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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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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늦은 시간이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본디 조각이란 하루 이틀에 끝날 작업이 아니기에, 금룡상단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피로를 풀고 다시 칼을 잡는 것이 순리였으리라.

허나 자리를 떠난 석공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정과 망치도 내려놓고, 금룡상단주가 그랬던 것처럼 넋이 나간 채 서연의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고 서 있었다

흔한 감탄사조차 내뱉지 않는다. 숨소리마저 불경인 양 하나같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였다.

모두가 일찍이 자신만의 경지에 올랐고, 각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던 장인들이었다. 그렇기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금룡상단주처럼 처음부터 서연을 지켜보았던 장인은 없었다.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 혼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인 이상, 집중력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은 찾아오는 법. 행인들의 경탄, 상단원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소란, 그리고 옆자리에 선 장인들이 홀린 듯 한곳을 응시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감람석은 본래 단단한 암석이라 섬세한 표현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상이 전체적으로 둥글고 뭉툭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던가. 허나 서연의 조각은 재료의 한계를 거침없이 부수고 있었다.

몸을 휘감는 굴곡 하나하나, 옷깃의 주름 한 올, 심지어 옷 위로 드러난 육체의 윤곽과 핏줄마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부처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낙양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라 불리던 늙은 석공은 서연의 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깊은 침음을 토해냈다.

‘조각 위에 투명한 옷을 씌운 것만 같구나.

이제 고작 하반신만 만들었을 뿐이다. 본디 작품이란 완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거늘,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이토록 작은 편린만으로도 숙련된 조각가들을 경악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승자는 정해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석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패배감에 젖거나 안타까워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서연의 손짓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 넣으려는 듯 전심전력으로 서연을 주시했다.

땅-

서연은 감람석의 아랫부분에 정을 놓고, 두들겼다. 연꽃으로 된 받침대를 만들려는 것이다.

단순히 연꽃을 본딴 받침대가 아니다. 천개의 연꽃잎이 겹겹이 쌓여 피어나는 천엽연화대(千葉蓮華臺)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감람석의 틈 사이로 신비로운 연꽃이 하나둘씩 피어올랐다.

밤을 꼬박 세워 동녘에 해가 솟아오를 무렵,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노사나불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났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오른손은 가볍게 들어 올린 그 자애로운 모습에, 깨달음을 얻어 염불을 외는 승려들이 적지 않았다.

서연은 이제 다른 쪽 봉우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행인들이 오갔는지는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그 신묘한 기예를 눈에 담으려던 석공들이 한계에 다다라 쓰러지고, 의원으로 실려 가고, 심지어 치료를 마다하고 기어서라도 다시 돌아오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내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봐야겠다.”

“하지만 스승님!”

“막지 마라!”

제자들을 뿌리치고 각예대회로 미친 듯이 되돌아오는 석공들도 있었다.

집념이 모이면 광기가 되는 법. 그리고 예술가의 광기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법이다.

시끄러워야 할 광장이 침묵으로 물든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나이 지긋한 석공들이 풍기는 지독한 집념과 광기가 모든 행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음이었다.

무림인이라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나흘째 되던 날, 서연은 끝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까지 만들어냈다.

사람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로지 조각에만 혼신을 쏟을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천하에서 이름 높은 무인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올랐다면 모를까.

“……정녕 신선이라도 된단 말인가?”

홀린 듯 서연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무림인들이 그리 탄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조각의 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조차도 그 눈부신 기예를 느꼈기 때문이다.

행인들도 그러한 기류를 느꼈다. 서연이 먹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않을지 내기를 거는 몰상식한 무리도 적지 않았다

허나 나흘이 닷새가 되고, 칠주야가 되던 날, 그런 이들은 싸그리 사라졌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깨닫고 입을 다문 채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행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신선이시다.”

“상제께서 내리신 선녀시다.”

“원시천존(元始天尊), 원시천존.”

소문을 듣고 찾아온 도인과 승려 또한 헤아릴 수 없었다.

화련은 한계에 다다른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들었다. 주전부리로 허기를 채우고, 선잠으로 수마를 쫓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음이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칠 주야를 버틴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과 같았다. 화련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 쓰러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 수고했다. 이만 쉬거라.

유혼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눈을 가려 화련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다음, 그대로 눕혀 재웠다. 화련은 그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유혼은 잠든 화련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창공으로 솟구쳤다. 백호가 땅에서 주인의 곁을 지킨다면, 자신은 마땅히 하늘에서 보위해야 했다.

여드레가 되었을 때, 마침내 석가불(釋迦佛)이 완성되었다.

