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53 lines
14 KiB
Markdown
253 lines
14 KiB
Markdown
|
||
수백 년 동안 전승되어 온 무학은 그 자체로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옛 종사들의 깨달음과 경험이 담겨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
||
|
||
애초에 하나의 무학을 고치고 개선한다는 것은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력을 올리려다 진기가 뒤틀리는 것은 예사요, 심지어 주화입마에 드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
||
|
||
물론 그 무학이 비전에 해당하는 상승의 검법이라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개선할 가치가 있다. 한 문파의 근간이자 정수가 거기에 담겨 있음이니.
|
||
|
||
허나 낙화검은 기를 수발할 줄 알게 된 화산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검법에 불과하다.
|
||
|
||
이미 검증된 기초 검법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개선하려는 시도는 드물다. 설령 개선에 성공했다고 한들, 문파 전체의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
|
||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을 상승의 비전 무학을 연마하거나 새로운 절기를 창안하는데 쏟는 것이 현명할 터였다.
|
||
|
||
‘번뜩이는 영감 따위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
||
|
||
명색이 화산의 기반이 되는 검법이다. 저리 쉽게 파훼되고, 또 저리 쉽게 위력이 증대해서는 안됐다.
|
||
|
||
상리에 맞지 않은 일이다. 천하 만물이 영감으로 화하는 경지에 올랐다면 모를까.
|
||
|
||
본래 이런 방식으로 내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
||
|
||
익힌 무공의 상성, 자세, 운기, 특유의 습관, 검로, 내력을 능숙히 끌어올리는 정도 등등.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눈썰미로 읽어내어 승패를 예측하려 했다.
|
||
|
||
그마저도 내로라하는 고수들에게만 허락된 기예였다. 승리를 자신한 것도, 패배하면 어쩔 것이냐고 물었을 때 소상히 웃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
||
|
||
그리하여 선수를 양보했다. 단순히 심심하여, 또한 여검수로 보여 견문이나 넓혀주고자 그리했다.
|
||
|
||
허나 여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응수했다.
|
||
|
||
검법을 펼치기도 전에 기수식만으로 무학 전체를 뜯어내어 살핀 다음, 파훼식과 개선안을 동시에 들이밀었다.
|
||
|
||
“…….”
|
||
|
||
쉬이 넘길 수 없는 말이었기에 수치를 감내할 생각으로 전음을 보냈다.
|
||
|
||
사방에 흩날리는 꽃잎과 충격에 휩싸인 비무대가 그 진위를 증명했다.
|
||
|
||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
||
|
||
“말씀이 없으시니, 이번 판은 제가 이긴 걸로 해도 되겠군요.”
|
||
|
||
“…….”
|
||
|
||
옆 자리에 앉은 여인이 그리 말했을 때 대답하지 못했던 것도 그러했다.
|
||
|
||
능히 일문을 세우고 무너뜨릴 재능이다. 무림의 공적(公敵)으로 몰려도 이상하지 않다.
|
||
|
||
그런데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냈다.
|
||
|
||
생각이 많아졌다. 명경지수(明鏡止水)에 오른 이후로 처음 겪는 일이었다.
|
||
|
||
숨을 가다듬었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이해하려 했다. 풍파가 몰아치려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자칫 심마에 들 뻔했다.
|
||
|
||
곧 다음 경기가 시작됐다. 다행히 튕겨나갔던 종남의 도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장백신옹이 제때 나섰기 때문이다.
|
||
|
||
―검후. 이게 무슨 짓이오.
|
||
|
||
장백신옹의 세찬 전음이 이쪽을 향했다. 검후는 옅은 한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숙였다.
|
||
|
||
―급히 확인할 것이 있어 알면서도 수치스러운 행위를 저질렀소. 내 날을 잡아 정식으로 사죄하리다. 미안하오.
|
||
|
||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 장백신옹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나중에 이 일을 빌미삼아 종남이 적잖은 것을 요구할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으나, 당장은 중요치 않았다.
|
||
|
||
곧 새로운 도사들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번 화종지회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점차 연배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최종전에는 일대제자들이 나서는 방식이라 했다.
|
||
|
||
장문제자는 나서지 않았다. 일문의 명예를 짊어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패배했다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
||
|
||
잠시 고민하던 검후가 입을 열었다.
|
||
|
||
“……이번에 나서는 화산의 제자는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을 익혔다네. 만물을 구성하는 오행의 이치를 무공에 접목한 검법이지.”
|
||
|
||
“오행이라 하심은.”
|
||
|
||
“각각 목계, 화계, 토계, 금계, 수계를 뜻하네.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여 순환하는 상생상극(相生相克)의 묘리가 담겨 있지. 본래는 다섯가지의 기운을 모두 담아야 대성했다고 할 수 있지만, 웬만한 기재도 한 가지 기운을 온전히 담지 못하네. 저 제자가 목계만 다루는 것도 그러한 연유지.”
