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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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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최상층의 창가에 햇살이 쏟아졌다. 가벼운 식사를 마친 두 소녀는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누각으로 향했다.

“확실히 운남의 산들은 높네. 사천도 꽤 높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저가 대설산(大雪山)을 가보지 못하셔서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다. 높이가 점창산의 족히 두 배는 되지요. 어렸을 때에는 그곳으로 설삼을 캐러 가고는 하였는데…….”

두 소녀의 목소리가 유독 낭랑하게 울렸다.

멸망한 대리국의 수도가 근처였다. 워낙 좋은 자리에 세워진 객잔인 탓에,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절경이었다.

당연히 누각에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크게 떠드는 이가 하나 없었다. 자리한 이들이 점잖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들 운남을 정파의 영역으로 여기고는 했지만, 실상 구파인 점창을 빼놓고 보면 온전히 정파에 속한 문파가 적었다. 대부분이 정사지간의 문파였다.

사파가 득세했다면 사파에게 붙고, 점창이 득세했다면 점창에게 붙었겠으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곧 봉문할 문파에게 붙는 것이 과연 맞는 판단일지 의문이 드는구려.”

“종주들을 패퇴시킨 것이 점창 장문인이었다면 이리 복잡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상황에 신녀문주의 제자들이 나타났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전력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다던데.”

“내 익히 들었네. 흑룡회의 나찰도를 몇 합만에 꿇렸다더군. 서로 한 합씩 주고받기를 반복했다던데. 단순한 도인을 넘어 여장부로 대해야 옳아.”

“언행이 천것들과는 다르다던데. 혈통부터 고결하겠지.”

“당랑암화가 제자로 있는 것만 봐도 알겠더군. 당문이 어디 보통 혈족인가?”

다들 속삭이기 바빴다. 이따금 눈짓으로 두 소녀를 살피는 자들은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들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다들 눈치보기 바쁘군요.”

“사매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가보네.”

맞은편에 앉아있던 당소소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근데 사매는 단 거는 별로 안 좋아하나봐? 당 소가주님은 단 거를 잔뜩 들고다니던데.”

“싫어하진 않습니다. 굳이 찾아먹지 않는 것에 가깝지요.”

“그러면 이 사저가 맛있는 부분을 떼어줄게.”

화련이 조각칼을 꺼낸 직후였다.

산사나무 열매의 겉면을 덧칠하고 있던 설탕이 꽃잎과도 같은 모양으로 깨어졌다.

당소소가 놀란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자, 화련이 어깨를 으쓱였다.

“많이 연습했거든. 명색이 사저인데, 뒤처질 수는 없잖아.”

“……대단하십니다. 일취월장하고 계셨군요.”

“먹어봐. 사저가 주는 거니까.”

생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로 그리 말했다.

당소소는 산사나무 열매를 입에 집어넣었다.

혀를 자극하는 강한 단맛이 입안 전체에 매끄럽게 퍼졌다. 방금 전에 보였던 꽃잎과도 같은 형상이 단순한 장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맛있군요. 사저가 왜 그리 당과만 찾아다녔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사매가 해줘. 하돈(河豚)의 생살이 그렇게 일품이라더라. 포를 뜬 생살을 꽃 모양으로 곱게 진열한다던데.”

열 살, 이제 열 한 살 된 여아가 복어 요리를 입에 담는다. 나이 많은 사매의 출신을 감안하고 그리 말한 것이 분명했다.

당소소는 입꼬리를 올렸다.

“바다에 갈 일이 생기면 그리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슬슬 방으로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스승님께서 식사를 마치실 때가 되었으니…….”

돌연 당소소는 말을 멈추고 화련을 응시했다.

화련이 난간 쪽을 응시하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다. 누가 있나 싶어 옆을 힐끗 보았지만, 당소소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쪽에 뭔가 있습니까?”

어린 사저의 안법이 저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물었다.

무학을 익힐 육체를 타고났다. 어쩌면 자신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구나.

