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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더위는 한층 무르익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토토서와 지암서가 결혼했다.
별다른 예식 절차 없이 관청에 신고만 하는 게 미궁언서들의 문화라고 한다.
그래서 서란도 축하 선물 정도만 보냈다.
다음으로 장선화가 독립했다.
가정불화는 아니고 그냥 본가와 서란의 저택을 왔다 갔다 하기 귀찮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은 저택 객청에 머무르고 있었다.
공놀이 문파 대항전도 열렸다.
동부 해안 동맹 소속 십여 개의 문파가 참가했다.
담청은 나이 제한에 걸려서 감독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서란은 마침내 사영근을 조화시켰다.
남대륙에서 화영근을 얻은 지 6년만의 일이었다.
공동 수뇌부가 열광하고 모든 월간지가 서란의 소식으로 도배됐다.
다만, 서란은 극심한 수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란은 구조 조정 때문에 하루 아침에 실직한 가장의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제 뭐 하지?”
오늘 치 수행 3시진(6시간)은 벌써 끝났다.
물론, 억지로 시간을 늘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감각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 이상의 긴 수행은 무의미했다.
수영기의 해는 아직도 3년 정도 남았다.
그때까지는 꼼짝없이 허송세월해야만 했다.
서란이 한가함에 몸 비틀고 있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서란의 일정이 텅 빈 건 아니었다.
인형인형 시리즈 집필, 인형술 연구, 습관적인 명상, 대지모신 노릇, 식산대붕 돌보기, 친목 활동 등의 다양한 일거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수면조차 불필요한 초인에게는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여기가 지구였다면 영화라도 실컷 봤을 터였다.
하지만 사진기조차 없는 세상에 오락용 영상 매체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었다.
기껏해야 소설이나 잡지를 읽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였다.
그래서 최근 며칠 동안 서란은 소설과 잡지를 훑어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뭔가 식상해.
전혀 자극적이지 않아.
사실, 이것도 전부 핑계였다.
그냥 수행이 하고 싶었다.
법력을 쌓고, 공법을 운용하고, 법문을 되뇌일 때마다 더 나은 존재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때, 장선화가 서란을 불렀다.
“선생님, 편지가 왔어요.”
“고맙구나.”
“에이, 뭘요.”
장선화는 편지를 두 통을 건네주고는 떠났다.
아마도 애완 토끼들 밥 주러 가는 모양이었다.
독립하면서 기르던 동물을 몽땅 데려온 장선화 덕분에 저택 전체는 동물원이 된 지 오래였다.
서란은 편지 겉면을 차례로 살폈다.
공교롭게도 두 통 모두 연구 용역 기관에서 온 편지들이었다.
봉투부터 고급스러운 걸 보니 나름 격식을 차린다고 휴대전화 대신 편지를 보낸 듯 했다.
서란은 첫 번째 편지를 펼쳤다.
향로 법보의 연구 성과가 적혀 있었다.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여태 알아낸 게 거의 없다는 소리였다.
서란은 시간과 예산을 더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는 고대 원기둥을 연구하던 고고학자들이 보낸 편지였다.
마찬가지로 연구 성과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앞서 읽은 편지와는 결과가 달랐다.
놀랍게도 고고학자들은 고대 원기둥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관련 내용을 편지에 상세하게 적을 수는 없다며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한다.
서란은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다는 심정이었다.
서란은 국제 학회 본부로 향했다.
마침 한가했던 담청도 따라왔다.
참고로 공놀이 문파 대항전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담청이 태만하고 책임감이 없는 감독인 탓에 여기서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16강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했을 뿐이었다.
접수처 근처에 있던 고고학자가 서란과 담청을 보고 인사했다.
“아, 오셨군요. 바로 가시죠.”
고고학자는 앞장서서 연구 동으로 둘을 인도했다.
목적지까지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 고대 문양으로 뒤덮인 원기둥이 보였다.
연구 총책임자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일행에게 다가왔다.
모든 예산이 서란의 전낭에서 나오는 탓이었다.
미소에 가난한 학자의 비애가 한껏 배어 있었다.
총책임자는 말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 드립니다. 사실 저희가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보안상의 문제로 여의치가 않았거든요. 자, 저쪽으로 가시죠.”
총책임자는 연구실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고대 원기둥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란은 절반도 채 못 알아 들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응했다.
