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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겉옷은 인면지주의 실과 천잠사를 엮어 만든 장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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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수의 진기조차 능히 받아대는 귀물인 탓에, 웬만한 식견으로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금룡상단의 둘째라 해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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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물건을 그리 사사로이 다루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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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목소리가 순간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언행과 분위기만으로도 위엄을 드러내던 패검대주를 보고 느낀 점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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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수장이라면 마땅히 그런 면모를 지녀야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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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받아가야 할 물건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가오. 중한 물건을 우리가 멋대로 다룬다고 여길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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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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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하대에도 동요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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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하고도 말투와 걸음에 흐트러짐이 없는 것만 봐도 그랬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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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인데도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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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가 받아가야 할 물건은 멀쩡히 있을테니. 그 대리석이 예외였던 거요. 대형 채석장에서 족히 반 년은 캐야할 물량을 보냈더군. 황실이 아닌 이상에야 그만한 물량을 감당하기는 힘들지. 일 할 정도는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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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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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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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 대리석을 맡긴 사람이 황실의 수련궁교두임을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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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금진명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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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께만 알린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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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이 개입했음이 알려지는 순간 보답이 아니라 하사품으로 여기는 작자들이 생길 것을 염려한 듯했다. 수련궁교두의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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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교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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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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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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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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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천천히 웃으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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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시종은 존중하면서, 정작 그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본 공자는 존중하지 않는구려. 스승이 누구이길래 그리 가르쳤는지 참으로 궁금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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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네 양친이 셋째 공자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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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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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패검대주가 보였던 격조를 떠올리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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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자의 행실을 알던데, 너는 예의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듯하구나.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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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히 선 채로 금진명을 직시하는 시선에서 기품이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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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가짐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마치 북경의 귀족 같았다. 교교 역시 그것을 느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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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언행을 보였는데도 그것이 심히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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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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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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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몇 차례 마주해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패도에 몸 담은 인간이나 보일 법한 자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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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이어진 폭언에 넋이 나간 금진명이 입을 다문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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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까지 금진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입고 있는 형형색색의 비단옷에서부터 재력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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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하니 언행이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허리춤에 찬 무기를 보아하니 필시 근방에 적을 둔 문파의 일원일 터인데, 그러고도 감히 금룡상단의 둘째 공자를 모욕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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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호통을 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호위하던 무인들 역시 드센 기파를 내뿜으며 그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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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의 무례한 언행을 모두가 들었으니, 너는 물론이고 네가 속한 문파 역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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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의 명문가들은 자식 교육에 관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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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낙양에 당도하기 전에 유람선에서 만났던 후기지수들이 떠올랐다. 금진송 역시 그 유람선에서 처음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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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초아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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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그녀에게 호응하던 명문가 귀공자들의 모습 역시 그려졌는데, 작금의 상황이 그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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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땅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렇듯 오만한 자들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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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주의 고심이 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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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차남을 두고 막내인 금진송만 교육했겠는가. 엄히 다스려도 고쳐지지 않는 망나니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천성부터가 오만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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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의 몇몇 자제들이 사마외도와도 같은 기질을 가지게 되는 것도 그 천성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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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던 무인들은 품에서 몸둥이와 포승줄 따위를 꺼냈다. 이런 짓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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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발검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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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험하게 대하지는 말게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 그런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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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 역시 다시금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 무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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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는 건드리지 말거라. 내 아우가 아끼는 시종이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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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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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너무 저항하지 말게. 어린 사매들이 다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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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금진명의 옷자락이 가볍게 휘날리고 있었다. 전신의 내공을 일으킨 것이다. 여차하면 개입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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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 정도 위치에 오르면 무공 역시 경지에 이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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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한 영약이 엄청나게 많은 듯했다. 새어나오는 기파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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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주께서 이래도 된다고 가르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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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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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금룡상단주께서 이런 작태를 허락하실 것 같지는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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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직접 뵌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본 공자의 부친이 풍류를 즐길 줄 모르는 것은 맞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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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의 입술이 더욱 곡선을 그렸다. 그동안 서연의 기파를 흝어보기라도 한 듯했다. 자신이 명백히 우세하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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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다치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는 경어를 쓰도록 하거라. 본 공자는 자비롭기에 아직 너그러이 넘어갈 용의가 있다. 아우의 은인이라고도 하지 않았느냐. 형제간의 괜한 다툼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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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한순간에 오만해졌다. 이쪽이 본모습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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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내 제자들이 이런 작자들을 상대해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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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무심코 먼 미래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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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제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훤히 그려졌는데, 괜시리 가슴 한켠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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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들이 명성을 쌓고 어떻게든 부흥하려 애쓰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이런 하잘것 없는 작자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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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치워두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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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하게 징치했다간 원한을 품고 제자들을 노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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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낙명(落命)한 이후에도 감히 수작을 부릴 수 없게 하려면 초장부터 상하를 확고히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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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내려다보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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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머릿속에 신녀문의 첫 번째 법도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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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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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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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가볍게 한 번 흝어본 후에 걸음을 디뎠다. 