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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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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은 우연으로부터 출발한다.

히스토리에와 에스테아의 만남 또한, 원래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우연이 몇 겹으로 중첩된 나머지 성립할 수 있었다.

“흠. 따분하군요. 인간들은 이럴 때 산책을 즐긴다고 했으니, 비록 미개한 인간이지만 그런 관습에는 적용할 필요가 있겠지요.”

온종일 김율의 외장 하드에 고이 모셔두었던 온갖 콘텐츠를 섭취하다가, 처음으로 ‘따분함’을 느낀 히스토리에가 독단적으로 외출을 감행하는 사건과 더불어.

“이익, 이사를 하면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아!”

장막을 들춰서 미래── 김율의 비축분을 모두 본 대가로, 라이브 연재 내용에 대해 어떠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맞이한 드래곤 한 마리가 있었다.

출판사로 찾아가서 편집자의 머리털을 몇 가닥 쥐어뜯고, 황급히 달려 나온 사장의 아주 공손한 접대를 받으며 개인정보를 뜯어낸 후, 곧장 직행.

서로 엇갈릴 법도 했지만.

운명같이 그녀들은 마주치고야 말았다.

물론, 우연한 만남은 보통 스쳐 지나가듯 흘려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히스토리에는 에스테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오른 나머지.

“농크크.”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앙증맞은 존재를 볼 때 응당히 입에 담아야 하는 표현을 내뱉었다.

김율의 필터링 프롬프트는 오늘도 직무 유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에스테아 또한.

“뭐야, 인간……이 아니네?”

일반적인 단생종, 하등하고 미천한 인간과는 격이 다른 신체를 부여받은 히스토리에의 특별함을 한 눈에 알아보고야 말았다.

그렇게, 김율의 집 앞에서.

우연으로부터 시작된 만남이 성사됐다.

.

.

.

그녀들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김율은 게으릅니다. 하루에 고작 2편에서 3편 정도만 써놓고 나머지 시간은 침대에서 뒹구니까요.”

“그, 그 건방진 것! 글 좀 잘 쓴다고!”

“흠? 김율이 글을 잘 쓴다라. 애석한 해석입니다. 제 우월한 지능으로 해석해보았을 때, 제 쪽이 훨씬 더 뛰어납니다.”

에스테아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너도 글 써?”

히스토리에는 가슴을 활짝 출렁이며 당당하게 답변했다.

“제가 이깁니다.”

그 뒤로.

에스테아는 히스토리에가 말아주는 이야기를 마구 흡입하기 시작했다.

족히 수십 년은 넘는 독자 생활을 누려왔을 만큼 그녀는 글을 읽는 걸 사랑하는 지적인 드래곤이었으며.

다소 김율의 것보다 흡입력이 부족하고, 독창성이 조금 떨어질지언정, 히스토리에의 글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다, 다음! 다음 이야기도!”

“조금만 기다리시길.”

버튼을 누르면, 아니, 명령을 내리면.

소설이 바로 공급된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전개로.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집에서 나오면 도대체 어떤 수를 쓴 건지 그럴싸한 소설이 튀어나온다.

“이거, 이거! 당연히 곧 영웅적인 전투가 벌어지겠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길.”

에스테아는 드래곤답게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이토록 충만함을 느끼는 건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물론.

조금 묘사가 장황하게 많거나,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튀어나온다거나, 이상하게 특정 표현에서 애스터리스크(*)가 2개씩 줄지어서 튀어나온다거나.

“으음? 주인공의 성검 이름이 엑스칼리버가 아니었어?”

“아, 에쿠스카리바라고 출력됐군요. 언어 모듈의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오류입니다.”

“뭐! 발음은 비슷하니까!”

등장인물이 자꾸 기억을 헷갈리고, 이름도 가끔 바뀌고,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새버리는 등의 사소한 실수도 있었지만.

에스테아는 개의치 않았다.

빠르게 글을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글이 있으니까 와구와구 잘 먹겠습니다!

김율이 보았다면, ‘으휴, 완전 누렁이네.’하고 한숨을 내쉴 정도의 광경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문이 열리고, 김율이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자, 에스쟝. 이것도 한 번 읽어보시길.”

“꺄륵, 꺄르륵!”

에스테아는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히토리! 나랑 같이 살자!”

