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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문과 피풍사문은 동맹 관계가 되었다.
동맹 체결 과정이라고 해 봐야 서란과 사율상의 구두 약속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두 사람 다 그 정도 재량권은 가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공증은 내일 하기로 했다.
관청의 모든 부서가 24시간 돌아가진 않았다.
서란 일행은 저녁을 얻어 먹은 뒤 복귀했다.
귀가하는 도중, 서란은 수뇌부에게 피풍사문과의 동맹에 대해서 알렸다.
별일 없으면 내일 아침까지는 승인될 터였다.
저택에 도착했다.
담청은 대호법 등에 업혀서 방으로 사라졌다.
저녁 먹을 때부터 꾸벅꾸벅 졸기는 했다.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서란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달이 네 개나 떠 있었다.
월광과 극광이 한데 어우러져 군도를 밝혔다.
시간이 영 애매했다.
영상 강의는 내일 들어야 할 듯 싶었다.
서란은 수련실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다가 등백월과 마주쳤다.
중정에 서서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바쁘다 보니 얼굴 본 지가 오래됐다.
등백월이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꽤나 간만에 뵙는 것 같네요.”
“두어 달 정도 됐을 거예요.”
“하긴, 요즘 많이 바쁘시더군요. 저도 그랬고요.”
서란이 물었다.
“오채지심 수행은 잘 되고 있나요?”
“순조롭습니다. 이미 한 번 지나친 길이니까요.”
“기억도 온전치 못하면서요?”
등백월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수선과 관련된 감각은 기억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 번 숙달되면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젓가락질 같은 거죠.”
서란은 등백월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용안은 여전히 잠잠했다.
도원향 총타에서 마주친 준선경 수도자에게도 불완전하게나마 통했던 권능이다.
하지만 등백월에게 만큼은 효과가 없었다.
서란은 다른 궁금증이나 해결하기로 했다.
“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순환 의식에 관한 겁니다.”
등백월은 습관적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순환 의식이라... 아, 윤회 의식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어디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류 수사님께 광홍기는 다소 이르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지금 당장 순환 의식을 거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의식의 여파가 궁금할 뿐이에요.”
“여파? 의식 도중에 실패한 수도자들의 말로가 궁금하신가요?”
서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경지를 지나치게 빨리 올렸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궁금합니다.”
사율상에게는 물어볼 수 없었다.
그건 분명 배려 없는 행동일 테니까.
하지만 한때 진선경 목전까지 도달했었던 등 진군에게는 상관없는 질문이었다.
등백월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 점이 궁금하셨군요. 뭐, 이 정도는 지금 알려 드려도 되겠죠. 대단한 비밀도 아니고. 그건 혼백의 손상 때문입니다.”
“혼백의 손상이요?”
“예, 그렇습니다. 충분히 제어되지 못한 힘이 스스로를 해치는 겁니다. 홍수로 인해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죠. 의식에 실패하는 게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운이 좋으면 반죽음이죠. 대다수는 그냥 죽습니다.”
서란이 물었다.
“완벽하게 제어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자기 역량을 벗어난 힘이에요. 결국 관건은 완전히 실패하느냐, 불완전하게나마 성공하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럼 불완전하게나마 성공하면요?”
등백월이 여상한 태도로 말했다.
“초월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겁니다. 손상된 혼백을 끌어안은 채 말이죠. 다행스럽게도 미약한 손상 정도는 세월이 흐르면 회복됩니다. 요양하다가 상태가 호전되면 또다시 의식을 치르는 식이죠.”
“그런 과정을 아홉 번이나 거치는 겁니까? 혼백이 손상된 정도와 남은 수명을 저울질하면서?”
“아뇨, 은한기에 도달할 때까지 거쳐야 하는 의식 횟수는 수도자의 자질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래도 아홉 번이면 준수한 편이군요. 이론상으로는 최대 열네 번까지도 걸리거든요.”
서란이 물었다.
“심각하게 손상된 혼백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나요?”
“치료요? 어느 정도 수준의 손상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연 치유력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벗어나면 반대로 붕괴하기 시작하거든요.”
“잘 와닿지 않네요.”
등백월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러십니까? 굉장히 의외로군요.”
“왜요?”
“혼백이 심각하게 손상된 이의 최후를 눈앞에서 지켜 보셨지 않습니까.”
서란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요?”
“예, 하계에서요.”
“하계?”
그 순간, 서란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웃고 있는 건지 구분조차 안되던 무뚝뚝한 외견.
반면에 더없이 유쾌했던 내면.
담청에게 자신의 여의주를 양도하고 명계의 입구로 사라져 버린 여인.
서란이 말했다.
“전대 용신?”
“예, 그리고 담청 님의 경우도 비슷하죠. 독안룡과 싸우면서 스스로 영성의 별을 부수셨으니까요. 불완전한 태성기여서 천만다행이었죠. 후유증이 천기를 읽는 능력과 뿔 하나로 그쳤으니까요.”
