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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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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이어진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서자, 수십 개의 문이 늘어선 복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없는 것을 묻는 것이 빠르다는 당자헌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복도를 채운 보물들은 각양각색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종류를 불문하고 세 가지를 가져가시오.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면 답해드리리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 영약도 있습니까?”

영약만큼 내공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여태껏 내공의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었으나, 이번 기회에 하나쯤 얻어두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사천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당문의 보고다. 암단화 정도 되는 영약도 선뜻 내줄 정도라면, 그보다 더한 것이 하나쯤 있을 법도 했다.

허나 이어진 당자헌의 말은 서연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공청석유(空淸石乳)가 있소.”

“……예?”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빙공 영약의 왕이 만년설삼(萬年雪蔘)이고, 열양공 영약의 왕이 만년화리(萬年火鯉)라면, 공청석유는 일반 무공을 익힌 자들의 왕 자리를 차지하는 지고의 영약이었다.

극도로 정순한 자연지기를 품고 있어 마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내공을 얻을 수 있고, 자칫 음양의 균형이 뒤틀려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다른 영약들과는 달리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영약이었다.

당연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신물이었다.

서연은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귀한 것을 주셔도 되는 겁니까?”

“딸아이의 목숨보다는 싼 값이오.”

당자헌은 망설임 없이 한 금고로 다가섰다. 그가 내기를 불어넣자, 거대한 금고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금고 안에는 자그마한 약병이 있었는데, 그 안에 공청석유가 담겨 있는 듯했다.

곧 약병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 했다. 진기로 만물을 움직이는 경지였다.

서연은 제 손에 놓인 약병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 두 가지 남았소.”

서연은 진심으로 놀랐다. 대인배라 불릴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기쁨보다는 양심의 가책이 먼저 들었다.

허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당자헌 본인이 딸아이의 목숨보다는 싼 값이라 했다. 여기서 자신이 머뭇거린다면, 당소소의 목숨을 공청석유의 값어치보다 못하게 여기는 꼴이 될 터였다.

검은 필요 없었다. 산정 장인에게 이미 맡겨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어구가 낫겠다.

제자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어쩌면 당소소까지 보살펴야 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당소소의 동행을 거절하려 했으나, 이미 공청석유를 받아버린 이상 그렇게 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공청석유를 받아놓고도 입을 싹 닫는다? 인간 거죽을 둘러쓴 짐승이나 마찬가지리라.

그러므로 방어구였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지켜야 할 일이 자주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칼이 잘 들지 않는 옷도 있습니까?”

“인면지주(人面蜘主)의 실과 천잠사(天蠶絲)를 엮어 만든 장포가 있소. 진기가 실리지 않은 도검은 감히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오.”

당자헌이 입고 있는 장포 또한 그러한 종류였다. 그는 직접 보여주려는 듯 장포에 진기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장포의 끝자락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소.”

당자헌이 손짓하자, 힘없어 보이던 천 조각이 채찍처럼 쏘아져 나갔다. 힘을 더 싣자 단단하고 빠른 둔기가 되기도 했다.

콰앙!

서연은 펄럭이는 장포에 직격당해 처참하게 무너진 벽면을 응시했다. 단순히 옷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

더는 놀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서연은 어느새 제 손에 홀연히 놓인 흰 장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하나 남았소.”

더 얻을 것이 남아 있을까? 이곳에는 사천당문의 비급 뿐만 아니라, 이렇다할 검법과 심법도 있었다. 허나 필요치 않았다.

종남의 검법, 연화비영보, 비연천공, 편린이기는 하나 점창의 검법까지 알고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연의 고민이 길어지자, 당자헌이 입을 열었다.

“철영 장인에게 들었소. 은공은 살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맞습니다.”

“음.”

