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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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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설유월은 아직은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방 안에서 밤새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근육을 늘리는 스트레칭 시작했다.

숨 쉬듯이 당연한 아침의 기본 일과였다.

바로 그때였다.

  • 똑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설유월의 모든 동작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문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의원님이 벌써 오셨을지도 모르겠다며.

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유월님 안녕하세요? 아침 식사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낯선 여성의 목소리.

아무래도 그녀의 아침 식사인듯했다.

설유월은 살짝 쳐진 어깨로 문을 열어주었다.

“지난밤은 잘 주무셨나요?”

협회 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에게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건넸다.

“…… 네.”

설유월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오늘 아침 식사는 간단한 샌드위치에요. 그냥 손에 들고 요렇게, 드시면 됩니다아.”

직원은 시범까지 보이며 친절하게 설명하고는 돌아서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설유월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설유월은 재빠르게 물었다.

“저기….”

“네?”

“오늘… 의원님께서는….”

“어머, 얘기 못 들으셨어요? 오늘은 휴일이세요.”

아.

그제야, 생각났다.

어제 그가 헤어지기 전, 분명히 말했었다. 내일은 공식적인 휴일이라고.

어젯밤 내내 그가 내준 과제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그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월의 어깨가 이전보다 훨씬 더 아래로 축 처졌다.

직원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나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식탁 위에 놓인 샌드… 위치…?라는 것은 조금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설유월은 그것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러나.

‘이곳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전부 안전합니다.

‘앞으로 누가 가져다주는 건 꼭 먹어야 합니다. 약속.

갑자기 생각난 의원의 말.

약속까지 했었다.

  • 냠.

“…….”

결국 설유월은 샌드위치를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와구와구.

그녀가 알던 중원의 음식과는 아예 다른 맛.

설유월은 또 의원의 말로 인해,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오늘도 협회로 출근했다.

당분간은 이럴 예정이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협회 직원에 따르면 어제는 삼시세끼 다 먹었다고 한다.

말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설유월을 담당한 직원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내 인사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는가 싶던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돌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상담사님.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신가요?”

“네? 아뇨 그런 건 딱히 없습….”

나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아.

그녀의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평소와는 달리,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원래도 두 벌 뿐이라, 교대로 입는 편이었는데.

하나는 갑자기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어젯밤 늦게서야 세탁기에 넣어 아직 건조 중이다.

결국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대충 슬렉스에, 아이보리색 폴라티?

그녀가 보기에는, 퇴근 후 데이트라도 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에 용기를 얻은 그녀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아…! 그러시면… 혹시 오늘 끝나고 식사라도….”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부드럽게 거절의 말을 건넸다.

“어쩌죠,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요. 오늘은 이방인 견학 예정이라…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그렇네요….”

나는 아쉬워하는 그녀에게 작게 덧붙였다.

“대신, 제가 다음에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나는 활기차게 손을 흔드는 그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시 설유월을 마주할 시간이다.

과연 그녀는 내가 내준 숙제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못 찾았어도 전혀 상관없다.

그냥, 찾아보려 노력만 했더라도 충분하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그녀가 머무는 방 앞에, 멈춰 섰다.

  • 똑똑.

나는 아주 작게 노크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바로 그 순간.

“유월….”

  • 벌컥.

문이 격렬하게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문 앞에서는 설유월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제.”

“……네?”

“못 했어요.”

뭐야.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했어요.’라고.

그런데 저 표정은 뭘까.

뭘 잘했다고 이렇게 당당한 표정을….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설유월의 자신감의 근원을 좀 알아보고 싶지만….

그건 일단, 차차 알아보도록 하고.

나는 먼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금, 토, 그리고 오늘 일요일까지. 벌써 사흘째 그녀는 이 방안에만 갇혀 있었다.

아무리 환기나 햇빛이 완벽하게 제공된다 한들, 답답하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그녀의 위험 등급은 어제부로 ‘주의’에서 ‘안전’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그녀가 보인 그 어떤 공격성도 이상 행동도 없었고.

최초 조우 시점의 공격성 또한 자화연이라는 특수한 상대가 있었기 때문임을 감안했다.

나와 관찰 팀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었다.

등급이 안전으로 내려오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자그마치, 헌터 협회의 철저한 관리 아래에 있는 위수지역.

그 안에서라면 제한적으로나마 외부 활동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오늘 할 일은…바로.

그녀를 답답한 방에서 꺼내, 이 세상을 보여주는 것.

그녀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한, 첫 번째 현장 학습.

설유월에게 콧바람 쐬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설유월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밖에 나갈까요?”

내 말에, 설유월은, 처음 듣는 단어라도 되는 양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녀의 옷차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설유월은 지금 협회에서 지급한 사이즈만 맞는 잿빛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다.

여성 직원이 도와줬다고 들었다.

옷도 사야 하고….

“옷부터 사러 가시죠.”

맛있는 것도 먹고.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나는 설유월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 부아아앙….

길거리의 자동차가 휙휙 지나갈 때마다, 옆에 선 설유월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교육 영상으로 보는 것과, 육중한 철마가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설유월은 내 소매를 꼭 붙잡은 채, 도로 안쪽으로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루나필드.

