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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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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장포에 먼지조차 묻히지 않은 채로 장로를 둘씩이나 제압했다. 흑룡회의 장로 풍뢰자(風雷子)는 처참한 몰골로 땅에 처박혀 있었다.

흐릿한 먼지 속에서도 뚜렷한 도화색 기운을 피워냈다. 진기를 체외로 유형화한 것이다.

공력이 끝도 없이 많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라락―

진기에 호응하듯 여인의 장포가 신비롭게 너울졌다.

“…….”

발 밑에 흑룡회 장로를 깔아두었음에도 선녀로 보일 정도였다.

그 각력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풍뢰자의 전신은 지반에 절반쯤 파묻혀 있었다.

입고 있던 호신갑만 절묘하게 파괴했다. 만약 여인이 힘을 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 몸은 이미 산산이 부서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흑룡회주와 음혈종주가 패퇴했다. 어쩌면 죽었는지도 모르겠군.”

여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팔천 종주들의 죽음을 서슴없이 입에 담았다. 오만한 기질을 타고난 것이기라도 한 것일까.

일대가 다시금 침묵으로 물들었다.

여인이 전투의 중심부에 추락하듯 착륙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전조를 인지하지 못했다.

살기마저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경지였다. 분명 심상마저 완벽히 장악한 초고수임이 틀림없었다.

“…….”

유일하게 반응한 것은 점창파 대장로 벽호검과 풍뢰자뿐이었다.

벽호검은 여인이 추락하기 직전에 검을 뽑아 대응했다. 신녀문주인 것은 알지 못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풍뢰자는 겨우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벽호검보다 한 발 늦게 알아차린 것이 화근이었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제압당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아아.

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일대가 도화빛 진기로 완연히 물들었다.

점창파의 제자들은 눈앞의 여인이 적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쉽사리 검을 거두지 못했다.

천명검의 징치는 정사마를 가리지 않았다. 민초의 삶을 해치면 상대의 출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벽호검은 정면을 응시한 채 위지향에게 전음을 보냈다.

―신녀문주라 하지 않았느냐.

―그게,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위지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해보면, 여태 알려지지 않은 신비문파의 문주라기보다는 황실 소속이었다는 쪽이 더 그럴듯했다.

어쩌면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천명검의 대주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명검의 대주들은 대문파의 문주들과도 손속을 겨룰 수 있다는 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진정 천명검의 대주라면, 흑룡회주의 오른팔인 풍마나찰도를 손쉽게 압도한 것도 납득이 되는 일이었다.

서연은.

교묘하게 문장의 일부를 생략하여 말했다. 천명검이 무림인들의 사신으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싸움을 억지로라도 끝내기 위함이었다.

‘다친 사람이 많구나.

사경을 해메는 도사들이 적지 않았다. 당장 위지향만 하더라도 방금 전에는 없었던 상처가 수십 개나 생겨나 있었다.

전투를 이어나간다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을 도사들이 십수 명이 넘었다.

오만한 모습을 연기하며 사방으로 위압적인 기파를 드러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칭과도 거리가 멀었다. 저들이 멋대로 착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지향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기는 했으나, 당장은 정정할 생각이 없었다. 천명검의 고수로 착각하게 만드는 편이 적들을 압도하기에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다.

순간 흑룡회의 무인 하나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거짓이다! 천명검이 벌써 당도했을 리가 없다!”

권세 있는 가문의 귀공자로 보였다. 이제 보니 짓밟고 있는 풍뢰자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아들이라도 되는 것일까.

“네가 진정 천명검이었다면 그리 말할 시간에 우리를 하나라도 더 베어 넘겼겠지. 시간을 끌려는 같잖은 수작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말에 사파의 무인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린다.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곧장 느껴졌다.

이래서 사파였다. 상대가 틈을 보이면 곧장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는 것이, 흡사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았다.

