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69 lines
14 KiB
Markdown
269 lines
14 KiB
Markdown
|
|
어찌어찌 흑마법사들을 때려잡은 이후. 필립은 챙겨온 비상 물품들로 부대원을 치료하고, 힐다와 칼튼은 연구실을 뒤적이는 사이.
|
|
|
|
나는 흑마법사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두고 있자니, 카렌이 슬그머니 다가와 물었다.
|
|
|
|
“한 명쯤은 살려두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도련……가주님?”
|
|
|
|
“카렌카렌아. 그냥 편하게 불러. 나는 도련님 소리도 듣기 좋더라.”
|
|
|
|
“안 됩니다. 이미 가주님께서는 자하브 가문의 주인이시고, 제국에 셋 뿐인 대공이시잖아요. 호칭은 똑바로 해야 해요.”
|
|
|
|
“쓰읍. 난 좀 서먹해진 것 같아서 아쉽단 말이지.”
|
|
|
|
“……명령이시라면 따르겠습니다.”
|
|
|
|
“아니, 이런 걸로 명령할 것까지야. 카렌 네 말이 맞겠지. 난 이런 쪽은 아무래도 잘 모르니 말이야.”
|
|
|
|
정식으로 계승식을 마치고 가주가 되었기 때문일까. 묘하게 고분고분하단 말이지.
|
|
|
|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카렌이 대충 뭉쳐놓은 흑마법사 시체를 발끝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
|
|
|
“그나저나, 조금 아쉽네요. 만약 한 놈 정도 살려두셨다면 뭐라도 정보를 캐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
|
|
|
“세상에. 카렌아. 그런 말랑한 얼굴로 고문 같은 것도 할 줄 아니?”
|
|
|
|
카렌의 볼따구를 양옆으로 주욱 잡아 늘리자, 얌전히 내게 불을 내어준 카렌이 무감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
|
|
“제가 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님이 하는 거예요.”
|
|
|
|
“아하. 뭐어, 너무 아까워하지 마. 설령 세 놈 모두를 살려서 심문한다 해도 제대로 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
|
|
|
|
“그런가요? 할아버님의 실력은 꽤 대단하십니다만…….”
|
|
|
|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론이 누구 하나 고문하는 일은 잘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
|
|
|
|
“가주님의 명으로 인한 것이라면 케세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 될 거예요.”
|
|
|
|
“어……그건 그것대로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애초에 흑마법사 상대로는 애초부터 전제가 잘못됐어.”
|
|
|
|
“예? 그게 무슨…….”
|
|
|
|
“잘 모르는 거 보니, 카렌 너는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보네.”
|
|
|
|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나마 머리가 멀쩡한 대장격 흑마법사의 시체를 가리켰다.
|
|
|
|
“너도 마지막에 봤지? 갑자기 말투가 연극체로 변한 거. 이게 보통 대장격 흑마법사들이 그렇게 말투가 오락가락하더라고.”
|
|
|
|
“맞습니다. 비극의 신의 신력을 받아들인 부작용이라고 들었습니다.”
|
|
|
|
“응? 그게 그런 이유였어……?”
|
|
|
|
지금껏 흑마법사는 여럿 잡았지만, 왜 그런지는 별로 궁금해한 적 없었기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
|
|
일단 머릿속에 넣어둔 뒤. 하던 말을 이었다.
|
|
|
|
“아무튼 그게 비극의 신 때문인지 그냥 미친놈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확실한 건 말투와 함께 머리도 오락가락한다는 거거든.”
|
|
|
|
“그럼…….”
|
|
|
|
“어. 정보를 빼내려 해도 헛소리만 하거나, 어찌어찌 정보를 알아내도 거짓이거나 함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를 실토하는 척 이쪽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던 놈도 있었고.”
|
|
|
|
그러니 흑마법사와는 말을 섞을 이유가 없다. 말을 섞더라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
|
|
|
“일단 죽이고, 시체나 연구실 같은 곳에서 정보를 알아내는 게 훨씬 나아. 그래서 이렇게 바로 빠져나가는 대신 여기저기 뒤져보는 거잖아.”
|
|
|
|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겁니다만.”
|
|
|
|
“응?”
|
|
|
|
한데 모은 흑마법사들의 시체를 뒤적이며 대충 답해주던 도중. 카렌이 조심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
|
|
|
“혹시 흑마법사를 상대해 보신적인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건가요. 너무 능숙하기도 하시고, 어쩐지 놈들이 가주님을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
|
|
|
“아……말 안 했었나.”
|
|
|
|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것도 없는 시체 하나를 옆으로 치워버렸다.
|
|
|
|
“사실 칼립소에도 흑마법사 지부가 하나 있었거든.”
|
|
|
|
“예, 뭐. 칼립소라면 하나 있을 법도 하죠.”
|
|
|
|
“근데 좀 뭐랄까. 거슬려서? 자꾸 충돌해서? 응. 아무튼 그래서 쳐부쉈어.”
