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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울리는 발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이안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알 수 없는 꺼림칙함에 마도서를 강하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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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이안에게 타인의 기운을 완벽하게 감지하는 탐지 마법 같은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곰이나 호랑이를 보고 포식자라 느끼는 것 정도는 가능하듯이. 지금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게 평범한 괴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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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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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전멸이다. 감시자의 촉수는 여전히 계단 안을 헤집으며 괴이들을 도륙내고 있었으나, 거대한 무언가는 그딴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단을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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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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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괴이가, 최소 감시자와 필적할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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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차 찾으라고, 이 머저리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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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요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차장 경비를 채근했다. 그들도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무언가의 정체를 짐작한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알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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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가까운 방법. 공간에서 허락하지 않은 탈출.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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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으로 얻은 지식을 조합하여 현재 상황을 관조한다. 등을 콕콕 찌르는 압도적인 살기가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차분하게 머리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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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병원의 탈출 방법은 이런 식으로 경비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에게 퇴원 절차를 받고, 보호자와 환자가 한 그룹이 되어 정문으로 나가는 것이 정석적인 탈출 방법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 하는 짓거리는 오류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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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비가, 그 오류를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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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속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사실상 불순물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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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순물은 제거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바이러스 같은 것을, 굳이 가만히 놔둘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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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누가 불순물을, 바이러스를 제거하나? 백신? 면역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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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다. 그것들은 이미 의사나 간호사들이 대신하는 중이었다. 유용하지는 않더라도, 물량을 쏟아부어 불순물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유용할지언정 유효하지 않았고, 불순물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며 살아서 이곳을 떠나려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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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바이러스들을 죽이기 위해선 더욱 높은 명령권자. 백신을 사용하는 주인이자 세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다루는 신체의 주인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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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이 공간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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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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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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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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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중얼거리는 순간, 발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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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바로 위다. 무언가 꾸르륵, 하고 들끓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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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이 개새끼야아아! 빨리 차 찾으라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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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수가 진동하는 대지에 몸을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경비는 어버버거리다가, 돌연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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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습니다! 차 한 대랑 오토바이 2대! 맞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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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거 맞으니까 다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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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차량 번호 확인하겠습니다. 번호가 뭔지 아십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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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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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안이 놈의 미간에 총탄을 처박았다. 탄환은 정확히 괴이의 머리를 으깨버리고, 피와 뇌수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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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비의 시체가 바닥에 엎어졌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탄환에 순간 기겁했던 박희수가 이안을 돌아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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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시발…… 좀 조심해서 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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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빨리 가지. 저기 차량들이 소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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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주차장의 끄트머리에 돌연 생겨난 차들을 향해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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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승용차 한 대와 레플리카 형태의 바이크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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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차량으로 달려갔다. 관리국 요원들이 익숙하게 승용차에 탑승했고, 이안과 체칠리아가 각자 바이크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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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할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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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좋은 이동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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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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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능숙하게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이안도 꽂혀있는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고, 고정대를 푼 뒤 액셀을 밟았다. 클러치를 조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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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살벌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간 바이크. 이미 고등학생 때 면허를 따 두었기에 조작이 어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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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앞장서서 뻥 뚫린 주차장을 뚫고 나아가 피로 범벅이 된 출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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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가 이미 다 정리해 둔 덕분에 장애물은 없었다. 이안은 백미러로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을 흘깃 응시한 후, 속력을 올려 주차장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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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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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배기음을 터트리며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보인 광경은, 사방에 즐비한 시체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감시자가 전부였다. 수백, 수천의 촉수들이 여전히 병원 외벽을 꿰뚫은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여력이 남아있는지 촉수 몇 가닥이 중력을 따라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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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눈빛은 여전히 살벌했으나, 그 안에서 굶주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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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시발! 이 공간의 경계선까지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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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뒷좌석에 탄 박희수가 창문 너머로 상반신을 내밀며 산탄총을 난사했다. 이안도 감시자를 관찰하는 걸 그만두고 액셀을 당겼다. 체칠리아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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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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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꿈틀거릴 때마다 병원 안쪽에서 시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시독(屍毒)으로 인해 오염된 공기가 역겨운 냄새를 품었다. 맡고 있으면 비강이 통째로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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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괴이들이 이곳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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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감시자 하나 풀었다고 해서 괴담 하나를 통째로 뭉개버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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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다는 것은 대충 묘사를 보고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만약 이곳이 공간형 신비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정말 대참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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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현실에선 약한 놈들로만 뽑는 게 낮겠어. 도시에선 아예 쓰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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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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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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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의 출입구가 박살 나며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이안이 바이크와 같이 위태롭게 휘청거리다가, 이를 악물고 간신히 균형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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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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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 꽉 잡아,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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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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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요원들이 탑승한 차가 좌우로 드리프트하고, 체칠리아가 이안의 곁으로 다가와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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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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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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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고개를 뒤로 돌려 박살 난 주차장 출입구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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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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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건물. 