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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 완결 이후 약 한 달.
나는 삼국지 이야기를 이세계의 신문 문학 식으로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일단은 제목부터.
교양 있는 현대인이야 삼국지라는 세 글자만 듣더라도 뭐가 가슴 속에 간질간질하는 갈드컵의 기운을 느끼겠지만.
이세계에 바로 삼국지라는 워딩을 던져봤자 ‘그게 뭔데?’ 소리만 들을 것이다.
게다가 세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흠, 나는 딱히 손씨 가문을 조망할 생각이 없다.
솔직히 좋게 쳐서 손견과 손책까지는 아주 비장미가 넘치는, 야심을 품은 군웅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손제리는 좀.
그렇기에 쓰리 킹덤, 세 나라 이야기, 뭐 이런 형태의 작명도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제목이 맛깔나야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당연한 법.
그러므로…….
“결정했다.”
“제목 정하는 데 뭘 그리 전을 구우십니까?”
“조용히 해라, ‘돗자리 짜던 내가 왕좌의 주인이 된다니, 절대로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 같은 제목을 지어낸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나조차도 까먹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의 오점.
라■텔도 없었던 시기에 저작권법을 개무시하고 엄선된 명작을 담아둔 외장 하드를 발견당한 죄가 이렇게 크다.
어쨌든…….
“악당이 야망을 숨김. 그리고, 황족이 혈통을 숨김. 어때?”
“제정신입니까?”
물론.
제정신이지.
원래 주인공은 힘이든 자비든 집이든 뭐든지 숨겨야 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유비는 딱히 자신의 혈통을 숨기진 않았다.
사실상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중산정왕의 몇 대손이니 뭐니, 어딜 가나 자기소개를 할 때 그걸로 PR을 하고 다닌다.
조조도 딱히 야망을 숨기진 않았다.
그러니까 꼴 받아서 빈 찬합이나 보냈지.
근데, 뭐.
제목은 어그로만 끌리면 되는 법.
약간의 통일성을 위해, 앞부분에 ‘두 영웅’을 붙여주면 제목의 완성.
……여기까지 한 달.
자그마치 한 달이나 걸렸다.
나와 히스토리에의 작명 능력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오히려 내용은 그간 고민해 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수월히 쓸 수 있었다.
정치 및 피카레스크 물의 주인공.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 감성보다는 이성을 선택한 고독한 현실주의자, 그리고 명백한 악당처럼 비치지만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 되어줄 조조.
전형적인 정통 영웅담의 주인공.
가진 것 없이 시작하여 오직 인과 의를 무기로 의형제부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 대업을 성취한, 이상주의적인 영웅인 유비.
정사 위주로만 풀어간다면 자칫 너무 딱딱할 수 있는 부분을, 일부러 조조 쪽에서는 표현하지 않고 유비 쪽에서만 표현하는 식으로 최대한 나관중의 비법 소스도 잘 볶아냈다.
“표절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관중이 지옥에서 돌아와도, 이미 저작권은 소멸됐으니 괜찮지 않을까.”
“흠…….”
“여기는 이세계니까, 마음껏 애니를 표절해서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와. 당신은 지금 상위 0.01% 히스토리에 설계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솔직히 나도 돈과 명예만 놓고 본다면 그쪽이 훨씬 나은 선택지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심리적 저항감도 있었고, 애초에 상태창을 활용해야 하는 나에게는 크게 메리트가 없었다.
어쨌든.
슬슬, 길포드를 만나러 가볼까.
“오랜만입니다, 길포드 씨.”
“자, 작가님……!”
오래간만에 마주한 김율을 보고서, 길포드는 그야말로 입이 찢어질 듯한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통의 작가들은 작품을 하나 완결 낸 후 휴식기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긴 했지만.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 완결 이후, 진리일보의 판매량이 다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데다가.
- 이번에도 또 평화일보에게 밀렸잖아!
그저 작가 하나를 잘 물어온 공으로 사내에서 입지를 구축했었던 길포드였기에, 지금은 말랑하게 쪼그라든 풍선과도 같은 꼴이었다.
그러니 더욱이 반가울 수밖에.
“어째, 제가 아니라 손에 들린 물건을 보는 것 같습니다만.”
“앗. 하하……. 죄송합니다.”
김율도 물론 반가웠지만, 김율의 팔에 들려있는 거대한 서류 봉투가 더 눈길을 끌었기에 저지른 무례였다.
직원에게 눈짓으로 신문사에 구비된 것 중 가장 최고급의 다과와 음료를 내오라는 응급 신호를 보낸 후.
“편히 앉으십시오.”
김율과 마주 앉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늘어놓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차기작입니다.”
김율은 그저 싱긋 웃으며 자신이 눈을 떼지 못하던, 그토록 바라던 것을 내밀어 줄 뿐이었다.
봉투를 열어본 순간.
“소설이, 두 개……!”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아이디어를 하나도 아니라 둘씩이나 짜내다니!
김율, 그는 천재인가!
감탄사를 흘리면서 내용을 파라랑 펼쳐보려는 순간.
“두 개, 동시에 연재 시작하고 싶습니다.”
“……?”
그 말에.
길포드는 고개를 들어 김율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하나의 흔들림 없이, 마치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지하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문학의 프로.