화련은 생각했다.

난간에 웬 소년이 앉아 있었다. 작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아 있었음에도 저지하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복식도 평범했다. 거리에서 으레 볼법한 외형이었다.

화련은 모산파의 후계자로서, 귀안(鬼眼)을 타고났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혼령은 아닌 듯한데.

그리 생각하던 도중에 눈이 마주쳤다.

소년의 눈이 순간 이채를 띄었다.

―너, 내가 보이는 게로구나.

한이 서린 독백이 아니다. 명백한 전음이었다. 화련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신녀문주가 천고의 안법을 가르친 모양이구나. 그 나이에 이만한 성취라니. 기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어.

정신을 차린 순간 화련의 바로 왼편까지 다가와 있었다.

―본래 신녀문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건만, 무료하던 차에 잘 되었다. 오랜만에 어린 기재와 교분을 나눠보는 것도 좋겠구나.

그때까지도 당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화련은 눈을 큼지막하게 뜬 채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섭백소혼무(攝魄消魂舞)라 한다. 나의 진신절기지. 네가 신녀문주의 제자이고, 재능 역시 충분하기에 일러주는 것이다.

소년이 하얀 검지로 당과를 툭툭 두드렸다.

화련은 입을 꾹 닫은 채로 전음을 보냈다. 최대한 아이답게 말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누구, 세요?

당황하여 혀를 깨물었다. 소년은 그조차도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함부로 밝힐 수 없는 신분인 탓에 답해줄 수는 없겠구나. 허나 해코지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거라.

어조가 애늙은이나 다름없었다. 절세의 은잠술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그저 멋부리는 남아라고 여겼을 것이다.

반로환동을 이룬 고수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대문파의 장문인에 준하는 초고수라는 것이다.

“사저? 괜찮으십니까?”

“어어…….”

당소소를 보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내색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긴장할 필요 없어.

예전에 소림 사대금강을 만났을 때부터 고수들을 응대해오지 않았던가. 만남이 갑작스러워 당황했을 뿐이다.

‘스승님께 호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니.

뭇 제자를 보고 스승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신녀문의 대사저에 걸맞는 의기를 보여야 했다.

흐트러졌던 호흡을 한순간에 정상 궤도로 되돌렸다. 기세 역시 갈무리하여 일문의 후계자에 걸맞는 고아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소년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오호라?”

입 밖으로 말을 꺼냈는데도 누구 하나 반응하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기막을 펼쳐 소리를 가둔 것이다.

“네 나이에 그만한 평정심을 가지기 쉽지 않거늘. 신녀문주가 열성을 다해 가르쳤다는 것을 알겠다.”

깊은 흥미를 느꼈는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였다.

“나이가 조금만 많았어도 대작을 권하였을 것이다.”

암검대주는 진심이었다. 스승의 성격을 닮았을 줄 알았건만, 어찌 성정이 이리 차분하단 말인가. 뭇 여자아이라면 당황하여 눈물부터 보이는 것이 보통이거늘.

‘생각해보면 신녀문주도 언행만 조금 괴팍할 뿐, 성품 자체는 도인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가 진정 마교와 연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마교와 정파가 맺은 옛 맹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것들이 멋대로 중얼거린 것뿐이다.

설령 신녀문주가 마교 출신이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비연천공의 저자다. 법가와 도가의 절세 심공을 창안한 장본인이 어찌하여 마에 잠식되겠는가. 설령 마기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순정한 기파만을 내보일 것이다.

이곳에 직접 찾아온 것은 혹여 복귀하지 못한 인원들을 돌려보내고, 신녀문주가 불쾌함을 드러냈을 경우 사과하기 위함이었다.

절세고수라면 진작에 자신의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고도 방관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한 수 가르쳐주기를 원하는 듯하구나. 헌데 어찌할까. 내가 아는 것은 살수의 무공 뿐이거늘.”

