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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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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산은 장안에서 하루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여태껏 보아온 뭇 산들과는 달리 그 산세가 유독 완만한 것이 특징이었다.

“…….”

종남의 도사들은 은연중에 서연과 화련을 힐끔거렸다. 전날 장백신옹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낯설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종남파는 소림처럼 금녀의 전통은 없었으나, 아주 오랫동안 여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입문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들어오려 했던 여제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삼대제자와 이대제자를 통틀어 여인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 때문인지 산문에 여인을 들이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았다.

“그, 서 소저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서 소저께서는 검을 익히신 겁니까?”

“호신용으로 차고 다니는 것에 가깝지요.”

“그렇습니까?”

종남의 제자들이 금세 화색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흠흠, 그러면 저희가 나중에 한 번 검술을 봐드릴까요?”

“그래주시면 고맙죠.”

서연은 작게 웃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그럴만도 했다. 삼대제자는 앳된 소년이고, 이대제자는 소년에서 갓 청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일행은 어느덧 종남산 초입에 당도했다. 산세 자체는 숭산보다 훨씬 완만하여, 그 때문인지 얼마 오르지 않아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입구는 종남의 도사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장로님, 무탈하셨습니까.”

“너희도 별일 없었느냐?”

형식적인 안부인사를 마친 장백신옹이 서연에게 눈짓했다.

“본 장로의 손님이시다.”

“서연이라 합니다. 이 아이는 제가 가르치는 제자고요.”

서연이 포권했다.

현재 분쟁을 겪는 문파도 없고, 더욱이 장로의 귀한 손님이었다. 덕분에 서연은 어떠한 수색도 거치지 않고 종남파로 발걸음을 들일 수 있었다.

“본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서 소저.”

정갈한 느낌의 전각들이 산세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곳곳에 검의 형상을 한 비석이 장엄하게 솟아 있었다는 것이다.

서연의 시선을 느꼈는지 장백신옹이 나지막이 운을 떼듯 설명했다.

“사마련으로부터 본파를 수호한 도사들을 기리기 위해 당대 장문인께서 세우신 것이지. 저 검혼비(劍魂碑) 하나하나가 곧 종남의 혼이라오.”

검혼비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수십 개를 넘어섰으니, 당시 전투의 치열함과 처절함이 능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놀랍게도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검혼비에는 돌 때 하나 피어있지 않았다. 후배 도사들이 선배들의 넋을 기리며 성심껏 관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적지 않은 전각들과 산봉우리를 지나치던 도중이었다.

“빈도는 장문인께 종화지회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러 먼저 가보도록 하겠소. 그동안 본파의 안내는 여기 정혜가 해줄 것이오.”

장백신옹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도사를 가리켰다. 종화지회에 참여했던 도사 중 하나였다. 이대제자들의 대사형이라 했다.

“이대제자 정혜라 합니다. 청풍각(淸風閣)으로 안내할 테니, 부디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종남의 귀한 객들이 머무는 장소라 했다. 과연 그 이름답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누각이 자리해 있었다.

“이곳에 짐을 풀고 편안히 머무시면 됩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정혜 도사님.”

“말씀하십시오, 서 소저.”

“종남산에 검선 여동빈님의 모습을 딴 석상이 있다 들었는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여선검상(呂仙劍像)은 내당에 있어 당장은 보실 수 없는 것으로 압니다. 아마 장로님께서도 그 때문에 장문인을 뵈러 가신 것으로 압니다.”

장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장문인께 허락을 구해야 볼 수 있다니.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평범한 석상이 아닌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때 정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한데, 연무당(練武堂)으로 가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서 소저께 종남의 무공을 알려드릴 수는 없겠으나, 검세를 다듬어드리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헌앙하게 생긴 청년이 왜 안절부절 못하나 했더니 그것 때문에 그랬던 모양이다.

‘좋은 기회겠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무당으로 향했다. 무예를 연마하는 수련장이라는 이름답게, 종남의 어린 도사들이 검법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었다.

