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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장고가 마법사 갤러리에 올린 게시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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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번 주에 연구소 방문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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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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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조만간 해외 학회에 참석할 일이 있어 한 달간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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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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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걸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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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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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언젠가 한번 찾아가겠다고 말은 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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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빠르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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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마법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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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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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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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2층에서 만났던 궁정마법사 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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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력 운용 방식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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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정부 산하 연구소 소속의 엘리트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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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만남의 목적인 아이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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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시, 어떤 아이템이던지 상관없이 내게 준다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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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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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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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잘 보고 있어야 된다? 함부로 문 열어주지 말고. 특히 옆집 아저씨 오면 그냥 무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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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호기에게 몇 번이나 경고를 한 뒤에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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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가 활짝 웃으며 팔을 연신 흔드는 것이 어째 불안했지만, 큰 문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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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목숨도 10개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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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곳까지 이동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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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탈 것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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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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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름에 손가락에 감겨 있던 반지가 스르르 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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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난 지렁이가 내 앞에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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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숙하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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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요즘 너무 힘을 많이 쓴 것 같다고 투덜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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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샌드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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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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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마력 충전한다고 내 몸에 24시간 붙어있으면서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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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마력은 최소한의 유지 비용일 뿐,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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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도 먹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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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과자만 먹고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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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더 많은 공물을 바쳐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예를 들면 정령의 정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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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알았어. 그치만 구해도 안 나오는 걸 어떡해? 일단 서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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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한동안은 유급 휴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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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 수고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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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의 몸이 작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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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다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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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목적지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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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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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건 죄다 서울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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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방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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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불만을 터뜨리며 이동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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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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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을 고속으로 이동하는 익숙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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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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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가만히 있자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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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좀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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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의 몸 안에서, 굵은 촉수 한 줄기가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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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촉수에 팔 한쪽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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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의 감각 일부가, 내 신경과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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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내 눈앞에 새로운 시야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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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심했고, 흑백에 불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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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형태는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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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바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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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열차의 창밖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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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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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풍경을 구경하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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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지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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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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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충격과 함께, 샌드웜과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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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무시한 채 공중으로 솟구치는 흙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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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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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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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울렁거리며 멀미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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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여기 안에서는 제대로 대처를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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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샌드웜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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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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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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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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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태세를 갖춘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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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있나? 단단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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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 김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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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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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폼을 잡은 채, 무거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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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것도 버틸 수 있나 볼까. 풍둔, 나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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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샌드웜의 입에서 나온 나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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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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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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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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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비장한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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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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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이내 몸을 돌려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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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의 명성에 걸맞은, 눈으로 좇기조차 힘든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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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점처럼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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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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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침에 김수호가 하늘 위에서 급정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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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아주 느린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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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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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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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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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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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수호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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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격 때문에 엉망이 된 옷을 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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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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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귓가가 여전히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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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뒤, 결국 침묵을 깬 것은 김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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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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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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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대답에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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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필사적으로 대화 주제를 찾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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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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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적당한 질문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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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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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어디 가던 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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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서울에요. 냉장고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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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갤에서 그런 말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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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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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이 내 손가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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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거대한 모래 벌레였던 샌드웜이 어느새 반지 형태로 돌아와 내 손가락에 얌전히 감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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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번에도 이렇게 땅속으로 이동한 거야? 그때는 아무런 경보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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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이건 저번에 새로 얻은 레인보우 등급 스킬 소환수인데…. 꽤 유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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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자신은 더욱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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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김수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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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인 그에게도 레인보우 등급 스킬은 흥미로운 주제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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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손가락에 감긴 반지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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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부터 이걸 타고 왔다고?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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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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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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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 씨는 제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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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김수호가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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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 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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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내 호칭이 무척이나 우스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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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외모를 한 내가 어른처럼 ‘씨’를 붙여 부르는 게 어색하게 들렸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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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가 ‘씨’가 뭐야? 참나,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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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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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오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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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렇게 끔찍한 어감의 단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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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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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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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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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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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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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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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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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저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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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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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나도 저 나이에 아저씨라고 들으면 충격이 올 것 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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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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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라는 말은 진짜 입에 안 붙어서요. 너무 어색해서 못하겠어요. 토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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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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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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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멘탈의 데미지를 수습하는 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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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마음대로 불러. 아저씨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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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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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오빠라는 끔찍한 단어는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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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다시 헛기침을 하며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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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떻게 나를 찾아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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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 정확하게 알았냐고 했지? 그건 수도권 전역에 감지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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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 시스템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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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북한 쪽에서 몬스터들이 땅굴을 파고 넘어온 일이 있었거든…. 그때 이후로, 수도 방어 목적으로 철저하게 구축해 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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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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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감지 시스템과 마법 공학을 복잡하게 엮어서 만든 최첨단 방어 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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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진동이 감시되면 자신에게 긴급 연락이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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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위치를 특정하고 나서는, 김수호에게도 있는 개안 스킬을 통해 쉽게 내 위치를 찾아냈던 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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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자세한 원리는 나도 잘 몰라.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 이것도 미래 씨가 만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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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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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 친구가 원래 그런 쪽 천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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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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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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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해야 해. 이번엔 내가 힘 조절을 해서 다행이지, 만약에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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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로서, 김수호는 자신의 힘이 가진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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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수로 너를 죽였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일 거야. 나한테 그런 경험을 안겨주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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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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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내가 죽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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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동 방벽이 먼저 반응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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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방벽이 뚫렸다고 해도, 지금 내 신체 내구도는 어지간한 몬스터보다 훨씬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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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면 상처 하나 없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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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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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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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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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어린애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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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걱정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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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왜 이런 걱정을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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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순순한 사과에 김수호는 꽤 놀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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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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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가 변명을 하거나, 혹은 어린애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라고 예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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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김수호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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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면 됐어. 이번엔 꿀밤 한 대로 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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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손가락을 들어 내 이마를 향해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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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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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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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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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이 무언가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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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마 바로 앞에서 모래가 나타나 그의 딱밤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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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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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미간에 장난스러운 심술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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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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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짐짓 화난 척, 낮은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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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쉴드 꺼. 한 대 때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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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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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지 못하고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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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다시 한번 내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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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실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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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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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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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확하게 명중한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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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했던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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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딱밤을 때린 김수호가 자신의 손가락을 붙잡고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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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내 손이 더 아프네. 어떻게 돼먹은 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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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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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는 황당함과 신기함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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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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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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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고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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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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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을 보니 더욱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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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참지 못하고 동시에 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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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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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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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가빠오고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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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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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 역시 배를 잡고 있던 손을 내리고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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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진짜, 너 때문에 오늘 하루치 웃음은 다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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