겉으로 보이는 당자헌의 표정은 복잡하고 미묘했다. 무림인으로서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원한을 가진 자를 살려두면 언젠가 반드시 후환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불살을 내세우는 소림조차도 이따금 살계를 열겠는가. 허나 당자헌은 서연의 사연을 묻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적당한 물건을 물색했다. 순전히 은혜에 대한 호의만은 아니었다. 서연이 안전할수록 제 딸아이 또한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절시키는 독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약은 딸아이도 만들 수 있었다. 사천당문의 직계인 그녀는 독인의 경지에 올라 눈을 감고도 신체의 도해(圖解)를 엿볼 정도. 수십 년 의술을 익힌 의원보다 나을 터였다.

정보 또한 마찬가지였다. 타고난 성품 탓에 위험한 곳으로 향할 것 같지도 않았고, 욕심이 적어 장보도 같은 것에 눈이 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 당자헌의 시선이 서랍 속의 쥘부채에 머물렀다. 절세고수였던 조부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영목으로 만들어져 무기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지만,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초대 가주께서 남만의 청목족에게 받은 것으로, 바람의 영성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저보다 강적을 만났을 때 저절로 떨려 위험을 알려준다고 들었다.

당연히 당자헌도 사용해 보았지만,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였던 전대 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 보고에 보관된 채 잊혀 있었다.

“이것을 한 번 들어 보시겠소?”

서연은 머뭇거리다 손을 내밀어 쥘부채를 건네받았다. 그동안 받았던 것들에 비하면 평범해 보였기에, 상대적으로 덜 긴장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화아아악!

서연의 손이 닿자마자 강렬한 바람이 몰아쳤다. 몸을 감싼 장포가 세차게 펄럭였다.

지켜보던 당자헌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가주의 자리에 오른 이후 한 번도 평정을 잃지 않았던 그답지 않았다.

무학을 극성까지 익힌 무인의 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소리를 낸다. 그것을 검명이라고 한다. 허나 당자헌은 쥘부채가 저리 크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허……!”

그의 경악 어린 목소리마저 쥘부채의 울림에 묻혀버릴 정도였다.

서연은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다.

쥘부채를 잡는 순간 깨달았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금방이라도 창공에 오를 수 있을 것처럼 전신이 가벼워졌다.

‘바람인가?

본래 다루기 억센 물건이었다. 청목족들이 신성시하는 영목으로 만들어진 탓이었다.

자연지기를 자유로히 다루는 청목족의 옛 왕족들이 사용할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탓에, 상대가 절세고수라고 한들 쉬이 제 힘을 내어주지 않았다.

허나.

‘가만히.

우웅.

서연이 진기를 불어넣기 무섭게 묘한 진동음을 발하며 순한 양처럼 굴었다. 서연의 전신을 타고 맥동하는 막대한 자연지기를 느꼈던 탓이다.

우우웅-!

수십 년 만에 부모와 재회한 아이처럼 울어댔다. 애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며 보고를 순식간에 어지럽혔다. 오직 서연의 주변만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당자헌은 몸 위를 두르고 있는 호신강기를 강하게 때리는 바람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마치 칼날 같았다.

아주 어렸을 적, 조부가 이 부채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기껏해야 작은 산들바람을 일으켰을 뿐이었으나, 조부는 그 산들바람만으로도 허공답보(虛空踏步)를 펼치곤 했다.

헌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폭풍……?

이 자리에 자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였다면 사천당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모아온 보물들이 전부 망가졌으리라.

그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당자헌은 미간을 좁히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폭풍에 휩쓸려 회오리치던 물건들이 바람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당자헌의 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수백 개가 넘는 물건들이 원래 있던 위치에 질서정연하게 쌓였다. 폭풍 속에서도 진기를 자유로이 펼칠 정도로 세밀한 진기 운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으음……!”

허나 폭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폭풍 한가운데에 있는 서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강제로라도 개입해야 하는가.

당자헌이 그렇게 판단하고 출수하려던 찰나였다.

화악!

폭풍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것이 환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쥘부채를 든 채 지상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서연의 모습 덕분이었다.

