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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Raw Blame History

태초에 한 존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일곱 개의 법칙을 만들었다.

지혜, 절제, 용기, 정의, 사랑, 소망, 믿음.

그리고 그게 이 세계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허나 모든 것엔 그림자가 있는 법.

따라서 세계가 만들어진 직후 일곱 개의 그림자가 추가됐다.

오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폭식, 나태.

이 일곱 개가 말이다.

전자가 모여 창세교를, 후자가 모여 악신의 교단을 세상에 뿌렸는데, 괜히 창세교가 개판인 게 아니었다.

사실상 7개의 종교가 하나로 뭉쳤다 보니 개판이 된 것이다.

창세교조차 이렇다. 똑같이 7개의 계파가 모인 악신의 교단 또한 멀쩡할 리 없었으나, 자세히는 몰랐다. 베일에 싸인 곳이라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방법이 전무 했으니까.

“창세교의 햇병아리도 있었나? 부름도 못 받았는데 알아채다니. 아무래도 코가 예민한가 보군.”

리퍼라 불린 여자는 낫을 빙빙 돌리며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레온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검을 내민 채 악신의 사제들을 응시했다.

리퍼가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왜 죄다 우리를 악신의 교단이라 부르는 건지 모르겠군. 윤회교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우리는 네놈들을 창세교라 꼬박꼬박 불러주지 않나?”

“닥쳐.”

“말투가 거칠어졌군. 윤회교에게 부모라도 죽었나? 미안하지만 우리는 군체가 아니라서. 다른 녀석이 한 짓을 내게 투영해도 곤란할 뿐이다.”

“닥치라고!”

레온의 목에 핏대가 섰다. 어지간히 화가 난 상태였는데, 나는 그런 레온의 뒤에 서며 속삭였다.

“진정하세요.”

“…….”

근육남, 워커라 불렸던 남자 또한 리퍼를 진정시켰다.

“리퍼. 우리 놀러 온 게 아니잖아.”

“하아. 좋다. 어쩔 거지?”

“상성상 네가 저 나무 마법사에게 유리할 거야. 내가 꼬맹이 둘을 맡을게.”

“알겠다.”

리퍼와 워커는 갈라져 각각 플로라와 나랑 레온을 마주 봤다.

내가 거리를 가늠하며 마법을 준비하자, 워커가 주먹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워서 일이 잘 풀리나 했는데, 나무가 경비를 서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얌전히 물러날 생각은 없나요? 성은이 필요한가 본데, 플로라 님이 그냥 넘겨줄 수도 있잖아요.”

“성전에 부정이 타면 안 되는데, 음. 그럼 이렇게 하자. 너네가 얌전히 죽어주면 우리도 조용히 물러날게. 약속해.”

참, 이런 점 때문에 악신의 교단이 배척받는 거였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보니 대화가 안 통했다.

이 세상은 가짜고, 진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법칙을 세워야 된다고 믿는 놈들이다. 대화가 통하면 그게 더 신기했다.

“말투만 봐선 오만의 계파네요.”

“그게 구분이 돼? 신기하―.”

붉은 선이 허공을 수놓는다. 넷으로 갈라진 선이 워커에게 적중한다.

가벼운 폭발이 일고, 워커는 폭염을 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녀석의 양 주먹엔 어느새 검은색 기운이 맺혀 있었다.

신성력. 기적의 발현을 목격한 나는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포식의 화염이 입을 벌리며 워커를 노리고, 그 뒤를 레온이 뒤따랐다.

워커는 오른 주먹을 포식의 화염에게, 왼 주먹을 레온에게 휘둘렀다.

신성력은 기적의 힘이다. 그걸 발현한 자와 발현하지 못한 자는 연단 마법의 1차 각성을 한 기사와 그러지 못한 기사만큼 차이가 났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심했다.

신성력을 발현하지 못한 성기사는 사실상 능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때문에 레온이 워커를 막아서는 건 매우 무모한 행동이었으나.

스릉. 레온은 검을 비스듬히 움직이며 워커의 주먹을 흘렸다.

그 신기에 가까운 검로에 워커가 광소를 터트렸다.

“너 천재구나!”

워커는 오른팔을 집어삼키는 불꽃을 신성력을 내뿜어 흩어버리고, 양 주먹을 뒤로 당겼다.

“벌써 나를 만난 걸 원망해라 천재!”

그다음 쏘아진다.

그 어떤 철학도 없다. 미학도 없다. 그저 무식한 힘이 깃든 주먹질이었다.

허나 그런 주먹질에 레온은 이를 악물었다.

완벽에 가까운 검로로 모든 주먹을 흘렸지만, 둘의 난이도 차이는 극심했다. 극한의 집중을 해야 되는 레온과 그저 신나게 주먹을 휘두를 뿐인 워커 중 점점 불리해지는 게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는 레온의 뒤에서 나는 불꽃을 던졌다.

