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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끊긴 후미진 뒷골목에서 두 사람이 등을 벽에 기댄 채로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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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것으로 보이는 사내가 품속에서 묵직해 보이는 전낭을 꺼내 건네자, 맞은 편에 있던 흑의인이 내용물을 확인했다. 정확히 금자가 스무 개가 들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흑의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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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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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낭을 건넨 사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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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불명, 신녀문의 문주라 하더군. 그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원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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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는 숭산 인근, 활동반경은 매우 넓은 것 같소. 반 년 사이에 운남부터 호북, 다시 하남을 오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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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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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인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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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은 아닐 것이오. 뒤를 따르는 수하가 보이지 않더군. 천명검의 대주들은 단독 임무를 이리 오랫동안 이어가지 않소. 북경의 고귀한 신분이었다면 이리 세상을 주유하게 두지도 않았을 터. 두문불출하던 신비세가의 후인일 가능성이 유력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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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없다는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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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도 되니 이만큼이나 아는 것이오. 어떤 면에서는 동창보다 우리가 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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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인은 곧장 품에서 얇은 서책을 꺼내 건넸다. 사내는 이를 넘겨받아 가볍게 내용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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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남에서 일을 치를 생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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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필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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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단호한 말에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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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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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상들은 본디 눈썰미를 타고났다. 은잠술이 기본인 대살문(大殺門)의 살수 정도는 와야 출신을 속여넘길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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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정파 흉내를 내는 모양이었지만, 보법에서부터 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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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에게 오른팔인 풍마나찰도를 잃었다던가. 품은 원한이 적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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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 열 개를 더 주면 중한 정보를 읊어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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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다 적은 것이 아니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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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신녀문주에 관한 정보일 뿐, 하남의 동향은 적혀있지 않소. 큰일을 앞두고 준비를 철저히 하여 나쁠 것은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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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머릿속으로 셈을 하던 사내가 혀를 차며 품에서 금화 열 개를 더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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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잘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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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자주 듣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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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눈앞에서 금자를 다시 세어 확인한 흑의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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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오. 방장이 폐관을 깨고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밀린 일이 적지 않다더군. 나한당주와 방장제자가 면벽수련에 든 것은 말할 것도 없소. 그리고, 화양현에 구파가 새로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소. 금룡상단의 마차가 하루에 수십 대씩 오간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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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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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헛소문이라 생각하오. 구파의 장문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수백 년 넘게 머물렀던 터전을 버리고 내빼겠소? 허나 그만한 소문이 돌 정도의 문파가 터전을 옮기는 것은 확실해 보이오. 필시 장강 이남에 터를 잡았던 정파 문파겠지. 과거의 구파였던 형산파나 해남파라든가. 광동진가마저 멸문당했으니, 겁을 먹을 만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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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보다 얇은 서책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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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을 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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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서책을 받자, 흑의인은 기다렸다는 듯 멀어졌다. 사내는 근처에 숨어 있던 수하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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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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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며 손살같이 달려간 수하들은 채 일 각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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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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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법 성취가 가장 뛰어난 녀석들로 골랐는데도 그러했다. 사내는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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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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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下汚)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주제에 저만한 강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거느리고 있는 것부터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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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방금의 흑의인은 몇 시진 전까지 건너편 객잔에서 점소이 행세를 하던 놈이다. 진상에게 고개를 연신 굽신거리던가. 하오문의 지부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영락없이 속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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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혈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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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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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혈종은 연신 부인하고 있었으나, 음혈종주가 운남에서 모종의 일을 겪고 영락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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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단주에게 당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도주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혈귀들에게 현인신이나 다름없던 종주의 패배는 음혈종의 위세에 뼈아픈 타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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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홀로 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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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살문과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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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풍마나찰도를 압도한 인물. 정확한 무공의 위력은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최소한 구파의 수장들에 준하는 격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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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에게는 제자가 둘 있다더군. 당문의 여식은 내버려두더라도, 나머지 하나는 데려가야 본회의 면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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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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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일 년 만에 쌓은 무위였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미진한 부분을 다듬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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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예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훗날 화양현에 세워질 신녀문의 정문에 놓을 석상의 구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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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백호의 자태를 담은 석상을 깎아내기로 했다. 신녀문의 상징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였다. 섭섭하지 않게끔 아래에 작게 유혼의 형상을 더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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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각예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화양현에서 신녀문의 터를 직접 본 후에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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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한 제자들에게 휴식을 줄 겸, 화양현에나 가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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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마루에 널브러져 있는 화련과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다소 지친 모습들인데도 혈색이 뚜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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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천공의 공능 탓이었다. 육체의 회복력이 남달랐다. 얼굴에 윤기마저 흐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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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채로 당과를 부숴먹는 화련을 본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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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먹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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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파르르 떨면서도 당과를 놓치지 않는 것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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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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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오늘은 이만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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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데리고 태실산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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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근처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객잔이 어디냐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천향루라 할 것이다. 먼 과거에 서연이 화련을 데리고 방문했던 주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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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직접 관리하는 고급 주루답게 음식이 매우 뛰어났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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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을 제자들을 격려하고자 천향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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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이들만 방문하는 주루다웠다. 