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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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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가 된 숲을 기사들이 내달린다.

“햣하-! 잡아라!”

“도망치는 건 그냥 엘프, 도망치지 않는 건 훈련받은 엘프다!”

“생포해, 생포!”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한 이들이 전리품을 약탈하는 시간. 만일 이게 왕국 영지와 영지의 싸움이었더라면 서로의 감정을 더럽히는 약탈은 금지되었겠지만, 이번 싸움은 영지와 영지의 싸움이 아니다.

기사와 범죄자들의 싸움. 정의와 악당의 싸움. 죄인을 처벌하는 심판봉이다. 덕택에 기사들도, 그들을 통제해야 할 로엔그람도 엘프들을 약탈하는 데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갖지 않았다.

다만.

“흐으음…… 이상하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엘프들의 수가 너무 적어.”

숲을 일주한 로엔그람은 제 부하 기사에게 그리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넓은 숲을 살아가는 엘프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 들었던 정보의 십분지 일도 안 될 정도.

이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심문받은 엘프가 끝까지 의리를 지켜내고 입을 닫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엘프들이 진즉에 배신을 알아차리고 미리 도망쳤다는 것.

전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왕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아무리 고결한 기사라고 할 지라도 그 입을 열게 만들 수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숲 속에서 자기들끼리 어화둥둥하며 살아왔을 엘프가 버틸 수 있을 자극이 아니다.

“……도망쳤군.”

슬쩍-.

로엔그람의 눈이 숲을 포위하고 있던 기사들을 향해 돌아간다. 그러고보니 기사의 수가 처음보다 무척 줄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작전 중 생긴 부상으로 먼저 퇴각했다고.

그럴 리 있나. 로엔그람은 그들이 엘프들을 따로 빼돌렸음을 깨달았다. 하기야 그럴 이유는 충분했다. 이번 소집령은 왕의 권한을 이용한 것이라 소집된 기사와 그들의 군주에게 그 어떤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귀족으로 임명 받았을 때, 기사로 서임 받을 때 계약했던 약속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하는 게 반가울 리 없다. 때문에 알아서 대가를 챙기는 행위는 당연…….

‘……그러고 보니.

로엔그람은 뒤늦게 엔리가 이끌던 기사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엔리 본인이 숲 속까지 들어와 그들을 구해주었던 지라 깜빡 잊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보여야 할 부하 기사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또한 엘프를 몰래 빼돌렸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설마.”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가 그럴 리는 없겠지.

로엔그람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가볍게 넘어가지 못 했다.

머릿속 한 켠에는 계속해서 의구심이 남아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기사의 직감이란 보통 잘 들어맞는 편이다.


클라우디아 령.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영지에 도착한 흑장미 기사단은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별관에 차례차례 엘프들을 집어넣었다.

저택 안에 도착한 엘프들은 공포에 덜덜 떨면서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에게 붙잡힌 엘프들이 어떻게 되는 지, 그들의 선조에게. 또 그들의 동족에게 수도 없이 경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린 끝이야…….”

“아아- 더러운 인간의 엉덩이를 빨게 되겠지…….”

“팔다리가 다 잘리고, 눈알을 파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변태 귀족에게 끌려가 장난감처럼 다뤄지다가 죽음만 면한 채로 목숨만 부지하든가, 그나마 나은 경우에도 성노예로 끌려가 수많은 남성들에게 희롱당하는 최후를 맞이하리라.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될 상황에- 별관의 문이 열리고 새하얀 빛과 함께 새카만 머리의 영애가 그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별관 안으로 들어선 여성을 바라보았다. 귀족이라는 개념을 인간으로 빚으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품격 넘치는 모습.

이브 클라우디아는 엘프들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쯧- 혀를 내찼다.

“더럽잖아.”

움찔-!

엘프들이 몸을 떨었다.

아무리 조심스레 운반했다고는 하지만, 땅굴을 헤쳐나온 엘프들의 몸상태가 깨끗할 리는 없었다.

“씻겨.”

“예, 아가씨.”

이브의 한 마디에 그녀 뒤에 기다리고 있던 하녀들이 잽싸게 달려가 엘프들을 하나씩 들어올렸다. 공작가의 메이드답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그들은 손목 발목이 묶인 엘프 수십을 고작 수십 분이 되기 전에 말끔하게 만들어놓는데 성공했다.

