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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唐紫軒)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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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를 한 사내가 말했다. 녹빛 비단 장포에서 묘한 위압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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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눈빛이 그러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였으나, 독공을 극성까지 익힌 탓인지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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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손은 달랐다.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오랜 단련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어 왜인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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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정리한 수염도 그러한 느낌을 주는 데 한몫했다. 사람 자체가 한 자루의 날 선 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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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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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장인에게 검을 맡기고 곧장 가주전으로 향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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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먼 거리에서 당소소에게 전음을 보냈다고 했다. 천하에 내로라하는 팔대세가의 가주답게 그의 내공 또한 깊고 심후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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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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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주 서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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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일전에 당소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쓸데없이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었던가. 그 말은 확실히 틀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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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깜짝하지 않고 수천을 학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도저히 정이 많은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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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주는 이만 물러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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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태사의에서 앉은 채로 손님을 마주한다고 했다. 허나 은공인 서연을 그리 마주할 수 없었기에, 당자헌은 선 채로 서연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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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보아도 키가 여섯 척은 훌쩍 넘어보였다. 여태 일행 중에서 가장 키가 큰 것은 팽무성이었는데, 당자헌은 그런 팽무성보다 키가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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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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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성은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뻣뻣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물러났다. 이 자리에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오직 당소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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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평소와 달리 입매를 비튼 채였다. 부끄러움과 분노가 얼굴에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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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그런 당소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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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많아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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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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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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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기다렸다는 듯 당소소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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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한 수적들도 손님을 맞이할 때는 앉힐 자리부터 준비합니다. 저는 당연히 은공을 영빈당에서 맞이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가주전이라니요. 은공을 상대로 가주의 위엄을 드러내어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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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위엄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태사의에 앉은 채로 맞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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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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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이 시종들에게 손짓했다. 곧 시종들이 기다렸다는 듯 의자와 탁자를 날랐다. 전부 영빈당에서 보았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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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정중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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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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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일행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다 의자에 앉았다. 당자헌 또한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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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이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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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말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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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은공을 모시고 본가로 복귀하는 것을 뻔히 아셨으면서 패검대주를 먼저 뵈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천명검의 대주라고 한들, 본가 직계의 목숨보다 중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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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패검대주를 먼저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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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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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라비가 임무 중에 해를 입었다. 사경을 헤매고 있다더군. 아무리 가문의 의무를 등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내 아들이다. 패검대주가 나서지 않았으면 필히 목숨을 잃었을 터, 그렇기에 그를 먼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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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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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말투에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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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일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은공을 모셔놓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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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시선을 돌려 서연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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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천천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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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검의 단주가 신묘한 검술로 첫째를 현혹한 것이 불과 오년 전의 일이오. 그에 이어 독녀까지 출가한다 하니, 아비로서 견디기 쉽지 않았소. 그 탓에 가주답지 않은 언행을 보였지. 용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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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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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말에 서연이 당황했다. 사천당문의 독녀라 함은 당소소를 의미할 터.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왜 출가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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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의 시선이 다시금 당소소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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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착각한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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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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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의 얼굴에 당혹이 맺혔다. 설마 이리 빠르게 속내를 들킬 줄은 몰랐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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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조용한 장소에서 독대하여 따로 말씀드리려 했다. 상황이 이리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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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외양에 가려졌을 뿐이지, 명문세가의 가주답지 않게 정이 많으신 분이다. 아무리 은공이라고 한들, 독녀가 가문을 떠나가도록 일조했으니 좋게 보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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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선 채로 대질했다. 가주이기 전에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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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떠날 생각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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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께서 떠나실 때 함께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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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 되자 서연도 돌아가는 상황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다만 부녀의 일인 것 같았기에 지켜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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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제대로 설명도 드리지 않은 모양이구나. 거절하시면 어찌하려 그랬느냐. 억지로 따라가려 했더냐? 은공에게 짐이 되는 것이 네가 은혜를 갚는 방법이었더냐. 그런 것이라면 내 너를 단단히 잘못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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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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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하라 명했던 암단화를 영약으로 가공하여 전할 수 있는 것도, 산정 장인에게 검을 만들어달라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네가 본가의 직계여서 가능한 것이다. 출가하려던 주제에 가문의 것을 마음놓고 사용하려던 네 알량한 마음가짐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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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의 녹색 눈동자가 곧 당소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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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물러가도록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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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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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소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곧 드넓은 가주전에는 서연과 당자헌 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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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들이 차를 들고 올 때까지 침묵은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자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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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일 꼴을 보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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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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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영빈당에서 모시려 했소. 