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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0 KiB
Raw Blame History

“응?”

신아영은 이솔의 말에 천천히 허리를 폈다. 의아한 듯 교실 앞의 시계를 가리켰다.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하는데?”

“금방 끝나.”

이솔의 어조는 단호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표현이었다.

“···그래, 알았어.”

신아영은 마지못해 몸을 틀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진짜 갑자기 뭐지···?”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

지누리는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너 혹시 아는 거 없어?”

지누리가 소곤거리며 내게 물었다.

— “얘라면 뭐 알지 않으려나? 둘이랑 한동안 같이 있었고.”

지누리의 미니미는 똘망거리는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탐정과도 같은 확신이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 “아, 뭐야.”

미니미가 실망에 빠져 책상 위에 주저앉았다.

재미없다며 툴툴거렸다.

“···.”

그렇게 반응해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야 정말 모르니까.

이솔의 미니미는 아직도 노이즈가 섞여 있었고. 신아영 쪽은···.

어제 이후로, 기분이 좋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내뱉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리도 없다.

“음···.”

예상이 가는 게 있다면.

이솔은 어제의 일로 신아영을 부른 게 아닐까 싶다는 것뿐이었다.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하루를 날려버렸지 않은가.

— “···진짜 뭐지···.”

지누리의 미니미가 책상 위를 뒹굴거리며 중얼거렸다. 옹졸한 발끝을 까딱거렸다.

고민이 끝이 없었다.

참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뚜벅뚜벅—

이솔은 복도를 거닐었다.

서너 발자국 떨어진 뒤편에서는 신아영이 뒤따라 걸어왔다.

“···.”

“···.”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이솔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

신아영은 이상한 기류를 느낀 것인지, 의문스럽게 눈썹을 기울일 뿐.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향하는 방향은 인적이 드문 복도 끝. 꼭대기 층 계단.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기에, 거기에서는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였다.

그곳까지 다다르자. 이솔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

신아영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섰다.

그렇게 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순간.

“···먹을래?”

이솔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박스를 꺼냈다. 방금 신아영에게 받은 초콜릿 상자다.

“생각해 보니까 다이어트 중이었어.”

“···.”

신아영은 그걸 내려다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선뜻 손을 뻗었다.

“···그럼, 조금만?”

“자. 괜찮으니까, 다 먹어도 돼.”

이솔은 박스를 통째로 그녀에게 넘겼다.

“···시험 준비는 어때?”

“시험?”

“응.”

그녀의 손으로 다시 돌아간 초콜릿을 보며, 이솔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곧 체육 대회인데···. 그거 지나고 나면 얼마 안 남았잖아.”

“······갑자기?”

신아영이 기웃거렸다.

이솔은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한 것이었는데.

다소 뜬금없는 화제였던 걸까.

“그냥. 너는 어떤가 해서.”

“으음···.”

신아영은 고민하더니 작게 웃으며 답했다.

“나름대로 그럭저럭하고 준비하고 있어. 공부는 평소에도 꾸준히 하니까. 크게 문제없지 않을까.”

“응··· 그렇구나.”

이솔은 소매 끝자락을 매만졌다. 행동이 느려졌다.

누구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누구는 간단히 해버리는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괜찮다.

그것은 이제 와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조금 허탈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에 대해서 시샘할 생각은 없었다. 그 덕분에 도움받지 않았는가.

“솔이 너는? 어제는 민지 언니가 가르쳐줬었잖아. 언니도 되게 공부 잘 하지 않아?”

역으로 날아온 질문.

“으음···.”

그것에 이솔은 침묵했다. 목을 돌리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못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못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잘 가르친다면 잘 가르치는 편이겠지. 웬만한 사람들은 그녀의 설명만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다.

단지.

“나한테는 어려웠어.”

이솔. 그녀에게는 맞지 않았다.

공부하는 내내 그랬다.

이승호라면 더 쉽게 가르쳐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맴돌아서.

