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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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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인적이 끊긴 후미진 뒷골목에서 두 사람이 등을 벽에 기댄 채로 마주하고 있었다.

나중에 온 것으로 보이는 사내가 품속에서 묵직해 보이는 전낭을 꺼내 건네자, 맞은 편에 있던 흑의인이 내용물을 확인했다. 정확히 금자가 스무 개가 들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흑의인이 말했다.

“말씀하시오.”

전낭을 건넨 사내가 말했다.

“이름은 불명, 신녀문의 문주라 하더군. 그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원하오.”

“거처는 숭산 인근, 활동반경은 매우 넓은 것 같소. 반 년 사이에 운남부터 호북, 다시 하남을 오갔으니.”

“모든 것을 물었소.”

흑의인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천명검은 아닐 것이오. 뒤를 따르는 수하가 보이지 않더군. 천명검의 대주들은 단독 임무를 이리 오랫동안 이어가지 않소. 북경의 고귀한 신분이었다면 이리 세상을 주유하게 두지도 않았을 터. 두문불출하던 신비세가의 후인일 가능성이 유력하오.”

“확실한 것은 없다는 말이군.”

“우리 정도 되니 이만큼이나 아는 것이오. 어떤 면에서는 동창보다 우리가 낫소.”

흑의인은 곧장 품에서 얇은 서책을 꺼내 건넸다. 사내는 이를 넘겨받아 가볍게 내용을 훑었다.

“설마, 하남에서 일을 치를 생각이오?”

“알 필요 없소.”

사내의 단호한 말에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흑룡회로군.

정보상들은 본디 눈썰미를 타고났다. 은잠술이 기본인 대살문(大殺門)의 살수 정도는 와야 출신을 속여넘길 만했다.

어설프게 정파 흉내를 내는 모양이었지만, 보법에서부터 티가 났다.

신녀문주에게 오른팔인 풍마나찰도를 잃었다던가. 품은 원한이 적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금자 열 개를 더 주면 중한 정보를 읊어주겠소.”

“여기에 다 적은 것이 아니었단 말이오?”

“그것은 신녀문주에 관한 정보일 뿐, 하남의 동향은 적혀있지 않소. 큰일을 앞두고 준비를 철저히 하여 나쁠 것은 없을 것이오.”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머릿속으로 셈을 하던 사내가 혀를 차며 품에서 금화 열 개를 더 꺼냈다.

“장사 잘 하는군.”

“그런 말 자주 듣소.”

굳이 눈앞에서 금자를 다시 세어 확인한 흑의인이 말했다.

“소림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오. 방장이 폐관을 깨고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밀린 일이 적지 않다더군. 나한당주와 방장제자가 면벽수련에 든 것은 말할 것도 없소. 그리고, 화양현에 구파가 새로 들어선다는 소문이 있소. 금룡상단의 마차가 하루에 수십 대씩 오간다더군.”

“……구파가?”

“솔직히 헛소문이라 생각하오. 구파의 장문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수백 년 넘게 머물렀던 터전을 버리고 내빼겠소? 허나 그만한 소문이 돌 정도의 문파가 터전을 옮기는 것은 확실해 보이오. 필시 장강 이남에 터를 잡았던 정파 문파겠지. 과거의 구파였던 형산파나 해남파라든가. 광동진가마저 멸문당했으니, 겁을 먹을 만도 하오.”

흑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보다 얇은 서책을 건넸다.

“무운을 빌겠소.”

사내가 서책을 받자, 흑의인은 기다렸다는 듯 멀어졌다. 사내는 근처에 숨어 있던 수하들에게 말했다.

“따라가 봐라.”

고개를 끄덕이며 손살같이 달려간 수하들은 채 일 각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놓쳤습니다.”

보법 성취가 가장 뛰어난 녀석들로 골랐는데도 그러했다. 사내는 혀를 찼다.

“음흉한 놈들.”

하오(下汚)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주제에 저만한 강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거느리고 있는 것부터 그러했다.

