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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이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본디 조각이란 하루 이틀에 끝날 작업이 아니기에, 금룡상단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피로를 풀고 다시 칼을 잡는 것이 순리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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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자리를 떠난 석공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정과 망치도 내려놓고, 금룡상단주가 그랬던 것처럼 넋이 나간 채 서연의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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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감탄사조차 내뱉지 않는다. 숨소리마저 불경인 양 하나같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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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일찍이 자신만의 경지에 올랐고, 각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던 장인들이었다. 그렇기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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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처럼 처음부터 서연을 지켜보았던 장인은 없었다.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 혼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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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람인 이상, 집중력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은 찾아오는 법. 행인들의 경탄, 상단원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소란, 그리고 옆자리에 선 장인들이 홀린 듯 한곳을 응시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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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석은 본래 단단한 암석이라 섬세한 표현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상이 전체적으로 둥글고 뭉툭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던가. 허나 서연의 조각은 재료의 한계를 거침없이 부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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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휘감는 굴곡 하나하나, 옷깃의 주름 한 올, 심지어 옷 위로 드러난 육체의 윤곽과 핏줄마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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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살아있는 부처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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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라 불리던 늙은 석공은 서연의 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깊은 침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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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위에 투명한 옷을 씌운 것만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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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하반신만 만들었을 뿐이다. 본디 작품이란 완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거늘,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이토록 작은 편린만으로도 숙련된 조각가들을 경악케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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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승자는 정해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석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패배감에 젖거나 안타까워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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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들은 서연의 손짓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 넣으려는 듯 전심전력으로 서연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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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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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감람석의 아랫부분에 정을 놓고, 두들겼다. 연꽃으로 된 받침대를 만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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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연꽃을 본딴 받침대가 아니다. 천개의 연꽃잎이 겹겹이 쌓여 피어나는 천엽연화대(千葉蓮華臺)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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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감람석의 틈 사이로 신비로운 연꽃이 하나둘씩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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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꼬박 세워 동녘에 해가 솟아오를 무렵,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노사나불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났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올린 그 자애로운 모습에, 깨달음을 얻어 염불을 외는 승려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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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이제 다른 쪽 봉우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행인들이 오갔는지는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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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그 신묘한 기예를 눈에 담으려던 석공들이 한계에 다다라 쓰러지고, 의원으로 실려 가고, 심지어 치료를 마다하고 기어서라도 다시 돌아오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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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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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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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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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뿌리치고 각예대회로 미친 듯이 되돌아오는 석공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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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이 모이면 광기가 되는 법. 그리고 예술가의 광기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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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야 할 광장이 침묵으로 물든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나이 지긋한 석공들이 풍기는 지독한 집념과 광기가 모든 행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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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이라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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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되던 날, 서연은 끝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까지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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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로지 조각에만 혼신을 쏟을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천하에서 이름 높은 무인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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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올랐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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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신선이라도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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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 듯 서연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무림인들이 그리 탄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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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조차도 그 눈부신 기예를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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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들도 그러한 기류를 느꼈다. 서연이 먹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않을지 내기를 거는 몰상식한 무리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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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나흘이 닷새가 되고, 칠주야가 되던 날, 그런 이들은 싸그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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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끄러움을 깨닫고 입을 다문 채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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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행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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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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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내리신 선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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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천존(元始天尊), 원시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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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듣고 찾아온 도인과 승려 또한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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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은 한계에 다다른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들었다. 주전부리로 허기를 채우고, 선잠으로 수마를 쫓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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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몸으로 칠 주야를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과 같았다. 화련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 쓰러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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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했다. 이만 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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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혼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눈을 가려 화련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다음, 그대로 눕혀 재웠다. 화련은 그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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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혼은 잠든 화련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창공으로 솟구쳤다. 백호가 땅에서 주인의 곁을 지킨다면, 자신은 마땅히 하늘에서 보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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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가 되었을 때, 마침내 석가불(釋迦佛)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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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에서 숫자 팔(八)은 더없이 상서로운 숫자였다. 