잠시 고민하던 암검대주가 품에서 비도를 꺼냈다. 곧 비도가 춤을 추는 것처럼 저절로 허공을 유영했다. 허공섭물을 극한까지 응용한 것이다.

곧 비도의 날 부분이 어둠에 잠기더니,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칼날은 무려 세 장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둥을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손잡이는 여전히 암검대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칼날이 축지라도 하는 것일까.

“천하에 보기 드문 기재이니, 이리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심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만 돌아갈테니 정진하거라.”

암검대주가 그리 말하며 비도를 품에 집어넣은 순간이었다.

그의 손은 화련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기특한 후학을 쓰다듬으려는 것이다.

허나 화련의 머리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진법에라도 갇힌 듯했다.

―돌아가라. 주인은 물론이고, 본도 역시 거기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절묘하게 화련과 암검대주의 귀에만 울려퍼지는 목소리였다. 암검대주는 당황하는 대신 화련을 쓰다듬으려던 손을 거둬들였다.

“고절한 진법이군. 범위를 내 오른팔에 한정했나? 제갈세가의 은퇴한 노괴라도 되는가.”

―노괴……?

떨리는 말투에서부터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화련은 놀란 눈으로 암검대주를 응시했다.

“말투에서부터 연배를 숨길 생각이 없던 듯한데.”

늙은이라는 말이 장내를 맴도는 듯했다.

동시에 거대한 종잇장이 부욱 찢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어……?!”

누각 옆에 자리하던 나무가 크게 휘청였다. 동시에 드센 바람이 누각으로 화악 끼쳐왔다.

산발적으로 날리는 머리와 옷자락을 붙잡는 이가 태반이었다. 화련과 당소소만이 예외였다.

이곳저곳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고수의 존재감이 일대를 짓누르는 것이다.

“흐억!”

“가, 갑자기 이게 무슨……!”

곧장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화련은 생각했다. 어떻게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고민은 짧았다.

“와아아악! 스승님! 스승님!”

화련은 아기새처럼 비명을 질렀다. 남들이 보기엔 여자아이가 헛것을 보고 놀란 것처럼 보였다.

탁.

동시에 귀빈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복도를 디디는 발소리 역시 함께였다.

“……!”

―……!

누각을 가득 메웠던 기파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암검대주는 신속히 비도를 품에 넣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누각 밖으로 몸을 날렸다.

초고수로서의 자존심을 곧장 굽히고 신녀문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화련에게 이름 모를 노괴가 먼저 출수했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을 변호해달라는 것이다.

유혼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설치해두었던 진법을 찰나에 허물고, 황급히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본래도 수백 장 거리에 자리하고 있던 터라, 도주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이뤄졌다.

사락.

다음 순간 서연이 당도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화련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일전의 광풍(狂風), 신녀문주가 벌인 일인가……?”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속도만큼은 정파의 거두들에 뒤지지 않는다더니!”

서연은 시선으로 주변을 흝었다. 진기의 잔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급히 지우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극지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달랐다.

재능을 깨달았을 뿐인데 세상이 달리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이 깨우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진기의 흐름을 추적하여, 이 자리에 있던 자들을 쫓아갈 수도 있었다. 허나 서연은 그리하지 않았다.

“화련아.”

대신 깊은 우려와 온정이 함께 담긴 눈빛으로 제자를 바라봤다. 해코지를 당한 것은 아닌 듯했다. 눈동자에 공포가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 스승님. 그게…….”

“누가 널 위협이라도 했느냐.”

화련은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고수의 자존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거기에 스승님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갑자기 너무 세게 불어서…….”

서연은 제자의 말에서 거짓을 흝어냈다. 허나 노하는 대신 제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기만 했다.

스승의 걱정을 하는 것이 눈동자에서부터 드러났기 때문이다.

‘슬슬 심공을 가르쳐야 하나.

여행을 다니며 새로 추가한 구결이 적지 않았다. 사실상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연은 속으로 비연천공의 구결을 뇌까렸다.

대리석 경매가 내일이었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조각상을 빚으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