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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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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대가 정적으로 물들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 모두가 굳어버린 채였다.

점창 대장로인 벽호검조차도 얼굴에 드러난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다급히 음혈종주의 공격을 받아내려 했던 참이다.

삽시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온전히 막아낼 수 없음을 직감하여 일대제자들에게 물러서라는 명령을 내린 참이었다.

대장로의 주변에 있던 자들이 물결의 파동처럼 멀어진 것은 그러한 연유였다.

팔천 종주의 절기다. 대문파의 장로 정도는 되어야 감당할 자격이 생겼다.

정면으로 막으려 들었다간 휩쓸려 죽을 수 있었기에 진기를 극성까지 끌어올려 꿰뚫으려 했다. 주화입마에 가까운 내상을 각오했던 것이다.

허나 눈 앞의 여인이 그 일격을 틀어막았다. 단순히 절기를 막아낸 것으로 모자라 제 색으로 완전히 물들였다.

잿더미로 가득했던 숲에 꽃잎이 날아드는 듯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여인이 긴 숨을 내쉰 것은 그 다음이었다. 혈귀들을 오시하는 자태가 오연했다.

서연은 일전에 느꼈던 감각에 집중했다. 음혈종주의 공격을 막아내며 심득을 얻었던 탓이다.

종남의 육합검을 응용했다. 여섯 방위만으로는 수백 줄기로 갈라지는 공격을 막을 수 없었던 탓이다.

검 끝에 기를 느릿하게 덧씌웠다. 마치 종이를 덧붙이듯 허공에 기운이 남도록 한 후, 검을 한 바퀴 휘두르니 기로 이루어진 막이 펼쳐졌다.

‘검막.

허나 음혈종주의 공격은 검막이 미처 막아내지 못한 틈을 파고들었다. 그렇기에 좌우측면에도 검막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격이 틈을 파고들고, 막기 위해 방위를 하나씩 늘리고.

검막이 완연한 구의 형태를 이뤘을 때.

쩌저정―!

검막을 전방위로 터뜨리듯 흩뿌리며 음혈종주의 공격을 튕겨냈다.

파편 하나하나에 타인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중검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핏빛 절기가 서연의 색으로 물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검의 세 번째 초식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반격초로 사용하면 될 듯했다.

심득을 갈무리하는 한편, 수 리 너머에서 벌어지는 점창 장문인의 싸움을 살폈다.

거대한 묵빛 폭풍 한복판에 큼지막한 공동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허공에서 폭뢰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콰과광―!

초고수들의 궤적에 온 산맥이 요동쳤다.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아득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병장기가 충돌하는 충격파가 들릴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진기를 가다듬기 힘든가봐. 아까부터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데.”

정면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묘한 마성이 담긴 목소리였다.

서연은 미간을 좁힌 채로 고개를 들었다. 포위망을 이루는 자들 중에서 가장 강해보이던 자였다.

외양이 빼어난 여인이었다. 눈과 머리카락이 새빨간 것이 음혈종 사이에서도 높은 직위에 있는 듯했다.

“종주님의 일격에는 본 종이 믿고 따르는 교리가 새겨져 있지. 일격을 허용하는 순간 전신 세맥의 기질이 본 종에 알맞게 변화하게 된단다. 그렇게 저항할 수 있는 것도 잠깐이지. 당장 진기부터 말을 듣지 않을 거야.”

“…….”

일격을 허용하는 순간 혈귀로 변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상리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떤 의미로 마교보다 더 광인들의 모임이라는 종교집단 다웠다.

“독이라도 된단 말인가?”

“독이라니, 은혜야.”

“송곳니로 흡정을 하는 잡귀가 되는 것이 은혜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네놈들의 머리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여인은 서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잡것들이나 그러하지. 그분께 직접 은혜를 받으면 접촉만으로도 흡기할 수 있단다. 온 세상이 영약밭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경지를 무한히 올릴 수 있다는 뜻이야.”

힘없는 민초들을 영약으로 본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네 말이 옳다면 음혈종주는 경지를 무한히 올리고도 사마련주에게 패배한 것이구나. 무한의 개념을 모르는 것이 분명해. 산수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서연은 그러면서 코웃음을 쳤다. 도발을 서슴없이 입에 담았다. 상대를 경멸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신녀문주님, 저 자는 음혈종 육 장로입니다.”

