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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곧바로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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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하게 제자의 곁을 비웠다가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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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창을 던졌던 산적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등에는 날렵한 형태의 창이 족히 다섯 개는 넘게 매여 있었다. 놀랍게도 손에는 큼지막한 부월(斧鉞)도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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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보기보다 영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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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곁으로 여섯 명의 산적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녹림의 무뢰배답게 제각각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검, 작살, 비도, 그물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커다란 언월도를 든 자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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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드러난 것만 그 정도였다. 섣부른 도발에 넘어가 경거망동했다면 큰 화를 입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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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황태자의 개들 답다. 그리 교란했는데도 기어코 이 깊은 산골까지 찾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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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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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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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반역도로 몰릴 필요가 있을까. 개놈아, 저 여인을 포함해 가진 것을 모두 놓고 가면 너는 살려 보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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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은 커다란 부월을 한 번 튕겨 보였다. 다른 무뢰배들의 무기보다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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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들은 적당히 다가서다, 세 장이 조금 안 되는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입이 거친 것과는 다르게 그들의 눈은 매서웠다. 단순한 잡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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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산적이 아니다. 녹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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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눈빛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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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가며 들었던 소문에 따르면, 녹림의 우두머리 녹왕(綠王)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은 자들만이 부월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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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이 그 소문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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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답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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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의 말에 무엇하러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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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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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정면을 맡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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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이 귓가를 울림과 동시에 팽무성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도가 언월도를 들고 있던 사내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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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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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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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수풀과 나뭇가지 위에서 수십 명의 녹림도가 일제히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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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그물과 비수가 쏟아져 내렸다. 그중에는 자색으로 물든 모래를 뿌리는 자도 있었으니, 독에 절인 모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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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망설임 없이 연화비영보를 펼쳤다. 왼손으로는 화련을 단단히 품에 안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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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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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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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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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고수의 손에 붙들려 보법이 펼쳐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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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라는 것도 온 정신을 감각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헤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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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연화비영보를 익히리라 다짐하며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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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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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서연의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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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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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지 말고 기감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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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새에 후방을 장악한 서연은 유운검법을 펼쳐 한 산적의 양 손목을 단칼에 잘라냈다. 거대한 도를 들고 있던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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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지며 산적의 발등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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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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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비영보는 펼치면 펼칠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신묘한 보법이었다. 고작 네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산적들은 감히 서연의 그림자조차 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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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제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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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몸 성히 돌려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망설임 없이 어린아이부터 노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었다.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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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 죗값을 치르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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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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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막을 펼쳐 사방에서 날아드는 날붙이를 튕겨냈다. 제 손으로 던진 무기에 맞아 피를 뿌리는 산적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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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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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도 칼 맞아 죽는 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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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덩치가 큰 민머리 산적이 앞으로 나섰다. 용력이 심상치 않았는데, 진기를 휘감은 도를 휘두를 때마다 나무가 속절없이 베어 넘어가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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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둘의 진기가 충돌한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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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내력의 차이를 버텨내지 못한 도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서연은 장력을 실은 손을 민머리 사내의 상반신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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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내력을 한순간에 받아들인 사내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더니, 심하게 토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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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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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의 몸이 포탄처럼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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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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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일고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민머리 사내를 잡으려던 산적들 또한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서연은 곧장 다리에 진기를 집중시킨 다음 사뿐히 물러섰다.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창이 깊숙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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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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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창을 던졌던 산적과 같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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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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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자신을 겨냥했다면 백번 양보하여 이해했을 터이나, 저놈은 명백히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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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길게 끌어 좋을 것이 없었다. 서연은 곧장 검을 유려하게 내질렀다. 예상보다 곱절은 빠른 속도에 산적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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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빠르게 몸을 뒤로 젖혀 피하려 했으나, 귓바퀴가 잘려나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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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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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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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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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부월을 하늘로 던져 올린 다음, 부월이 떨어지기 전에 등에 매인 창 두 자루를 뽑아 그대로 투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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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머리를, 다른 하나는 서연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공기가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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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남의 강건함을 체화한 서연이었다. 유려하게 검을 한 번 회전시켜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창을 튕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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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이 어째서 천명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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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하늘에 던져두었던 부월을 잡아채 서연의 머리를 향해 내리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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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연의 태을분광검(太乙分光劍)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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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검으로 이름을 날린 종남의 유일한 쾌검식이다. 거기에 유려한 보법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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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는 소리보다 참격이 먼저였다. 산적이 정신을 차렸을 때, 서연은 이미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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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이 잦아들며 산적의 양팔이 맥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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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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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산중을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도 산적은 발버둥 치며 도주하려 했다. 양팔이 잘린 몸으로도 살 길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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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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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연이 사내의 안면을 내리찍는 것이 더 빨랐다. 어찌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머리통이 땅속으로 반쯤 파묻힐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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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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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분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사내의 얼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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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 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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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은 몇 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고통을 한순간에 느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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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로 압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오. 녹림채주에게 직접 사사한 녹림도는 흔치 않으니. 어쩌면 녹림채주의 은거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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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주변 정리를 마친 팽무성이 다가왔다. 그의 주변에는 간부로 보이는 산적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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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한 칼에 목숨을 잃은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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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실신한 산적의 단전을 파괴했다. 사지의 근맥을 끊는 움직임 또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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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표정이 흐려진 것을 느꼈는지 팽무성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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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주시오. 천명검은 적이 많은지라, 소저처럼 손속이 자비로웠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객사하기 십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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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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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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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관부에 인계하려 했으니, 관인이나 다름없는 팽무성에게 처리를 맡기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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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황태자를 모욕한 죄를 물어, 누구보다 혹독하게 죄의 값을 치르게 할 장본인이 바로 팽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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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역모에 연루된 무림인들은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에 처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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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크시구려. 