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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는 나이가 들면 날개가 무거워지고 부리와 발톱이 너무 휘어 사냥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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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솔개에겐 2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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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든가, 죽을 각오를 하고 부리와 깃털을 뽑아 새것으로 바꾸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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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기개발성 짙은 일화는 자기개발성이 짙은 점에서 눈치챘겠지만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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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는 부리와 깃털을 뽑지 않는다. 애초에 혈관과 신경이 밀집된 솔개의 부리를 부수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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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고작 부리와 깃털을 뽑는다고 죽음이 회피 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죽음을 우습게 보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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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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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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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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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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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륵. 컵에 물을 따른 나는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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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짙은 병원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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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약을 쓰고 있지 않음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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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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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문을 열었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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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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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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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괜찮다. 그대로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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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힘없이 말하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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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쩍 침대 옆 협탁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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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전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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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먹여주려 했을 때 알아서 먹겠다고 하길래 뒀는데, 역시 하나도 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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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으면 몸 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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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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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가져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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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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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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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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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올린 손을 치우고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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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빤히 보자, 켈튼은 눈을 감은 채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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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한판 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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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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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머리가 멈추지 않는다. 알아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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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켈튼이 원하는 대로 아르카나 체스판을 가져와 세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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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물을 정해진 자리에 올리고 켈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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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두시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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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말할 테니 네가 대신 기물을 옮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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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나이트 앞 병사를 d4로 옮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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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로얄나이트 앞 병사를 d5로 옮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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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기물을 놓는 소리만이 침실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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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기사를 번쩍 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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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용기사로 궁극 진화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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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메이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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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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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한 번만 가능한 궁극 진화를 사용해 켈튼의 왕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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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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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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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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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처음으로 이겼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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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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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허허 웃고는 속삭이듯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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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르카나 체스는 스승님도 나를 못 이겼단다. 내가 아르카나 체스에 익숙해진 다음엔 계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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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저도 어디 가서 보드게임으로 져본 적이 없는데, 도저히 못 이겨서 이상하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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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계 대마법사도 못 이겼으니 켈튼은 인류 최강의 체스 기사일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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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켈튼 님이 역사상 최고이자 최강의 체스 유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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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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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런 켈튼 님을 이긴 제가 넘버 원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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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는 노인네 간신히 이겨놓고 기세가 등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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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머리가 쌩쌩하다고 한 건 켈튼 님이잖아요. 공평한 싸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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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이 재차 웃는다. 나도 웃었다. 밖에서 봄날의 새가 아름답게 지저귀고, 따뜻한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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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켈튼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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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천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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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님. 제게 바라는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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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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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님. 제게 바라는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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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 루이나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켈튼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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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둬준 것, 돌봐준 것, 이제까지 마법을 가르쳐준 것까지 합쳐 그에 상응하는 소망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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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켈튼이 참 좋아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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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그런 가치관 속에서 켈튼은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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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켈튼은 스승이 아델리안 크로프트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고작 3위계 마법사가 제자라고 밝혀봤자 스승에게 누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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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습관이 돼 기어코 받은 제자에게도 스승 얘기를 잘하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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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충분히 마법을 익히자마자 떠나려는 스승에게 켈튼은,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라고 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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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스승은 ‘너도 나처럼 하나 키워. 그러면 돼’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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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계 마법사가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포기했었지만, 결국 켈튼은 4위계가 된 후 제자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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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나마 대가를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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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는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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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진실이었지만, 동시에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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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었기에 켈튼은 4위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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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잔혹했기에 매일 수련했음에도 70살을 넘겨서야 간신히 4위계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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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노력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노력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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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란 영혼을 갈아 넣는 행위인데, 켈튼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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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그저 성실히 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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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되는 한 수련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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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4위계가 됐으니 4위계는 마법사에게 상냥한 경지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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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4위계가 됐다.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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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4위계가 됐고 제자를 키웠다. 스승에게 얻은 은혜를 부족하게나마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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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제 켈튼에게는 치를 대가가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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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누군가가 켈튼에게 갚아야 할 대가만 존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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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힘겹게 눈을 뜨고 루이나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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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의 맑은 초록빛 눈동자가 켈튼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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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 원하는 것,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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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해줬으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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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다. 대가를 치르기 위해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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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삶을 살아왔음에도 켈튼은 루이나에게 받고 싶은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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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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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켈튼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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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라는 건, 꼭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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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그런 대가도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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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치는 감각에 켈튼은 속으로 낮게 탄식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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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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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는데, 정말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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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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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움도 잠시. 켈튼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명확히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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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의 손이 루이나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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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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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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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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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직. 마력이 격렬하게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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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의 마력, 일평생의 각오, 일평생의 깨달음을 모아 켈튼은 하나의 마법을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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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의 손등에 문양이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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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을 닮은, 그런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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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이걸 주마. 그 대가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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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그렇게 말하곤 부드럽게 루이나의 얼굴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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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예쁜 얼굴을 망치지 말거라. 여자가 화상이 뭐냐 대체. 화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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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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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아놓은 돈이 많다. 이걸 교단에 헌금하면 고위 사제가 완전 치료를 해줄 거다. 반드시 치료부터 해라.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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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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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대가로 바치지 말고, 신체를 소중히 여겨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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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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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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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불공정 위원회에서 저를 잡으러 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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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았나. 대가가 꼭 1대1일 필요는 없다고. 기억력이 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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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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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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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님이 평생 모은 돈이잖아요. 너무 아까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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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참견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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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이 돈을 모은 건 금욕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안 쓰니 돈이 모인 거지, 돈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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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돈을 악착같이 챙기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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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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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잘 듣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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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 말을 잘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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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침은 바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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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제자는 말을 잘 듣는 거 같으면서 안 들어서, 항상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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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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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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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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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군가를 되살릴 기회가 생기면, 그때 켈튼 님을 지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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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마지막까지 참신한 소리를 하는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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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 저런 얘기를 들을 줄은, 정말 전혀 예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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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몸에 힘을 빼며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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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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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되살릴 기회가 주어져도 쓰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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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그런 상황이면 네게 자식이 생긴 후에 써라. 그 이전에는 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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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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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궁금하니까. 네 남편이 제대로 된 놈인지도 궁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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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놈이 아니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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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상한 놈을 고를 거 같지는 않구나. 오히려 남편이 고생하면 고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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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전형적인 프레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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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억울해한다. 그게 켈튼은 굉장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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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익히겠다고 불 속에 뛰어드는 녀석이 양심도 없이 억울해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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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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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남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촌장에게 잘 말해 뒀으니 편의를 봐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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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 열심히 고블린 사냥을 한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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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고향에서 쉬고 싶다면 나중에라도 찾아와라. 촌장 아들에게도 잘 말해뒀으니, 녀석이 촌장을 잇는다면 앞으로 몇십 년은 괜찮을 거다. 너는 3위계 마법사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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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엔 9위계 마법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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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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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켈튼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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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그때쯤엔 3m 10cm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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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슬슬 깨달아라. 네 키는 거기서 더 안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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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키가 160cm에서 끝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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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cm다. 160cm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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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cm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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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목표를 잡는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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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라 진짜 저런 키가 목표라는 게 제일 어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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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재차 시원하게 웃은 켈튼은, 이내 최대한 눈에 힘을 주며 루이나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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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이 다가오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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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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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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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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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 5위계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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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마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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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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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평균보다는 오래, 5위계 마법사 평균보다는 이른 나이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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