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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남친 행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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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너무 어이가 없으면 헛웃음도 안 나온다는 걸 오늘 막 새로 깨달았다. 그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숨을 후우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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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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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숨소리에 유나가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 허둥지둥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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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곧 있으면 설이잖아?! 그래서 명절맞이로 우리 언니가 집에 오기로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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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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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근데 언니가 걱정이 좀 많단 말이야. 이상한 나, 남자한테 홀리진 않았나 매일 물어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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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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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조, 좋은 남친 하나 있다고, 나 지금 행복하다고 거짓말을 쳐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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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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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나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몸을 움찔 떨었지만,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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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번에 내 남친 얼굴을 좀 보, 보고 싶대. 그래서 부탁 좀 하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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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 부탁할 다른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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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아는 남자는 너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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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답하니 이안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잠깐 침묵하며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술 사이에 대충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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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리 부담이 되는 부탁은 아니었다. 애인 행세? 잠깐 해주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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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제는 이안이 그런 행위에 상당히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 또한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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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고아라는 이유로 배척받았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일만 주구장창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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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런 게 끼어들 여유 따위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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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고백을 받지 못한 건 아니지만, 현생이 힘들어서 전부 거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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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배고픔에 허덕이며 연애질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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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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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의 난이도 자체는 뒤로 하고, 내용이 상당히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해주지 못할 건 없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들어주기엔 조금 낯간지러웠다. 최소한 오는 게 있어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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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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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 건지, 이안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번쩍 소리쳤다. 스르륵, 하는 이불 스치는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 사이로 스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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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들어주면 나, 나도 아무런 대가 없이 네 소원 하나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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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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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 부탁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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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불안함과 수치심, 그리고 결심이 묻어나왔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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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은 됐고, 나중에 의뢰 해결할 때 내가 부탁하면 동행하는 걸로 퉁 쳐. 대신 횟수는 두 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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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걸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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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의 금전적 보상이 있으면 더 좋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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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입금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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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니, 농담이었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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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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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100만 원이 입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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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환불 안 받을 거야. 준 만큼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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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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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미묘한 표정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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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애인 행세라니. 이거 완전 렌탈 남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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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아서, 이안은 사고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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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언니는 설 연휴 두 번째 날에 찾아오기로 했다. 이안과 유나는 그 전날에 미리 만나서 회의 아닌 회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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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리 언니는 성격이 나랑 완전 달라. 낯도 안 가리고, 되게 활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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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을 맞이한 작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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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온 직장인들로 붐비는 곳에서, 두 사람이 각자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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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한유나의 음료는 딸기요거트스무디였다. 그녀가 빨대를 휘젓자, 연분홍빛 액체가 유리컵 내부를 부드럽게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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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 인싸라고 부르는 타입의 인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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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은 정반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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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다고 말했잖아. 한 번 더 말할 필요는 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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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많은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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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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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나가 말끝을 흐리며 스무디를 쭉 빨아 먹었다.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지자 그녀의 얼굴도 살짝 부드럽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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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중요한 건 너랑 내가 완벽한 연인이라고 소, 속이는 거야. 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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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러려면 일단 연인다운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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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슬쩍 유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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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랑 스킨쉽 할 수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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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굳이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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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네 언니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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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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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손 정도는 잡아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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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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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나가 이안의 새하얀 손을 내려다보며 뺨을 붉혔다. 그와 손을 잡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낯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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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았다. 겉으론 세상 태평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은근히 속이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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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나가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다. ‘여성’이라는 성별보다 마법사라는 정체성이 더욱 크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아무런 친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었다면, 이안도 김율에게 그랬던 것처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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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쌓아나갈 예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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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비즈니스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게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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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유나를 응시했다. 