“???”

그렇게 깨끗하게 씻겨진 엘프들은 다시 한 번 이브 앞에 진열되었고, 깨끗해진 엘프들을 본 이브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쯧. 삐쩍 곯았잖아.”

먹여.

예, 아가씨.

이브의 한 마디에 메이드들은 곧장 수십 인분의 식사를 준비했고. 과연 밥까지 먹여줄 수는 없었는지 일시적으로 손목을 풀어놓게 되었다.

놀랍게도 손목을 풀고 식사하는데 그 어떤 감시도, 경비도 없었다. 식당 안은 음식과 식기로 가득했고. 엘프들은 아무렇지 않게 날카로운 식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엘프들이었지만, 밥을 거절하진 않았다. 그들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진수성찬에 눈이 돌아갔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엘프는 기본적으로 죄인이거나 노예다. 숲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하며, 당연히 식사 또한 숲에서 나는 도토리나 열매를 주워다 먹는다.

고기는 정말 아주 가끔밖에 먹을 수 없는 수렵민족. 그런 이들에게 아주 오랜만에 값비싼 고기와 과일, 생선 따위를 들이미니 눈이 돌아가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의도가…… 뭐지?”

“……여기 독이 들은 거 아냐?”

“엄마! 이거 먹어봐요! 맛있어요!”

아직 어린 엘프들은 이 상황에 마냥 웃음보를 터트릴 뿐이었지만. 인간불신이 기본적으로 깔린 어른 엘프들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했다.

다행히 그렇게 의심했기에, 발목에 묶인 밧줄을 풀거나 탈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었다.

“탈출 시도는? 아무도 없다고? 그래? 그럼 본보기는 필요 없겠네.”

식사가 끝난 이후 뒤늦게 돌아온 이브는 그리 말하며 엘프들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은 자신과 똑같은 지성체를 보는 것이 아닌, 말 잘 듣는 가축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에게 충실한 가축에게 보상을 내리는 법이다.

엘프들은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별관을 빠져나와 그 옆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클라우디아 공작이 특별히 관리하는 숲이었다.

“이제부터 이 숲이 너희들의 영지야. 너희들끼리 알아서 촌장을 정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러 와. 별관까지 자유롭게 이용해도 좋으니까.”

머나먼 옛날. 엘프들이 이 땅의 지배자였을 무렵. 그럴 때에나 볼 수 있었던 양지 바른 숲. 햇볕이 중간중간 잘 스며들고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한 숲이었다.

숲을 배정받은 엘프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이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이토록 잘해주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저…… 인간 아가씨?”

“이브 님이라고 불러.”

“이, 이브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희는 대체 여기서 뭘 하면 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 한 엘프들 중 한 명이 총대를 매고서 이브에게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이브는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그 엘프를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도 사람 여럿은 죽여봤을 그 시선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으니, 엘프는 절로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연찬해.”

“예, 예?”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활을 쏘고, 정령을 다루고, 마법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단련하라고.”

살아라.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평범하게.

이렇게까지 귀한 대우를 해주면서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엘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이브는 한 마디를 남긴 뒤 모습을 감추었다.

“쓰임이 있을 때 알아서 부를 테니, 그때까지 준비해.”

이브가 정말로 기사들을 대동하고 떠나간 직후. 엘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인간은 모두 그들을 하나의 소장품쯤으로 여기며, 노예로 붙잡아 거래하고, 희롱하고 괴롭히며 망가뜨렸다.

그러나. 인간은 믿을 수 없어도 행동은 믿을 수 있었다.

“……어쩌지?”

“이대로 도망치는 건…….”

“안 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데다가…… 아이들까지 있는 걸.”

아무런 속박도 감시도 없는 이상 이곳을 탈출하는 건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다만, 그 어떤 엘프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지 못 했다.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숲 바깥을 선택하는 것보다야, 배부른 가축이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이브 님은, 사실. 좋은 사람이 아닐까?”

“내가 생각해도 그래.”

“아아- 마음씨 착하신 분.”

지금까지의 행적만 보았을 때.

이브가 보여준 행적은 악역영애라기보다 엘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당의 탈을 쓴 위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