뒤늦게 도착한 위지향이 착지하며 덧붙였다. 서연은 대답하는 대신 남몰래 미간을 좁혔다.

‘신녀문주?

자신을 칭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정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가 언제 출수할지 몰랐다. 경계해야 마땅했다.

“……청운검? 곤명의 포위망을 뚫고 왔다고?”

육 장로가 말했다. 위지향을 쳐다보면서다.

“흑룡회 놈들이 놓친 모양이구나. 잘 되었다. 일 장로가 좋아하겠어. 교를 통틀어서 종주님의 은혜를 입은 청목족은 일 장로 하나 뿐이거든.”

“…….”

위지향은 경멸하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촤악!

돌연 피육이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점창파 대장로가 앞을 가로막고 있던 혈귀를 베어넘긴 것이다.

서연이 아군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더는 탈출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맙소.

전음을 보내면서다. 적을 베면서도 서연을 돌아보며 고개를 짧게 숙였다.

서연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등 뒤에서 다시금 전투가 벌어졌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간의 전투다.

“문주님, 저도 대장로께 합류하겠습니다.”

“……네.”

위지향은 검진의 맨 뒤에 자리했다. 검을 내뻗을 때마다 공기가 압축되는 듯했다. 찰나에 혈귀들의 등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냈다.

푸화확―!

“크아악!”

혈귀들이 고통어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음에도, 육 장로는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했다.

“슬슬 근육을 움직이기도 벅차지? 너 정도면 장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내버려두지는 않을거야. 평생 발을 핥게 해 주겠어.”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 속의 쥘부채를 잡은 다음, 불쑥 입술을 뗐다.

“육 장로까지도 할만하구나.”

뜬금없는 말이다. 육 장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종주와 동급의 고수가 아닌 이상, 혈공 진기를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그때였다.

돌연 서연의 기세가 변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하던 세상이 도화로 물들었다.

화아아악―!

겉보기엔 아름다웠으나, 적에게는 사신이나 다름없는 기운이었다.

“……!”

순간 육 장로의 신형이 움직였다. 체면을 뒤로하고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장을 물러났다. 혈공 진기가 더해진 경신법 덕이었다.

허나 땅을 딛고 착지하는 순간, 복부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어느 틈에!

전조도 없이 잘려나갔다. 찰나에 결심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필시 신체부위가 날아갔으리라.

상처부위가 끓어오르며 순식간에 아물었다. 혈공 진기 특유의 재생력이 발현한 것이다.

육 장로의 얼굴이 다시금 안도를 되찾았다.

신녀문주는 처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주화입마에 가까운 몸 상태에서 억지로 일격을 가한 것이 분명했다.

먹잇감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탈바꿈했다. 육 장로의 손톱 끝이 짙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쉽겠구나. 종주의 일격을 받아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당했겠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렴.”

육 장로가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로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쿨럭―!

돌연 육 장로가 피를 토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면서다.

손톱을 물들이던 핏빛 경파가 본래의 색을 잃고 흐릿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음혈종주의 독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맞나?”

반신불수나 다름없어야 할 신녀문주가 오연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육 장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폭급한 진기가 전신을 마구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육 장로는 당황하는 대신 전신을 저미는 듯한 통증을 감내하면서 양 발에 공력을 터뜨렸다.

콱!

땅을 거칠게 딛고 뒤로 물러났다. 사방으로 전음을 퍼뜨리면서다.

본 종의 고위층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혈공 진기의 핵심 구결을 알고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촤아아악―!

신녀문주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굵직한 나무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육 장로는 뒤편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신녀문주를 막기 위해 달려들던 혈귀들이 눈빛이 본래의 색을 잃고 새까맣게 죽는 것을 목도했다.

‘흡성대법까지……!

육 장로는 두려움과 공황 섞인 얼굴로 달렸다. 새하얗던 얼굴에 극심한 두려움이 어렸다.

도주하는 와중에도 현묘한 보법을 밟으며 뒤편으로 삭풍을 쏘아보냈다. 그랬기에 타인의 눈에는 육 장로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유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수한 혈귀들을 방패로 사용했음에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육 장로의 움직임이 더욱 다급해지던 순간이었다.

탁.

신녀문주가 걸음을 멈췄다.