담청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고대 원기둥 앞에 도달한 총책임자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이 고대 유물은 일종의 금고입니다.”
총책임자가 처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자, 여태 침묵하고 있던 담청이 물었다.
“금고?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냐?”
총책임자는 다시 한번 전문가 이외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소리를 쏟아냈다.
위상 굴절에 의한 시공간 왜곡이 어쩌고 하는, 당최 고고학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를 전문 지식 강연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문외한들은 이번에도 기계적으로 대응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서란이 물었다.
“그래서, 안에는 뭐가 있나요?”
연구 총책임자가 대답했다.
“저희는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주인도 아닌데 멋대로 금고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는 없죠. 아, 물론 개봉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열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뭐.”
“저희로서도 다행이군요. 사실 안에 뭐가 있을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밤에 잠도 잘 안 올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연구 총책임자는 진심 어린 미소와 함께 유물을 조작했다.
복잡한 절차를 거칠수록 고대 유물은 점차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다른 고고학자들도 슬금슬금 고대 유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개봉 과정을 지켜보던 서란이 담청에게 물었다.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요? 혹시 법보?”
“시공간을 다루는 힘은 오로지 신선만의 권능이지. 그렇다면 저 고대 유물 자체가 이미 법보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무릇, 보관함보다 천한 보관물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분명 엄청난 법보가 잠들어 있을 터다.”
“실로 명쾌한 추리! 역시 담청 님이십니다!”
서란은 부푼 기대를 안고 고대 유물을 바라봤다.
백 만원어치 현금을 보관하기 위해서 천 만원짜리 금고를 마련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모든 금고는 자기 가격보다 비싼 내용물을 보관하는 게 당연했다.
법보나 다름없는 금고 안에는 도대체 어떤 귀물이 담겨 있을지 빨리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다 서란은 문뜩 우스운 생각을 떠올렸다.
“후후, 후후후후...”
“서란, 갑자기 왜 웃는 것이냐?”
“아뇨, 웃긴 생각이 나서요.”
담청이 물었다.
“웃긴 생각?”
“예, 저희가 지금까지 저 고대 유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떠올려 보세요. 반쯤 난로 취급하면서 찻물 끓이는데나 썼잖아요. 그런데 저 유물이 사실은 보물 상자였다니, 이래서 세상 일은 모르는 건가 봅니다.”
“정말 그렇구나. 아참, 그러고 보니 감자랑 버섯을 구워 먹은 적도 있었지.”
“맞아요, 한눈 팔다가 약간 태웠었죠. 아직도 잘 찾아 보면 눌어붙은 자국이 남아 있을 겁니다.”
“후후, 기억 나는구나.”
“후후후.”
“후후후후.”
그때, 천지를 뒤흔드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하하하하하! 드디어!”
서란과 담청은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니까.
순간, 어떤 번뜩임이 서란의 뇌리를 스쳤다.
보관물은 일반적으로 보관함보다 귀하다.
제정신이라면 황금으로 만든 상자에 장작이나 자갈을 보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바로 감옥이었다.
감옥과 금고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내부와 외부를 차단할 목적으로 제작되는 탓에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보관 대상이 다를 뿐이었다.
수도문파의 뇌옥도 마찬가지지만, 감옥의 건설 비용을 결정하는 건 죄인의 몸값이 아니었다.
죄인이 지닌 위험성이었다.
고대 유물이 만약 감옥이라면, 그 안에는 얼마나 위험한 존재가 갇혀 있을지 모른다.
서란은 황급히 외쳤다.
“잠깐, 개봉을 멈...!”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대 유물이 산산조각났다.
광풍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는 천지영기.
뒤틀린 시공간 너머에서 다가오는 존재감.
검은 화염에 휘감긴 수도자의 원영.
봉인에서 깨어난 존재가 소리쳤다.
“천하 만물이여, 경외하라! 이 몸, 등 진군께서 친히 하계에 강림하셨나니! 아하하하하하!”
스스로를 등 진군이라고 소개한 존재의 살기에 고고학자들이 우수수 기절했다.
서란과 담청은 동시에 법력을 끌어 올렸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적의, 도무지 싸움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등 진군이 거만하게 외쳤다.
“하계에도 인물이 있었구나! 아주 좋다! 똑똑히 목도하라, 준선경의 힘을!”
등 진군은 서란과 담청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진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