머리가 셋 달린 불꽃이 워커에게 날아가 머리, 어깨, 목을 깨문다.

직후 신성력이 뿜어지며 불꽃을 흩어버렸지만, 그 덕에 워커의 공격에 공백 또한 발생했다.

약간의 소강상태 와중, 콰아앙―! 옆에서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나무 거인 위에 탑승한 플로라와 그 앞을 막아서는 리퍼. 서걱. 리퍼가 낫을 휘두를 때마다 나무 거인의 발이 잘린다.

고위 마법사라기엔 너무 무력했다.

워커는 상성상 리퍼가 유리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달랐다.

어쩌면 플로라에게 본격적으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신났구만 아주.”

워커는 옆을 흘긋 살피다가, 휘파람을 불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우리도 끝을 내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색 신성력이 워커의 주먹을 감쌌다.

그것은 흡사 권갑을 닮은 신성력이었다.

콰직. 워커가 다리에 힘을 주자 땅이 크게 박살 난다.

동시에 워커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콰아아앙!

도저히 주먹에서 나는 소리라고 믿기지 않는 소음이 들리고, 털썩. 양팔이 부러진 레온이 검을 쥔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천재는 많지만, 살아남는 건 결국 하나라고.”

워커는 레온에게 느긋이 다가가며 주먹을 들었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단검을 뽑았다.

“비춰라, 청야(靑夜).”

단검에 푸른색 마법이 일렁이며 덧씌워진다.

그 신비로운 자태에 워커는 멈칫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마검사?”

레온은 꺼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상황을 파악했다.

“비춰라, 청야(靑夜).”

“마검사?”

루이나는 레온이 쓰러지자 검을 뽑았다.

왜일까. 싸우기 위해서?

그럴 리가. 루이나의 근접 전투 능력이 보잘것없는 건 이미 잘 알았다.

따라서 여기서 루이나가 검을 뽑아 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잠깐이라도 워커를 붙잡기 위해서.

제 역할을 못 한, 레온 자신을 잠깐이나마 지키기 위해서.

“아니. 숙련된 마검사라기엔 아직 연단 마법의 단계가 낮은 거 같은데? 뭐지?”

“제 전투 스타일이 단검에 적합해서요. 확인해 보실래요?”

루이나는 왼손으론 등불을, 오른손으론 단검을 쥐고 가볍게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순간 레온마저 진실이라 느낄 정도였다.

워커는 잠깐 망설이다가, 주먹을 쥐었다.

워커가 만약 조금 더 경계심이 깊은 성격이었으면 이걸로 물러났겠지만, 아쉽게도 워커는 오만한 성격이었다.

그 어떤 속임수도 몸으로 직접 확인했다.

안 돼. 레온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저벅. 워커가 걸음을 옮긴다.

레온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오랜 과거를 떠올렸다.

불타는 장작 위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그저 무력하게, 모든 걸 지켜보기만 했다.

달라지고 싶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전대 팔라딘 같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악을 멸한다.

정의를 이 땅에 세운다.

그런 철칙 아래에서 레온은 검을 휘둘렀다.

레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게, 이런 게 뭐가 정의야.

힘없는 정의만큼 의미 없는 헛소리도 없었다.

레온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더욱 강하게 깨물며, 그 어떤 때보다 강하게 소망했다.

바랍니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제발 저에게, 소중한 걸 지킬 힘을 주세요.

지금 당장.

「―――.」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 빛이 이어졌다.

“쯧.”

워커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혀를 찼다.

레온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이 돌아가듯 원상복구 되는 팔로 검을 들었다.

“이래서 마무리를 해야 됐는데.”

새로 세워진 정의가 하얗게 빛나고, 그에 맞춰 워커가 주먹을, 루이나가 등불을 흔들었다.

그리고.

쿠우웅.

거대한 진동음이 모든 소리를 지웠다.

레온은 검을 휘두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워커와 루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시선을 옮겼다.

바로 옆. 한때 여관이었던 공터에.

거대한 나무 거인이 쓰러져 있었다.

나무 거인 위에 선 리퍼가 환하게 웃는다.

“워커! 뭐 하는 건가! 애송이 둘도 처리를 못 하나?”

나는 쓰러진 나무 거인에게 다가갔다.

나무 거인의 어깨에서 추락하는 플로라를 받아든 나는 차분히 물었다.

“플로라 님? 괜찮으세요?”

“하아. 하아.”

플로라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사람처럼.

언젠가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나는 혹시나 해 물었다.

“플로라 님. 이미 진작 수명의 끝을 맞이했나요?”