음침한 얼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훌륭한 외모를 지닌 그녀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인식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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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제법 효과가 있었다. 외신의 마도서를 다루던 솜씨는 어디 가지 않는 건지, 이안은 이전보다 편안해진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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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연습이랍시고 미리 하진 말자. 그림이 너무 이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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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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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단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의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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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눈빛을 바꾸며 휴대폰 화면을 유나에게 보여주었다. 유나가 입술에 묻은 스무디를 핥으면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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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고위종 처리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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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의뢰는 흡혈귀 사냥꾼들이 아닌, 카르텔 측에서 주도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의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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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의 정보망에 의하면 현재 한반도로 숨어 들어온 고위 흡혈귀들의 수는 총 셋입니다. 그중 위치가 파악된 건 한 마리로, 경기도 외곽 작은 마을에 숨어 지내는 중입니다. 의태 한 모습은 평범한 소녀.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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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능력은 인계받은 내용에 따르면 독심술이라고 합니다. 정신 방벽이 견고하면 방어할 수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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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목표는 해당 흡혈귀를 생포, 또는 사살하는 것입니다. 사살했을 때, 시체는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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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생포 시 3억, 사체로 조달 시 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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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의뢰의 보수는 일행이 있으면 N분의 1로 나누어집니다.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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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긴 의뢰서를 읽은 유나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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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배, 뱀파이어 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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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최근 구울들이 기승을 부리는 거 너도 알잖아. 그 원인이 된 놈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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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어본 것 같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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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빨대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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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음…… 보수도 괜찮고, 다 좋네. 의뢰 난이도는 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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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고위 흡혈귀라는 걸 마주쳐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베테랑들이랑 같이 갈 생각이라 걱정한 것만큼 어렵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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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며 연락처를 슬쩍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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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와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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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트라는 첫 의뢰를 함께 했던 전문 사냥꾼들의 이름이 스크린 너머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밑에 체칠리아의 이름 또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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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 둘, 그리고 바티칸 수녀 하나랑 같이 갈 거다. 너랑 나까지 하면 총 다섯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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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무 많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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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돈 더 받겠다고 지랄하는 것보단 이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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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대답했다. 얼음이 반쯤 녹은 아메리카노를 들이켜자 한기가 신체 내부를 잠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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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부르면 와주겠지만, 혹시 사정이 있어서 못 올 수도 있어. 그땐 우리 둘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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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에에…… 배,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건 처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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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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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유나도 마지막 한 모금만 남은 스무디를 쭉 빨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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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정확히 언제 할지는 나도 몰라. 최소한 설이 끝났을 때, 그리고 다른 일이 없을 때 할 거야. 2월을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적당히 시간 빼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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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는 게 시간이라서…… 에헤헤……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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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불을 붉히면서 한 말에 이안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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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끝마친 뒤, 두 사람은 카페에서 나와 근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카페 후 식당이라는 기이한 절차를 밟기는 했지만, 어쨌든 음식은 적당히 맛있었고 배도 부르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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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여기서 헤어질까. 내일 어디로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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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을 결제하고 나오는 길. 이안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유나는 잠깐만, 이라고 말하며 언니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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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전 11시까지 카. 카페라는데. 시간 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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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문제없어. 주소만 보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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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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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녀의 대답을 뒤로하고 품에 넣어둔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한 개비 피우고 싶지만, 유나가 옆에 있어서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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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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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어. 어울려줘서 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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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나도 받은 게 많으니까.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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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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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녀의 빠른 태세 전환에 픽 웃음을 터트리며 발끝을 돌렸다. 그러곤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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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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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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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사를 나눈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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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하여 두 사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카페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비슷한 얼굴의 자매가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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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한유나였다. 안 하던 화장을 한 건지, 그녀의 얼굴은 어제 본 것에 비해 조금 더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맨얼굴로 다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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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한유나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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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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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기쁜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이안을 보고 유나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샐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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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 내 동생 능력도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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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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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짐작게 한다. 이안은 속으로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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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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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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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애드리브에 유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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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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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얌전하게 있던 재창조의 손길이, 이건 못 참겠다는 듯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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