허나 어디선가 사박사박 다가오는 서연의 우아한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숨을 죽이는 도사들이 적지 않았다.

“죽립은 벗으시는 편이 더 좋으실 겁니다. 시선이 알맞은 방향으로 향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때, 제 말의 요상함을 알아차린 정혜가 다급히 덧붙였다.

“아, 그……!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절대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불편하면 벗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덧붙여 말했다.

“도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벗는 편이 낫겠지요. 그 대신 그만큼 잘 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장난식으로 덧붙인 말에 정혜의 귓볼이 벌게졌다. 순진한 도사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사락.

서연은 죽립과 면사를 한 번에 벗어냈다.

“아?”

서연의 맨 얼굴을 본 정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장백신옹에게 전후 사정을 전해들은 종남 장문인이 얕게 침음했다.

속세에서 태허진인(太虛眞人)이라 불리는 자였다.

“……절세고수라.”

“일단 검후에게는 그렇게 전해들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으나,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화산의 대장로는 허언을 하지 않을 사람이다. 믿어 손해를 보지는 않을 듯 하구나.”

“사실, 산문에 들이기로 결정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태허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여태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분이다. 다른 의도가 있으셨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들어오시지 않으셨을게다. 나름의 방법으로 허락을 구하셨다고 봐야 옳다.”

절세고수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면이 있다. 무당의 검선은 말할 것도 없고, 남궁가의 가주도 그러했다. 황실의 절세고수도, 마교의 교주도, 심지어는 사마련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반인과는 보는 시선이 아예 다른 이들이다. 정사마가 기이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평범한 무인이 거지 행세를 한다면 정신이 나간 것이지만, 검선이 거지 행세를 하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아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려고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산문 모든 곳을 자유롭게 드나드실 수 있도록 하고, 혹여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제자들에게 엄히 주의를 주도록 하거라.”

“그렇게 말하실 줄 알고 정혜를 붙여두었습니다.”

이대제자들의 대사형 격인 정혜의 품성은 예로부터 유명했다. 그 품성만 보고 제자로 받으려는 장로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선검상을 보러 오셨다고 했으니, 어쩌면 종남의 검을 견식하러 오셨을 수도 있겠다. 뵙기 전에도 종화지회를 구경하고 계셨다고 하지 않았더냐.”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백신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허진인은 장백신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수련도 마음껏 참관하실 수 있도록 하라.”

“장문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디 타인의 무공 수련을 보는 것은 금기시된다. 비무와는 다르게 무공 수련에서는 형과 식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뭇 고수들은 형과 식을 보고 무공을 통찰한다. 파훼식은 물론이거니와, 자칫 무공의 원류까지 읽힐 가능성이 있었다.

장백신옹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장문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비무를 보는 것만으로 화산의 검을 통찰하셨다 들었다. 종남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이미 절세의 경지에 도달한 선자(仙子)가 무슨 연유로 종남의 비전을 탐한단 말이냐. 차라리 호방한 면을 보여 좋은 인상을 드리는 편이 나으리라.”

장백신옹은 태허진인을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눈을 살짝 감았다.

정론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까지는 어찌 할 수 없었다.

“……장문인의 뜻을 알겠습니다. 다른 장로들에게는 제가 전하겠습니다.”

애써 납득하며 그리 말했다. 태허진인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거라. 나는 선자를 뵈어야겠다.”

곧 태허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연의 검이 곧게 나아갔다.

이렇다할 검식은 없었다. 횡베기, 종베기와 찌르기가 전부였으니,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삼재검법이라 할 수 있으리라.

날을 잡아 기초를 수련해본 적이 없었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기초가 제대로 다져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서연이 기본 자세만 반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종남의 검법은 수비적이라 했지.

남을 먼저 공격할 일보다, 남의 공격을 막을 일이 많아 보였다. 막는 방법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간다면 앞으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촤악!

검로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허공을 가른다. 옆에서 지켜보던 정혜는 입을 다문 채였다.

“어떤가요?”

“…….”

