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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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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갤러리를 보며 사다리의 반응을 즐겼더니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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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도파민을 쥐어짜 낸 후유증인지, 몰려오는 탈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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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늦잠을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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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발치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초호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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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또 깨우면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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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쑤시개로 내 잠을 깨운다면 홧김에 모래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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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비인간이라고는 해도, 그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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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녀석을 얌전히 묶어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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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방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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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흙으로, 먼지는 먼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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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뽀얗게 쌓인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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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이미 말라죽은 지 오래인 식물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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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 녀석한테도 이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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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화분 안의 흙 속에 반쯤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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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는 잠시 바둥거렸지만, 이내 의외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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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같은 땅속성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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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모래 침대를 만들어주면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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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점점 애완동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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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서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침대에 누워 꿀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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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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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감각에 눈을 살며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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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 녀석, 설마 탈출한 건가? 끈질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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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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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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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평소보다 상쾌하고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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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깊은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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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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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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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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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탑 안에서 잠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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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마치 아마존 밀림의 한가운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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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뚫을 것 마냥 거대해져 있는, 말라죽었던 관상용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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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먹다 남긴 포도 꼭지에서 자라난 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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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천장이 온통 무성한 덩굴과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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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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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속에 얌전히 꽂혀 있던 모래 분신 초호기도, 그리고 나 자신도 평소보다 힘이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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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 녀석은 화분 속에서 꿈틀거리며, 마치 기지개라도 켜는 것처럼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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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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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원인을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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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이 모든 혼돈의 중심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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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던져두었던 세계수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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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이제 살아있는 심장처럼 미세하게 박동하며, 주변의 모든 식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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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뿜어져 나온 은은한 푸른빛이 방 안을 신비롭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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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환장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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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착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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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인증샷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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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항상 인증샷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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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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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 안을 채운 덩굴 때문에 갤질을 할 컴퓨터도 쓸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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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물을 치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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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만들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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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생명체. 풍화를 쓰기에는 마나가 많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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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몬스터처럼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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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덩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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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 스킬을 사용해 모래로 되돌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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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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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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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덩굴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내 뺨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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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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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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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한 뺨을 감싸 쥐고 덩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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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덩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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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안으로 자세히 보니, 덩굴의 힘은 씨앗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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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씨앗은 자신이 만들어낸 작은 생물을 지키려는 듯, 거세게 박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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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모든 식물이 일제히 나를 향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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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이딴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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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당장 탑을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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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고 소중한 방이 터져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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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빨리 이 정체 모를 물건을 빨리 20층에 던져버리고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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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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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층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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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깨에 멘 가방의 무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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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수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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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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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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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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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힘을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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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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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반경 1미터 남짓한 땅만 건조한 모래밭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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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분신들을 만들고, 내 몸을 지킬 모래 방벽을 유지할 최소한의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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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 확보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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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호기와, 초호기를 호위할 분신 하나를 만들어 앞으로 보낸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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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꺼냈다.
 
​
 
이제는 들고 다니기도 힘든 크기의 씨앗.
 
​
 
나는 모래를 사용, 씨앗을 공중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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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씨앗은 심장처럼 미세하게 박동하며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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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독기를 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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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찰안을 사용해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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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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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정화하는 것은 공기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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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있는 독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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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뻗어 나온 푸른 마력의 실타래가 주변 식물의 뿌리까지 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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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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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늪과 정글 전체가 독기에 잠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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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공기 중에 독이 퍼져있는 수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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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식물, 이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병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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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막화로 대충 밀어버려서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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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안으로 본 세상은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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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이 넘쳐 보여야 할 식물들은 독기에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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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내뿜는 늪과 수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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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씨앗의 정화가 닿은 곳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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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운이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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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었던 잎사귀가 생기를 되찾고, 축 늘어졌던 줄기가 다시 꼿꼿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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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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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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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찰을 나갔던 초호기, 그리고 호위로 붙인 모래 분신이 내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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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은 내 앞에 리자드맨의 시체를 툭 던져놓고는, 강아지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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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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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칭찬이라도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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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끄덕이는 초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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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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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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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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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
 
리자드맨의 시체.
 
​
 
그 뒤통수 한가운데에 가느다란 화살 한 발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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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분신이 쏜 것이 아니었다.
 