|
||
|
||
검후는 이번에는 종남파의 도사를 쳐다보았다.
|
||
|
||
“종남은 이번에 대천강검법(大天剛劍法)을 들고 온 듯 하네. 강맹하고 굳건한 위력을 자랑하는 중검이지. 매우 견고하고 안정적이고, 종남답지 않게 패도적이기도 하네.”
|
||
|
||
“잘 아시는군요.”
|
||
|
||
“직접 상대해봤으니 그럴 수 밖에.”
|
||
|
||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조가 조심스러워졌다. 괜시래 평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
“이번 경기는 누가 우세할 듯싶으신가요?”
|
||
|
||
면사 틈 사이로 도화같은 눈동자가 비쳐보였다. 검후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
|
||
|
||
“목계는 봄날의 새싹처럼 부드러우면서 끈질기게 뻗어 나가는 특징을 지녔지. 유연함 속에 강인함을 숨기고, 끊임없이 상대를 휘감으며 빈틈을 노릴 터.”
|
||
|
||
여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하라고 하는 듯했다.
|
||
|
||
“반면 종남의 대천강검은 유연함을 짓누르는 강인함을 지녔으니, 아무리 목계라고 해도 그 강맹함을 정면으로 뚫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네. 마치 가는 나뭇가지가 거대한 바위를 뚫어내려 하는 것과 같지. 결국 그 차이를 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힘의 격차가 뛰어나야 하는데, 그래 보이지는 않는군. 이번 경기는 종남의 도사가 우세할 걸세.”
|
||
|
||
“안목이 범상치 않으시군요.”
|
||
|
||
“……음, 칭찬 고맙네.”
|
||
|
||
곧 비무대 위에서 두 도사의 검이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화산의 검은 마치 춤을 추듯 유려하게 휘감았고, 종남의 검은 묵직한 굉음을 내며 이를 쳐냈다.
|
||
|
||
옆에 있던 여인은 그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
||
|
||
‘이번에는 읽어내지 못한 것인가?’
|
||
|
||
실전에서 사용되는 고절한 무학으로 나아가니 그런 듯했다.
|
||
|
||
이따금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평생을 걸고 하나의 구결을 파헤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다. 어쩌면 낙화검의 결만 오랫동안 파헤친 속가의 여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
‘잘못 보았나?’
|
||
|
||
문득 기대했던 박동이 가라앉을 때였다.
|
||
|
||
“사선으로 나아갈 때, 자세가 너무 곧습니다. 오행을 다뤄본 적이 없어 목계의 원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진각을 비튼 채로 나아가면 승산이 있어 보입니다.”
|
||
|
||
“……진각을 비틀다니?”
|
||
|
||
“음, 제 견문이 부족하여 말로 설명하기 힘들군요.”
|
||
|
||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잠시.”
|
||
|
||
허리춤에 매인 검이 유려하게 뽑혔다. 한 번의 막힘이 없다. 단련된 검수다.
|
||
|
||
‘……분명 무학을 익힌 흔적이 없었거늘.’
|
||
|
||
검수의 손은 으레 부르트고 흉해지기 마련인데, 저 여인의 손은 섬섬옥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
||
|
||
그렇기에 강호에 막 출도한 여검수라 여겼다. 허나 방금 자세를 보니 알았다.
|
||
|
||
‘정녕 환골탈태라도 했단 말인가?’
|
||
|
||
기수식을 취함에 막힘이 없다. 오행매화검의 기수식이다.
|
||
|
||
차마 방금 보고 깨우쳤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자세가 너무나 정갈했음이다.
|
||
|
||
여인이 눈을 감고 집중하기 무섭게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검 끝에 나뭇잎이 피어올랐다는 착각이 들었다.
|
||
|
||
검후의 눈이 부릅뜨였다.
|
||
|
||
‘자연지기……?!’
|
||
|
||
경지에 오른 초고수만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하다. 객잔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비무대에 있는 장백신옹마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세밀한 조절이었다.
|
||
|
||
육체의 내공을 오행으로 변환한 것이 아니다. 육신 바깥, 즉 대자연에서 직접 끌어온 것이다. 그 정도를 구분할 눈썰미는 있었다.
|
||
|
||
대자연을 단전으로 삼기에 내공 수발에 제한이 없다. 그렇기에 강호 무림은 경의를 담아 이들을 절세고수라 칭했다.
|
||
|
||
구파를 통틀어도 단 한 명 뿐이었다. 드넓은 천하에 고작 다섯이다.
|
||
|
||
방금 전까지 그러했다.
|
||
|
||
‘대체!’
|
||
|
||
차라리 몽환 속을 헤매고 있다는 쪽이 납득이 갈 정도였다. 마음속의 명경에 깊은 파문이 일었다. 그만큼이나 놀랐다.
