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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파 장문제자는 흐트러진 진기를 애써 가다듬었다. 암담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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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게도 묶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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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할 수 없다. 위지향은 꺾인 손목을 보며 그렇게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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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족 특유의 억센 육체 덕에 근맥까지는 상하지 않았지만, 시급히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검을 쥘 때 불편함을 겪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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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들이 곤란함을 겪는다기에 실력이 뛰어난 사질들을 끌고 곤명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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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운남에 구파는 점창 하나 뿐이었다. 홀로 두 도시를 도맡아 수호하는 장로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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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제자 위지향은 대도시인 곤명을 맡았다. 점창에 우호적인 문파가 많아 상대적으로 지키기 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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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관군도 자리하고 있었다. 사마외도가 감히 침범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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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본산을 공격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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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산에서 급히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음혈종이 점창산 본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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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과 장문제자인 자신마저 본산에서 수백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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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히 채비했다. 최단거리로 경공을 펼쳐 나아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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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곳에 매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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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은 전쟁에 급히 투입되어 대부분이 자리를 비웠고, 심지어 곤명 부윤마저 갑자기 북경에 차출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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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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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도 사마외도의 지척에 놓인 위치에 자리하던 점창이었다. 혹독한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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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물러서지 않는 법을 배웠고, 목숨을 도외시하고 찌르는 각오를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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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산제자 다섯이서 흑룡회 산하 문파들의 합공을 버텨냈다. 위지향은 그동안 문주 셋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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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검(靑雲劍)이었던 별호에 마(魔)가 붙었다. 그만큼 처절하게 싸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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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의 제자들은 도망치는 것을 수치라 여겼다. 목을 베이더라도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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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흑룡회 무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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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이 괜히 예우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제자 다섯이서 사흘을 버티다니. 죽음조차 미덕으로 여기는 광인들이다. 사로잡는 것을 수치로 받아들일테니, 계속 몰아붙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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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과 사질들은 하루를 더 버텼다. 출혈을 견디지 못한 사질 둘이 절명했을 무렵에야 비로소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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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할 수 있으니 재갈을 물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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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의 제자들은 자진하지 않는다. 이빨로 사파 잡것들의 목을 뜯으면 뜯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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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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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의 입에 재갈이 물린 것은 그런 연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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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있는 동안 무려 세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 고통에 겨워하는 사질들을 돌봐야 했다. 청목족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신체 덕에 자신은 상황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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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인은 괜찮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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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간수들이 조롱하기 위해 찾아오고는 했다. 덕분에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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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주와 일대일이었다면 이리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파의 장문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고수가 바로 점창 장문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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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음혈종주까지 나섰다. 절세고수가 아닌 이상 팔천 종주들의 합공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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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인이라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데려가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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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혈종주는 재생의 공능을 가지고 있으니, 흑룡회주를 노리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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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며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비천도문의 뇌옥이었다. 뇌옥 반대편에 사질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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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내려다보는 자들의 얼굴에 조소와 분노가 서려 있다. 족히 스무 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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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유독 큼지막한 도를 든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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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도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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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 산하 문파의 문주가 내뿜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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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風魔羅刹刀)가 산하 문파의 문주로 위장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대책을 세웠을 텐데. 너무 무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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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주의 오른팔이라던 풍마나찰도가 자신의 신분까지 숨겨가며 자신을 노릴 줄은 몰랐다. 그 탓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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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의 상태에서도 백 합을 견디기 힘든 상대였는데, 진기를 모조리 소모한 상태에서 버틸 수 있을 수가 없었다. 일검에 자세가 무너지고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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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을 풀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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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가 입을 뗐다. 뇌옥 한켠에 갇혀 있는 어린 아이들을 가리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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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파 속가의 입문제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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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은 본래 점창의 영역이었다. 성도인 곤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로잡힌 속가의 어린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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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의 본산제자들이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듣고 나선 협의지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풍마나찰도의 손에 고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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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외도답게 나이가 찬 무인들을 손쉽게 몰살했다. 다만 어린아이들은 살려두었다. 갑자기 연민이 생겨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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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검(兩儀劍)의 구결을 한 줄 말할 때마다 다섯을 놓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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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자체를 저울대에 올려 점창의 무인들을 조롱했다. 구결을 읊으면 실제로 풀어주었다. 한 번 놓은 아이들을 다시 사로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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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흑룡회주의 오른팔이었다. 속이는 것을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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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잡배 주제에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 역겨웠다. 위지향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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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발설하는 척 비천십이표(飛天十二飄)로 귀를 물어뜯을까. 이문혈(耳门穴)이 통째로 날아가면 균형이 흔들릴텐데. 그리하면 본파의 장로님들께서 상대하기 수월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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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상대를 어찌 상대할지를 고민했다. 목숨마저 판돈으로 올려 목적을 이루려는 점창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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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은 고개를 뇌옥에 처박은 채로 문댔다. 재갈을 벗기 위함이다. 간수들이 다가와서 막아세우려는 찰나, 풍마나찰도가 손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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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질들을 대신해 구결을 읊기라도 할 모양이다. 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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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짓이 어지간히 없나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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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을 벗겨낸 위지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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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거기 앉아 있으면 내가 사일검법(射日劍法)의 묘리를 불기라도 할 것 같나? 사질들은 정이 많아 어린아이의 목숨과 본문의 비전 중에 후자를 택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죽으면 죽었지. 굳이 사일검법을 견식하고 싶으면 결박부터 풀어. 네 머리에 직접 구멍을 뚫어 장식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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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 제 처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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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풀어주거라. 대신 일도를 견뎌내지 못할 때마다 점창 속가 하나를 멸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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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이 피식 웃었다. 