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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차차 저물고 있었다. 산기슭을 따라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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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태실산 자락을 덮어가고 있었다. 중턱에 홀로 놓인 오두막집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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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무인의 영성이 닿은 탓일까. 아니면 오두막집을 가린 진법 때문일까. 주인이 자리를 비운지 일 년이 가까웠음에도 대지는 더없는 활기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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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만상이절진 주변을 맴돌았다. 본능적으로 저 안쪽으로 향해야 살찌울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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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든 겨울이다. 태실산 자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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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소림의 사대금강조차 쉬이 넘어서지 못한 진법을 일개 미물들이 넘어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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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와 능력을 막론하고 통과하지 못했다. 창공을 유영하는 맹금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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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부터 만상이절진 안에 자리잡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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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자그마한 산새들조차 산군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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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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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뚜막 한 켠에 자리를 틀었던 자그마한 지주(蜘蛛)가 그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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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미물이었던 탓에 산군의 기세를 느끼지도 못했고, 워낙 작아 화련의 눈에 띄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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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 특유의 본능으로 대지의 영성을 마음껏 받아먹었다. 포식자와 경쟁자가 죄다 사라진 환경인 탓에, 오롯이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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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더는 부뚜막에서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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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짐승보다 영물에 가까워졌다. 뱃속에 품은 독기 또한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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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영물이 내단을 품듯, 이 지주 또한 독단을 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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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작은 강아지만큼 커졌을 때, 지주는 비로소 사유(思惟)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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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적신 영기가 기껏해야 몇 달 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나아가 포식해야 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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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자그마한 비충들을 잡아먹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직감했다. 보다 큰 것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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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주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주는 곧장 시야를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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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깃털을 가진 올빼미가 나무둥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보통 짐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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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삼키면 성장할 수 있을까? 시험해 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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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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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오랫동안 비웠기에 설마 했거늘. 역시 주인님이시다. 자취만으로도 온갖 이적을 행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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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주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목소리의 근원을 파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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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의 주인이 찾아왔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허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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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을 저질렀다면 곧장 독단으로 갈음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운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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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눈앞의 올빼미가 전성을 토해낸 주체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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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주변으로 햇빛을 따라 은빛 실선이 번져나갔다. 지주가 거미줄을 쏘아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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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거미줄과는 그 강도와 탄력부터 궤를 달리했다. 멧돼지와 같은 산짐승조차 떨쳐내기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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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올빼미는 거미줄에 닿기 직전까지도 특유의 차분한 기도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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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의복을 짜게 하면 되겠구나. 천잠사보다 네 것이 낫겠다. 독 역시 주인님의 제자가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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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모를 소리를 계속하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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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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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이 일순간에 터져나갔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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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는 눈 앞의 올빼미가 갑자기 수십 배는 커진 것 같다고 느꼈다. 황급히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풀잎이 어느샌가 고목보다 크고 두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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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커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작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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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정면의 올빼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발톱에라도 짓밟힌다면 그대로 뭉개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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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거미줄에라도 걸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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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눈앞의 올빼미가 저보다 상위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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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의 이치대로라면 자신은 곧장 잡아먹혀도 모자랐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올빼미는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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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얼굴을 지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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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기로 살거라. 더 커지면 징그럽다. 며칠 안에 네 주인이 될 여아가 당도할 터이니, 잘 처신하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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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라는 말만 겨우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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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에 있던 올빼미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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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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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를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본디 패검대의 식사 자리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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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수없이 함께했다. 연차에 따라 선후배라 부를 뿐, 표면적으로는 전부 말단에 불과한 탓에, 무림의 일반적인 무력대보다 사이가 훨씬 돈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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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에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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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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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분위기가 처참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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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체할 듯한 얼굴을 지어내는 이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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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원들은 곁눈질로 상석을 살폈다. 패검대주와 신녀문주가 마주 앉아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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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듯했다. 자신들의 대주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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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의 단주에게도 수십 번 넘게 비무를 청한 인간이다. 오죽했으면 별호가 광풍야차(狂風夜叉)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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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도 그 성향을 감추지 않았다. 검으로 상대를 찢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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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이 부족한 몇몇 관리들은 그런 패검대주를 보고 사마외도라 오해한 적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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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에는 이보다 더 심했다고 했다. 단리가예가 그 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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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가 불쑥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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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들이 신세를 졌다고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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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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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음식을 먹던 패검대원들의 몸이 한순간에 굳었다. 