그 속에서 길쭉한 뇌가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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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뇌’였다. 달린 거라고는 길쭉한 팔 4개와 꿈틀거리며 살짝 풀린 뇌 주름, 그리고 질질 흘러나오는 뇌수가 전부였다. 마치 심장처럼 박동하는 뇌 덩어리가 사방으로 투명한 액체를 흩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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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없으나 시신경이 있고, 귀가 없으나 청각피질이 있으니. 모든 오감을 아무런 중간 과정 없이 습득한 그것이 이안과 나머지 일행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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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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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팔이 마치 사족보행 하는 짐승처럼 바닥을 짚는다. 후두엽에 처박힌 새파란 명찰이 하늘의 붉은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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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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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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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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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예상대로 병원장이었다.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속력을 더욱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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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수는 속으로만 욕을 지껄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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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바아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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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두려우면서도 신난다는 표정으로 산탄총을 겨누며 크게 웃었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뇌가 펄펄 끓으며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뿜어댄 탓이었다. 그는 굳이 자신의 호르몬을 거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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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징그러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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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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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총이 불을 뿜으며 병원장의 대뇌피질을 공격한다. 하지만 총알은 뇌수에 닿는 순간, 작은 신생아처럼 변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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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응애! 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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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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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신생아를 병원장이 손으로 잡아채 으깨고, 그 피를 뇌에 쏟아부었다. 어처구니없는 자태에 여울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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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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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되니까 신비지! 우아아악, 가까워진다!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액셀만 밟아 신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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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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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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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도로를 타고 바이크 2대, 승용차 1대, 그리고 거대한 뇌가 달려간다. 이미 속력은 시속 140km를 넘었건만, 병원장은 무슨 시속 200km라도 되는 것처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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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몸뚱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속도. 김이서가 건케이스에 넣어온 저격총으로 대응하는 중이지만, 탄은 놈의 뇌수를 뚫지도 못하고 빗겨나가거나 신생아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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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안 먹히는 놈이라는 뜻이다. 아마 뇌의 형태라 정신 공격이 유효할 텐데, 작금의 일행에겐 정신 공격 수단이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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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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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대응 방법을 찾아 마도서를 찾던 그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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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어느새 하늘을 헤엄쳐 온 감시자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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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이 마치 ‘도와줘?’라고 묻는 것 같아서,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도서를 접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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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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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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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의 눈가가 호선으로 굽어졌다. 놈은 곧바로 몸을 휙 돌리더니, 억에 가까운 촉수들을 병원장에게 일제히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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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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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포탄처럼 쏟아진 촉수들이 병원장의 뇌수를 꿰뚫고, 사방으로 핏물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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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육편으로 변한 병원장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흩어지고, 감시자가 촉수에 달린 무수한 입으로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들, 그게 외신의 생물에게까지 통용되는 법칙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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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수는 사방으로 찢겨나간 병원장의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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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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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미친놈아! 관리국에서 그 말은 금지된 것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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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아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기겁하는 순간, 으깨졌던 뇌들이 다시 뭉쳐지며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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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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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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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이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두 쌍의 팔을 빠르게 휘두른다.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인 팔이 감시자의 모든 촉수를 붙잡고, 그대로 뜯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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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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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겨나간 촉수에서 새파란 피가 쏟아진다. 이미 피를 잔뜩 끼얹은 이안의 머리가 푸른색으로 물들고, 감시자가 촉수를 재생하며 그물 같은 형태를 만들어 바닥을 내리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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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이 그물 모양으로 잘게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진다. 그러곤 풀린 뇌 주름을 작살처럼 사용해 감시자의 몸뚱이를 꿰뚫고, 망치로 내리치듯이 바닥으로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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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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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깨진 감시자의 몸에서 푸른 피가 폭탄처럼 터졌다. 이안이 그 피를 뒤집어쓰고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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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 외해의 생물과 싸움이 성립하는 괴이가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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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압도당하거나 무력하게 지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투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무적인 줄 알았던 존재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충격이 뇌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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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감시자가 약한 게 아니야. 병원장이 이상할 정도로 강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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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공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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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감시자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생물을 소환했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도로를 달리고 있지는 못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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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수록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안은 입에 살짝 들어온 피를 뱉어내고, 다시 재생하고 싸우기 시작한 감시자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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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지금 이 기회를 굳이 놓칠 필요는 없었다. 이안은 몸을 낮추고, 액셀을 풀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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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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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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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그와 똑같은 자세로 도로를 내달린다. 귀가 멀어버릴 정도의 바람 소리와 배기음, 덜덜 떨리는 엔진의 진동이 심장을 따라 요동친다. 이안은 얼굴에 묻은 피를 왼손으로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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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던 박희수는 치고받고 싸우는 두 괴물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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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괴물 대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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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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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이 풀악셀을 밟으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여울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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