발 끝 용천혈에 힘을 더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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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서 바람이 폭발하는 듯한 감각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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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던 무인들은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 돌연 폭풍이 몰아친다고 느끼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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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던 대기가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는 듯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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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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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축이 울려댔다. 대지가 발끝을 중심으로 큼지막한 선을 그려내며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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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와 포승줄을 들고 다가오던 자들이 한순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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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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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이 짓눌리는 듯했기에 호흡조차 버거웠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영문을 파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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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 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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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고개를 처박은 채였다. 자신들에게로 오연히 다가오는 발걸음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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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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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주인을 모신 것을 탓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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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부채를 움켜쥔 손에서 진기의 파동이 거세게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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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떠오른 듯했다. 도무지 정면에서 직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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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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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검의 검초를 머금은 쥘부채가 무인들의 어깨를 일시에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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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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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친 기파가 오죽 강했는지, 흙먼지조차 튀어오르지 못하고 땅을 설설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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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하수들이 보기에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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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눈을 끔벅이고 나서야 상황을 인지했다. 넘볼 수 없는 고수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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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앉아 술잔을 들이키던 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발조차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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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연주하던 예기들도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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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들을 끌고 왔던 상인과 금진명만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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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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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뒤로 기어가듯 물러나며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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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누구신지는 모르겠소만, 내가 잘못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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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다급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전신을 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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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서부터 와닿는 무력 차를 실감했다. 명색이 상단의 차남이었다. 최소한의 안목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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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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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있던 힘의 일부를 드러낸 것에 가까웠다. 가벼운 걸음이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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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알고 나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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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가 않았다. 기껏해야 약관에 불과한 여인이 어찌 저런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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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돌아가던 머릿속이 수렁에라도 잠긴 듯했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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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생사에 기로에 놓였다는 착각에 이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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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자에게 해를 입히면 금룡상단에서도 가만 있지 않을 거외다. 구파와 세가는 물론 황실과도 연이 닿아 있는 바, 아무리 초고수인 그대라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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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되려 협박을 하는 금진명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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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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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걸음을 옮겨 무인들을 끌고 왔던 상인의 어깨를 마저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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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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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이 한순간에 잦아들며 일대가 다시금 적막으로 물들었다. 옆에 있던 금진명은 괜히 몸을 움찔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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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듯했다. 얼굴이 완전히 사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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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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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근처에서 무인들이 달려오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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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에서 고용한 무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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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내부에서 더없는 소음이 울려퍼진 탓이다. 달려오지 않는 것이 되려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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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은 신경쓰지 않았다. 설마 금룡상단에 구파의 장문인이나 세가의 가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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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무인들이 장원에 당도했다. 하나같이 강건한 기도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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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족히 마흔 정도 될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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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화색했다. 제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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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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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자도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이쯤에서 물러나시는 것이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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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기를 패용한 무인들이 가문의 직계를 지키기 위해 급하게 다가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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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시선 끝에 익숙한 노인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흉수에게 차남이 죽을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오기라도 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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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쳤다. 곧 노인의 얼굴에 가지각색의 감정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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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상황을 유추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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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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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을 내뱉거나 선처를 구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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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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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처음에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호부 밑에 견자가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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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금진명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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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부채가 진기를 가득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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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가문의 무인들이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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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면 부친께 백배사죄해라. 본 문주에게도, 본 문주의 제자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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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칭하는 명칭이 바뀌었다. 서연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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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경애 어린 표정으로 스승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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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스승 대신 장문인이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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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다시 찾아왔을 때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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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부채를 높게 치켜들었다. 담긴 진기의 양이 어마어마한 탓일까, 손으로 별을 치켜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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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히 네놈을 불구로 만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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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명이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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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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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쥘부채가 금진명의 안면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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