가 자리에 도로 앉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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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 은근히 들썩였다. 입꼬리가 삐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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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척 물을 삼키고 있다지만, 내심 좋아하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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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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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걸 보며 은근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 반응이 어딘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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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운동이라도 하는 거야? 되게 빨리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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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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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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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의 표정을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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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시선이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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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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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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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관문을 열며 집으로 들어왔다. 안쪽에서 TV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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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들어서자, 이승아가 소파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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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화면으로 애니를 보던 녀석은 힐끔 이쪽을 살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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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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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운동하고 왔냐? 솔이 언니랑 공부하다 온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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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때문에 오늘은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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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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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아도 별로 관심은 없었던 것인지, 온 신경이 TV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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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대화를 더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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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쉬고 싶은 기분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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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충 가방을 방 안에 벗어던지고 교복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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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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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씻고 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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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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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숨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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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케이트를 탔더니, 이것도 체력 소모가 제법 되었다. 눈꺼풀이 깜빡깜빡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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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태로는 오늘은 운동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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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하면 곧 잠들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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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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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할 건 해야겠다 싶어서, 나는 침대 위를 구르며 휴대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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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아영은 수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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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노이즈는 해결했다. 당분간은 괜찮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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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직 남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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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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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노이즈를 내뿜을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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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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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나올 때 그 노이즈는 더 거세졌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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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괜찮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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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나온다고 그 뒤로는 연락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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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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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천장 방향으로 들어 올린 기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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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노이즈는 명백히 신아영의 것과는 다른 종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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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고민되는 와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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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연락을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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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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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손이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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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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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좋다. 그곳에 누워있는 건 더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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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집에 있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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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개를 건드리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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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사람은 괜히 깨우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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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웠을 때만큼은, 집에 있는 이 순간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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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아무런 갈등도 피로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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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솔은 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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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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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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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왜 집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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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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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거실 소파 위에 엎드려 쿠션 위로 턱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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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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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은 한숨은 쿠션에 맞닿아, 부르륵—거리는 진동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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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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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휙휙 넘겼다. 그에 따라 올망졸망한 눈동자도 따라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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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방에 간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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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정 전부 전적이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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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정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피시방에는 가진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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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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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제 회색 머리카락을 북북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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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울컥 신아영에 대한 배신감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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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준다고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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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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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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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때 알아서 할 테니까, 안 도와줘도 된다고 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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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방해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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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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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쿠션을 끌어안았다.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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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를 뒹굴뒹굴 구르다가,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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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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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씻고 있었던 어머니가 머리를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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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고선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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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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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털던 수건을 잠시 내려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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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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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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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 아래에 은밀한 걱정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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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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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괜스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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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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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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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일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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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차피 하루 정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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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구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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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의 어머니는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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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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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 앞의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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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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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이 작게 알람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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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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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화면을 들어 뭔지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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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아영이 전화 온 거라면. 그냥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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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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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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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 들썩였다. 이승호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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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확인해 보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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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떨며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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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기다린 것처럼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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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확인하면 마치, 자신이 계속 문자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 염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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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한 2분만 기다렸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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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휴대폰을 소파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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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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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1분··· 하고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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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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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을 의도적으로 좁히며 잠금화면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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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상단에 떠올라 있는 문자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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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 잘 들어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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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 오늘 공부 어떻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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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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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본 이솔의 작은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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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신경은 쓰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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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 : (바닥에 벌러덩 넘어지는 햄스터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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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 : 민지 언니가 도와주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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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 :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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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그렇게 답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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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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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괴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술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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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답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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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호 :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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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문자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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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 내일 스터디 그룹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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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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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이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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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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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한 숨을 내뱉었다. 억지로 표정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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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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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정강이는 번갈아 움직이며 소파 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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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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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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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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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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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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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그머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헛기침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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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니··· 좋은 일 있었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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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별일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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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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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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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햇살이 학교 창틈 사이로 살며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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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일찍 등교한 이솔이 책상 자리에 앉아서 반쯤 졸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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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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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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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눈을 뜨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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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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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작은 박스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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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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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 때문에 공부 방해된 것 같아서. 너 이거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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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준 것을 다시 살피니, 리본에 묶인 초콜릿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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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법 고급품으로 보이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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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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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태여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솔은 그걸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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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는 상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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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야 신아영의 고충을 이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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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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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솔은 초콜릿을 하나 집어 먹으며 속으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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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영도 드라마 때문인지 시선이 하도 많이도 몰렸으니.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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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제의 행동도 그러한 연유의 결과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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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상담부라는 게 그럴 때 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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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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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 번은 괜찮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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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왜냐하면, 자신은 이해심이 넓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
||||
|
||||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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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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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이 그녀의 책상을 두들겼다. 이목을 이리로 돌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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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과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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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금 궁금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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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나가서 둘이 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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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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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솔의 물음에 신아영의 동작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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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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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별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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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냥 궁금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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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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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피방 간 건 아닌 것 같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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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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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물음에 신아영은 잠시 침묵했다.