“애석하지만, 저는 김율 주인님께 종속된 몸. 주인님의 허락이 없으면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히토리를 내게 내놔라, 미천한 인간!”

“……도대체 히스토리에를 어떻게 줄이면 히토리가 되는 겁니까?”

대충 상황은 짐작이 갔다.

에스테아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A4 용지들, 그리고 그 용지를 가득 채운 벽돌 무더기.

도대체 어쩌다가 만나서 이렇게 됐는진 전혀 가늠이 안 되지만…….

AI식 소설 양산과, 누렁이식 소설 흡입법이 아주 완벽하게 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리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지만.

“……히스토리에, 어차피 너는 우리 집 아니면 글 못 쓰잖아.”

“아, 그건 맞습니다. 김율의 집에 창작의 원천이 있으므로, 떠날 수는 없겠군요.”

최대한 압축적으로 팩트를 들이밀었다.

애초에 지금 히스토리에가 양산한 소설들도 다 노트북으로 딸깍, 그리고 프린터로 딸깍 만든 거니까.

“에엥……?”

물론 듣는 에스테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뭐…….

여기서 굳이 내가 다른 차원에서 날아온 전이자고, 히스토리에는 AI를 인간으로 만든 거고, 뭐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드래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세상이었지만, 마법으로도 우리의 존재는 아마도 설명할 수 없을 테니.

이세계에 표류당한 이후, 마법사의 탑에서 퇴짜를 맞고 나서 울면서 도서관에 짱박혀서 찾아본 결론이었다.

드래곤이라고 해도 별다른 답을 주진 않으리라.

“뭐, 일단 이거나 좀 드시고 생각하시죠.”

이럴 땐 화제를 돌리는 것이 직빵.

쿵──

히스토리에가 눈치껏 널브러진 종이 무더기를 치운 자리에, 마침내 내 손에서 기묘하게 무거운 도시락 세트가 떠났다.

하나씩, 하나씩.

“김율. 혹시 장기라도 밀매한 겁니까? 이건 다 어디서 난 음식입니까?”

“오다가 주웠다.”

히스토리에의 표정에 미소가 5% 정도 감긴 걸 보니, 어지간히 배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도시락을 다 빼내고 나니.

“어……?”

밑바닥에,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시선에 잡혔다.

저, 저거, 설마.

“오, 오오……!”

베르투스 공작.

그는 신인가?

바닥에는.

제국 공용 은화가 무더기로 깔려있었고, 심지어 그 위에는 화룡점정까지 이쁘장하게 찍혀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 안녕? 나는 금괴야!

김유진 장군님의 심정이 바로 이런 심정이었던 것인가.

비록 내 상식선에 있는 일반적인 금괴에 비해서 조금 작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금괴는 금괴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떡 벌리고 있었던 순간.

“어? 골드바! 후후, 미천한 인간이 이 몸이 좋아하는 특식은 어떻게 알고 챙겨왔지? 잘 먹을게!”

“어, 어어──”

내 손에서.

금괴가 사르르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아삭!

들려서는 안 될 효과음이, 내 귀에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어어, 어, 어──”

“와, 역시 드래곤. 금을 통째로 씹어 드시는군요. 히스토리에, 오늘도 이세계의 상식이 늘었습니다.”

“움냥냐── 순금이넹!”

순, 금을 씹어먹는다고.

  • 안녕…… 나는 금괴였어…….

금괴가 내지르는 단말마가 내 귀에 아련하게 울렸다.

“흐아아아!”

밀려오는 절망감을 참지 못한 채, 나는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규를 내뱉고야 말았다.

이건.

지옥이다.

.

.

.

“그으, 으음, 골드 드래곤이 원래 금을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으음, 어쩔 수 없었어! 미천한 인간이 이해해줘야겠지?”

“말 걸지 마십쇼…….”

이해는 무슨 이해.

심지어 은화까지 깨작깨작 후식이랍시고 먹었잖아.

“김율. 쪼잔합니다.”

“방금 그 금괴면, 우리가 먹었던 만찬을 족히 네 달 동안 하루 네 시간씩 내내 즐길 수 있어.”

“에스쟝. 조속히 사과하십시오.”

“엣?”

영원한 동지는 없다고 했던가.

맛있는 요리를 우걱우걱 퍼먹은 히스토리에의 배신에, 못된 누렁이가 살짝 깨갱한 채 나를 슬며시 올려다보았다.