그새 갈아입기라도 한 것일까. 서연은 어느새 당자헌이 건넸던 흰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옷소매가 긴 탓에 유독 나풀거림이 심했는데, 그조차도 우아하게 느껴졌다.

서연이 땅바닥에 착지하기 무섭게 사방에서 잔잔한 바람이 흘러나왔는데, 어째서인지 도화색처럼 보였다. 바람에 색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당자헌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서연에게로 다가갔다. 서연은 쥘부채를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찌 한 것이오……?”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거세지는 바람에 당황하여 쥘부채를 세게 한 번 내리쳤더니 잠잠해졌다. 하지만 기대에 찬 시선을 하는 당가주 앞에서 차마 그런 경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잠시나마 부유했다.

능공허도, 허공답보……. 자유자재로 허공을 디디는 고수들이 어떠한 심정인지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당문의 보고에 있는 것 중에 가장 귀물일지도 모르겠다.

우웅…….

쥘부채는 여전히 울어댔는데, 세게 얻어맞은 탓인지 이전보다 그 울음소리가 초라했다.

“…….”

당자헌도 그 미묘한 울음을 느꼈다. 절세고수였던 조부의 손에서도 반항을 일삼던 쥘부채가 순한 양처럼 굴고 있었다.

‘……여인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나?

억지로나마 그렇게 이해했다. 명색이 팔가의 가주였다. 금세 정신을 갈무리했다.

“공청석유도 이 자리에서 섭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본 가주가 운기를 도울 테니, 은인께서는 안심하시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사천당문이 서연에게 쏟은 성의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서연은 가부좌를 트는 중에도 과분함을 느꼈다. 이쯤 되니 오히려 자신이 당소소를 모셔야 할 판이었다.

“대주천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신 세맥의 흐름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소. 운기가 불안정해지면 개입할 것이니, 손이 닿아도 너무 놀라지 마시오.”

서연은 약병의 뚜껑을 따고 공청석유를 입에 흘려 넣었다. 우유와 같은 맛이 느껴졌는데, 삼키자마자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본래라면 극상의 영약을 섭취한 순간 전신의 혈도가 자극을 받아 울렁거려야 했으나.

‘뭐지.

혈도가 간지러운 느낌만 잠깐 들더니, 공청석유의 기운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전신 혈도가 진작에 자연과 동화된 탓이었다. 아무리 공청석유가 정순한 자연지기의 집합이라 해도, 서연의 육신에는 미치지 못했다.

초고수가 하품 영약을 아무리 먹어도 내공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운기를 시작하면 말씀하시오.”

당자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서연이 아직 공청석유를 입에 머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당 가주님.”

운기 중에 대놓고 입을 열었다. 급박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착각한 당자헌이 다급히 서연의 등허리에 손을 올렸다.

“진기도인을 돕겠소. 입을 다무시오.”

당자헌은 다급히 서연의 전신 근육과 혈도에 진기를 흘려 넣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무슨……!

당자헌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이고 서연의 육신을 다시 살피고 나서야 침음을 흘렸다.

‘천무지체(天武肢體)라도 되는가?

극음과 극양, 삼재, 오행, 태극의 모든 기운이 있어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모든 무공을 조화롭게 익힐 수 있었다.

그뿐이랴. 무공의 이해도가 남달라 얼핏 본 것만으로도 형을 따라할 수 있는 신체라 했다.

당자헌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서연의 육신에는 불순물이 일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진기가 불순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처없이 서연의 체내를 주유하던 공청석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청석유는 당자헌의 진기를 느끼기 무섭게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살길을 찾아 맹렬히 질주했다.

!

공청석유의 기운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당자헌의 육신으로 흘러들어갔다.

진기도인을 하려던 당자헌은 졸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대주천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앉은 채로 한 시진이 지날 무렵, 당자헌은 겨우 호흡을 다잡고 눈을 떴다.

공청석유의 막대한 내공을 온전히 흡수했다.

“……이, 이게 대체.”

그는 완전히 이해를 포기한 사람의 얼굴을 한 채로 서연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