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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으, 흠···.”

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누리가 체스판을 노려보고 있다.

“···.”

신아영은 다소 뾰로통한 눈길로 그걸 내려다봤다.

형세는 이미 그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탁—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누리가 신중하게 다음 수를 내려놓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체크메이트.”

신아영이 기물을 탁 내려놓으며 게임을 끝냈다. 실은 진작에 끝난 게임이었다.

“아.”

그러자 들려오는 단말마.

지누리는 말도 안 된다며, 벌떡 일어나 체스판 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킹이 빠져나갈 길이 없나 고심하다가, 완전히 막혔다는 걸 확인한 후에서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걸로 몇 대 몇이더라?”

“5대 0.”

“와, 한 번을 안 봐주네···.”

옆에서 지켜보던 부부장과 부장. 두 사람이 조용히 속닥거렸다.

너무 일방적인 흐름에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게임으로 한 판 더 해.”

지누리가 반달 같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선홍빛 입술은 꽉 다물려 있었다. 입술이 미묘하게 삐죽 튀어나와 있다.

미간은 중앙으로 팍 모였고, 눈망울은 올망졸망 떨리고 있었다.

진 게 그리 분한 걸까.

지누리는 보기보다 승부욕이 넘쳤다.

“그래. 원하는 거 아무거나 들고 와.”

신아영이 적당히 손을 흔들었다.

뭘 하든 질 자신이 없었다.

그야, 지누리가 생각 이상으로 게임을 못했으니까.

아니면, 이쪽이 잘하는 걸 수도 있고.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너무 쉽게 끝나버려서.

이승호랑 하면 하는 맛이라도 있는데.

“···.”

···또 걔 생각이네.

“에효.”

신아영은 상체에 힘을 빼며 등을 의자에 푹 기댔다.

지금 피시방이 아니라, 상담실에서 보드게임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듀오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로, 혼자서 하는 게임은 어딘가 재미가 없어졌기에.

차라리 이렇게 다 같이 있는 게 나았다.

‘···꼭 피방이 아니더라도 괜찮은데.

보드게임도 괜찮았다.

다만, 이승호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이솔이랑 단둘이 공부하러 간대서.

‘···흥.

신아영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거 하루 놀아주는 게 어디 덧나나.

아무리 이승호에게 호감이 있다지만, 이솔도 너무했다.

···오늘 진짜 힘들었는데.

스트레스 좀 풀러 게임 좀 같이해달라는 게, 그리 못할 일이었냐고···.

“뭐 할래? 골라봐.”

지누리가 양손 가득 보드게임을 든 채로 물었다.

이번에야말로 이기겠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블루 마블도 있고, 과일 게임도 있고. 아니면 원 카드?”

“···어···.”

신아영이 그것들을 보며 슬쩍 눈을 좁혔다.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뭔 상담부에 보드게임이 이리 많대···?”

한두 개 정도가 아니라, 반쯤 보드게임 카페를 차려도 될 정도다.

그 의문에.

박민지가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래 보여도 다 상담에 필요한 것들인걸.”

저 많은 상자가 전부다?

상담과 보드게임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상담. 보드게임···?”

상담.

그리고, 보드게임.

“···.”

신아영의 눈길이 ‘상담 신청서’가 놓인 곳으로 향했다.

“···.”

음.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가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지.

신아영의 턱끝이 이리저리 비틀렸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험기간에 바쁜 사람을 붙잡는 건···

“···.”

그렇지만 아직 한 달 반이나 넘게 남았고.

···하루 정도라면.

“···민지 언니, 상담 신청서 어떻게 써요?”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

나는 방에 들어온 이승아와 눈을 마주쳤다.

이승아는 이솔과 나를 둘러봤고.

이솔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

“···.”

그렇게, 이어지는 침묵.

이솔은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왔다.

최대한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

“···.”

그리고, 또 이어지는 침묵.

“··· 간식 주러 왔다고?”

나는 그걸 보다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화제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했다.

“응, 여기.”

이승아도 그걸 받아줬다.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근데.”

나는 이승아가 들고 온 접시 위를 보고 눈을 좁혔다.

“왜 이것밖에 없냐?”

간식이라고 들고 온 것이.

쿠키 한 조각과 애매한 양으로 따라진 오렌지 주스 두 잔이 전부라.

“집에 먹을 거 다 떨어졌더라.”

팔을 으쓱 올리는 이승아.

저리 당당한 걸 보니, 정말 집에 남은 간식이 없었나보다.

— “···남은 쿠키 두 개 중, 하나 정도는 뭐···.”

이 와중에 하나를 먹은 모양이다. 이승아의 미니미가 혀를 낼름거렸다.

과자 부스러기가 입가에 묻어있었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직접 가서 사던가. 편의점 바로 코 앞이잖아.”

이승아가 엄지로 현관을 가리켰다. 나는 팔뚝을 슥슥 긁었다.

“···네가 사 와주면 안 되냐?”

솔직히, 나가기 귀찮았다.

“돈 줄게. 가는 김에 니 꺼도 하나 사고.”

그런 딜을 걸어본다.

“음···상관없긴 한데.”

이승아가 총총 다가오더니, 고개를 귓가에 가까이 붙였다.

