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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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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아직은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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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 안에서 밤새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근육을 늘리는 스트레칭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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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듯이 당연한 아침의 기본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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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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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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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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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모든 동작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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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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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문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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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의원님이 벌써 오셨을지도 모르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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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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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님 안녕하세요? 아침 식사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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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성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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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녀의 아침 식사인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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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살짝 쳐진 어깨로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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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은 잘 주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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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에게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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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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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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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식사는 간단한 샌드위치에요. 그냥 손에 들고 요렇게, 드시면 됩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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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시범까지 보이며 친절하게 설명하고는 돌아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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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설유월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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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재빠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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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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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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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의원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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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얘기 못 들으셨어요? 오늘은 휴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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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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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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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가 헤어지기 전, 분명히 말했었다. 내일은 공식적인 휴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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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내내 그가 내준 과제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그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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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어깨가 이전보다 훨씬 더 아래로 축 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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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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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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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놓인 샌드… 위치…?라는 것은 조금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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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그것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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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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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전부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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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누가 가져다주는 건 꼭 먹어야 합니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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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난 의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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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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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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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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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유월은 샌드위치를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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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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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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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구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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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알던 중원의 음식과는 아예 다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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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또 의원의 말로 인해,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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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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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협회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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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이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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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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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에 따르면 어제는 삼시세끼 다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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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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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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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 얼굴로 설유월을 담당한 직원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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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인사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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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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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는가 싶던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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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돌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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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상담사님.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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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뇨 그런 건 딱히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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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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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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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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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달리,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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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두 벌 뿐이라, 교대로 입는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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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갑자기 사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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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어젯밤 늦게서야 세탁기에 넣어 아직 건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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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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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슬렉스에, 아이보리색 폴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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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보기에는, 퇴근 후 데이트라도 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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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에 용기를 얻은 그녀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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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면… 혹시 오늘 끝나고 식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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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부드럽게 거절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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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죠,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요. 오늘은 이방인 견학 예정이라…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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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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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쉬워하는 그녀에게 작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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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제가 다음에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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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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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기차게 손을 흔드는 그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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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설유월을 마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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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녀는 내가 내준 숙제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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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았어도 전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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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찾아보려 노력만 했더라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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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내 발걸음은 그녀가 머무는 방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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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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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작게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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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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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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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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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격렬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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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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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는 설유월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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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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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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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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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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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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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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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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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표정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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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했다고 이렇게 당당한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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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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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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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자신감의 근원을 좀 알아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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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일단, 차차 알아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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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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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지는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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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그리고 오늘 일요일까지. 벌써 사흘째 그녀는 이 방안에만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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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환기나 햇빛이 완벽하게 제공된다 한들, 답답하지 않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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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녀의 위험 등급은 어제부로 ‘주의’에서 ‘안전’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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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보인 그 어떤 공격성도 이상 행동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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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조우 시점의 공격성 또한 자화연이라는 특수한 상대가 있었기 때문임을 감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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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찰 팀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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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이 안전으로 내려오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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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헌터 협회의 철저한 관리 아래에 있는 위수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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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라면 제한적으로나마 외부 활동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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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오늘 할 일은…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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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답답한 방에서 꺼내, 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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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한, 첫 번째 현장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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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에게 콧바람 쐬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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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서 있는 설유월에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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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밖에 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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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설유월은, 처음 듣는 단어라도 되는 양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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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옷차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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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지금 협회에서 지급한 사이즈만 맞는 잿빛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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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직원이 도와줬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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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사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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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부터 사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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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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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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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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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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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자동차가 휙휙 지나갈 때마다, 옆에 선 설유월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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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교육 영상으로 보는 것과, 육중한 철마가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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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 소매를 꼭 붙잡은 채, 도로 안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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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는, 루나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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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S급 헌터 루나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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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복합 쇼핑몰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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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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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을 하기에 제일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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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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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거나 식사를 하기에도 적합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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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용은 전부 협회에서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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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사회에 정상적으로 안착시키기만 한다면, 돌아오는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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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작은 손을 이끌듯 거대한 자동문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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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문 앞에서 멈칫하는 사이, 투명한 유리문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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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설유월의 시야가 한 번 더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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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는 훨씬 더 크고 멋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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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의 사람들이 내뱉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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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가득 채우는 소음과 음악,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매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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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내 손바닥을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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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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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너무 놀라거나 힘드시면, 언제나 제게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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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에 설유월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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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답 대신 내 손을 조금 더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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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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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백화점 내부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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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움직이는 계단, 그러니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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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그녀를 이끌고 그 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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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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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은 비명소리가 소음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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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을 돌아다니며 설유월에 이 세상의 문물들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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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걸음을 이끌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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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빠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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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처음부터 가르쳐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혹시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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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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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배고프지는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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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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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배는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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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원래 목적인 옷을 사러 가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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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가장 한적해 보이는 여성 의류 매장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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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옷 사는 것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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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백 벌의 옷 앞에서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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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입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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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여성 의류에 문외한인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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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이분한테 어울릴 만한 옷 좀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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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용모의 직원은 나와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설유월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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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능숙한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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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남자친구분이 여자친구분 옷 골라주러 오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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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색하게 웃어넘겼고, 남자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설유월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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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더 밝게 웃으며, 설유월의 팔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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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시겠어요 고객님? 요즘은 이런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유행이긴 한데… 피부가 하얘서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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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원이 이끄는 대로 두 사람의 뒤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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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설유월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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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평소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 입을 옷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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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설유월은 그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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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슬슬 직원분에게 적당히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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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의원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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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이 뒤에 있는 내게 눈짓하며, 직원에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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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하나 들고 설유월을 피팅룸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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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의문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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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커튼 너머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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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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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피팅룸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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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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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손에 커튼이 부드럽게 옆으로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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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에서 설유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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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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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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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옅은 회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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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잿빛의 펑퍼짐한 옷에 가려져 있었기도 했고 전혀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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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렇게 대놓고 몸의 곡선을 전부 드러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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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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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 눈동자를 마주치고,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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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푸른 눈동자가 뚫어져라 나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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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강렬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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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래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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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에게 다른 옷을 권해달라고 말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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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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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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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이 나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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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입가에는 만족감이 담긴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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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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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결제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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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주장이 강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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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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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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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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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을 원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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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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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의 좋은 변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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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결국 세탁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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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는 포기한 것은 아니고… 새롭고 강력한 섬유 유연제를 찾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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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유니온 길드 건너편의 거대한 쇼핑몰 루나필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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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바로 생활용품 코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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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가지의 화려한 제품들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각 제품의 향을 맡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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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딸기향이랑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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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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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돼지고기 튀김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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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목소리에 이어, 익숙한 향기가 차례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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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거대한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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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반의 틈새로 고개를 아주 살짝,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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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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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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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이 시간에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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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시선이 선생님의 옆으로 향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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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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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놀란 것은 선생님의 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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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루나는 심장이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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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을 보다니, 순간적으로 가운을 훔치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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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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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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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곁에는, 낯선 여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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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모든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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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이 기묘하게 섞인 신비로운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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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손은 선생님의 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꽉,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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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선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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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상대방의 시선을 가장 먼저 분석하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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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수인의 본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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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인의 시선은 늘 선생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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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에 온 신경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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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절대적인 신뢰와 의존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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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생님의 시선은 그녀와 마주치거나 몸에 향하지 않고, 늘 그렇듯 부드럽고 젠틀하다는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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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실이 루나에게는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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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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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저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은 채 연인처럼 식당 안으로 사라져 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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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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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있던 섬유 유연제 샘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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