|
||||
|
||||
새끼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돌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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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딘가 곤란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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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으음··· 그냥··· 이것저것? 별로 대단한 건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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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충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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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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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마음에 조금이나마 걸리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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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크게 별것 아니겠다 싶어서, 이솔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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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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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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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솔은 다시 따스한 햇살을 이불 삼아 나른함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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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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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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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영의 단말마에 살짝 눈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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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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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뒷문에서 들어오는 이승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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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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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 인사를 받으며 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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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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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이 그를 부르며 앞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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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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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가 매점 갈래? 아침에 보니까 매진됐던 간식 채우고 계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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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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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뭐였더라? 지난번에 네가 먹어보려 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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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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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맞아. 그것도 몇 개 들어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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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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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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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대화를 지켜보던 이솔의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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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의 얼굴을 보니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언젠가 봤었던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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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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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 표정을 더욱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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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머리칼을 옆으로 귀 옆으로 쓸어내렸다. 그 눈길이 유독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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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본 이솔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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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도 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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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그녀가 시선을 돌리며 이솔과 지누리. 두 사람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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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이어폰을 한 짝 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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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가 사주면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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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누리는 안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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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시선을 왼편으로 돌렸다. 이솔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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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이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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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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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이 의자를 뒤로 밀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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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뻗어 신아영의 소매를 툭툭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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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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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아함이 그녀의 눈에 서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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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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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솔은 어색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밖으로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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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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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더 가면, 위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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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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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솔의 말에 천천히 허리를 폈다. 의아한 듯 교실 앞의 시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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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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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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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어조는 단호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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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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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마지못해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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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렇게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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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갑자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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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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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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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아는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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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소곤거리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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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라면 뭐 알지 않으려나? 둘이랑 한동안 같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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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의 미니미는 똘망거리는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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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도 같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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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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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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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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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실망에 빠져 책상 위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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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며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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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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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응해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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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정말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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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미니미는 아직도 노이즈가 섞여 있었고. 신아영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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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후로, 기분이 좋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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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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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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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이 가는 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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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어제의 일로 신아영을 부른 게 아닐까 싶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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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하루를 날려버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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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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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의 미니미가 책상 위를 뒹굴거리며 중얼거렸다. 옹졸한 발끝을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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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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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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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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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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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복도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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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발자국 떨어진 뒤편에서는 신아영이 뒤따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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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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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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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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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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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상한 기류를 느낀 것인지, 의문스럽게 눈썹을 기울일 뿐.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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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는 방향은 인적이 드문 복도 끝. 꼭대기 층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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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기에, 거기에서는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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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까지 다다르자. 이솔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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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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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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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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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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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박스를 꺼냈다. 방금 신아영에게 받은 초콜릿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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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다이어트 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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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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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걸 내려다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선뜻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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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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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괜찮으니까, 다 먹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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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박스를 통째로 그녀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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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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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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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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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으로 다시 돌아간 초콜릿을 보며, 이솔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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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체육 대회인데···. 그거 지나고 나면 얼마 안 남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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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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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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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한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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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없는 화제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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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너는 어떤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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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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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고민하더니 작게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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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그럭저럭하고 준비하고 있어. 공부는 평소에도 꾸준히 하니까. 크게 문제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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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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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소매 끝자락을 매만졌다. 행동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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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누구는 간단히 해버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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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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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제 와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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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허탈한 것은 사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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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해서 시샘할 생각은 없었다. 그 덕분에 도움받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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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 너는? 어제는 민지 언니가 가르쳐줬었잖아. 언니도 되게 공부 잘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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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날아온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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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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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이솔은 침묵했다. 목을 돌리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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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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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못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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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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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르친다면 잘 가르치는 편이겠지. 