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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체칠리아를 배려해서 하나하나 육성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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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약 네가 환자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보호자로서 환자 한 명을 대동하여 의사와 면담하여 퇴원 절차를 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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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호자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 그리고 2명이 부부 혹은 형제자매로서 행동할 것. 단 동성애는 안 된다. 병동으로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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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당 병원의 화장실은 사용해선 안 된다. 굳이 궁금해하지 마라. 한 가지 알려주자면, 거기 들어간 내 팀원 5명이 그대로 효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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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상구는 비상구가 아니다. 온몸이 불타는 환자 한 명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비상구로 들어온 대상을 추적하고 죽여버린다. 들어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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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가 마주친 의사는 총 4명이다. 외과의사와 내과의사, 그리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이들은 각자 모습을 드러내는 조건이 다르며 확실하게 알아낸 조건은 외과와 내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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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외과의사는 중상 수준 이상의 외상을 입었을 때 나타난다. 이때 환자 취급을 당하는데, 거부하면 그대로 납치되어 수술실로 올라간다. 만약 외과의사를 마주쳤다면, 부디 자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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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과의사는 병원에 있는 어떠한 음식물, 예를 들어 수돗물이나 편의점 도시락 등을 먹었을 때 나타난다. 위장에 병이 생겼으니, 그 자리에서 진찰하자며 배를 가르고 장기를 다 끄집어낸다. 이때는 자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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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이야기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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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 계속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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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간호사가 건네준 음식과 물은 철저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먹어도 상관없다. 단, 보호자의 신분일 때 그들이 환자들에게 준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식판에 올라가는 건 그 보호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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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럼 보호자는 어디서 식량을 얻느냐? 못 얻는다. 어떻게든 버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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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병원에는 비상구를 제외하면 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라. 하지만 연속으로 사용하면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필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해당 층을 탐사한 후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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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는 절대 사용하지 마라. 그대로 붙잡혀서 강제로 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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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우리가 알아낸 정보들이다. 난 곧 죽는다. 만약 병상에 박상철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면, 부디 명복을 빌어주길 바란다. 제정신이 아닌 환자들에게 말을 걸면 안 되기에, 보호자 신분으로 아직 멀쩡한 환자를 찾아 이곳을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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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만세. 인류를 위하여. 고결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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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서는 거기서 끊어졌다. 이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책자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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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관리국이 왔다가 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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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쪽에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략에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규칙서만 하나 남겼을 뿐, 그 이상으로 어떤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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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기는 했다. 이안은 속으로 박상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다른 책자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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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타인의 손을 거친 게 아닌, 병원에 원래부터 있던 안내서였다. 체칠리아가 그의 옆으로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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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읽을 수 있어. 이탈리아어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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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가 쓴 거라 그런가 보군. 그럼 이번에는 각자 속으로 읽지. 나도 목에 화상을 입어서 계속 말하는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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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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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지 않고 까딱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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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타지만 않았어도 한 개비 피우는 건데, 아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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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위에 마도서를 내려놓고, 리볼버의 실린더를 돌리며 책자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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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종합병원은 모두에게 안전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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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개소리가 튀어나왔다. 체칠리아가 헛웃음을 터트리고, 이안이 눈동자를 싸늘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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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은 모든 환자분들을 정성껏 돌보고 관리합니다. 누구 하나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실력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영원히 생명을 유지 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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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래 주의 사항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는 저희도 환자분들의 책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니 숙지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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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들은 절대 저희 의료인들의 지시 없이 병실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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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필요한 환자분들은 수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시, 강압적인 수단을 시도해야만 하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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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환자끼리 싸우는 경우, 양쪽 모두 제지가 가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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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병동은 관계자 외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호기심으로라도 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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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의사의 말은 절대적입니다. 거스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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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은 의사의 전문적인 견해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또는 보호자 분이 찾아와서 의사를 설득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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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거르지 마십시오. 내과의사가 진단했을 때 위에 음식물이 없다면, 강제로 개복하여 음식물을 주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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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병원의 모든 수술에는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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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병원에 찾아오는 보호자 분들은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환자의 퇴원을 희망해도, 의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퇴원 신청은 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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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병원에는 비상구를 제외하면 계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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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규칙들을 나열하자면 이걸로 끝이었다. 나머지는 자잘한 것들이 전부다. 복도에서 뛰지 말기, 간호사나 의사에게 진상부리지 말기 등. 일단 병원에서 상식적으로 지킬 것들만 지키면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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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의사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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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환자를 찾아도, 의사가 퇴원 불가능 판정을 내리면 결국 나가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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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처구니가 없는 곳이었다. 이안은 혀를 쯧 차며 체칠리아에게 책자를 건네주었다. 이안보다 읽는 속도가 느렸던 그녀는 책자를 받아 조금 더 읽어보고 그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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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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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병실을 둘러봐야지. 멀쩡한 환자를 찾는 게 우선이야. 의사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한들, 환자가 있어야 뭘 할 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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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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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병실은 6층부터 66층까지라고 적혀 있어. 