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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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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

밧줄에 묶인 아카데미 생도들은 불안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들을 책임져야 할 교수와 호위들은 진즉에 머리통에 구멍 하나가 생긴 뒤였다.

3왕자 카시우스는 이 상황에 침음성 흘리면서 납치범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노리는 게 누구인지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인질은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나. 다른 이들은 놓아줘라.”

“─뭐라는 거야, 이 샌님이.”

카시우스의 말을 들은 납치범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다가와 그의 볼따구에 총구를 강하게 들이밀었다. 차가운 쇳덩이가 볼살과 이빨을 비비며 찢어놓는 게 느껴졌다.

강한 철분향이 입안 가득 느껴지는 가운데, 다른 납치범이 왕자의 볼을 찌르는 납치범을 향해 경고했다.

“그만. 중요한 인질이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마.”

“아앙? 안 쏜다고. 누굴 등신으로 아나…….”

그 대화를 엿들은 카시우스는 이들이 하나로 뭉친 조직이 아님을 깨달았다. 동시에 머릿 속에선 감히 왕족을 노리고 이런 짓을 저지를 조직들의 목록이 스쳐 지나갔다.

판데모니엄, 칸의 전사들, 칠왕국의 잔당, 이국의 무리, 단순한 도적떼…….

그러나 그 순간, 카시우스는 강렬한 풀내음을 느끼고 멈칫했다. 그가 아는 한 이런 풀냄새를 풍기는 종족이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반왕국연맹.”

엘프Elf.

과거 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가지고 있던, 지금은 왕국에 의해 그 대부분을 빼앗기고 아주 좁은 수림 하나에 갇혀 사는, 그리하여 왕국을 질시하는 종족.

반왕국연맹이란 단어를 들은 납치범들은 순간 입을 꾹 다물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3왕자를 노려보았다. 대충 정답은 맞는 것 같지만 알게 된다고 한들 크게 바뀌는 건 없으니 내버려 두겠다는 듯한 태도.

아까 전 그들이 말했던 대로, 카시우스의 가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값어치보다 비쌌기에. 고작 정체를 알아내었단 이유만으로 손을 대지는 않는 것이다.

“숲 속 요정들의 격도 바닥으로 떨어졌군. 이런 무자비한 습격이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거냐.”

카시우스는 자신들이 습격 당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 나타난 마차가 열차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고, 늘 그러했듯 도적떼를 무시하고 나아가려던 열차는 마차에서 발사한 대포에 의해 반파되었다.

열차 옆구리에 생겨난 구멍으로 도적떼들이 우르르 침투하는 가운데, 마차 안에 몰래 침투해 있던 녀석들도 동시에 움직여 순식간에 경비와 호위를 죽이고 그들이 있는 곳까지 점령했다.

몇 날 며칠을 계획했는지 모를 이 습격에 아카데미 생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은 모두 마법사고 기사였지만, 실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은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배움을 받는 수습생. 자신들을 가르치던 교수의 머리통에 구멍이 뚫리고 몸에 납으로 된 쇠구슬이 박히는 데 침착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냐고?”

“그래. 이 사건은 국제적으로 지탄받을─.”

“그러는 너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왕국을 세웠나.”

“……그건.”

“나는 안다.”

대뜸 납치범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터져나온다.

“나진, 아루, 기미, 하유, 피르……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지. 어때? 너는 너를 위해 죽은 이들의 이름을 아는가.”

“…….”

“우리는 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잊지 않아! 너희 인간들이 수 년전 은원도 잊어버리는 데 반해, 우리는 수백 년 묵은 은혜도 잊지 않는다!”

울분이 터져나온다. 인간의 한평생보다 기나긴 세월 쌓아온 원한이, 이제 막 십여년 살아온 카시우스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이 묵은 관계가 그를 쥐어짠다.

터져나오는 감정에 압도당한 카시우스는 할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면서도, 그저 반박하기 위한 말을 입에 담았다.

“……열차는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너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목적지를 바꾸는 짓 따위는 하지 못 할 거다. 그리고 열차가 다음 정착지에 도착하면 그걸로 끝. 너희는 모두 체포당할 것이고, 사형 당할 것이다.”

그렇다.

왕자가 여전히 이토록 태연할 수 있는 이유.

지금쯤이면 열차가 나포되었음이 통신석을 통해 공유되었을 것이고, 왕자가 납치되었음에 경악한 왕국에선 비상사태를 선포해 기사와 마법사들을, 군대를 소집했으리라.