구마교의 주구들을 호기롭게 베어내던 무인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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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리가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상 부대주에 준하는 배분인 탓에, 그녀는 패검대주와 매우 가까운 간격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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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신녀문주가 앉아 있다는 뜻이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보다 처량한 눈빛으로 애써 시선을 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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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된 자로서, 작게나마 대접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식사를 권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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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가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대치하는 범들 사이에 놓인 야토(野兎)의 심정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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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입맛에는 잘 맞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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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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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들어서는 식사 중에는 죽립을 쓰지 않았다. 그 탓에 몸가짐이 몹시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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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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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가볍게 패검대원들의 면면을 살피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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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와 다시금 연이 닿을 줄은 몰랐습니다. 과거 섬서에서 팽 공자를 만났던 적이 있지요. 그때 신세를 졌었습니다만…….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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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을 고르던 패검대주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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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본가에 일이 생겨 이번 임무에 참여하지 않고 급히 복귀하였소. 애당초 천명검의 무력대 전원이 동원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오. 이번 일도 벽력탄의 제조법이 유출되었다는 첩보를 듣지 않았다면 수하 다섯으로 충분하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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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이 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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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교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후폭풍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오. 천명검의 무력대는 존재 자체로 무림의 부담인 바, 역모와 같은 중대사가 아니면 모이는 일 자체가 드무오. 대주들 간의 활동 범위가 겹치지 않는다는 뜻이지. 신녀문주가 자리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대주가 합류하기까지 족히 달포는 걸렸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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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에게 들려줄 법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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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연은 이를 패검대주 나름의 보답으로 받아들였다. 마땅히 줄 것이 없으니 정보로라도 갚으려는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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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를 매우 중히 여기시는 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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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살과도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말투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천명검의 대주들은 다 이와 같은 면모를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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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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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일문의 문주에 걸맞는 의기를 보여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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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만한 위치에 서고도 예의를 차리는 인물에게 어찌 하오체를 사용한단 말인가. 당장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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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의 환관들 역시 숙청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오. 구마교와 내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역모에 준하는 중죄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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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에서 벽력탄을 사용하는 종자들을 만난 적이 있지요. 이곳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만. 근래 들어 큰일이 많이 생기는 듯하니,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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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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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는 차를 들이키며 속으로 생각했다. 대화 중에 쉼없이 기파를 쏘아보내는건 대체 어느 지역의 예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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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것은 수하들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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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의 전신에서 번져나가는 기파에 짓눌리는 듯했다. 절세심공의 위력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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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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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상관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불편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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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력탄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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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신녀문주 나름의 문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 단주 역시 괴상한 방식으로 대주들을 시험한 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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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원한다고 들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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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자유가 수하들을 개처럼 부릴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았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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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맨 끝자리에 앉은 독룡을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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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녀문주의 제자가 본 대주의 수하와 혈연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패검대는 곧 동호를 떠나야 하는 바, 짧게나마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듯 싶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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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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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입매가 잔잔히 곡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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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의 대주라면 총독조차 아래로 보는 품계라고 했다. 그 정도는 되야 지방의 탐관오리들을 즉참할 수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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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가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제자의 사정마저 배려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심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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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은 인성으로 사람을 뽑기라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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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람선에서 얼핏 보았던 모습으로 섣불리 가늠하려 들었다면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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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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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자그마한 심득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서연은 더없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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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의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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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웃으며 당소소와 독룡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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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참으로 맛있는 식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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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제자들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검대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독룡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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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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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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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무수한 시선이 독룡에게로 쏘아졌다. 독룡은 반문하는 대신 눈치껏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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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마소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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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는 신녀문주의 인기척이 객잔 밖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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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수에 맞춰서 죽엽청을 가져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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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들은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천하에서 손에 꼽는 기재들이었다. 그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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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가 비무도 하지 않고 상대를 돌려보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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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에 이른 초고수들은 의념만으로 간합을 다툰다고 하였다. 뭇 하수들은 절세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고서야 인지조차 불가하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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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족의 예리한 감각을 타고난 단리가예만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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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주가 일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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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리가예는 얌전히 대주의 잔에 죽엽청을 따랐다. 이런 날에는 사려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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