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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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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솔의 말에 천천히 허리를 폈다. 의아한 듯 교실 앞의 시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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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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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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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어조는 단호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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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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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마지못해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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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렇게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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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갑자기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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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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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는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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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아는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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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가 소곤거리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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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라면 뭐 알지 않으려나? 둘이랑 한동안 같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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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의 미니미는 똘망거리는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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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도 같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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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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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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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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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미가 실망에 빠져 책상 위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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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며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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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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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응해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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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정말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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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의 미니미는 아직도 노이즈가 섞여 있었고. 신아영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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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후로, 기분이 좋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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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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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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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이 가는 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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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어제의 일로 신아영을 부른 게 아닐까 싶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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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하루를 날려버렸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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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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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리의 미니미가 책상 위를 뒹굴거리며 중얼거렸다. 옹졸한 발끝을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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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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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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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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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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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복도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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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발자국 떨어진 뒤편에서는 신아영이 뒤따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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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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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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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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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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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상한 기류를 느낀 것인지, 의문스럽게 눈썹을 기울일 뿐.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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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는 방향은 인적이 드문 복도 끝. 꼭대기 층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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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기에, 거기에서는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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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까지 다다르자. 이솔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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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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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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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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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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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박스를 꺼냈다. 방금 신아영에게 받은 초콜릿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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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다이어트 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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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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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그걸 내려다보며 잠깐 고민하다가, 선뜻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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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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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괜찮으니까, 다 먹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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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박스를 통째로 그녀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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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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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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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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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으로 다시 돌아간 초콜릿을 보며, 이솔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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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체육 대회인데···. 그거 지나고 나면 얼마 안 남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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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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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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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한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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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없는 화제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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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너는 어떤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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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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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고민하더니 작게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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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그럭저럭하고 준비하고 있어. 공부는 평소에도 꾸준히 하니까. 크게 문제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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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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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소매 끝자락을 매만졌다. 행동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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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누구는 간단히 해버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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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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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제 와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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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허탈한 것은 사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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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해서 시샘할 생각은 없었다. 그 덕분에 도움받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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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 너는? 어제는 민지 언니가 가르쳐줬었잖아. 언니도 되게 공부 잘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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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날아온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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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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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이솔은 침묵했다. 목을 돌리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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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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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못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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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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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르친다면 잘 가르치는 편이겠지. 웬만한 사람들은 그녀의 설명만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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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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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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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그녀에게는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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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내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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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라면 더 쉽게 가르쳐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맴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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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혼자 할 때보다 집중이 더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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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고급 의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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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기만 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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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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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고 누구나 다 잘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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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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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멋쩍은 듯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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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쩌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제 일이 확실히 미안하기는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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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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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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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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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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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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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승호가 공부하는 거 봐주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계속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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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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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떠보는 듯한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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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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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이전보다 더 어색해진 눈길로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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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멋쩍게 복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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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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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그 표정을 보곤 이전보다 더 확신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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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그저 싱긋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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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큼 깨지지 않는 내면의 얼굴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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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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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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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시간을 확인하고선 물었다.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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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한테 할 말 있던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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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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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입술을 달싹였다. 할 말이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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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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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쭉 재고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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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와 잘 되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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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한다면 그녀는 선뜻 도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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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얘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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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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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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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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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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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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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이든 아니든,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은연중에 방해할지 모를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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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떠올려보니, 그 말은 꺼내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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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게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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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신아영에게는 도와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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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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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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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신아영을 가만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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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은 평범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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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언제나의 그녀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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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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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의 앞에서의 신아영과 현재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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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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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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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태의 그녀에게까지 차마 도와달라고는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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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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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할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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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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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축 늘어뜨린 넥타이 끝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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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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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난번에 물어봤었잖아. 혹시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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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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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입술을 구부렸다. 의문을 표정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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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때.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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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떠올리려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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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첫날밤. 신아영은 갑작스럽게 그런 질문을 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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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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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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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한테 호감 있냐고. 그렇게 물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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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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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 화제를 꺼낼 줄 몰랐다는 듯 동공이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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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을 보면서도 이솔은 말을 계속 이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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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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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편지를 낭독하듯이.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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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신경 쓰이는 정도라고 말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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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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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은 조금 쭈뼛거리며 이솔의 입술을 쳐다봤다. 뒤꿈치가 주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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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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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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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솔의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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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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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제 손등을 볼에 살짝 가져다댔다. 데일 듯이 뺨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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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는 듯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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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피가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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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신아영 앞에서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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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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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좀처럼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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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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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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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은 한 줌 정도 되는 숨을 머금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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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삐걱거리며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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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함보다 먼저, 행동을 실행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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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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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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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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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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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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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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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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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이 아니라 좋아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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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조차 그 이유를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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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할 수 없다고 이 감정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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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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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고 부탁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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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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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혹여나 가지게 될 감정을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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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녀 본연의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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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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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걔를 먼저 좋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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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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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영이 알고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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