이들이 아무리 잘나더라도 왕국군과 정면에서 맞붙어 승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가능했더라면 애진즉에 왕국을 상대로 승리를 차지하고 그 땅을 차지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반왕국연맹의 엘프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음의 의미가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과연 너희 인간의 상상력이 대단하긴 하더군. 엘프들은 평생 듣도보도 못 한 물건들을 만들어내. 당장 이것만 하더라도 그렇지.”

엘프는 그리 말하며 제 손에 든 총을 들어올렸다. 천둥을 내는 도구. 엘프들을 더더욱 좁은 구역으로 내몬 물건.

그리고 동시에 백발백중의 사수인 엘프들에게 있어 더더욱 찰떡궁합인 무기.

수천년 살아온 엘프도 이런 물건을 만드는 방법 따윈 몰랐다. 그러나, 만들 줄 모른다고 하여서 사용할 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문명의 이기가 언제까지고 너희들에게만 웃음 지을 거라고 생각하지?”

끼이이이익-!

그 순간 열차가 흔들리고 잠시 굉음이 울려퍼진다. 기우뚱거리던 열차가 균형을 되찾은 순간, 카시우스는 무언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열차가 향하는 방향이 바뀌었다.

“우리들이 누구인지 잊었느냐.”

엘프.

대자연의 사랑을 받는 종족.

정령사이며 드루이드.

그들에게 있어 실시간으로 궤도를 만드는 것쯤은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이를 이용해 열차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또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오로지 엘프에게만 허락된 기예였다.


“하아암…….”

열차의 꼬리칸.

바깥을 바라보며 주변을 경계하던 호크는 저 멀리, 먼지구름을 피워내며 달려드는 말 한 필을 보면서 총을 들어올렸다.

“미안하지만 여긴 이미 우리가 선점했……거든!”

타아앙-!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강력한 천둥이 친다. 눈앞은 순식간에 탄연으로 가려졌다.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며 손을 내저은 호크는 이쪽을 향해 달려들던 기수가 총에 맞고 떨어졌음을 확신했다. 연기 때문에 보진 못 했지만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말 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여유롭게 총알을 재장전하던 그때.

“뭐 하나 물어보지.”

“어어-!?”

호크는 제 앞에 나타난 녹색 머리 사내를 보면서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곧바로 총구를 들이밀며 매섭게 노려보았으나, 사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여기에 아카데미 생도들이 있나?”

꿀꺽-.

호크는 답하지 않고 그저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사내는 묵묵히 호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야- 방금 뭔 소리─.”

“오지마!”

그리고 그때.

총소리를 들은 제 동료들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꼬리칸으로 들어온 순간.

사내는 문 너머 포박당한 시민들을 보고서 검을 뽑아들었다. 이곳이 자신이 목적지로 삼은 그곳임을 확신한 것이다.

건방지게-.

호크는 감히 검자루를 잡는 시대착오적 기사님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기사가 아무리 재빨라도 총알보다 빠를 순 없음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티잉-.

이보다 더 가벼울 순 없는 소리가 한 번 가볍게 울려퍼지고 난 이후.

털썩……

호크를 포함한 일행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납치범들을 쓰러트린 엔리는 걷는 속도를 높이며 앞칸으로 나아갔다. 총 소리가 연달아 두 번이나 울렸다. 앞에서도 무슨 일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있을 타이밍이었다.

엔리는 조심스레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뭐야?

-뒤로 한 번 가봐. 혹, 기사들이 벌써 뒤쫓아 왔을 수도……

-엄마, 엄마아아….

엔리의 귀에는 앞칸과 그 너머, 열차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내뱉는 다양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서 있는 누군가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는 이의 목소리,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등등.

그 모든 소리를 기반으로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 열차의 길이, 열차 안에 존재하는 모든 납치범들의 수, 그들이 지닌 무기의 종류. 그리고.

-……구조대가 온 건가?

-전하…….

-크윽, 인질만 아니었어도…

왕자와 귀족들로 보이는 이들의 소리까지.

눈을 뜬 엔리는 곧바로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검을 내지르기가 무섭게 열린 문틈 너머로 칼에 찔린 납치범이 윽- 하고 멈춰서는 게 보였다.

칼자루를 밀며 문 너머로 향한 엔리는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는 납치범들을 보며 가볍게 검을 뽑아냈다. 피가 칼날을 타고 뚝뚝 흐르며 바닥을 적셨다.

“씨발, 쏴─.”

촤아악-!

그 다음은.

기사의 독무대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