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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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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안은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체칠리아를 배려해서 하나하나 육성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2. 만약 네가 환자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보호자로서 환자 한 명을 대동하여 의사와 면담하여 퇴원 절차를 밟는 것이다.]

[3. 보호자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최소 2명 이상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 그리고 2명이 부부 혹은 형제자매로서 행동할 것. 단 동성애는 안 된다. 병동으로 끌려간다.]

[4. 해당 병원의 화장실은 사용해선 안 된다. 굳이 궁금해하지 마라. 한 가지 알려주자면, 거기 들어간 내 팀원 5명이 그대로 효수당했다.]

[5. 비상구는 비상구가 아니다. 온몸이 불타는 환자 한 명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비상구로 들어온 대상을 추적하고 죽여버린다. 들어가지 마라.]

[6. 우리가 마주친 의사는 총 4명이다. 외과의사와 내과의사, 그리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이들은 각자 모습을 드러내는 조건이 다르며 확실하게 알아낸 조건은 외과와 내과뿐이다.]

[7. 외과의사는 중상 수준 이상의 외상을 입었을 때 나타난다. 이때 환자 취급을 당하는데, 거부하면 그대로 납치되어 수술실로 올라간다. 만약 외과의사를 마주쳤다면, 부디 자살하길 바란다.]

[8. 내과의사는 병원에 있는 어떠한 음식물, 예를 들어 수돗물이나 편의점 도시락 등을 먹었을 때 나타난다. 위장에 병이 생겼으니, 그 자리에서 진찰하자며 배를 가르고 장기를 다 끄집어낸다. 이때는 자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죽는다.]

“……죽는다는 이야기밖에 없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 계속 읽어보자.”

[9. 간호사가 건네준 음식과 물은 철저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먹어도 상관없다. 단, 보호자의 신분일 때 그들이 환자들에게 준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식판에 올라가는 건 그 보호자일 것이다.]

[10. 그럼 보호자는 어디서 식량을 얻느냐? 못 얻는다. 어떻게든 버텨라.]

[11. 병원에는 비상구를 제외하면 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라. 하지만 연속으로 사용하면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필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해당 층을 탐사한 후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라.]

[12. 3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는 절대 사용하지 마라. 그대로 붙잡혀서 강제로 환자가 된다.]

[이상 우리가 알아낸 정보들이다. 난 곧 죽는다. 만약 병상에 박상철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면, 부디 명복을 빌어주길 바란다. 제정신이 아닌 환자들에게 말을 걸면 안 되기에, 보호자 신분으로 아직 멀쩡한 환자를 찾아 이곳을 나가길 바란다.]

[관리국 만세. 인류를 위하여. 고결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안내서는 거기서 끊어졌다. 이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책자를 접었다.

“이미 관리국이 왔다가 갔었네.”

다행히 그쪽에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략에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규칙서만 하나 남겼을 뿐, 그 이상으로 어떤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기는 했다. 이안은 속으로 박상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다른 책자를 펼쳤다.

이번에는 타인의 손을 거친 게 아닌, 병원에 원래부터 있던 안내서였다. 체칠리아가 그의 옆으로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이건 읽을 수 있어. 이탈리아어로 보여.”

“신비가 쓴 거라 그런가 보군. 그럼 이번에는 각자 속으로 읽지. 나도 목에 화상을 입어서 계속 말하는 건 힘들다.”

“응.”

체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지 않고 까딱거리기만 했다.

목이 타지만 않았어도 한 개비 피우는 건데, 아쉽게 되었다.

무릎 위에 마도서를 내려놓고, 리볼버의 실린더를 돌리며 책자를 내려다본다.

[요한종합병원은 모두에게 안전한 장소입니다!]

첫 장부터 개소리가 튀어나왔다. 체칠리아가 헛웃음을 터트리고, 이안이 눈동자를 싸늘하게 굳혔다.

[우리 병원은 모든 환자분들을 정성껏 돌보고 관리합니다. 누구 하나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실력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영원히 생명을 유지 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해 주세요!]

[하지만 아래 주의 사항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는 저희도 환자분들의 책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니 숙지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환자분들은 절대 저희 의료인들의 지시 없이 병실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분들은 수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시, 강압적인 수단을 시도해야만 하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환자끼리 싸우는 경우, 양쪽 모두 제지가 가해질 것입니다.]

[정신 병동은 관계자 외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호기심으로라도 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간호사와 의사의 말은 절대적입니다. 거스르지 마세요.]

[퇴원은 의사의 전문적인 견해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또는 보호자 분이 찾아와서 의사를 설득시켜야 합니다.]

[식사를 거르지 마십시오. 내과의사가 진단했을 때 위에 음식물이 없다면, 강제로 개복하여 음식물을 주입할 것입니다.]

[본 병원의 모든 수술에는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본 병원에 찾아오는 보호자 분들은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환자의 퇴원을 희망해도, 의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퇴원 신청은 거부됩니다.]