|
||
|
||
명경지수를 완성한 이후로 이토록 격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
||
|
||
비무가 절정에 치닫을수록 구경꾼들의 호응이 거칠어진다. 허나 여인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드높은 산맥이 태풍에 휩쓸리지 않는 것처럼 홀로 고요했다.
|
||
|
||
사악―.
|
||
|
||
곧 여인의 검이 움직였다.
|
||
|
||
같은 기수식인데 검세가 달랐다.
|
||
|
||
출수하는 손과 같은 발을 원래보다 반 보 더 내밀었다. 놓인 모습도 비스듬했다. 진기가 발끝으로 온전히 흘러들어간다.
|
||
|
||
콱!
|
||
|
||
가벼운 한 걸음으로 족했다.
|
||
|
||
“……!”
|
||
|
||
오행매화검은 오늘부로 새로 태어났다.
|
||
|
||
“이런 식으로 하면 될듯한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
|
||
여인은 곧바로 납검하며 물었다. 빛이 사선으로 새어들어와 천하일색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는 용모가 비쳤다.
|
||
|
||
언제 그랬냐는 듯, 절세고수의 기도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일반인의 그것처럼 되돌아왔다. 실로 신기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는 반박귀진이었다.
|
||
|
||
“…….”
|
||
|
||
천하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검수라 자부했다. 금분세수한 노괴들과, 절세고수를 포함해서 그리 말한 것이다.
|
||
|
||
‘자만했구나.’
|
||
|
||
이 연배에 강호의 넓음을 다시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
||
|
||
여인이 제 자리에 돌아와 앉을 때까지, 검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가다듬는데 한참이 걸렸다.
|
||
|
||
눈을 뜨니 여인은 태연한 얼굴로 비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웃는 것을 보니 진정으로 저 광경을 즐기는 듯했다.
|
||
|
||
갓난아기들의 어리광을 보는 기분일까. 알 수 없었다. 절세고수란 능히 살아있는 신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이다. 하수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
||
|
||
새로 태어난 오행매화검을 직접 펼쳐 시험해보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힘들 듯싶었다.
|
||
|
||
결국 다른 방법으로 확인해야 했다.
|
||
|
||
‘이 방법 뿐이로구나.’
|
||
|
||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 검후는 비무대를 응시했다. 곧 승패가 결정될 것 같았다. 화산의 도사가 종남의 중검에 형편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
||
|
||
―현종아, 기도를 가다듬으렴. 발은 반보 더 내밀고, 보법은 부운약표(浮雲躍飄)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단중혈(丹中穴)에 진기를 집중시킨 다음, 터뜨리듯 사선으로 전개하거라.
|
||
|
||
―대, 대장로님?
|
||
|
||
―일단 해보거라. 도의를 어긴 수치는 본 장로가 감내하마.
|
||
|
||
―알겠습니다.
|
||
|
||
화산이 당당히 내세운 후기지수다. 속에 담긴 검의까지 깨달을 수는 없겠으나, 정답까지 가는 상세한 방법을 직접 듣고 그대로 따라할 수준은 되었다.
|
||
|
||
곧 현종의 기도가 일변했다.
|
||
|
||
삽시간에 매화가 피어오르며 폭풍처럼 날아들었다.
|
||
|
||
“어엇?”
|
||
|
||
“또 화산이!”
|
||
|
||
“전투 중에 깨달음을 얻다니, 소검후를 제외한 후기지수들은 전부 종남에 뒤쳐질 줄 알았거늘!”
|
||
|
||
뭣 모르는 구경꾼들이 감탄했다. 허나 검후는 곧이곧대로 좋아할 수 없었다.
|
||
|
||
―검후!
|
||
|
||
장백신옹이 눈을 부릅뜬 채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흘러나오는 기파를 숨기지 않았다. 저렇게 반응할만 했다. 장백신옹이 보기에 이는 명백한 기만이었다.
|
||
|
||
―일문의 대장로라는 자가 어찌 이런 짓을! 이번 일은 화산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소!
|
||
|
||
이 와중에도 전음으로 말하는 것이 그의 성품을 드러냈다. 독설을 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
||
화산과 종남이 교류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었던 지회의 목적을 제 손으로 흐렸다. 드센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
||
|
||
두번째 비무도 화산의 승리로 끝났다.
|
||
|
||
따로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저 여인의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
||
|
||
‘더 해봐야 의미가 없다.’
|
||
|
||
명색의 화산의 제일검수였다. 절세고수와 생사결을 벌여도 쉽사리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허나 지금처럼 안목만 두고 다툰다면 백이면 백 패배할 것이다.
|
||
|
||
더 나섰다간 장백신옹이 직접 나설 것 같기도 했다.
|
||
|
||
검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
||
|
||
‘화산으로 모셔야겠다.’
|
||
|
||
물론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