상서로운 표상의 개수도 여덟 가지요, 깨달음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륜이 팔각형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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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여덟은 득도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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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마침내 정질을 멈추었다. 깊이 숨을 들이쉰 후,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삼신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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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히는 걸작이라 자부할 만했다. 이토록 조각에 모든 혼백을 쏟아부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 속에서도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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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흘렀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만 알았다. 다만 해가 여전히 하늘에 높이 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의아함을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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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온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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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에 이른 석공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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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없이 부드러운, 동시에 경외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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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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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로 나선 것은 나이 지긋한 노년의 석공이었다. 그는 서연에게 공대하는 것을 더없이 당연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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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석공들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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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위에 둘러섰던 모든 석공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서연에게 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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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평을 연 종사(宗師)에게나 올릴 법한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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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드레 만에 정신을 차린 터라 허기가 극심했던 탓에, 식사를 겸해 석공들과 수많은 문답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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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장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한마디 한마디에 견문이 넓어지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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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화련이 찾아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하루고 이틀이고 그곳에서 머무르며 대화를 계속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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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리를 뜨려는데, 주변에 있던 행인들이 그림자처럼 서연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 수가 물경 수백에 육박했으니, 실로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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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설마 이토록 많은 인파가 자신을 뒤따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저녁때가 되어 다들 대로로 오가는 것이라 여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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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이토록 몰리면 으레 역모로 오인당하기 십상이다. 명망 높은 금룡상단주가 직접 나서서 행인들을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필시 무슨 일이 터졌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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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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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룡상단주는 더없이 겸손한 행동거지로 서연을 마차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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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첫날부터 우승자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이틀이 되고, 사흘이 지나 여드레 만에 완성본을 마주한 순간, 금룡상단주는 깨달았다. 이 분의 거취는 자신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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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분께서 노사나불의 수리를 기꺼이 맡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설령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를 거부하신다 한들 이쪽에서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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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에 있는 그 어떤 조각가를 데려온다 해도, 이 분의 편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금룡상단주는 확신했다. 설령, 자신의 가문과 연이 깊은 청목족 조각가를 데려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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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자를 원하기는 했으나, 이 분은 그런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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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다고 말하는 민초들이 수천에 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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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이 북경에 닿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해서 걱정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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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금룡상단주 본인조차 그 소문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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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산다는 청목족보다도 더욱 오랜 세월을 갈고 닦아야 비로소 이룰 만한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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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예를 취해야 마땅할까. 금룡상단주가 속으로 고뇌하던 그때, 서연의 나직한 음성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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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라 하여 너무 과한 예를 취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편히 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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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 것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금룡상단주는 짓눌렸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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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햇수로 따지면 나는 갓난쟁이일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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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심이 하해(河海)에 비견될 정도로 깊다. 셋째 아들 또한 이런 배려심에 탄복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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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금룡상단주, 금벽산은 얕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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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하겠습니다. 아니, 그리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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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제서야 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환갑은 훌쩍 넘은 듯한 노인이 존대하는 것이 내심 불편했기 때문이다. 허나 금벽산은 그조차도 겸양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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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세불은 어찌 하실 요량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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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져가도 되는 것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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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 말에 금벽산은 다시금 감탄했다. 속세에서 빚어낸 것은 속세의 것이라 여기는가. 그토록 귀한 명물을 제 것이 아니라 여기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한량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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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금벽산은 다시금 존대를 늦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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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요. 작품의 거취는 응당 주인이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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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삼신세불을 집으로 가져가면 좋겠지만, 기왕 자신의 혼이 깃든 작품을 많은 이들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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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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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제가 고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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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벽산은 눈을 둥그렇게 뜨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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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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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은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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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참으로, 참으로 좋은 구경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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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말을 기분좋게 한다 싶었다. 동시에 한 가지 기억이 서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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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청허 스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분 또한 말을 참으로 아름답게 하셨던 기억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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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세불은 소림에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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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라면 소림사에서도 거절하지는 않을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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