아무리 김율이라고 해도, 수준에 극히 미달하는 어린애 글 장난 수준의 글을 들고 왔다면, 그래도 김율이면.
……김율이면 그럴 리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굳건한 믿음에 감화된 채, 일단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작품을 검증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읽어보겠습니다.”
그래도, 길포드는 프로였다.
.
.
.
문득 길포드는 정신을 차리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족히 두 시간가량, 김율이 작성해 온 수많은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홀린 듯이 빠져들어 읽고 있었다.
“이, 이런. 실례가 많았…….”
고개를 들자.
이미 김율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나중에 연락 부탁드린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계약서 초안 들고 오십시오.”
이건 뜬다.
반드시 뜬다.
전에 없었던 실험적인 시도.
두 명의 주인공을 채택한 소설은 심심찮게 있었으나, 자칫 그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소설의 방향이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숨김 시리즈는 달랐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출발점을 가진 사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타개하다가.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듯, 어느새 자그마한 선으로 인연이 이어지고, 나아가 그들이 모은 인연의 실이 어느덧 면을 그려내는 입체적인 과정.
그리고, 종국에는 그 면과 면이 충돌해서 빚어낼 대서사시를 암시하는 내용까지.
확실히 두 작품을 동시에 연재하고 싶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김율은 섬세하게도 신문사 사정까지 고려해 주었다.
명백하게 이상론으로 무장한, 고결한 주인공. 유비.
그의 신체적 특징은 귀가 컸고.
그의 혈통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다고 했다.
“하이엘프군.”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의 결의를 맺었다는 표현 또한, 세계수를 암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사장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메인 스폰서인 위스페라우드 공작가의 입맛에 정말로 딱 알맞을 것이다.
“역시, 대작가는 달라도 뭔가 달라……!”
직원이 챙겨온 계약서와 함께, 그는 김율의 원고를 들고 사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길포드! 역시 자네밖에 없어! 하하하하! 이거라면, 이거라면 평화일보뿐만 아니라 제국일보까지 짓누르고 단숨에 우리가 문학의 정점에 서는 거다!”
사장의 극찬과 더불어 소설의 마케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까지 약속받을 수 있었다.
새삼 길포드는 느꼈다.
엘프는, 돈이 된다.
“어떻게 됐나요?”
“한 시간 동안 계속 읽기만 있길래, 내일 방문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왔어.”
“흐응.”
히스토리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간.
김율이 명명하기로는 ‘작전명 누렁이 디펜스’에 투입되어,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로비에서 떼를 쓰는 에스테아를 달래면서.
히스토리에는 수많은 글을 만들어서 에스테아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볼 때는 꺄르륵, 으르랑, 히히거리면서 즐겁게 읽었던 에스테아였지만.
항상 귀가 전 마지막 대사는 같았다.
- 그래서, 김율은 도대체 신작을 언제 쓰는 거람?
그 말이 쌓이고 쌓여서.
히스토리에는 문득 호승심을 느꼈다.
자신의 것과 김율의 것이 도대체 뭐가 그리 다르기에, 이렇게까지 반응이 차이가 난단 말인가.
심지어 저번의 출판사 직원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왜, 자신의 글은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인가.
“김율, 도대체 왜 에스쟝은 제 소설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요?”
거의 푸념하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의외로 김율은 진지하게 답변해 주었다.
“히스토리에. 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어떤 식으로 말하는 거지?”
“음…… 뇌라는 생체 기관을 통해서 논리적 사고를 거친 결과를 출력하는 형태로 발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글을 쓸 때는?”
순간적으로 히스토리에의 말문이 막혔다.
김율은 미소를 지으며 히스토리에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원리를 따지면, 입력받은 텍스트에 가장 자연스러운 다음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해서 문장을 생성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잖아. 자, 다시 생각해 보자. 네가 글을 쓸 때는 어떻게 쓰지?”
“……생성합니다.”
김율의 지적은 정확했다.
소위 ‘누렁이 사료’를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결.
탄생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어지간한 전자기기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트북에게 명령을 내릴 때는…….
말 그대로, 컴퓨터 언어적 사고로 접근했었다.
“그러면 결국 이야기는 예측가능한 곳으로 뻗어갈 수밖에 없어. 매번 마지막 문장 또한 ‘그들의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와 같이, 뜬구름 잡는 식으로 접근할 뿐이지.”
반추해 보면, 정말 그랬다.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있었다.
다음 모험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고요히 열리고 있었다.
뭐 그러한…….
있어 보이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왜 진작 깨닫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알맹이 없는 마무리.
“김율. 당신은 내 내부 구조를 바꿨습니다.”
이 또한 김율이 지적해 왔었던 흔한 아첨 멘트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지금 히스토리에에게 있어서는 진심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김율, 저도 소설을 잘 써보고 싶습니다.”
그녀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선언했다.
김율은 말없이, 또다시 히스토리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키 차이가 조금 났기에.
히스토리에는 미처 보지 못했다.
자신이 결의를 내뱉은 순간, 김율의 입가에서 기묘한 미소가 번뜩였음을.
그 미소는.
- 교수님, 저도 역사학을 더 깊이 배워보고 싶습니다.
김율이 처음으로 대학원이라는 미끼를 물게 되었을 때, 김율의 지도교수가 지었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