“당장 점창 산문을 기점으로 퍼져나가던 기파도 잠잠해졌지. 회주님과 음혈종주가 합심하여 점창 장문인의 수급을 베어냈다는 뜻―.”

서연은 귀공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수식을 취했다.

이윽고 잔향검을 출수하자, 그녀를 중심으로 도화빛 진기가 물결치며 너울졌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린 듯. 그녀의 공력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촤아아악―!

드높게 솟아있던 나무들이 처참하게 잘려나갔다. 귀공자의 머리카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콰과광!

통나무가 추락하는 굉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깔리지 않기 위해 다급히 엎드리거나 바닥을 구르는 사파의 무인들이 적지 않았다.

서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납검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줄곧 귀공자를 향해 있었다.

“계속 말해보라.”

“…….”

귀공자는 입술을 파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 앞에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나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묘하게 머리카락만 베어냈다.

놀라운 것은 그런 광경을 목도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중에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수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베어낼 수 있는 강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만한 고수가 어찌 시간을 끌겠는가. 그저 명검에 헛된 피를 묻히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

여인이 고개를 자연스럽게 치켜들었다. 갸름한 턱선이 면사 너머로 슬며시 비쳤다. 도화색 기운을 가득 품은 눈동자가 세차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항복하지 않을 종자로구나.”

“무……슨…….”

귀공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경악스러운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느새 여인이 코앞까지 다가와 그의 명치를 손바닥으로 찍어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닿기도 전에 흐릿한 파동이 번져나갔다. 묵직한 바위에 짓눌리는 듯했다.

후욱.

내가중수의 묘리였다. 맞은 순간 복부 부근이 완전히 구겨지더니 그대로 튕겨나갔다.

콰아아앙!

그때까지도 서연의 주변은 고요했다. 적막이 일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섣불리 입을 떼었다가 목숨을 잃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여인이 귀공자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정예에 속하는 무인들은 물론, 반쯤 이성을 놓았던 혈귀들조차 침묵할 정도였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꿇어라.”

흑룡회와 음혈종은 끝내 패퇴했다.


사마련 팔천의 종주 둘이 나섰음에도 점창파의 산문을 넘지 못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천하로 퍼져나갔다.

허나 점창파의 도사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산문은 대부분 불에 타 재만 남았고, 장차 문파를 이끌어야 할 일대제자들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어린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 역시 반수 아래로 줄었으니, 산문 바깥에 나가있던 장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봉문을 입에 담아야 할 정도였다. 쇠락을 감수하고 상처를 추스를 시간이 절실했던 것이다.

천명검의 단주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멸문당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요동쳤다.

점창 장문인이 놀라운 신위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종주들이 도주한 것은 천명검 단주의 검격을 마주한 까닭이라는 이야기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신비로운 것은 점창산에 있던 그 누구도 천명검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나 그날 새벽에 펼쳐졌던 검격이 너무나 선명했기에, 황실이 점창을 예우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개중에는 신녀문주에 관한 소문도 있었다.

흑룡회의 사 장로와 음혈종의 육 장로를 제압한 것으로 모자라, 흑룡회주의 오른팔인 풍마나찰도마저 꺾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나타난 신진 문파, 그것도 여고수가 벌였다기엔 믿기 힘든 일이었다.

허나 장문제자인 청운마검을 비롯한 점창의 도사들이 하나같이 소문의 진위를 인정한 탓에, 코웃음을 치고 무시하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신녀문주의 위명이 바야흐로 천하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저, 그……. 신녀문주님, 맞으신가요?”

서연은 자신을 부르는 꼬마 도사의 말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급한 전투를 마치고 나서 오해를 풀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곳곳에서 자신을 신녀문주라 부르는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 수습하기에는 너무나 늦어버린 일이었다.

온 천하에 소문이 퍼졌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부정하면 모양새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겠는가.

당장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꼬마 여도사만 보아도 그랬다. 구석진 곳에서 동문 남자 도사들을 향해 신녀문주가 최고라고, 닮고 싶다고 외치고 다녔다.