[본 병원에는 비상구를 제외하면 계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세요.]

중요한 규칙들을 나열하자면 이걸로 끝이었다. 나머지는 자잘한 것들이 전부다. 복도에서 뛰지 말기, 간호사나 의사에게 진상부리지 말기 등. 일단 병원에서 상식적으로 지킬 것들만 지키면 문제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판단이었다.

‘멀쩡한 환자를 찾아도, 의사가 퇴원 불가능 판정을 내리면 결국 나가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참 어처구니가 없는 곳이었다. 이안은 혀를 쯧 차며 체칠리아에게 책자를 건네주었다. 이안보다 읽는 속도가 느렸던 그녀는 책자를 받아 조금 더 읽어보고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병실을 둘러봐야지. 멀쩡한 환자를 찾는 게 우선이야. 의사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한들, 환자가 있어야 뭘 할 수라도 있다.”

체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병실은 6층부터 66층까지라고 적혀 있어. 다 가야 해?”

“멀쩡한 환자를 찾을 때까지는.”

이안이 어깨를 풀며 마도서를 펼쳤다.

“그전에 준비 좀 하지.”

그는 체칠리아의 대답을 듣지 않고, 코트를 벗어 차가운 바닥에 고이 펼쳤다.

꾸욱…….

체칠리아의 단검을 빌려 손가락에 피를 살짝 내고, 코트 안쪽에 마법진을 그렸다. 중상 수준 이상의 외상을 입어야만 외과의사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문제 없었다.

마법진을 완성하고, 대충 피를 옷에 닦아낸다.

그러고 나서 가방에 넣어온 귀신의 영체 하나를 마법진 위에 놓아두고 주문을 외운다.

“그대 신의 대리자여. 삿된 것들의 악을 막아내고, 신의 뜻을 설파하라. 그대는 이계의 동반자이자 전달자이며 눈이자 검이며 방패라.”

츠즈즉.

구체가 마법진 속으로 녹아 스며든다. 핏빛의 마법진은 순간 검은색으로 변했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실패한 거야?”

“아니, 성공이다.”

마법진이 사라지는 모습은 얼핏 보기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법은 제대로 발동했다.

외부에서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 들어오면, 코트가 순간 물처럼 변해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방어 마법.

일회용이기도 하고, 무효가 아니라 흡수와 분산이라 완전한 절대 방어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밤을 새우며 마도서들의 마법을 탐구한 보람이 있었다.

이안은 코트를 다시 걸치며 체칠리아를 돌아보았다.

“원하면 네 옷에도 해줄 수 있다.”

“……괜찮아. 마법사의 마법을 받는 건 무서워.”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안은 굳이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자.”

“응.”

한 손에 리볼버를, 다른 손에 마도서를 쥐고 발걸음을 옮긴다.

체칠리아가 권총과 단검을 쥐고 선두에 섰다. 두 사람은 텅 빈 로비와 복도를 지나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던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관리국 요원이 남긴 안내문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는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연속으로 층을 이동하는 건 불가능. 필시 도착한 층을 탐사하고 다시 이동해야 한다.

까다로운 규칙이지만,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체칠리아는 이안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다.

쿠구구구!!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무언가 빠르게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위에 적힌 숫자가 빠르게 변화했다.

체감상 5초 정도 후, 66이라는 숫자가 1로 바뀌고 엘리베이터 문이 덜컹 열렸다.

이번에는 천장에 손이 달려 있지 않은 엘리베이터였다. 체칠리아는 먼저 엘리베이터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이안을 향해 손짓했다.

“뭐 없어.”

“후우…….”

이안은 담배를 까딱거리며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리는 게 점점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탈출하면 곧바로 병원부터 가야 할 듯싶다.

“콜록, 콜록…… 6층부터 가자.”

“응.”

체칠리아가 6이라 적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문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6층에 도착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열어야 열리는 구조인 모양이다.

이안은 습관처럼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 손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체칠리아가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파?”

“조금. 아직은 버틸만해. 환자로 인식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가 없으니, 아마 나타난다면 내과의사가 나타날 거다. 들키는 순간, 목을 뜯어내려고 할 거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안전하다.”

“……미안. 더 잘 지켜줘야 했는데.”

체칠리아가 침울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안은 잠깐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쓴웃음을 터트렸다.

“됐어. 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내 머리가 터졌을 테니까.”

“……그럼, 다행이고.”

체칠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다시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이안을 돌아보았다.

“문, 연다?”

“그래.”

이안의 대답과 동시에 체칠리아가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굳게 닫힌 철제문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광경.

“……평범한 복도군.”

흔히 병원의 입원실들이 나열된 복도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삑삑거리는 소음이 어디선가 울려 퍼졌고, 짙은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했다.

이안은 쓰라린 목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빠르게 탐색만 하고 올라가자.”

“응.”

굳이 오랜 시간 6층에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아직 위로 60층이나 있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