첫째의 일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내부를 더럽혔지. 급히 가주전으로 모실 수 밖에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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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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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가주다. 자세를 낮추고 사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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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랴. 어느 날 갑자기 화련이 처음 보는 남자아이를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서연 자신도 당자헌과 똑같이 반응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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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당자헌은 친딸이었고, 몇 년 전에는 전 소가주였던 큰아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빼앗겼던 경험도 있었다. 게다가 의자를 치운 것도 본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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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대인배나 다름없었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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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아가씨가 저를 따라오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헌데 저로서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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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당소소가 스스로를 소소라 불러도 된다고 말했으나, 당문의 가주 앞에서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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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라. 은공에게서 제 목숨으로도 갚을 수 없는 무언가를 엿보았을 것이오. 필시 그러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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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사천당문의 모든 무학을 자유로히 익힐 수 있었으나, 만천화우만은 예외였다. 그것은 가문의 후계자만 익힐 수 있는 신공절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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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또한 후계자였을 때는 만천화우를 익혔으나, 천명검으로 떠나가며 만천화우를 잃었다. 천하에 내로라하는 방술사들의 도움을 받아 뇌리에 새겨진 묘리를 지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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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딸아이는 독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막내와 첫째보다 빠르게 독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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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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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서연을 살폈다. 분명 검수라 했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줬기에 딸아이가 저리 매료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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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천명검단주의 검격에 홀렸던 것은, 무에 대한 첫째의 욕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무림을 징치한다는 집단의 수장이다. 능히 천하를 논할 만한 검격에 첫째는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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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천당문의 무공 또한 절세의 무공이었다. 초대 가주께서도 절세 고수였고, 전전대 가주께서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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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보내주십시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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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말에 당자헌은 끝내 장남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당자헌은 천하에 내로라할 고수 중 하나였지만, 대종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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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내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가문의 안위를 중히 여겼다는 점이다. 그 점이 당자헌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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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인의 경지에 오르면 세상을 한없이 느리게 볼 수 있소. 천고의 안법보다도 더한 통찰을 지니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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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 말을 듣고 당소소가 보았던 무언가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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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비영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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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한 신선의 보법이다. 당자헌의 말을 들어보니 당소소라면 충분히 그 묘리를 읽을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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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노하였겠으나, 서연은 일반적인 무림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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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에게 가르치고 있는 보법이었다. 다른 이의 관점에서 설명을 듣는다면 제자를 가르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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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가는 것이 있나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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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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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그거면 되었다는 고개만 끄덕일뿐, 더 캐묻지 않았다. 은공에게 이러한 것을 캐묻는 것 자체가 무례라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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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은공을 따라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본 가주가 막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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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막는다 하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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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령을 내려 폐관에 들게 할 것이오. 은공이 떠날 때까지 바깥을 보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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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다. 허나 다른 말로 하면 그 정도로 대응하지 않으면 당소소가 따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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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미를 닮아 고집이 아주 강하오. 내버려두면 은공을 몰래 뒤따르며 은혜를 갚을 방법을 홀로 강구하겠지. 그럴 바에는 이 편이 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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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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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워 보이니 문답은 그만하리다. 가문의 모두에게 은공을 직계와 동등히 대하라 명했으니, 사천 땅에서 불편함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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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그렇게 말하며 서연을 응시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심성이 선한 여인이라는 것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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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서연이 딸아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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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자헌은 딸아이가 본가에 남기를 바랬으나, 그렇게 된다면 딸아이가 큰 상심에 빠지게 될 것은 당연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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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욕심으로 딸아이와 멀어질 바에는, 차라리 호의를 베푸는 것이 낫다는 것을 당자헌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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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관에 들게 하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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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은공을 따라가려 할 것이오. 어쩌면 시종처럼 부려달라며 납작 엎드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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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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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여식을 시종으로 부린다라. 이상한 소문이 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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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해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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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믿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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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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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네가 직접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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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로서 할 만큼 했다. 나머지는 딸아이가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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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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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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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순순히 그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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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디로 가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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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의 보고(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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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가문의 보고다. 천문학적인 가치의 보물들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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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무엇을 받을지 생각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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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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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은 등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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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헌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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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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