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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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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는 나이가 들면 날개가 무거워지고 부리와 발톱이 너무 휘어 사냥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솔개에겐 2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굶어 죽든가, 죽을 각오를 하고 부리와 깃털을 뽑아 새것으로 바꾸든가.

이 자기개발성 짙은 일화는 자기개발성이 짙은 점에서 눈치챘겠지만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솔개는 부리와 깃털을 뽑지 않는다. 애초에 혈관과 신경이 밀집된 솔개의 부리를 부수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죽었다.

거기에 고작 부리와 깃털을 뽑는다고 죽음이 회피 된다고 믿는 것 자체가 죽음을 우습게 보는 행위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누구든 끝을 맞이한다.

아이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마법사든.

쪼르륵. 컵에 물을 따른 나는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짙은 병원 냄새가 났다.

딱히 약을 쓰고 있지 않음에도 그랬다.

“환기할게요.”

나는 창문을 열었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

“콜록.”

“닫을게요.”

“아니. 괜찮다. 그대로 둬라.”

켈튼은 힘없이 말하곤 눈을 감았다.

나는 슬쩍 침대 옆 협탁을 살폈다.

음식이 전부 그대로였다.

아까 먹여주려 했을 때 알아서 먹겠다고 하길래 뒀는데, 역시 하나도 안 먹었다.

“굶으면 몸 상해요.”

“…….”

“새로 가져다드릴게요.”

“루이나.”

“네.”

“앉거라.”

그릇에 올린 손을 치우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빤히 보자, 켈튼은 눈을 감은 채로 말을 이었다.

“체스 한판 두자꾸나.”

“괜찮으세요?”

“마법사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머리가 멈추지 않는다. 알아둬라.”

나는 켈튼이 원하는 대로 아르카나 체스판을 가져와 세팅했다.

모든 기물을 정해진 자리에 올리고 켈튼에게 물었다.

“직접 두시지는 않죠?”

“입으로 말할 테니 네가 대신 기물을 옮겨라.”

“로얄나이트 앞 병사를 d4로 옮길게요.”

“나도 로얄나이트 앞 병사를 d5로 옮기겠다.”

탁, 탁, 탁. 기물을 놓는 소리만이 침실에 울려 퍼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기사를 번쩍 들며 외쳤다.

“기사를 용기사로 궁극 진화하겠어요!”

“체크메이트구나.”

“이겼다!”

게임에 한 번만 가능한 궁극 진화를 사용해 켈튼의 왕을 베었다.

7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겼어요.”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7년 만에 처음으로 이겼다고요!”

“호들갑은.”

켈튼은 허허 웃고는 속삭이듯 고백했다.

“사실 아르카나 체스는 스승님도 나를 못 이겼단다. 내가 아르카나 체스에 익숙해진 다음엔 계속 말이다.”

“어쩐지. 저도 어디 가서 보드게임으로 져본 적이 없는데, 도저히 못 이겨서 이상하다 했어요.”

8위계 대마법사도 못 이겼으니 켈튼은 인류 최강의 체스 기사일 지도 몰랐다.

“어쩌면 켈튼 님이 역사상 최고이자 최강의 체스 유저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즉 그런 켈튼 님을 이긴 제가 넘버 원이라는 뜻이죠.”

“다 죽어가는 노인네 간신히 이겨놓고 기세가 등등하구나.”

“마법사는 마력이 다할 때까지 머리가 쌩쌩하다고 한 건 켈튼 님이잖아요. 공평한 싸움이었어요.”

켈튼이 재차 웃는다. 나도 웃었다. 밖에서 봄날의 새가 아름답게 지저귀고, 따뜻한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켈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물었다.

“켈튼 님. 제게 바라는 게 있나요.”

“켈튼 님. 제게 바라는 게 있나요.”

바라는 것. 루이나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켈튼은 잘 알았다.

거둬준 것, 돌봐준 것, 이제까지 마법을 가르쳐준 것까지 합쳐 그에 상응하는 소망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였다.

대가. 켈튼이 참 좋아하는 단어다.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그런 가치관 속에서 켈튼은 살아왔다.

그래서 켈튼은 스승이 아델리안 크로프트라는 걸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고작 3위계 마법사가 제자라고 밝혀봤자 스승에게 누가 됐으니까.

그게 습관이 돼 기어코 받은 제자에게도 스승 얘기를 잘하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자신이 충분히 마법을 익히자마자 떠나려는 스승에게 켈튼은,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라고 물었었다.

그 질문에 스승은 ‘너도 나처럼 하나 키워. 그러면 돼’라고 답했다.

3위계 마법사가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포기했었지만, 결국 켈튼은 4위계가 된 후 제자를 거뒀다.

뒤늦게나마 대가를 치른 것이다.

4위계는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진실이었지만, 동시에 잔혹했다.

진실이었기에 켈튼은 4위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잔혹했기에 매일 수련했음에도 70살을 넘겨서야 간신히 4위계가 될 수 있었다.

켈튼은 노력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노력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력이란 영혼을 갈아 넣는 행위인데, 켈튼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으니까.

켈튼은 그저 성실히 임했을 뿐이다.

여유가 되는 한 수련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4위계가 됐으니 4위계는 마법사에게 상냥한 경지일지도 몰랐다.

