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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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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남친 행세라니.

이안은 너무 어이가 없으면 헛웃음도 안 나온다는 걸 오늘 막 새로 깨달았다. 그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숨을 후우 뱉어냈다.

“아, 아앗!”

그 숨소리에 유나가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 허둥지둥 말을 덧붙였다.

“그, 그게! 곧 있으면 설이잖아?! 그래서 명절맞이로 우리 언니가 집에 오기로 했거든?!”

“…….”

“근, 근데 언니가 걱정이 좀 많단 말이야. 이상한 나, 남자한테 홀리진 않았나 매일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조, 좋은 남친 하나 있다고, 나 지금 행복하다고 거짓말을 쳐버렸어!”

“……하아.”

이안이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나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몸을 움찔 떨었지만,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가 이번에 내 남친 얼굴을 좀 보, 보고 싶대. 그래서 부탁 좀 하려구…….”

“……나 말고 부탁할 다른 사람은 없어?”

“내, 내가 아는 남자는 너뿐인데…….”

그렇게 대답하니 이안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잠깐 침묵하며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술 사이에 대충 끼워 넣었다.

솔직히 그리 부담이 되는 부탁은 아니었다. 애인 행세? 잠깐 해주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이안이 그런 행위에 상당히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 또한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고아라는 이유로 배척받았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일만 주구장창 해댔다.

연애? 그런 게 끼어들 여유 따위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고백을 받지 못한 건 아니지만, 현생이 힘들어서 전부 거절했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배고픔에 허덕이며 연애질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아무튼.

부탁의 난이도 자체는 뒤로 하고, 내용이 상당히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해주지 못할 건 없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들어주기엔 조금 낯간지러웠다. 최소한 오는 게 있어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했다.

“소, 소원!”

유나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 건지, 이안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번쩍 소리쳤다. 스르륵, 하는 이불 스치는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 사이로 스며 들었다.

“부탁 들어주면 나, 나도 아무런 대가 없이 네 소원 하나 들어줄게!”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뭐, 뭘 부탁할 건데?”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불안함과 수치심, 그리고 결심이 묻어나왔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소원은 됐고, 나중에 의뢰 해결할 때 내가 부탁하면 동행하는 걸로 퉁 쳐. 대신 횟수는 두 번으로.”

“그, 그걸로 괜찮아?”

“소정의 금전적 보상이 있으면 더 좋기는 해.”

“바로 입금할게!”

“뭐? 아니, 농담이었는ㅡ”

띠링.

이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100만 원이 입금되었다.

“화, 환불 안 받을 거야. 준 만큼은 해줘……!”

“…….”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미묘한 표정을 머금었다.

돈을 받고 애인 행세라니. 이거 완전 렌탈 남친 아닌가?

……더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아서, 이안은 사고를 그만뒀다.

유나의 언니는 설 연휴 두 번째 날에 찾아오기로 했다. 이안과 유나는 그 전날에 미리 만나서 회의 아닌 회의 시간을 가졌다.

“우, 우리 언니는 성격이 나랑 완전 달라. 낯도 안 가리고, 되게 활발해.”

점심시간을 맞이한 작은 카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온 직장인들로 붐비는 곳에서, 두 사람이 각자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한유나의 음료는 딸기요거트스무디였다. 그녀가 빨대를 휘젓자, 연분홍빛 액체가 유리컵 내부를 부드럽게 회전했다.

“흔히 이, 인싸라고 부르는 타입의 인간이지.”

“너랑은 정반대구나.”

“그, 그렇다고 말했잖아. 한 번 더 말할 필요는 없지 않아……?”

“의심은 많은 편인가?”

“적진 않을 걸…….”

한유나가 말끝을 흐리며 스무디를 쭉 빨아 먹었다.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지자 그녀의 얼굴도 살짝 부드럽게 풀렸다.

“아무튼, 중요한 건 너랑 내가 완벽한 연인이라고 소, 속이는 거야. 할 수 있겠어……?”

“근데 그러려면 일단 연인다운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안이 슬쩍 유나를 돌아보았다.

“너, 나랑 스킨쉽 할 수 있냐?”

“……구, 굳이 해야 하나……?”

“모르지. 네 언니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최소한 손 정도는 잡아야 할 것 같은데…….”

“흐에에…….”

한유나가 이안의 새하얀 손을 내려다보며 뺨을 붉혔다. 그와 손을 잡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낯이 뜨거워졌다.

이안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았다. 겉으론 세상 태평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은근히 속이 간지러웠다.

한유나가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다. ‘여성’이라는 성별보다 마법사라는 정체성이 더욱 크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아무런 친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었다면, 이안도 김율에게 그랬던 것처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쌓아나갈 예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대한 비즈니스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게 낫겠어.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유나를 응시했다. 음침한 얼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훌륭한 외모를 지닌 그녀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인식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행히 제법 효과가 있었다. 외신의 마도서를 다루던 솜씨는 어디 가지 않는 건지, 이안은 이전보다 편안해진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선행 연습이랍시고 미리 하진 말자. 그림이 너무 이상하니까.”