‘어찌하여…….

문득 시선을 돌린 육 장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새빨간 장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가 앞에 서 있었다. 근처에 쌓인 눈보다도 창백한 피부를 가진 탓에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종주!”

육 장로가 경외가 담긴 얼굴로 말했다. 도주했다는 사실을 문책당할 염려는 없었다. 신녀문주 정도 되는 공력의 소유자라면, 필히 종주에게도 큰 영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을 받아야 옳았다. 본 종에 배신자가 숨어있다는 사실도 알아냈기 때문이다.

쩌저적―!

아직도 점창 산문에서는 격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흑룡회주와 점창 장문인이 혈투를 이어나가고 있는 탓이다.

음혈종주는 육 장로와 그녀를 뒤쫓던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점창과는 다른 종류의 도기가 느껴져 찾아왔거늘.”

“종주, 본 종에 배신자가 있는 듯해요. 저 자가 흡성대법을 사용하는 것을 제가 보았어요.”

육 장로가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음혈종주의 균형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점창 장문인과 손속을 겨루고 온 사람답지 않았다.

이대 일의 승부였다. 기파가 정돈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점창 장문인의 동귀어진을 각오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승패가 갈렸을 따름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우기 위해 흑룡회주에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 네 진기로 그것을 갈음해야겠구나."

음혈종주가 말했다.

"죽이지는 않겠다. 물어야 할 것이 많으니. 내 직접 은혜를 내려주도록 하마.”

음혈종주의 주변을 덮은 그림자가 거대하게 일렁거렸다.

그림자 자체가 불꽃이라도 된 듯했다. 어둠을 완전히 제 수족처럼 부리고 있었다.

“…….”

서연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혈귀들을 일일이 제압하며 나아오느라 단번에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대적 불가의 요괴에 가깝다는 팔천의 종주와 겨뤄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주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였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강자들을 상대로 어찌 도주할 수 있을까.

초장부터 전력을 내보이고 자그마한 상처라도 입히는 것이 최선일 듯했다.

‘아직 제자들에게 심법도 알려주지 못했거늘.

미완성본이라도 일러줄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가장 빠른 초식으로.

파풍유영을 전력으로 펼치기 위해 쥘부채를 쥔 순간이었다.

“……?”

서연이 묘한 얼굴로 음혈종주를 응시했다.

허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누가 보아도 초고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태였다. 제게 좋은 쪽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부채가 고장났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전력으로 가야 옳다.

전신 혈도에 탈력감이 들 정도로 진기를 주입했다. 전력을 발휘하기 위함이다.

잔향검을 쥔 손이 세차게 떨렸다. 한계까지 진기를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음혈종주는 뒷짐을 진 채로 서연을 쳐다보았다. 그 정도 되는 고수는 상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경파만으로도 다음 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초식을 어림짐작하며 반격초를 고민했다. 초고수에게만 허락되는 기예였다.

‘종남 출신인 듯 한데. 법력도 섞여있으니 묘하다. 천명검의 숨겨진 대주라도 되는가.

그때였다.

순간 시야가 비틀렸다. 좌안과 우안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음혈종주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다.

시야가 갈수록 좌우로 길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희끄무레한 검광이 번뜩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초고수의 통찰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쾌검이다. 빛살이 일기도 전에 베였다.

오죽했으면 동작이 뒤이어 보일 정도였다.

쩌어어어어억―!

검격을 중심으로 넓은 충격파가 터져나간 것은 그 다음이었다. 대지에 반듯한 실선이 생겨났다.

음혈종주는 그제서야 제 신체가 좌우로 분리되었음을 깨달았다.

‘……!

툭.

처참하게 잘려나간 육체가 떨어졌다. 검격이 오죽 빨랐던 탓인지, 육 장로는 참극을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조, 종주……?”

적의 앞이라는 사실도 잊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음혈종주는 혈귀들의 현인신이기에, 핏물 한점으로도 능히 되살아날 수 있다. 좌우로 잘려나갔을 뿐인 육체가 핏물로 화하여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되살아나지 않는가.

감당할 수 없는 적임을 직감하고 도주한 것이다. 누구라도 믿기 힘들 일이었다.

“……가짜였군.”

신녀문주의 음성이 울렸다. 완전히 땅 속으로 스며든 핏물을 지켜보면서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