감사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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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감사를 표한 뒤, 고의적으로 진기를 흘려보내 산적의 정신을 강제로 일깨웠다. 일말의 배려도 없는 패도적인 진기에, 산적은 몇 번이고 토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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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크하아악! 녹왕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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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의 미간이 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근본도 없는 무뢰배들이 감히 왕(王)을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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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무림인들이 지닐 수 있는 별호의 상한선은 존(尊)이라 생각했다. 망령되게 제(帝)나 왕을 입에 담는 무림인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역모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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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공모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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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패검대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된 일에는 분명 녹림의 개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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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영약은 소문만으로도 혈사를 일으키는 법. 패검대로서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에 앞서, 그로 인해 발생할 민초들의 피해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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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파악하자마자 패검대가 석천으로 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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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림 혼자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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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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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도 안했다. 일 각 뒤에 다시 물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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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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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산적의 혈도 몇 곳을 두드렸다. 서연은 특유의 예리한 눈썰미로 팽무성이 짚은 혈자리를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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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맥의 요혈, 교신혈(交信穴), 신문혈(神門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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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산적을 지켜보았다. 곧 산적은 온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처럼 꿈틀거리더니, 이내 이를 딱딱 부딪치며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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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산적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득바득 깨문 입에서는 핏물이 쏟아져 나왔고, 동시에 뼈와 기혈이 뒤틀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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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아혈이 짚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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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을 참지 못한 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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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분근착골(分筋錯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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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살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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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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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수법이라 혹시나 하여 던진 질문이었는데, 팽무성의 얼굴을 보니 아무나 아는 수법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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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니, 고문을 위해 만들어진 수법을 아무나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황실이나 일부 권력자들만 알 법한 기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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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대충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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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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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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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더 캐묻지 않았다. 종남파와 괜한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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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펼치는 검법을 보았다. 녹왕에게 부법을 사사한 산적을 일검에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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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지수라 불릴 수준을 뛰어넘었다. 숨겨진 장문제자라 생각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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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이 지났다. 의기양양했던 산적은 어느새 처량하고 볼품없는 꼴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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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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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을 더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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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겠다.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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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수준의 고통이었다. 단련된 무인이라 할지라도 견뎌낼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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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당가와 공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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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 사천당문(四川唐門)을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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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 흐. 천하에 당가가 그것 말고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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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그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도발하는 산적의 어깨를 잡아채 비틀었다. 기괴한 뼈 꺾이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다시금 비명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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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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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히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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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의 눈빛이 살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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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누구와 접촉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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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 전체가 이번 일에 연루되었다면 이는 패검대 하나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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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으로 가리고 있어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화침(梨花釘)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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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침은 당문의 독문 암기인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는 최소 당가의 직계거나, 그에 준하는 고수가 연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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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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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이다. 빌어먹을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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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산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진위를 가늠하겠다며 분근착골을 다시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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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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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나이가 지긋한 늙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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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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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정말로 없다! 그러니 제발 이제는 죽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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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이 과정을 세 번 더 반복했다. 철저함을 넘어선 집요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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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산적의 육신은 걸레짝처럼 변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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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서연을 돌아보았다. 서연이 제압한 산적이었으니, 그 처우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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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의 관리가 죽일 것을 결정했다. 따라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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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관아로 데려가도 죽을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산적 하나를 호송하러 녕강까지 돌아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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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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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산적의 목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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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소저, 이만 헤어지는 것이 좋겠소. 본관은 암단화가 있는 곳으로 가야할 듯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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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말을 듣고 나니 이 길 끝에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이 버티고 서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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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상대할 바에는 팽무성과 동행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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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겠습니다. 그 편이 더 안전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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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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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사실 내심 서연이 도와주기를 바랬다. 허나 먼저 청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먼저 나서주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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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실력자가 설마 진정 안위를 염려하여 동행을 청하겠는가. 분명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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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이 머지않아 다시 날아오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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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물론이고 인품까지 갖춘 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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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부탁드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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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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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암단화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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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했던 산적도 그 정보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진령산맥 전체를 샅샅이 뒤져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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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과 연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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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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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은빛 올빼미 한 마리가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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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성은 놀란 얼굴로 올빼미를 응시했다. 패검대가 사용하는 은비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고한 기운을 풍겼다. 얼핏 보아도 영물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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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영물이 서연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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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저,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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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와 연이 닿은 아이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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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유혼이 왜 여기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백호도 그렇고, 유혼 또한 자연을 멋대로 배회하다 제멋대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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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유혼이 한쪽 날개를 치켜들었다. 진령산 정상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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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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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방향은 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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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혼은 이번에는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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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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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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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단화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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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유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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