웬만한 사람들은 그녀의 설명만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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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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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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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그녀에게는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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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내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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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라면 더 쉽게 가르쳐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맴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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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혼자 할 때보다 집중이 더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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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고급 의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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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기만 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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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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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고 누구나 다 잘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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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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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멋쩍은 듯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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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쩌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제 일이 확실히 미안하기는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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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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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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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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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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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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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승호가 공부하는 거 봐주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계속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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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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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떠보는 듯한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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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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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전보다 더 어색해진 눈길로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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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멋쩍게 복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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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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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그 표정을 보곤 이전보다 더 확신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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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그저 싱긋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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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큼 깨지지 않는 내면의 얼굴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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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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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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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영은 시간을 확인하고선 물었다.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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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한테 할 말 있던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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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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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입술을 달싹였다. 할 말이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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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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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쭉 재고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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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와 잘 되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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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한다면 그녀는 선뜻 도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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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얘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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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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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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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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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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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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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든 아니든,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은연중에 방해할지 모를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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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떠올려보니, 그 말은 꺼내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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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그게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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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신아영에게는 도와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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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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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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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신아영을 가만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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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은 평범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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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언제나의 그녀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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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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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의 앞에서의 신아영과 현재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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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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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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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태의 그녀에게까지 차마 도와달라고는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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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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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할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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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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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축 늘어뜨린 넥타이 끝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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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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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난번에 물어봤었잖아. 혹시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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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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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입술을 구부렸다. 의문을 표정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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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때.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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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떠올리려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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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첫날밤. 신아영은 갑작스럽게 그런 질문을 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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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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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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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한테 호감 있냐고. 그렇게 물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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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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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 화제를 꺼낼 줄 몰랐다는 듯 동공이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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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을 보면서도 이솔은 말을 계속 이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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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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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편지를 낭독하듯이.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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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신경 쓰이는 정도라고 말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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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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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조금 쭈뼛거리며 이솔의 입술을 쳐다봤다. 뒤꿈치가 주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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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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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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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솔의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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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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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제 손등을 볼에 살짝 가져다댔다. 데일 듯이 뺨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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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는 듯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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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피가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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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신아영 앞에서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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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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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좀처럼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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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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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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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한 줌 정도 되는 숨을 머금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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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삐걱거리며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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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함보다 먼저, 행동을 실행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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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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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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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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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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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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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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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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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이 아니라 좋아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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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조차 그 이유를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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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할 수 없다고 이 감정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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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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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고 부탁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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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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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혹여나 가지게 될 감정을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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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녀 본연의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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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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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걔를 먼저 좋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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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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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알고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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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 생각 다 들린다 - 다운로드 진행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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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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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vel ID**: 38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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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URL**: https://novelpia.com/novel/38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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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회차**: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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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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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로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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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 | 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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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다운로드 | EP.4 (4.m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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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ID | 5102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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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er URL | https://novelpia.com/viewer/5102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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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로드 일시 | 2025-12-03 2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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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로드 수 | 0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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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뜀 | 4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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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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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Episode ID**: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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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Viewer URL**: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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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뛴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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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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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다운로드 명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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