오히려 혼자 할 때보다 집중이 더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따지자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고급 의류였다.

비싸기만 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인.

“어···그래?”

“공부를 잘한다고 누구나 다 잘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

신아영은 멋쩍은 듯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것은 어쩌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제 일이 확실히 미안하기는 했나 보다.

“괜찮아.”

이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그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도 그럴게.

“오늘은 승호가 공부하는 거 봐주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계속 그러지 않을까···?”

그러니까 괜찮다고.

어느 정도는 떠보는 듯한 물음에.

“으응. 그렇구나···.”

신아영은 이전보다 더 어색해진 눈길로 호응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멋쩍게 복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뭐야.

이솔은 그 표정을 보곤 이전보다 더 확신에 차올랐다.

평소라면 그저 싱긋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을 텐데.

웬만큼 깨지지 않는 내면의 얼굴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좀처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신아영은 시간을 확인하고선 물었다.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 나한테 할 말 있던거 아냐?”

“···.”

이솔은 입술을 달싹였다. 할 말이야 있었다.

‘뭐라고 할까.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쭉 재고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이승호와 잘 되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해볼까.

그리 말한다면 그녀는 선뜻 도와주겠지.

그야. 얘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니.

아닌 것 같다.

지난번의 일이 생각났다.

이솔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은연중에 방해할지 모를 일이라.

그것을 떠올려보니, 그 말은 꺼내지도 못하겠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신아영에게는 도와달라니.

그건 못 하겠다.

“···.”

이솔은 신아영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표정은 평범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언제나의 그녀일 거다.

단지.

이승호의 앞에서의 신아영과 현재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이솔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그야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의 그녀에게까지 차마 도와달라고는 못할 것 같았다.

···대신.

다른 할 말이 있었다.

“···그때 있잖아.”

이솔은 축 늘어뜨린 넥타이 끝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조금 긴장이 됐다.

“네가 지난번에 물어봤었잖아. 혹시 기억나?”

“지난번··· 언제?”

신아영이 입술을 구부렸다. 의문을 표정으로 표현했다.

“수학여행 때. 숙소에서.”

기억을 떠올리려면, 아직도 생생하다.

수학여행 첫날밤. 신아영은 갑작스럽게 그런 질문을 해왔었다.

스스로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했던 그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이다.

“···승호한테 호감 있냐고. 그렇게 물었었잖아.”

“어?”

신아영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 화제를 꺼낼 줄 몰랐다는 듯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도 이솔은 말을 계속 이어 붙였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못할 것 같았다.

천천히 편지를 낭독하듯이.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나는 그때 신경 쓰이는 정도라고 말했었고.”

“어··· 응, 그랬었지···?”

신아영은 조금 쭈뼛거리며 이솔의 입술을 쳐다봤다. 뒤꿈치가 주춤거렸다.

“근데, 지금은······.”

지금은.

—하고, 이솔의 말문이 턱 막혔다.

“···.”

이솔은 제 손등을 볼에 살짝 가져다댔다. 데일 듯이 뺨이 뜨거웠다.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는 듯했고.

머리로 피가 쏠렸다.

고작 신아영 앞에서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힘들었다.

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좀처럼 새로웠다.

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후으···.”

이솔은 한 줌 정도 되는 숨을 머금고선.

고개를 삐걱거리며 들어 올렸다.

주저함보다 먼저, 행동을 실행시키기로 했다.

“지금은.”

단순히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호감이 아니라.

“···좋아··· 한다고 생각해···.”

끝내.

말을 뱉어냈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호감이 아니라 좋아함인지.

스스로조차 그 이유를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형용할 수 없다고 이 감정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기에.

“······.”

도와달라고 부탁 안 한다.

알아서 할 수 있다.

신아영이 혹여나 가지게 될 감정을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다.

그건 그녀 본연의 감정이니까.

···근데.

내가 걔를 먼저 좋아했다고.

그것만.

신아영이 알고 있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