​
 
내 분신들은 모래로 만든 투박한 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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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거 너희가 잡은 거 아니잖아.”
 
​
 
​
 
내 추궁에 눈을 피하는 초호기.
 
​
 
그래, 좋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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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지능이 올라갔다는 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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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리자드맨의 시체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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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다크엘프의 화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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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층에서 나를 기습했던 바로 그 화살.
 
​
 
잊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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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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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 오사인가?
 
​
 
​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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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은 정확히 뒤통수 정중앙을 꿰뚫는 위치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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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깔끔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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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명백한 사냥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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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끼리 싸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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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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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시체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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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탑을 오르며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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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모든 몬스터는 나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
 
그들 사이에 어떤 분쟁이나 협력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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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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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평소처럼 사막화로 이 일대를 전부 밀어버렸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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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이한 리자드맨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모래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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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이 기묘한 현상을 영원히 모른 채 지나쳤을 터였고.
 
​
 
​
 
“이거… 역시 그냥 밀어버리면 안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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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번 층은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공략해야 했다.
 
​
 
나는 초호기를 다시 작은 상태로 되돌려 내 머리 위에 얹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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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화는 여전히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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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를 다른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
 
​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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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 곳곳에 비슷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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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의 화살에 맞아 죽은 리자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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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리자드맨의 창에 가슴이 꿰뚫린 다크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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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 죽고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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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글은 두 종족 간의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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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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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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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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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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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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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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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등을 노리고 날아온 단검이 투명한 모래 방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해낸 모래 방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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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도 없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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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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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이 풀린 것을 깨달은 다크엘프가 급히 몸을 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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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놈을 향해 모래 탄환 몇 발을 가볍게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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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쓰러지는 다크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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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끼리 싸운다고 나랑 편먹는 건 아닌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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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는 공공의 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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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러진 다크엘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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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다크엘프들과 달리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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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화려한 갑옷과 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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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목에 걸린 작은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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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은실로 수놓아진 주머니.
 
혹시 모른다.
 
​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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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놈의 품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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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
 
​
 
대놓고 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목에 걸고 있는 주머니.
 
​
 
나는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
 
손에 잡히는 것은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의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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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보니 작은 펜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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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나뭇잎 하나가 유리병 안에 담겨있는 물건.
 
​
 
겉으로 보기엔 조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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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템 정보창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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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메마른 잎사귀]
 
​
 
[등급: 레어]
 
​
 
[성장형 아이템]
 
​
 
[체력과 마나 회복 소폭 상승.]
 
​
 
[마력 스탯 + 1]
 
​
 
[길잡이 : 잊혀진 동족의 흔적에 공명합니다.]
 
​
 
​
 
“성장형 아이템?”
 
​
 
​
 
처음 보는 유형의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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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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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지금 스탯은 영 애매한데.”
 
​
 
​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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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좋아질 날이 오겠지.
 
​
 
게다가 나는 아이템이라고는 사이즈가 안 맞는 로브 하나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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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설임 없이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
 
차가운 감촉과 함께, 미세한 마력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
 
이 아이템은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
 
​
 
나는 한동안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
 
마침 눈 앞에 리자드맨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
 
망설임 없이 쏘아지는 모래 탄환.
 
​
 
피슝-!
 
​
 
리자드맨이 털썩 쓰러지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팬던트에서 아주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
 
[세계수의 메마른 잎사귀 : 마력 스탯 + 1]
 
​
 
​
 
“오?”
 
​
 
나는 곧바로 아이템 정보창을 다시 확인했다.
 
​
 
​
 
[세계수의 메마른 잎사귀]
 
​
 
[등급: 레어]
 
​
 
[성장형 아이템]
 
​
 
[체력과 마나 회복 소폭 상승.]
 
​
 
[마력 스탯 + 2]
 
​
 
[길잡이 : 잊혀진 동족의 흔적에 공명합니다.]
 
​
 
​
 
마력 스탯이 정말로 1 오른 아이템.
 
​
 
1마리당 1씩 상승이라면 나쁘지 않다.
 
​
 
​
 
“언젠가 레전더리까지 올라갈지도….”
 
​
 
​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길잡이라는 마지막 옵션은 별 의미 없는 문구 정도로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