“정혜 도사님?”

“죄, 죄송합니다. 시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던 탓에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정혜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함이었다.

‘어찌 사람이 저리 아름답단 말이냐.

도화경에나 있을 법한 머리색은 또 뭘까.

방금 전까지 목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던 연무장이 고요로 물들었다. 온 도사들이 서연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남의 도사들은 허가만 받는다면 산문 바깥을 자유롭게 주유할 수 있었다. 규율도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편이라 이따금 혼인하는 도인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규율에 명시되지 않았을 뿐이지, 혼인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명색이 도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종남의 도사들은 스스로 여인의 미색에 대한 내성이 남다르다 여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원시천존, 태상감응(太上感應)…….”

일대제자들은 다급히 도문(道文)을 중얼거렸다. 그조차도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아래 배분의 제자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다.

이대제자들은 제 가슴팍을 붙잡았다. 눈만 마주쳤는데도 가슴이 떨렸기 때문이다.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다급히 자리를 피하는 도사들도 적지 않았다.

삼대제자들은 아예 대놓고 자리에 앉아 구경했다. 반쯤 넋을 놓은 기색이었다.

“어때요, 아름다우시죠?”

화련은 삼대제자 틈 사이에 껴서 팔짱을 낀 채로 그렇게 말했다. 소년 도사들은 홀린 듯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화련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삼대제자 중에는 서연만큼이나 화련을 보고 얼굴을 붉히는 소년 도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서너 살 차이였다. 외형으로만 따졌을 때 그랬다. 동년배가 주는 힘이 그만큼이나 강했다고 봐야 옳았다.

“아, 아름다우시네요…….”

“그렇죠?”

“네, 네에…….”

화련은 순식간에 소년 도사들을 휘어잡았다.

“혹시 도사님들도 당과를 드시나요?”

“가, 가끔 먹어요.”

“그러면 어디서 사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당과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여, 여기서 기다리시면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사형! 치사하게 먼저-.”

화련은 저들끼리 밀치며 달려가는 삼대제자들을 응시했다. 과연 종남의 제자들답게 경공 실력이 남달랐다.

화련은 남몰래 코웃음을 쳤다.

‘애들이란.

다루기 참 쉬웠다. 당과도 어렵지 않게 얻을 듯 싶었다.

그때였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연무장 내부로 들어섰다.

화련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태허진인?”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화련은 저를 묘한 눈으로 응시하는 태허진인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화련은 서연에게로 쪼르르 다가가 말했다.

“스승님, 종남파 장문인께서 오셨어요.”

정혜를 비롯한 다른 도사들은 그제서야 태허진인이 찾아온 것을 알아챘다. 화들짝 놀란 도사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장문인! 그, 그게…….”

태허진인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서연은 납검한 다음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대문파의 수장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랜 세월을 틀어박혀 살았던 탓에 태허진인의 명성을 듣지는 못했지만, 신선다운 풍모만으로도 충분히 경외를 느꼈다.

서연을 물끄러미 눈에 담고 있던 태허진인은 작게 미소짓더니 마주 포권을 받아줬다.

“서연 선자.”

“선자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서연은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문인께서 그리 대하시면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그저 객으로 대해주셨음 합니다.”

태허진인이 웃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짙은 호의가 깃들어 있었다.

절세고수가 장문인의 면을 세워준 탓이다.

“여선검상을 보러 왔다고 들었는데, 맞소?”

“맞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이동하는 것이 좋겠소. 해가 지면 보기 힘드니 말이오.”

서연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태허진인을 응시했다.

곧 태허진인은 종남산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 장문인이 기거하는 내당 뒤쪽에 위치한 절벽이었다.

까마득한 벼랑이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높았으니, 오죽했으면 종남산이 완만한 것이 전부 저 절벽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발로는 못 올라갈 것 같았다.

“……혹시 저 위에 있습니까?”

설마 저기도 내당으로 치는 것일까? 엄밀히 따지면 산문 내부에 있기는 한데…….

서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태허진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