그러니까 그 S급 헌터 루나가 아니고.

거대한 복합 쇼핑몰의 이름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을 하기에 제일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옷을 사거나 식사를 하기에도 적합하기도 하고.

물론 비용은 전부 협회에서 지원한다.

이방인을 사회에 정상적으로 안착시키기만 한다면, 돌아오는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니까.

나는 그녀의 작은 손을 이끌듯 거대한 자동문 앞으로 향했다.

설유월의 문 앞에서 멈칫하는 사이, 투명한 유리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설유월의 시야가 한 번 더 뒤집혔다.

겉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는 훨씬 더 크고 멋있으니까.

수천의 사람들이 내뱉는 소리.

귀를 가득 채우는 소음과 음악,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매장들.

그녀는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내 손바닥을 꽉 붙잡았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너무 놀라거나 힘드시면, 언제나 제게 말해주세요.”

내 목소리에 설유월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손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백화점 내부를 돌아다녔다.

스스로 움직이는 계단, 그러니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웃으며 그녀를 이끌고 그 위에 올라탔다.

“꺅.”

그녀의 작은 비명소리가 소음에 묻혔다.

나는 한참을 돌아다니며 설유월에 이 세상의 문물들을 알려줬다.

그녀의 첫걸음을 이끌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진짜 아빠 같은 느낌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처음부터 가르쳐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혹시 이런 것일까.

나는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혹시 배고프지는 않으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배는 괜찮고….

“그럼 원래 목적인 옷을 사러 가도록 할까요?"

나는 그녀를, 가장 한적해 보이는 여성 의류 매장으로 이끌었다.

설유월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옷 사는 것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백 벌의 옷 앞에서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었다.

‘… 뭘 입혀야 하지?

나 또한 여성 의류에 문외한인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혹시 이분한테 어울릴 만한 옷 좀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세련된 용모의 직원은 나와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설유월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 능숙한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했다.

“어머,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남자친구분이 여자친구분 옷 골라주러 오셨나 봐요?”

나는 어색하게 웃어넘겼고, 남자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설유월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더 밝게 웃으며, 설유월의 팔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이리 오시겠어요 고객님? 요즘은 이런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유행이긴 한데… 피부가 하얘서 뭐든….”

나는 직원이 이끄는 대로 두 사람의 뒤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직원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설유월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평소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상황에 입을 옷인지.

물론 설유월은 그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슬슬 직원분에게 적당히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찰나.

“그냥… 의원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걸로….”

설유월이 뒤에 있는 내게 눈짓하며, 직원에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하나 들고 설유월을 피팅룸으로 데리고 갔다.

갑자기 의문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잠시 후, 커튼 너머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피팅룸 앞으로 다가갔다.

  • 스르륵.

누군가의 손에 커튼이 부드럽게 옆으로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설유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유월은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옅은 회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늘 잿빛의 펑퍼짐한 옷에 가려져 있었기도 했고 전혀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대놓고 몸의 곡선을 전부 드러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유월은 내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눈동자를 마주치고,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마치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푸른 눈동자가 뚫어져라 나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나는 그 강렬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그래도 좀….”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에게 다른 옷을 권해달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걸로 할게요….”

설유월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감이 담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설유월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직원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결제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자기주장이 강해졌는데?

나는 멍하니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옷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 옷을 원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좋아.

나는 설유월의 좋은 변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는 결국 세탁을 포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포기한 것은 아니고… 새롭고 강력한 섬유 유연제를 찾으러 왔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유니온 길드 건너편의 거대한 쇼핑몰 루나필드로 향했다.

그녀는 바로 생활용품 코너로 향했다.

수십 가지의 화려한 제품들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각 제품의 향을 맡아보고 있었다.

“최대한 딸기향이랑 비슷한….”

그러나, 그때.

  • 음… 돼지고기 튀김은 어떠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이어, 익숙한 향기가 차례대로 느껴졌다.

루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거대한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선반의 틈새로 고개를 아주 살짝, 내밀었다.

‘선생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이 시간에 왜 여기에?

루나의 시선이 선생님의 옆으로 향하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처음으로 놀란 것은 선생님의 복장이었다.

평상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루나는 심장이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이런 모습을 보다니, 순간적으로 가운을 훔치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접었다.

그러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낯선 여인이 있었다.

몸의 모든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원피스.

흑과 백이 기묘하게 섞인 신비로운 머리카락.

그리고 그녀의 손은 선생님의 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꽉, 붙잡고 있었다.

게다가 시선 처리.

루나는 상대방의 시선을 가장 먼저 분석하는 버릇이 있다.

그건 수인의 본능이기도 했다.

낯선 여인의 시선은 늘 선생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에 온 신경이 집중되고 있다.

분명, 절대적인 신뢰와 의존의 눈빛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생님의 시선은 그녀와 마주치거나 몸에 향하지 않고, 늘 그렇듯 부드럽고 젠틀하다는 점일까….

하지만, 그 사실이 루나에게는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

그녀는 그저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은 채 연인처럼 식당 안으로 사라져 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툭.

손에 들고 있던 섬유 유연제 샘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