다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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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환자를 찾을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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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어깨를 풀며 마도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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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준비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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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체칠리아의 대답을 듣지 않고, 코트를 벗어 차가운 바닥에 고이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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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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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의 단검을 빌려 손가락에 피를 살짝 내고, 코트 안쪽에 마법진을 그렸다. 중상 수준 이상의 외상을 입어야만 외과의사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문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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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을 완성하고, 대충 피를 옷에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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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가방에 넣어온 귀신의 영체 하나를 마법진 위에 놓아두고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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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신의 대리자여. 삿된 것들의 악을 막아내고, 신의 뜻을 설파하라. 그대는 이계의 동반자이자 전달자이며 눈이자 검이며 방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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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즈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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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가 마법진 속으로 녹아 스며든다. 핏빛의 마법진은 순간 검은색으로 변했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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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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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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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이 사라지는 모습은 얼핏 보기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법은 제대로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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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 들어오면, 코트가 순간 물처럼 변해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방어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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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이기도 하고, 무효가 아니라 흡수와 분산이라 완전한 절대 방어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밤을 새우며 마도서들의 마법을 탐구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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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코트를 다시 걸치며 체칠리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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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면 네 옷에도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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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마법사의 마법을 받는 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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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안은 굳이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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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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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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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리볼버를, 다른 손에 마도서를 쥐고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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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권총과 단검을 쥐고 선두에 섰다. 두 사람은 텅 빈 로비와 복도를 지나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던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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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요원이 남긴 안내문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는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연속으로 층을 이동하는 건 불가능. 필시 도착한 층을 탐사하고 다시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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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규칙이지만,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체칠리아는 이안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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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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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무언가 빠르게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위에 적힌 숫자가 빠르게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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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 5초 정도 후, 66이라는 숫자가 1로 바뀌고 엘리베이터 문이 덜컹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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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천장에 손이 달려 있지 않은 엘리베이터였다. 체칠리아는 먼저 엘리베이터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이안을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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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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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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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담배를 까딱거리며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리는 게 점점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탈출하면 곧바로 병원부터 가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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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콜록…… 6층부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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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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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6이라 적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6층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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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열어야 열리는 구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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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습관처럼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 손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체칠리아가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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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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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직은 버틸만해. 환자로 인식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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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아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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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가 없으니, 아마 나타난다면 내과의사가 나타날 거다. 들키는 순간, 목을 뜯어내려고 할 거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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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더 잘 지켜줘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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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침울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안은 잠깐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쓴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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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내 머리가 터졌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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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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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다시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이안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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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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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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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대답과 동시에 체칠리아가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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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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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철제문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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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눈에 들어온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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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복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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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병원의 입원실들이 나열된 복도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삑삑거리는 소음이 어디선가 울려 퍼졌고, 짙은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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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쓰라린 목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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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탐색만 하고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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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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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오랜 시간 6층에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아직 위로 60층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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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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