“으응…….”

“그럼, 일단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의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이안이 눈빛을 바꾸며 휴대폰 화면을 유나에게 보여주었다. 유나가 입술에 묻은 스무디를 핥으면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흡혈귀 고위종 처리 의뢰]

[해당 의뢰는 흡혈귀 사냥꾼들이 아닌, 카르텔 측에서 주도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의뢰입니다.]

[카르텔의 정보망에 의하면 현재 한반도로 숨어 들어온 고위 흡혈귀들의 수는 총 셋입니다. 그중 위치가 파악된 건 한 마리로, 경기도 외곽 작은 마을에 숨어 지내는 중입니다. 의태 한 모습은 평범한 소녀.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흡혈귀의 능력은 인계받은 내용에 따르면 독심술이라고 합니다. 정신 방벽이 견고하면 방어할 수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할 겁니다.]

[의뢰 목표는 해당 흡혈귀를 생포, 또는 사살하는 것입니다. 사살했을 때, 시체는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보수: 생포 시 3억, 사체로 조달 시 1억.]

[해당 의뢰의 보수는 일행이 있으면 N분의 1로 나누어집니다.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법 긴 의뢰서를 읽은 유나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흡혈귀? 배, 뱀파이어 말하는 거지?”

“맞아. 최근 구울들이 기승을 부리는 거 너도 알잖아. 그 원인이 된 놈들이야.”

“아, 들어본 것 같기는 해…….”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빨대를 만지작거렸다.

“으, 으음…… 보수도 괜찮고, 다 좋네. 의뢰 난이도는 어, 어때?”

“모르지. 고위 흡혈귀라는 걸 마주쳐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베테랑들이랑 같이 갈 생각이라 걱정한 것만큼 어렵지는 않을 거야.”

이안이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며 연락처를 슬쩍 확인했다.

알베르트와 벤자민.

뱀파이어 헌트라는 첫 의뢰를 함께 했던 전문 사냥꾼들의 이름이 스크린 너머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밑에 체칠리아의 이름 또한 새겨져 있다.

“뱀파이어 헌터 둘, 그리고 바티칸 수녀 하나랑 같이 갈 거다. 너랑 나까지 하면 총 다섯이군.”

“너,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괜히 돈 더 받겠다고 지랄하는 것보단 이게 나아.”

이안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대답했다. 얼음이 반쯤 녹은 아메리카노를 들이켜자 한기가 신체 내부를 잠깐 맴돌았다.

“그리고 뭐,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부르면 와주겠지만, 혹시 사정이 있어서 못 올 수도 있어. 그땐 우리 둘만 간다.”

“흐에에…… 배,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이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유나도 마지막 한 모금만 남은 스무디를 쭉 빨아 먹었다.

“의뢰를 정확히 언제 할지는 나도 몰라. 최소한 설이 끝났을 때, 그리고 다른 일이 없을 때 할 거야. 2월을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적당히 시간 빼놔.”

“나, 남는 게 시간이라서…… 에헤헤…… 걱정하지 마…….”

귓불을 붉히면서 한 말에 이안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기를 끝마친 뒤, 두 사람은 카페에서 나와 근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카페 후 식당이라는 기이한 절차를 밟기는 했지만, 어쨌든 음식은 적당히 맛있었고 배도 부르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헤어질까. 내일 어디로 가면 돼?”

밥값을 결제하고 나오는 길. 이안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유나는 잠깐만, 이라고 말하며 언니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 오전 11시까지 카. 카페라는데. 시간 괘, 괜찮아?”

“11시…… 문제없어. 주소만 보내놔.”

“으, 응!”

이안은 그녀의 대답을 뒤로하고 품에 넣어둔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한 개비 피우고 싶지만, 유나가 옆에 있어서 그만뒀다.

“내일 보자.”

“아, 알겠어. 어울려줘서 고, 고마워.”

“됐어. 나도 받은 게 많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 그럼 그럴게.”

이안은 그녀의 빠른 태세 전환에 픽 웃음을 터트리며 발끝을 돌렸다. 그러곤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먼저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

“응. 내, 내일 보자…….”

그렇게 인사를 나눈 다음 날.

이안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하여 두 사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카페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비슷한 얼굴의 자매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한유나였다. 안 하던 화장을 한 건지, 그녀의 얼굴은 어제 본 것에 비해 조금 더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맨얼굴로 다니는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한유나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아.”

제법 기쁜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이안을 보고 유나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샐쭉하게 웃었다.

“으흐흐, 내 동생 능력도 좋네.”

“어, 언니……!”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짐작게 한다. 이안은 속으로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싱긋 웃었다.

“아, 자기야.”

“……히야아악!”

이안의 애드리브에 유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우우우웅!!]

지금까지 얌전하게 있던 재창조의 손길이, 이건 못 참겠다는 듯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