근처에 도착하기 무섭게 시끌벅적한 공기가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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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을 본 문지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훤히 드러낸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죽립을 쓰고 있는데도 가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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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무인들은 호패로 신분을 증명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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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화산파만 해도 그랬다. 도복 끝단에 새겨진 매화만으로 화산의 도사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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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이 하늘이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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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드러냄으로서 불필요한 검문이나 괜한 시비를 예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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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머리칼 역시 그와 비슷하게 기능했다. 뭣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신비로운 색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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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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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지 말게. 추파를 던졌던 금룡상단 둘째 공자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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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의 청목족보다도 콧대가 높은 인물이라더군. 도대체 어찌 겁박했기에 그 금룡상단이 꿈쩍도 못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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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을 들은 서연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조심스레 속삭이던 사내들이 곧장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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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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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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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당소소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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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모르는 자들이 헛소리를 내뱉는 것은 사천이나 하남이나 똑같군요. 민초들 사이에서는 선녀시라는 평이 파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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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 출도한 시기만을 따지면 당소소가 선배였다. 사천당문의 직계로서 강호에 나선지 족히 십 년도 더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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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서연은 그녀의 말에 얌전히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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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아닌 그 누가 왔더라도 목을 베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자비롭다 칭송해도 모자랄 분께 감히 저런 망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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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의 눈가에 진한 독기가 서렸다. 이럴 때마다 서연은 그녀가 무림인임을 실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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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화련은 가만히 손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크지 않아서라고 서연은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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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달랐다. 화련은 슬쩍 스승님의 눈치를 보면서 망언을 내뱉은 망종들을 향해 온갖 진법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사내들의 안색이 한순간에 새하얗게 질린 것만 봐도 효능을 짐작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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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일각이면 천향루 근처에서 헌앙한 청년들이 지렸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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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서연은 천향루의 상층으로 향했다. 과거에 머물렀던 최상층에는 이미 손님이 있다기에, 적당한 방을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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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냉채를 기다리면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구경했다. 명성과 권위를 어찌 쌓아야 할지 고민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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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만두를 사들고 길을 걷는 사내가 눈에 밟혔다. 낡은 복장과는 다르게 몸가짐에서 단련된 무인의 기질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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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슷한 기질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금진송의 시녀이자, 전 호위살수였던 교교에게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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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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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행인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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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짚은 채로 거리를 힘겹게 거니는 노인, 비파를 튕기는 여인, 반대편 객잔 이 층에 앉아서 옆 사람들과 떠드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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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서 노인, 여인,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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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기색을 보이는 자들이 열을 넘고, 어느 순간 스물을 넘어가니 눈매에 절로 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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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식사가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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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들 먹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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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염려할까 싶어 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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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루 바깥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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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눈동자가 어느새 도화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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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살문은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살수들이 모인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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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경으로 능히 세 손에 꼽힌다는 청목족보다 신속한 경신법을 지닌 탓이다. 씨족의 보신경을 오직 암살만을 위해 오랜 세월을 갈고 닦은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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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과거, 돌이킬 수 없는 상잔을 저지르고 영목에게 버림받아 피부가 죽은 낙엽처럼 물들었다. 그 때문에 세인들에게는 타락한 청목족이나, 아예 암족(暗族)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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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상층부나 알 법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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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마주친 이들의 태반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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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탄 피부 역시 은잠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두세 수 위의 고수들에게도 감지되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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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림에 대놓고 지붕 위를 활보하는데도 눈치채는 이가 없었다. 몸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얼핏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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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에 민가를 너덧 개씩 지나쳤다. 바람마저 능히 넘어설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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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살수들을 풀어 위치를 특정했다. 천향루의 삼 층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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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신녀문주의 무위에 대해 전해들은 바 있었다. 구파의 장문인들에 비견될 정도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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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련 팔천의 종주들이 민초들에게 괴력난신으로 군림하듯, 구파의 장문인들 역시 사마외도들에게 사신으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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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가 있어서는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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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살문 특급 살수 서원광은 천향루의 백 장 남짓한 거리에서 멈춰섰다. 구파의 장문인들이 평상시 기감으로 인지하는 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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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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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린 서원광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대수림의 청목족이 으레 다룬다는 대궁(大弓)과 형태가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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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끄는 화살은 아득한 거리에 놓인 표적도 손쉽게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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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대는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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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보이지 않으면 막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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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쪽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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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흑룡회의 무인들이 천향루에서 난동을 부려 시선을 끈 틈에, 열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노리는 정도는 능히 가능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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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지 않아 별호는 없으나, 대살문에서도 몇 없는 특급 살수다. 그의 화살에 명을 달리한 대문파의 고위층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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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로 지붕에 앉아 대궁의 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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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하게 지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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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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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일대가 복숭아꽃과도 같은 빛깔로 물들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서원광의 뾰족한 귀가 크게 흔들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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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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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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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신녀문주의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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