켈튼은 4위계가 됐다.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켈튼은 4위계가 됐고 제자를 키웠다. 스승에게 얻은 은혜를 부족하게나마 갚았다.

때문에 이제 켈튼에게는 치를 대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누군가가 켈튼에게 갚아야 할 대가만 존재할 뿐이었다.

켈튼은 힘겹게 눈을 뜨고 루이나와 눈을 마주쳤다.

루이나의 맑은 초록빛 눈동자가 켈튼을 내려다봤다.

바라는 것, 원하는 것, 소망.

루이나가 해줬으면 하는 것.

평생을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다. 대가를 치르기 위해 살아왔다.

허나 그런 삶을 살아왔음에도 켈튼은 루이나에게 받고 싶은 게 없었다.

대가가, 필요 없었다.

그제야 켈튼은 깨달았다.

대가라는 건, 꼭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걸.

세상엔 그런 대가도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몰아치는 감각에 켈튼은 속으로 낮게 탄식을 뱉었다.

아, 이런.

알았는데, 정말 알았는데.

너무 늦었구나.

안타까움도 잠시. 켈튼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명확히 구분했다.

켈튼의 손이 루이나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루이나가 눈을 깜빡였다.

“켈튼 님?”

“루이나. 거래다.”

파지직. 마력이 격렬하게 튀었다.

일평생의 마력, 일평생의 각오, 일평생의 깨달음을 모아 켈튼은 하나의 마법을 빚어냈다.

루이나의 손등에 문양이 새겨진다.

천칭을 닮은, 그런 문양이었다.

“네게 이걸 주마. 그 대가로 너는.”

켈튼은 그렇게 말하곤 부드럽게 루이나의 얼굴을 매만졌다.

“제발 예쁜 얼굴을 망치지 말거라. 여자가 화상이 뭐냐 대체. 화상이.”

“…….”

“내가 모아놓은 돈이 많다. 이걸 교단에 헌금하면 고위 사제가 완전 치료를 해줄 거다. 반드시 치료부터 해라.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말고.”

“…….”

“수명을 대가로 바치지 말고, 신체를 소중히 여겨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된다.”

“그게 끝인가요?”

“그래.”

“이러면 불공정 위원회에서 저를 잡으러 오는데요.”

“말하지 않았나. 대가가 꼭 1대1일 필요는 없다고. 기억력이 안 좋구나.”

켈튼은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루이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켈튼 님이 평생 모은 돈이잖아요. 너무 아까운데요.”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참견이 많구나.”

켈튼이 돈을 모은 건 금욕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안 쓰니 돈이 모인 거지, 돈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돈을 악착같이 챙기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알겠어요.”

“말은 잘 듣는구나.”

“저는 늘 말을 잘 들어요.”

“입에 침은 바르거라.”

이놈의 제자는 말을 잘 듣는 거 같으면서 안 들어서, 항상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루이나가 말했다.

“켈튼 님.”

“말하거라.”

“혹시 누군가를 되살릴 기회가 생기면, 그때 켈튼 님을 지목할까요?”

기어코 마지막까지 참신한 소리를 하는 제자였다.

이 순간에 저런 얘기를 들을 줄은, 정말 전혀 예상 못 했다.

켈튼은 몸에 힘을 빼며 입술을 달싹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럼 되살릴 기회가 주어져도 쓰지 마요?”

“정 그런 상황이면 네게 자식이 생긴 후에 써라. 그 이전에는 쓰지 말고.”

“왜요?”

“네 자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궁금하니까. 네 남편이 제대로 된 놈인지도 궁금하고.”

“제대로 된 놈이 아니면요?”

“네가 이상한 놈을 고를 거 같지는 않구나. 오히려 남편이 고생하면 고생하겠지.”

“그건 전형적인 프레임이에요.”

루이나가 억울해한다. 그게 켈튼은 굉장히 웃겼다.

마법을 익히겠다고 불 속에 뛰어드는 녀석이 양심도 없이 억울해하는구나.

켈튼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마을에 남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촌장에게 잘 말해 뒀으니 편의를 봐줄 거다.”

“어쩐지 요즘 열심히 고블린 사냥을 한다 했어요.”

“만일 고향에서 쉬고 싶다면 나중에라도 찾아와라. 촌장 아들에게도 잘 말해뒀으니, 녀석이 촌장을 잇는다면 앞으로 몇십 년은 괜찮을 거다. 너는 3위계 마법사기도 하니까.”

“그때쯤엔 9위계 마법사예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진심으로 켈튼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그때쯤엔 3m 10cm예요.”

“루이나. 슬슬 깨달아라. 네 키는 거기서 더 안 큰다.”

“제 키가 160cm에서 끝이라고요?”

“159cm다. 160cm가 아니라.”

“160cm예요.”

어처구니없는 목표를 잡는 제자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저런 키가 목표라는 게 제일 어이없었다.

속으로 재차 시원하게 웃은 켈튼은, 이내 최대한 눈에 힘을 주며 루이나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끝이 다가오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이나.”

“네.”

“행복하거라.”

켈튼, 5위계 마법사.

고유 마법 .

향년 79세.

일반인 평균보다는 오래, 5위계 마법사 평균보다는 이른 나이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