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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아린은 드레스를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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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진짜 기절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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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긴 하다, 입이 벌어진 것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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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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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과연 드레스라고 부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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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사실상 옷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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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는 물론, 옆구리까지 깊게 파였고, 움직일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살결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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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파티보다는 침실에서 어울리는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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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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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스타일리스트들도 순간적으로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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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드레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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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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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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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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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강아린은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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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이건 나중에 입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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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커튼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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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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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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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커튼이 젖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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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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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입고 나온 건,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드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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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소재가 몸에 부드럽게 붙어 어깨선과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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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은 최소화됐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드러난 곡선이 더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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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강력하긴 하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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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내 앞에 와서, 가볍게 치맛자락을 들어 인사하는 흉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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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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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긋 웃으며, 눈을 반달처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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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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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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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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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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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손짓으로 나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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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워치를 꺼내 화면을 톡, 톡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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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입력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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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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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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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강아린은 워치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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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업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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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장난스러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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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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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 유 가(家)의 무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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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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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쇳소리가 공중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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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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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숨을 고르며 검 끝을 아래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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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는 유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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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버지가, 부드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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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넘게 이어진 무언의 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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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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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은 기쁜 듯 웃으며 검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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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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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도 무릎을 꿇으며 검을 땅에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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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잠깐 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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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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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은 짧게 칭찬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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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장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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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땀에 젖은 손등으로 이마를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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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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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고르는 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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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대련은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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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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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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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너무 충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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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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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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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가 짧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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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별생각 없이 손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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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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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메세지를 보자마자, 순간 몸에 흐르는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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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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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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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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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사랑하는 그이가 정장을 차려입은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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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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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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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넋을 놓은 채, 사진을 계속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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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도착한 짧은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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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오늘의 비서님과 함께하는 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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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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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셨던 피로는 그대로 머리로 몰려 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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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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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는 파티라고는, 전략 교류회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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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파티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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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이번에는 안가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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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하나도 같이 갈 예정이었으나, 허례허식이 가득한 친목회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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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의 딸과 대련하는 시간이 훨씬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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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결국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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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유하나 역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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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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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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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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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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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이 무도관 출구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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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추스르고 나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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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긋 웃으며,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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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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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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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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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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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투정이 무도관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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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르카디아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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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온천 개방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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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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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느릿하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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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꽉 짜였던 일정에서 드물게 얻은 자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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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대로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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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해인과 함께하는 일정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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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면 굳이 시간을 쪼개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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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있을 전략 교류회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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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보여주기, 어깨 힘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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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의무감에 참석했어야 했지만, 이번엔 단칼에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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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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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용사 쪽에 짬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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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허식 차리고, 어깨 좀 세우고 그런 건… 마침 그쪽이 좋아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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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좋은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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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오랜만에 온천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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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물에 발끝을 담그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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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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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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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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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가 작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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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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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목욕 중일 때는 대부분의 알림을 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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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알림을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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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무심코 화면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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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시야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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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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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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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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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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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사진을 본 순간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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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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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조명 아래 서 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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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블랙 정장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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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부드럽게 반사하는 고급 원단이 그의 넓은 어깨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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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히 넘긴 머리 때문에, 더욱 또렷해진 이목구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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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자연스럽게 묶인 넥타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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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차림 탓일까, 어색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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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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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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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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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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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무의식적으로 홀린 듯이 모든 사진을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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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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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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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상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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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오늘의 비서님과 함께하는 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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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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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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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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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이 갈만한 파티는 하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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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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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벙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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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수건 하나만 대충 걸치고 온천 밖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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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한 여성 사제가, 곧 입힐 예정인 천여울의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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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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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다급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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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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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고개를 들자마자,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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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하나만 걸친 채 물기를 머금은 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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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로도 드러나는 선명한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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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이, 보는 이의 숨을 잠시 멎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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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걔네 출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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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여울은 빠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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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에 가야 하는 건 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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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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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금 막 출발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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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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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가만히 서 있던 천여울이, 비척거리며 다시 온천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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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정해인의 기숙사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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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락바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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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이불 아래,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작은 소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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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불은 꺼져 있었고, 커튼은 바깥 빛을 완전히 가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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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만 방 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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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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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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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알림음이 이불 속에서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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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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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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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밑에서 시온의 짧은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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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이불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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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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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짓이 이불을 안쪽에서 요동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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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별다른 사건이 없던 탓에, 집돌이인 정해인은 기숙사에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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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접근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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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 정신 나간 마법사가 주기적으로 결계를 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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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의 방에 올 수 있는 때는 모두가 나간 주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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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나름대로 굶주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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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늘 그렇듯 방 주인이 외출을 나간 틈을 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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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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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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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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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는, 완벽하게 차려입은 정해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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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입장에서는 핵폭탄처럼 떨어진 뉴스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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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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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할아버지의 파티 동행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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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방이 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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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할아버지는 지금쯤 성아라 언니랑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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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화면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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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정해인의 너머로, 차마 드레스라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작은 면적의 옷을 입고 있는 강아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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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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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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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싫어, 화면을 톡톡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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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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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어깨, 손, 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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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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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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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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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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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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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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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워치 창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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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오늘의 비서님과 함께하는 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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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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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옆의 숫자들은 도착하자마자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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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원이 전부 읽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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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답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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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사람도, 받은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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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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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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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없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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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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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완벽한 패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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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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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걸린 워치를 내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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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해인의 사진을 크게 확대한 화면을 그대로 남긴 채, 천천히 몸을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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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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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더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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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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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 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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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홀로 자신의 패배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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