불도에서 숫자 팔(八)은 더없이 상서로운 숫자였다. 상서로운 표상의 개수도 여덟 가지요, 깨달음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륜이 팔각형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시에 여덟은 득도를 뜻했다.

서연은 마침내 정질을 멈추었다. 깊이 숨을 들이쉰 후,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삼신불을 바라보았다

손꼽히는 걸작이라 자부할 만했다. 이토록 조각에 모든 혼백을 쏟아부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 속에서도 희미했다.

며칠이 흘렀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만 알았다. 다만 해가 여전히 하늘에 높이 떠 있다는 사실에 문득 의아함을 느낄 뿐이었다.

서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온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경지에 이른 석공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한없이 부드러운, 동시에 경외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로 나선 것은 나이 지긋한 노년의 석공이었다. 그는 서연에게 공대하는 것을 더없이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석공들을 응시했다.

곧, 주위에 둘러섰던 모든 석공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서연에게 예를 취했다.

새로운 지평을 연 종사(宗師)에게나 올릴 법한 인사였다.


서연은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드레 만에 정신을 차린 터라 허기가 극심했던 탓에, 식사를 겸해 석공들과 수많은 문답을 나누었다.

뛰어난 장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한마디 한마디에 견문이 넓어지는 기분이랄까.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화련이 찾아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하루고 이틀이고 그곳에서 머무르며 대화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뜨려는데, 주변에 있던 행인들이 그림자처럼 서연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 수가 물경 수백에 육박했으니, 실로 장관이었다.

서연은 설마 이토록 많은 인파가 자신을 뒤따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저녁때가 되어 다들 대로로 오가는 것이라 여겼을 뿐.

군중이 이토록 몰리면 으레 역모로 오인당하기 십상이다. 명망 높은 금룡상단주가 직접 나서서 행인들을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필시 무슨 일이 터졌을 터였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금룡상단주는 더없이 겸손한 행동거지로 서연을 마차로 이끌었다.

본래 첫날부터 우승자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이틀이 되고, 사흘이 지나 여드레 만에 완성본을 마주한 순간, 금룡상단주는 깨달았다. 이 분의 거취는 자신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음을.

만약 이 분께서 노사나불의 수리를 기꺼이 맡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설령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를 거부하신다 한들 이쪽에서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황실에 있는 그 어떤 조각가를 데려온다 해도, 이 분의 편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금룡상단주는 확신했다. 설령, 자신의 가문과 연이 깊은 청목족 조각가를 데려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실력자를 원하기는 했으나, 이 분은 그런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당장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왔다고 말하는 민초들이 수천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 소문이 북경에 닿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해서 걱정도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금룡상단주 본인조차 그 소문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생을 산다는 청목족보다도 더욱 오랜 세월을 갈고 닦아야 비로소 이룰 만한 경지다.

도대체 어떤 예를 취해야 마땅할까. 금룡상단주가 속으로 고뇌하던 그때, 서연의 나직한 음성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우승자라 하여 너무 과한 예를 취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편히 대해주세요.”

서연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 것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금룡상단주는 짓눌렸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살아온 햇수로 따지면 나는 갓난쟁이일진데.

배려심이 하해(河海)에 비견될 정도로 깊다. 셋째 아들 또한 이런 배려심에 탄복했던 것일까.

결국 금룡상단주, 금벽산은 얕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겠습니다. 아니, 그리 하겠소.”

서연은 그제서야 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환갑은 훌쩍 넘은 듯한 노인이 존대하는 것이 내심 불편했기 때문이다. 허나 금벽산은 그조차도 겸양으로 받아들였다.

“삼신세불은 어찌 하실 요량이시오?”

“제가 가져가도 되는 것이었습니까?”

서연의 말에 금벽산은 다시금 감탄했다. 속세에서 빚어낸 것은 속세의 것이라 여기는가. 그토록 귀한 명물을 제 것이 아니라 여기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한량없었다.

그랬기에 금벽산은 다시금 존대를 늦추지 않았다.

“당연하지요. 작품의 거취는 응당 주인이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연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삼신세불을 집으로 가져가면 좋겠지만, 기왕 자신의 혼이 깃든 작품을 많은 이들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서연이 물었다.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제가 고쳐도 되겠습니까?”

금벽산은 눈을 둥그렇게 뜨다가,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서연은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

“말년에 참으로, 참으로 좋은 구경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말을 기분좋게 한다 싶었다. 동시에 한 가지 기억이 서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일전에 청허 스님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분 또한 말을 참으로 아름답게 하셨던 기억이 선명했다.

‘삼신세불은 소림에 줘야겠다.

이 정도라면 소림사에서도 거절하지는 않을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