한 문파의 멸문을 제 탓으로 떠넘기는 언행이 참으로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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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동귀어진의 각오로 나선다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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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사일검법의 묘리를 알기 전까지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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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정도는 잘리겠지만, 그 정도면 이득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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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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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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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전음이 들려왔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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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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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특유의 직감을 믿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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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허나 다음 순간, 간수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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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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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간수들의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아하니 수면독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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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이라는 것은 눈으로 구분할 수 있기 마련. 무색 무취의 독을 사용한다면 분명 보통 실력자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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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풍마나찰도가 미간을 좁히면서 허리춤의 대도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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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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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줄기가 번뜩였다. 두꺼운 철문으로 만들어진 뇌옥의 출입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위지향이 한 번도 견뎌내지 못했던 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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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풍마나찰도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얼굴로 철문 너머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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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은 아닌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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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수면독으로 가득한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진기를 사방으로 퍼뜨려 독에 저항한 것이다. 일가를 이룬 내가고수나 펼칠 법한 기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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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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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철문 뒤에서 장포를 입은 여인이 걸어나왔다. 풍기는 기운을 보아하니 도사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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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땅이 지근거리였으니, 청성파의 도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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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비천도문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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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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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사가 그리 말했다. 손에는 명검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검이 세찬 검파를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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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가 흉흉한 표정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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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홀로 고강한 줄 아는구나. 눈높이부터 고쳐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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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가 대도를 높이 치켜든 다음 그대로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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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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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고 있는 기세가 어찌나 거센지, 복도째 반으로 갈라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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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기파가 차오르며 흙먼지가 차올랐다. 천장이 훤히 드러나며 푸른 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뇌옥을 가득 메웠던 독기 또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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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이 아니구나. 믿는 구석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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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는 흙먼지 너머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독 기운을 전부 날려보냈음에도 수하들이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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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만한 독이라면 여기까지 별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잠입한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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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이 몸의 도격을 두 번이나 막아내다니. 점창의 애송이보다는 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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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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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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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속에서 여도사의 발소리가 선명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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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사는 한 손으로 풍마나찰도의 대도를 받아냈다. 용력이 타고났는지, 검을 쥔 팔이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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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잡것들은 하나같이 말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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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쥘부채를 쥔 여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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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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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대기가 흐릿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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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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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스러운 대치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풍마나찰도를 앞에 두고 저만한 기세를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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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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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시 위지향의 귓전에 전음이 울렸다. 일전에 숨을 참으라고 말했던 이와 같은 사람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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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나려타곤이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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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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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줄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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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서 쏟아진 천잠사(天蠶絲)가 포승줄을 베어버리고 다시 돌아갔다. 은잠사 끝에는 자그마한 비도가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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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새끼가 들어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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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가 말했다. 천잠사가 들어왔던 창을 쳐다보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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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치기도 전에 참격을 내지르고 있었다. 파도가 너울지듯 벽이 그대로 갈라졌다. 마치 종이를 찢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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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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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중간쯤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복도 끝에 서있던 여인이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 참격을 막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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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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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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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의 미간이 더 흉악해질 수 없을 만큼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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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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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려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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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가 살아있는 것처럼 늘어지더니, 위지향의 육신을 휘감았다. 다음 순간 위지향의 육신이 하늘을 날았다. 던져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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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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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천잠사가 날아와 몸을 붙잡은 덕에 꼴사납게 추락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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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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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웬 짐승이 사질들을 물고 나타났다. 어찌나 빠른지 신형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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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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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의 복식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약을 건넸다. 원기를 북돋우는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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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히 약을 받아 삼킨 위지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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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도문주가 아닙니다. 저 자는 풍마나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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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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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사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솟구친 진기가 정면으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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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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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마나찰도의 전신이 뒤로 밀려나갔다. 어찌나 거칠게 밀려났던지 양 발이 흙 속에 파묻힐 정도였다. 대도로 막았는데도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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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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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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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 번을 막았으니, 너도 세 번을 막아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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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기파가 풍마나찰도의 기파를 거칠게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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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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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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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기운을 머금은 검이 위로 들어올려졌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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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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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잔향검이 벼락처럼 내리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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