사파 잡것들에게 수많은 사형제를 잃었을 꼬마 여도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니?”

“와아아……!”

그렇게 서연은 신녀문주가 되었다.

‘선녀문주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개파식 같은 거창한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무림에 문파가 어련히 많은가. 열에 아홉은 동네 무관 수준이니, 개파식은커녕 그보다 못한 것도 하지 못하는 문파가 태반이었다.

당장 자신도 하남으로 돌아가면 변변찮은 현판도 없이 산속에 틀어박혀 여자아이 둘만 가르치고 있을 터인데, 개파식을 연다면 웃음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거창해도 너무 거창한 이름이구나. 도대체 누가 퍼뜨렸을까.

세상에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곤명에서 전투를 구경하던 민초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을 신녀(神女)라 칭하는 것은 어느 마을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죽립에 면사까지 쓰고 사파 무인들을 물리치니, 뭣 모르는 민초들이 신녀라 칭할만도 했다.

‘앞으로 신녀문주라 소개해야겠구나.

서연이라는 이름을 대는 것보다는, 신녀문의 이름을 대는 것이 더 나을 듯했다.

명성을 전해들은 사파 잡것들이 알아서 설설 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피를 보지 않아도 될테니, 서연으로서는 기꺼울 따름이었다.

일문의 문주를 자칭한다는 부끄러움만 어찌저찌 이겨내면 될 듯했다.

그 생각이 짧았다고 여기기까지는 며칠이면 충분했다.


점창파의 산문이 대부분 불탄 탓에, 서연은 빈객 대접을 받고 있음에도 점창산에 머무르지 못했다.

빈객을 잿더미 속에 묵게 할 수는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서연은 줄곧 점창산 지근거리에 위치한 점창의 속가에 머물렀다. 점창 도사들의 동경어린 시선을 받으면서다.

본래 운남에 오려던 목적도 대리(大理)에서 펼쳐지는 대리석 경매에 참여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구파와 팔천의 충돌로 경매 자체가 몇 주 뒤로 미뤄졌기에, 서연 일행과 일월상단은 대리에 하염없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서연은 속가의 정문 밖을 함부로 나갈 수 없었다.

“도화신녀(桃花神女), 도화신녀님이다……!”

“뭐?”

“아니야. 무심잔월(無心殘月)이랬어.”

반년 전에 금룡상단의 별채에서 머무를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허나 그때는 마냥 당황스럽기만 했다면, 지금은 당황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꼈다.

도화신녀는 뭐고, 무심잔월은 또 뭐란 말인가. 도화경에서 온 신녀에, 무심하고 잔혹한 달? 신녀문주가 선녀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무림인들은 전부 본인의 명호를 스스로 외치고 다니는 철면피라는 말을 실감했다.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

아무리 별호가 무인의 정체성이라고 하지만, 저런 단어를 입에 직접 담을 자신이 들지 않았다.

당장 천명검의 단주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명성을 얻기는커녕, 지금처럼 몸 성히 서있지도 못했을텐데 말이다.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줄은.

과연 절세고수라는 것일까. 전투가 마무리되고, 무수한 사파 무인들을 추포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의 기파를 느끼지 못했다.

절세고수들은 구름 위에 산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오후에 점창파 장문인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점창파 제자들의 탈출을 도운 은인인 서연에게 마땅히 사례하기 위함이었다.

그때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화련과 소소 둘다 당과를 사러 잠시 외출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조각이나 하며 초심이라도 다잡으려던 순간이었다.

담벼락에 웬 소년이 앉아 있었다. 아리송한 얼굴로 서연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등에 천 자가 새겨진 옷을 당당하게 입고 있었다.

“…….”

뭣 모르는 아이가 천명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관리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경을 칠 수도 있었다.

서연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얘야.”

소년은 눈만 깜빡거렸다.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 뒤편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널 부른 게 맞단다.”

소년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곧 소년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내가 보이시오?”

애늙은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