“…스승님의 예언이 참 소름 돋는 게 그거다. 내가 29살 봄에 죽는다는 예언은 평범히 살았을 때를 기준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야. 내가 고위 마법사가 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한 끝에 29살 봄’에 죽는다는 예언이다.”

즉 그거였다.

29살 봄이라는 기간엔 성배를 탐색하고, 성은을 발견하고, 그 끝에 5위계 마법사가 되는 모든 과정이 포함됐던 것이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수명을 연장했어도 점점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 가벼운 마법 말고는 못 쓰는 상태가 된 지 꽤 됐다.”

“그럼.”

“그래. 이미 가벼운 마법을 넘어선 마법을 연발한 나는 상당한 수명이 깎인 상태라는 거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플로라가 손짓하자 땅에서 새로운 나무 거인이 솟구친다.

리퍼와 워커를 막아서는 나무 거인의 포효를 등 뒤로 들으며, 나는 그녀의 입에 곰방대를 물려줬다.

치익. 불을 붙여주자 플로라는 곰방대를 길게 들이켜고 연기를 뱉었다.

“네 말대로 됐구나. 확실히 내년 봄에 죽는다는 스승님의 예언은 피했어.”

“그건 잘됐네요.”

“여기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게 네 장점이겠지. 나도 지긋지긋했던 운명을 비틀어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이다.”

속이 시원한지 플로라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거래로 제 수명을 몇 년 넘겨주면 플로라 님의 목숨이 연장되겠지만, 스승님과의 약속이 있어서요. 수명 거래는 절대 안 돼요. 죄송해요.”

“줘도 안 받는다. 그거 조금 더 살아서 뭐 하겠다고.”

그렇게 멍하니 곰방대 연기를 바라보던 플로라는 이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플로라가 나직이 읊조렸다.

“미친 계집.”

“전 정상이에요.”

“짧은 시간 너를 지켜본 내가 장담한다. 너는 언젠가 역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다.”

“이미 역사상 최고 아르카나 체스 플레이어는 됐어요.”

“너는 모든 마법을 모으는 게 목적일 거다. 맞지?”

“지금까지 존재한 마법과 앞으로 존재할 마법을 전부 손에 넣을 거예요.”

“그중에는 사자를 소생하는 마법도 있을 거다. 내 말이 맞겠지?”

“당연하죠.”

내 확언에 플로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을 마무리했다.

“부활 마법을 얻으면 나를 되살려라. 그다음 내게 영생을 부여해라. 그걸 약속한다면 내 고유 마법, [생장]을 네게 주마.”

“잠깐만요. 그냥은 안 돼요. 선약이 있거든요.”

“선약이 있다고?”

“제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스승님을 살려드리기로 했거든요. 그 전이라면 플로라 님을 먼저 살려드릴 수 있긴 해요.”

“하, 하하. 끄윽. 콜록.”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꺽꺽대며 웃던 플로라는, 숨을 고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참 불안한 와중 안심되는 말이군. 거래다. 루이나.”

“바라던 바예요.”

천칭에 대가가 올라간다.

내가 올리는 건 약속.

플로라가 올리는 건, 고유 마법 [생장].

대가는 동등.

거래는 성립됐다.

“미친 계집.”

“저는 지극히 정상이에요.”

“내 성은은 네가 가져가라. 너도 파이프 담배를 쓰던데, 성은의 일부로 그거라도 만들면 되겠지.”

“안 돼요. 이건 스승님의 유품이라고요. 다른 걸로 안 바꿔요.”

“…그러면 등불이라도 만들어라. 그것도 유품이라 안 되나?”

“엄밀히 따지면 유품이지만, 이건 괜찮아요. 알겠어요. 성은으로 등불도 만들고 이것저것 만들게요. 됐죠?”

“그래.”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플로라는 힘없이 말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플로라의 입에 물린 곰방대를 빼 옆에 얌전히 눕히고, 손을 워커와 리퍼의 쪽으로 뻗었다.

이어서 땅에서 수많은 나무의 군대가 기어 나왔다.

“리퍼! 잘은 모르겠지만 미치광이 마법사가 무언가를 저질렀어! 어쩔 거야!”

한참 나무 거인의 다리를 두들기던 워커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리퍼는 나무 거인의 다리를 썰다가, 정의의 검을 든 레온과 나무 병사를 조종하는 나를 차례대로 살피고 미간을 찌푸렸다.

“퇴각한다. 변수가 너무 커졌어.”

“알겠어!”

리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워커는 땅을 밟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그 뒤를 리퍼가 쫓는다.

나는 그 둘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둘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마법을 해제했다.

“루이나 님! 괜찮아?”

멀리서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태 잘 숨어 있었나 보다.

나는 나무 병사를 하나 소환해 플로라를 들어 올렸다.

그 후 말을 꺼냈다.

“크리스 님.”

“응?”

“뒷정리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