“?”

소름이 돋아서 고개를 뒤로 빼자.

이승아가 본인도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내 어깨를 한 손으로 잡았다.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소곤거렸다.

‘···혹시, 집에 둘만 있으시게요? 예?

“아.”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다. 이승아가 갑자기 들이닥친 게 내심 당황스러웠던 걸까.

“돈 줘 봐.”

이승아가 손을 내밀었다.

— “나야 상관없긴 한데······그러면, 잠깐만 나갔다 올까?”

이승아의 미니미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갔다 올게.”

나는 그걸 보다 못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갑을 챙기고 밖으로 나설 채비를 하다가, 잠시 뒤로 돌았다.

“뭐 사 올까?”

“···나는 이거만 있어도 돼.”

이솔은 주스가 담긴 컵을 들어 올렸다.

맞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지.

— “게다가, 괜히 시키기 미안하니까···.”

미니미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정말 필요 없는 모양새다.

“나는 매콤 감자칩 하나.”

이승아는 발을 쭉 뻗고 앉으며, 당당하게도 요구해 왔다. “아니다. 더 비싼 거 사 오라고 할까?”

녀석의 미니미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안 사 올 거다.

“···.”

나는 말없이 서 있다가.

“···알아서 잘 적당히 해라.”

앉아 있는 이승아에게 한마디를 남긴 후, 편의점으로 나섰다.


“···.”

“···.”

이승호가 떠난 방 안.

이솔과 이승아.

단 두 사람만이 남은 이 공간은, 묘한 어색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 침묵이 마음에 들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솔은 바닥에 앉은 채로 멈췄다. 숨이 막혔다.

“···.”

이솔은 왼편으로 눈을 힐끔 돌렸다.

“···.”

말없이 앉아 있는 이승아. 네일을 꼼지락거리며 보고 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그 외견은 다시 봐도 예뻤다.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이대에 맞는 청순함이 있었다.

쟤가 이승호의 여동생이구나.

그런 생각이 일어서.

괜히 목울대만 꼴딱꼴딱 넘어갔다.

머리는 화제를 떠올리려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뭐가 없을까. 재밌게 할 법한 말이······

“···지난번에 공항에서 봤었죠?”

돌연 이승아가 고개를 치켜올리며 물어왔다.

“아. 응. 맞아.”

이솔은 그 동아줄을 냉큼 붙잡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 이름이······.”

“이솔이야. 성이 ‘이’고, 이름이 ‘솔’.”

“이솔··· 이솔 언니···. 이름이 저랑 비슷하네요. 제 이름은—”

“승아. 이승아 맞지?”

이솔이 그리 묻자.

“···기억하고 계셨네요?”

이승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응, 지난번에 들었으니까.”

“아하.”

“···.”

···조아쓰.

이솔은 마음속으로 콧김을 훅 내뿜었다.

역시 외워두길 잘했다.

집에 동생 있다는 말에, 미리 인별로 찾아봐 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근데, 오늘은 다른 친구분들은 안 오셨네요?”

“응? 뭐가?”

이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공항에서 봤던 다른 두 분 있잖아요. 그분들도 오빠 친구 아니에요? 되게 친해 보이던데.”

“아···.”

신아영과 지누리를 말하는 걸까.

“으음.”

이솔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두 사람을 빼놓고. 이승호와 둘이서 공부하는 이유라.

둘만 공부하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라고 말하기엔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에도 그렇고.

“내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 오늘은 둘이서 하기로 했어. 승호가 잘 가르쳐주거든.”

이솔은 귀 끝에 미약하게 열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떠벌였다.

“네?”

그러자, 이승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오빠가 공부 잘 가르치나 보네요?”

“···응? 승아 너한테는 한 번도 안 가르쳐줬어?”

“네.”

이승아는 그것이 서운하지도 않은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얼굴.

“남매지간이면 보통 그렇죠. 글고 저도 오빠한테 배우긴 싫거든요.”

“그렇구나.”

남매는 그게 보통이구나.

외동이라 그런 건 잘 몰랐다.

“···.”

이솔은 책상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맛있네.

어깨가 아래로 내려간다.

달콤한 게 입에 들어오니, 차츰 긴장이 풀려갔다.

이승아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서, 둘만 있어도 나름 안심이···

“언니.”

“왜에?”

“저희 오빠한테 호감 있어요?”

쿨럭···!

그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이솔의 입이 스르르 벌어졌다. 하마터면 주스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고개가 삐걱삐걱 옆으로 돌아갔다.

“···.”

이승아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진지한 물음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뭐라 대답해야 할까.

아니라고 부정해야 할까.

혹은, 다른 말로 틀어볼까.

몇 가지 떠오르는 차선책에······

이솔은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그 탓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이솔은 입술을 앙다물고, 이승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조금 붉어진 두 뺨이, 그걸 대신 말하고 있었으니까.

“···.”

이승아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혹시, 고백할 생각이에요?”

이승아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어? 어···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이솔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음. 그럼, 지금이 말하기 딱 좋겠네요.”

이승아가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

이솔의 얼굴 위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당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이승아가 이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정면으로 마주한 시선.

확연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오빠한테 고백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