심지어 방금의 흑의인은 몇 시진 전까지 건너편 객잔에서 점소이 행세를 하던 놈이다. 진상에게 고개를 연신 굽신거리던가. 하오문의 지부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영락없이 속았을 것이다.

“음혈종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음혈종은 연신 부인하고 있었으나, 음혈종주가 운남에서 모종의 일을 겪고 영락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천명단주에게 당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도주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혈귀들에게 현인신이나 다름없던 종주의 패배는 음혈종의 위세에 뼈아픈 타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저희 홀로 치는 겁니까?”

“아니. 대살문과 함께 간다.”

상대는 풍마나찰도를 압도한 인물. 정확한 무공의 위력은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최소한 구파의 수장들에 준하는 격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신녀문주에게는 제자가 둘 있다더군. 당문의 여식은 내버려두더라도, 나머지 하나는 데려가야 본회의 면이 선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고작 일 년 만에 쌓은 무위였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미진한 부분을 다듬고자 하였다.

각예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훗날 화양현에 세워질 신녀문의 정문에 놓을 석상의 구상을 마쳤다.

웅장한 백호의 자태를 담은 석상을 깎아내기로 했다. 신녀문의 상징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였다. 섭섭하지 않게끔 아래에 작게 유혼의 형상을 더할 생각이었다.

당장 각예를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화양현에서 신녀문의 터를 직접 본 후에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고생한 제자들에게 휴식을 줄 겸, 화양현에나 가봐야겠구나.

서연은 마루에 널브러져 있는 화련과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다소 지친 모습들인데도 혈색이 뚜렸했다.

비연천공의 공능 탓이었다. 육체의 회복력이 남달랐다. 얼굴에 윤기마저 흐를 지경이었다.

드러누운 채로 당과를 부숴먹는 화련을 본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을까.

손을 파르르 떨면서도 당과를 놓치지 않는 것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스승님…….”

“오냐, 오늘은 이만하자꾸나.”

제자들을 데리고 태실산 아래로 내려갔다.

숭산 근처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객잔이 어디냐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천향루라 할 것이다. 먼 과거에 서연이 화련을 데리고 방문했던 주루였다.

관이 직접 관리하는 고급 주루답게 음식이 매우 뛰어났던 기억이 났다.

고생했을 제자들을 격려하고자 천향루로 향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이들만 방문하는 주루다웠다. 근처에 도착하기 무섭게 시끌벅적한 공기가 와닿았다.

서연을 본 문지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훤히 드러낸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죽립을 쓰고 있는데도 가려지지 않았다.

본디 무인들은 호패로 신분을 증명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당장 화산파만 해도 그랬다. 도복 끝단에 새겨진 매화만으로 화산의 도사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천명검이 하늘이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신분을 드러냄으로서 불필요한 검문이나 괜한 시비를 예방할 수 있었다.

서연이 머리칼 역시 그와 비슷하게 기능했다. 뭣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신비로운 색을 품었다.

“……신녀문주?”

“쳐다보지 말게. 추파를 던졌던 금룡상단 둘째 공자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해.”

“대수림의 청목족보다도 콧대가 높은 인물이라더군. 도대체 어찌 겁박했기에 그 금룡상단이 꿈쩍도 못한단 말인가.”

마지막 말을 들은 서연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조심스레 속삭이던 사내들이 곧장 머리를 숙였다.

“으음…….”

저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당소소가 말했다.

“뭣 모르는 자들이 헛소리를 내뱉는 것은 사천이나 하남이나 똑같군요. 민초들 사이에서는 선녀시라는 평이 파다한데.”

무림에 출도한 시기만을 따지면 당소소가 선배였다. 사천당문의 직계로서 강호에 나선지 족히 십 년도 더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연은 그녀의 말에 얌전히 귀를 기울였다.

“스승님이 아닌 그 누가 왔더라도 목을 베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자비롭다 칭송해도 모자랄 분께 감히 저런 망언을…….”

당소소의 눈가에 진한 독기가 서렸다. 이럴 때마다 서연은 그녀가 무림인임을 실감하곤 했다.

반면 화련은 가만히 손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크지 않아서라고 서연은 짐작했다.