“그럼, 만약에 승천하고서 그랬으면...”
등백월이 대답했다.
“이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잠력을 격발한 것 치고는 굉장히 운이 좋으셨다고요.”
“지금은 괜찮은 거죠?”
“괜찮을 겁니다. 용족 보양용 탕약을 장복하셨고, 향로 법보도 사용하셨으니까요. 여태 멀쩡히 살아 계시는 게 그 증거죠.”
서란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내심 외상성 심마도 진단 못하고 2만 년 된 케케묵은 처방이나 하는 돌팔이라며 욕했었다.
하지만 등백월의 시의적절한 처방이 아니었으면 담청이 크게 잘못될 수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서란은 진솔하게 말했다.
“등 수사, 담청 님을 고쳐줘서 고마워요.”
“감사 인사라면 예전에 이미 받았습니다.”
“그래도요. 알고 나니 더 고맙네요.”
등백월이 빙그레 웃었다.
“새삼스럽군요.”
“진심이에요.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요.”
“알겠습니다. 비싸게 부려 먹어야겠네요.”
서란과 등백월은 얼마간 더 한담을 나눴다.
마음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월광과 극광이 두 사람을 비췄다.
헤어지기 전, 서란이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향로 법보가 심각하게 손상된 혼백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아무리 법보라고 해도 그건 좀 힘들 것 같군요. 다른 방법을 찾아 보셔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얼마 뒤, 날이 밝았다.
서란과 사율상은 법원에 방문했다.
문파 동맹 관련 공증을 위해서였다.
조약서에 두 사람의 지장이 찍혔다.
법원을 나서며 사율상이 말했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군.”
서란이 농담을 건넸다.
“제가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시려고요?”
“이미 지장까지 찍은 마당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도 보기 보다 짓궂은 면이 있군 그래.”
“반인반룡의 마음은 모르는 거 아닙니까.”
사율상이 점잖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어쩌겠나. 부족한 내 안목을 탓해야지.”
“담담하시네요.”
“원래 앞으로 걸을 때는 넘어질 각오도 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원래 조약서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네. 중요한 건 사람이지.”
서란이 물었다.
“그러면 조약서는 왜 굳이 공증받으셨나요?”
“남들한테 보여 주려고 그랬지.”
“아...!”
서란은 대번에 깨달았다.
조약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 자연스레 이적 중개인들도 떨어져 나갈 게 분명했다.
서란을 위한 사율상의 따듯한 배려였다.
묘령의 여인, 수행 비서가 작게 말했다.
“문주님, 슬슬 약속 시간이...”
사율상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할까 했는데 안되겠군. 류 법관, 그러면 나는 이만 가 보겠네.”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참, 법술 전수 관련해서는 조만간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내겠네.”
사율상과 수행 비서는 그렇게 떠나갔다.
서란은 잽싸게 극광제도로 돌아갔다.
연말이라서 한동안 출근할 필요 없었다.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해야만 했다.
수행한다는 소리였다.
어두운 조명과 잔잔한 음악.
일상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만 같은 분위기.
회원의 추천이 없으면 입장할 수 없는 공간.
설명은 이렇게 했지만 어차피 찻집이었다.
어디를 둘러 봐도 이적 중개인들만이 보였다.
연말마다 있는 동종 업계 모임이었다.
이적 중개인 한 명이 문득 중얼거렸다.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해? 뭘?”
“류 법관 이적 건 말이야.”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됐다.
곳곳에서 류 법관 얘기가 튀어나왔다.
피풍사문과 금죽문도 마찬가지였다.
이적 중개인들이 수군거렸다.
“금죽문, 통째로 인수되나 봐.”
“진짜?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아는 사람이 그랬는데, 피풍사문 수도자들이 극광 제도에 들락날락거린대.”
“맞아, 류 법관이랑 사 문주가 법원에 방문해서 뭐 공증 받았다더라.”
“계약 조건 되게 궁금하다.”
“피풍사문 돈 많나?”
“임6 구역 중심지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데 당연히 많겠지.”
“사 문주가 다른 건 몰라도 싸움은 참 잘하지.”
“그래 봤자 임6 구역 수준 아니야? 선계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중견 정도잖아.”
“하긴, 거대문파들도 류 법관한테 관심이 꽤 많았다던데.”
“진짜 어떻게 계약까지 한 거지?”
“부럽다, 나도 류 법관처럼 살고 싶어. 모두의 주목을 받는 삶... 어떤 기분일까...”
“너무 대단해서 부럽지도 않다. 나는 오히려 오 수사가 부러워. 확 와닿잖아.”
“오 수사? 해결사 오대랑 말하는 거야?”
“맞네, 이번 건 오 수사가 중개했었지.”
“오 수사, 그 친구 수완 참 좋지.”
“수수료로 떼돈 벌었겠네.”
“부럽다.”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