|
|
|
|
“???”
|
|
|
|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끔뻑이는 카렌.
|
|
|
|
하기야. 내가 좀 헷갈리게 말하긴 했지.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
그도 그럴 것이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결국 내가 어린 시절에 흑마법사 조직에 실험체로 팔려나갔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하지 않는가.
|
|
|
|
내가 사실 자하브의 사생아가 아닌 짭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수도 있고……그게 아니더라도 당시의 기억은 내 가장 깊은 상처다.
|
|
|
|
지금도 흑마법사만 보면 발작을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린 시절의 일을 말하는 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든단 말이지.
|
|
|
|
스스로 약점을 밝히는 건 칼립소에서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으니까.
|
|
|
|
내가 다른 흑마법사의 시체 하나를 더 수색하는 내내 눈만 깜빡이던 카렌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
|
|
“그으……그러고 보니 가주님께서는 칼립소에서도 자신만의 조직을 꾸리셨었죠. 가장 낮은 곳의 주인이라는 게 설마…….”
|
|
|
|
“응? 조직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지만, 같이 사는 친구들이 좀 있긴 했지.”
|
|
|
|
일종의 고아팸이라고 해야 하려나.
|
|
|
|
쉴 새 없이 대륙의 거물급 범죄자가 유입되고,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칼립소에서 고아는 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이들.
|
|
|
|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 자기들끼리 뭉치는 경우가 많았고, 막 흑마법사 조직에서 빠져나온 시기의 나 또한 자연스레 고아팸에 합류한 것이다.
|
|
|
|
고아팸의 가입 조건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을 것이니까.
|
|
|
|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다들 머리가 굵어지며 아이라 부르기 힘들어졌을 무렵.
|
|
|
|
누군가는 범죄 조직에 들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용병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누군가는 마음이 맞는 몇몇과 함께 새로운 모임을 만드니.
|
|
|
|
내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같이 영차영차 힘내며 집도 사고 그랬는데…….
|
|
|
|
정작 집이 생기고 나자, 어렸을 때부터 사이좋았던 놈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더라.
|
|
|
|
어떻게든 중재시키려 해도 내가 얼굴을 비추는 순간 입을 싹 다물어 버리니 중재도 힘들었고.
|
|
|
|
나 혼자 남자라 내게는 말 못 할 갈등이 있겠거니 넘어갔지만…….
|
|
|
|
그러다 너무 크게 다투는 바람에 다 같이 살던 집이 박살 난 이후.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
|
|
|
어째서 여초 직장에 남자 혼자 다니는 게 헬이라는 건지! 누나들 사이에서 자란 막내아들이 여자만 보면 진저리를 치는지……!
|
|
|
|
결국 각자 따로 살기로 하고, 마침 찾아온 아론과 카렌을 따라 칼립소로 오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
|
|
|
적당히 생략할 건 생략하고, 숨길 건 숨기며 말한 내 이야기를 들은 카렌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
“하아. 그런 걸 조직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적어도 다른 흑마법사들은 그렇게 여겼겠죠. 과연. 이해됐습니다. 새로 생긴 조직을 견제하려다가 가주님께 역으로 당한 거군요.”
|
|
|
|
“아니? 그냥 방해라서 내 쪽에서 보이는 족족 죽인 건데?”
|
|
|
|
“…….”
|
|
|
|
입을 꾸욱 다문 카렌.
|
|
|
|
사실이기도 하지만……솔직히 말하자면 포악한 전투광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
|
|
|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카렌. 무표정은 여전하지만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
|
|
속으로 자축하는 사이. 간신히 진정한 카렌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
|
|
|
“그럼……소리 없는 자들의 종말이라는 건 또 무슨 의미입니까?”
|
|
|
|
“그것도 별거 아냐. 흑마법사 놈들이 쫄리니까 암살자 길드를 동원해서 날 죽이려고 하더라고.”
|
|
|
|
“설마……?”
|
|
|
|
“응. 그래서 암살자 길드도 같이 쳐부쉈어.”
|
|
|
|
“…….”
|
|
|
|
“아잇. 여기도 아무것도 없네.”
|
|
|
|
괜히 투덜대며 마지막 시체를 내던졌다. 이쪽은 허탕인가.
|
|
|
|
어째서인지 카렌이 멍하니 굳어있길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다.
|
|
|
|
흠. 기회인가.
|
|
|
|
볼따구는 이미 많이 만져봤으니 패스한다. 그 대신 카렌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
|
|
|
그대로 번쩍 들어 올리며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
|
|
|
“높다 높아~”
|
|
|
|
“…….”
|
|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무감각한 카렌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가주님. 내려주세요. 제 키가 작을지언정 나이는 그리 어리지 않습니다!”
|
|
|
|
“싫은데?”
|
|
|
|
“이익……!”