“읏, 으읏…….”

나와 히스토리에의 무언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서.

“잠시만 기다려……!”

누렁이가 갑자기 뿔과 꼬리를 뿅 뽑아냈다.

그리고.

“아그읏, 으읏……!”

자기 꼬리를 입으로 앙냥 문 채, 낑낑거리길 잠시.

“으갹!”

바보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무언가를 하나 꼬리에서 쏙 뽑아내며 바닥을 한 바퀴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힌 채.

“으우, 영광으로 알도록……! 미천한 인간이 위대한 골드 드래곤의 은총을 받는 건 처음일 테니까 말이야!”

애써 다시 뻔뻔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내게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금처럼 반짝이는 자그마한 보석이 하나.

“뭡니까?”

“내 비늘!”

“귀한 겁니까?”

누렁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멍청하다는 소리 많이 듣지?”

“긍정합니다. 김율은 다소 멍청해 보이는 구석이 있죠.”

“……아니거든?”

드래곤 비늘로 만든 경갑옷은 세계 제일의 성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정도의 쪼꼬미 비늘로는 갑옷은커녕 단검조차 만들 수 없어 보였다.

“아까 내가 먹은 골드바! 그게 수레만큼 쌓여 있다고 해도 내 비늘 하나의 값어치에 못 미친다는 말씀!”

“역시 위대하신 존재께서는 이리도 자비로우시군요. 미천한 인간이 감히 그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꺄르륵!”

기분이 좋아진 누렁이가 그 뒤로 구구절절 썰을 푸는 걸 잠자코 들어줬다.

가장 그럴싸한 기능은.

“꼭 쥐고, 마음속으로 이 위대하신 에스테아 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면, 내가 뾰로롱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존나게 쩌는 누렁이 버스터 콜이었다.

뭐, 쓸 일이 있기야 하겠냐마는.

그래…….

돈은 일해서 버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뇌물 혹은 불법 정치 자금에 가까운 돈이었으니, 살짝 찝찝하기도 했다.

진짜 ‘앞으로 재밌는 글 많이 써주시게’하고 덕담하려고 부른 건 아닐 거고, 분명히 모종의 의도가 숨어있을 듯했는데.

다행히 로젤린 방패로 잘 막아내서 노골적인 제안을 받진 않았지만, 이 금괴와 은화가 암시하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뭐.

이제는 누렁이가 다 먹어치웠으니, 양심의 가책을 남길 필요는 없겠지…….

크흑.


성국이 협조하리라는 희망에 부푼 베르투스 공작이 열심히 거사를 준비하고, 거행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진리일보! 소설 특집 월보가 나왔습니다! 화제작,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 무려 27편 연속 수록! 책 한 권 분량이요!”

“율리시스, 그는 신이야!”

“27편! 27편이라니!”

“거의 한 달 치 연재분 아닌가! 가져와! 다 가져와!”

에스테아가 와그작 금괴를 초콜릿처럼 씹어먹는 걸 보고 피눈물을 흘렸던 김율.

그리고 공작네 집밥의 퀄리티에 감동을 받음과 더불어 입맛을 제대로 조져버린 나머지, 이제 맛없는 빵을 쑤셔 넣을 수 없는 혓바닥으로 타락해버리고 말았기에.

그는, 결국 욕구를 참지 못하고 금단의 비술을 시전하고야 말았다.

이십칠연참二十七聯斬.

전개全開.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비축과,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기 위한 집념, 그리고 히스토리에의 충성스러운 보좌에 힘입어서 이룩한 쾌거.

그 전체 분량을 할애해서, 김율은 그간 어떻게 연출할까, 큰 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잡아나갈까 고민했었던 내용들을 담아냈다.

사비스 전투.

아바리쿰 공방전.

게르고비아 공방전.

빈게네 전투에 이어, 알레시아 전투까지.

드넓은 갈리아 전역을 단 7년 만에 모조리 휩쓸어버린 카이사르의 영웅적 업적과 더불어서.

그 마지막은──

Ā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기존 팬들 외에도, 일일 연재 시장에 과감하게 한 권치 분량을 통째로 풀어버리는 그 결단에.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은 그날 하루, 제국 수도를 지배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사람도, 이제야 처음부터 읽어보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 불씨가 완전히 타오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터였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소설, 내용으로, 내전을, 암시해……?”

베르투스 공작의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졌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