실상은 달랐다. 화련은 슬쩍 스승님의 눈치를 보면서 망언을 내뱉은 망종들을 향해 온갖 진법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사내들의 안색이 한순간에 새하얗게 질린 것만 봐도 효능을 짐작할 만했다.

길어야 일각이면 천향루 근처에서 헌앙한 청년들이 지렸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그러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서연은 천향루의 상층으로 향했다. 과거에 머물렀던 최상층에는 이미 손님이 있다기에, 적당한 방을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오리 냉채를 기다리면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구경했다. 명성과 권위를 어찌 쌓아야 할지 고민하면서다.

문득 만두를 사들고 길을 걷는 사내가 눈에 밟혔다. 낡은 복장과는 다르게 몸가짐에서 단련된 무인의 기질이 느껴졌다.

예전에 비슷한 기질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금진송의 시녀이자, 전 호위살수였던 교교에게서 보았다.

‘…….

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행인들을 살폈다.

지팡이를 짚은 채로 거리를 힘겹게 거니는 노인, 비파를 튕기는 여인, 반대편 객잔 이 층에 앉아서 옆 사람들과 떠드는 청년.

강호에서 노인, 여인,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수상한 기색을 보이는 자들이 열을 넘고, 어느 순간 스물을 넘어가니 눈매에 절로 날이 섰다.

“스승님, 식사가 나왔어요.”

“먼저들 먹으려무나.”

제자들이 염려할까 싶어 내색하지 않았다.

‘……천향루 바깥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서연의 눈동자가 어느새 도화를 머금었다.


대살문은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살수들이 모인 집단이다.

보신경으로 능히 세 손에 꼽힌다는 청목족보다 신속한 경신법을 지닌 탓이다. 씨족의 보신경을 오직 암살만을 위해 오랜 세월을 갈고 닦은 여파였다.

머나먼 과거, 돌이킬 수 없는 상잔을 저지르고 영목에게 버림받아 피부가 죽은 낙엽처럼 물들었다. 그 때문에 세인들에게는 타락한 청목족이나, 아예 암족(暗族)이라 불렸다.

강호의 상층부나 알 법한 정보였다.

그들을 마주친 이들의 태반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짙게 탄 피부 역시 은잠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두세 수 위의 고수들에게도 감지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녁 어림에 대놓고 지붕 위를 활보하는데도 눈치채는 이가 없었다. 몸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얼핏 들릴 뿐이었다.

한 걸음에 민가를 너덧 개씩 지나쳤다. 바람마저 능히 넘어설 속도였다.

곳곳에 살수들을 풀어 위치를 특정했다. 천향루의 삼 층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역시 신녀문주의 무위에 대해 전해들은 바 있었다. 구파의 장문인들에 비견될 정도라던가.

사마련 팔천의 종주들이 민초들에게 괴력난신으로 군림하듯, 구파의 장문인들 역시 사마외도들에게 사신으로 군림했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됐다.

대살문 특급 살수 서원광은 천향루의 백 장 남짓한 거리에서 멈춰섰다. 구파의 장문인들이 평상시 기감으로 인지하는 범위였다.

철컥―

결론을 내린 서원광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대수림의 청목족이 으레 다룬다는 대궁(大弓)과 형태가 유사했다.

바람이 이끄는 화살은 아득한 거리에 놓인 표적도 손쉽게 꿰뚫었다.

물론 상대는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

틈을 보이지 않으면 막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어린 쪽이라고 했나.

허나 흑룡회의 무인들이 천향루에서 난동을 부려 시선을 끈 틈에, 열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노리는 정도는 능히 가능할 터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 별호는 없으나, 대살문에서도 몇 없는 특급 살수다. 그의 화살에 명을 달리한 대문파의 고위층이 적지 않았다.

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로 지붕에 앉아 대궁의 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해가 뉘엿하게 지는 가운데.

화아아악―!

불현듯 일대가 복숭아꽃과도 같은 빛깔로 물들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서원광의 뾰족한 귀가 크게 흔들린 순간이었다.

‘……!

눈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신녀문주의 신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