|
|
|
|
마구 발버둥 치는 카렌. 하지만 이미 완전히 몸이 들어 올려진 상태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
|
|
|
그렇게 한참을 저항하다가 결국 축 늘어지는 카렌.
|
|
|
|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표정. 하지만 묘하게 원망이 서린 눈빛에 낄낄 웃던 도중이었다.
|
|
|
|
연구실을 뒤져보다 무언가 발견한 걸까. 뒤에서 힐다가 살짝 신난 어조로 외쳤다.
|
|
|
|
“여기 보세요 가주님! 해석이 필요할 것 같지만 뭔가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발견……가주님? 그리고 카렌 양?”
|
|
|
|
도중부터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는 힐다.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비비적거리길래 그제야 카렌을 내려주었다.
|
|
|
|
하지만 발이 땅에 닿았음에도 가만히 멈춰선 채……아니, 정확히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카렌.
|
|
|
|
수치스러움에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지나쳐 어벙하게 입술만 뻐끔대는 힐다가 쥐고 있는 종이 뭉치를 받아들었다.
|
|
|
|
아무래도 칼립소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라 그런지 내가 모르는 암호체계를 사용하고 있었었다.
|
|
|
|
달리 말하면 암호화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라는 소리.
|
|
|
|
“잘했어 힐다. 챙길 것도 챙겼고, 구할 사람도 구했으니 이제 돌아가자고.”
|
|
|
|
“네? 아, 네. 그으……카렌 양은…….”
|
|
|
|
“금방 회복하겠지 뭐.”
|
|
|
|
어깨를 으쓱이고는 왔던 길을 역으로 거슬러 나가기 시작했다.
|
|
|
|
다들 눈치를 보면서 카렌을 피해 따라서 움직이던 도중.
|
|
|
|
뒤에서 카렌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
“……그러고 보니, 계승식 준비로 쌓여있는 업무가 많았었죠.”
|
|
|
|
“뭣. 아니, 그런 건 제벨라 누님이 대신 하기로 했잖아!”
|
|
|
|
“흥! 저는 원칙대로 일할 뿐입니다.”
|
|
|
|
카렌이 치사해졌다.
|
|
|
|
……뭐, 나 때문이지만.
|
|
|
|
***
|
|
|
|
햇살이 내리쬐는 밝은 창가. 하지만 바깥의 풍경은 볼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일하던 뚱뚱한 중년의 사내가 흠칫 몸을 떨었다.
|
|
|
|
“상단주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
|
|
“허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잠깐 좀 쉬고 싶으니 나가 주겠나?”
|
|
|
|
“예? 아, 알겠습니다.”
|
|
|
|
얼떨떨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가는 비서. 그 모습을 확인한 중년인의 푸근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
|
|
|
“던전 진입조가 전멸했나.”
|
|
|
|
그리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의 어둠에서 펼쳐지는 것은 동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
|
|
|
금발에 갈색 피부를 지닌 청년. 에녹이 사납게 웃으며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다.
|
|
|
|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발동되는 기억의 전이.
|
|
|
|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던 상단주……아니, 상단주로 위장한 흑마법사가 한탄했다.
|
|
|
|
“결국 칼립소의 바깥으로 빠져나왔는가. 그나저나 저 복장은……자하브? 허어. 그런가. 그렇게 된 것이었구나.”
|
|
|
|
고개를 끄덕인 흑마법사가 떨리는 손으로 차를 홀짝였다.
|
|
|
|
“하기야. 우리의 고향을 부순 이가 보통 인물은 아니겠지. 아무리 업보가 목을 졸라와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니. 이제야 이해되었다. 최근에 자하브의 사생아가 가주가 되었다고 하던가.”
|
|
|
|
에녹이 실험체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던 흑마법사들마저 너무도 자하브스러운 에녹의 모습에 착각하고 말았다.
|
|
|
|
그냥 고아가 아니라 자하브의 사생아를 데려와 실험체로 삼았던 거라고.
|
|
|
|
실험 과정에서 잠들어 있던 피가 각성한 것이라고 말이다.
|
|
|
|
……물론, 착각이지만 이를 바로잡아 줄 연금술사는 진작에 에녹의 손에 죽었다.
|
|
|
|
“허나 태양이라 한들 약점 없는 존재는 없는 법. 그 어떤 불길도 영원히 타오를 수는 없고, 그 어떤 빛도 언젠가는 어둠에 수렴하니.”
|
|
|
|
과거의 트라우마를 애써 억누른 흑마법사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
“원수여. 네 정체를 알았으니, 이것으로 네 심장을 찌를 비수를 만들 수 있게 되었음이라.”
|
|
|
|
제국 전역에 흩어진 흑마법사들이 같은 기억을 공유받고, 은밀한 협력을 시작했다.
|
|
|
|
오직 자하브를 죽이기 위한 무기를 주조하기 위하여.
|
|
|
|
……그래. 자하브가 아닌 이에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