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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낮에 그가 남기고 간 월병을 아기 새처럼 아주 조금씩 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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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작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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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부드러운 단맛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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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단맛과 함께 의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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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월 씨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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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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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단어를 평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곱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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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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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은혜를 갚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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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두 가지의 선택지 외에는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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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삶에는 단 한 번도 ‘하고 싶은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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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하루는 동이 트기 전 검을 쥐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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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번의 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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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의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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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권의 무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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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듯한 아픔이 있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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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정해준 길이자, 그녀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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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다는 감정도 하기 싫다는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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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해야만 한다는 의무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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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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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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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은 차기 맹주를 선출하기 위해 분주했고, 설유월 또한 당연히 그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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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로들이 뱉은 이름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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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 무림맹주로, 원로회의의 철혈검제를 추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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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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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실패했다 여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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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부족함 탓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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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녀는 세상과 문을 걸어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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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관수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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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남기신 무공의 구절들을 미친 듯이 되뇌고, 또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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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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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의 전진도, 경지의 발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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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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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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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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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남겨주신 구절들을 무한히 반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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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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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녀의 정신이 먼저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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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心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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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고통과 함께, 의식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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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끔찍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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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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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그녀는 비틀거리며 동굴 안쪽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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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둠 속 고요한 물웅덩이 위로 자신의 모습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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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검은 머리칼 절반은 죽은 재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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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설유월에게 있어, 실패의 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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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 한번 설유월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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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견딜 수 없이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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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고요함이 그때 그 동굴의 어둠처럼 그녀를 집어삼킬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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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느껴질 정도로 덜덜 떨릴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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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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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반사적으로 옆에 놓인 월병 봉투를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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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조각을 꺼내 입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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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과자가 혀 위에서 서서히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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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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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맛이 그녀를 괴롭히는 지독한 쓴맛을 조금씩 씻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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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아직도 의원의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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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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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원하는 것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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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와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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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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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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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설유월이 자신의 의지로 처음 떠올린, 원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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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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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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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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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어제도 토요일이었지만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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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바로 다음날이었기에 일을 했어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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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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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과의 대화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서령과의 만남도 일단은 나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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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마침내 찾아온 완벽하고 공식적인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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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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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담사 유선우가 아닌 그냥 유선우로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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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가 그릇에 시리얼을 쏟아붓고 차가운 우유를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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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피곤하게 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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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늘 부족했고, 자료를 조사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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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상담사가 된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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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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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킨 TV 화면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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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로 서울숲 일대에서 발생했던 전이 침식 현상이 안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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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설유월이 넘어오면서 발생했던 침식은 무사히 수습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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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꼼꼼한 안전 검수 후, 다음 주부터 다시 서울숲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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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뉴스를 보며 시리얼을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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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대한 회복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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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세계는 이방인이라는 존재에 완벽하게 익숙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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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전이가 발생하면, 도시 하나가 마비되는 것은 기본이며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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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대규모 전이가 아닌 이상 해프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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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대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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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신속하게 현장을 통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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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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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에 있을 뒷일은 이제… 내가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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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먹은 그릇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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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오늘은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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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뭐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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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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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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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한꺼번에 내 내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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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공부할 거리도 두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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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 밤샐 필요 없이 느긋하게 자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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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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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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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부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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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쌓아둔 미뤄왔던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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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탁 바구니를 들고 빨랫감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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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속옷, 그리고 흰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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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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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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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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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빨래 더미를 뒤져봐도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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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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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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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 없었기에 집에 있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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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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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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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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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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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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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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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건조기 문 앞에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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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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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선생님의 상담실에서 훔쳐… 아니, 가져온 의사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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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집에 오자마자 가장 좋은 세제로 가장 깨끗하게 세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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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섬유 유연제까지 듬뿍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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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건조가 끝났을 때, 그녀는 만족스럽게 가운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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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나는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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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기분 좋은 향은 아주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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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뭐, 선생님의 옷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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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신을 차리고 맡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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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다른 향이 아주 진득하게 덧씌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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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까지 마친 새하얀 가운에서 나올만한 향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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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고, 농후한… 수인 특유의 달콤하고 노골적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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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몬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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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 이후라 그런지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페로몬 향인 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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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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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자신의 몸이 멋대로 반응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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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물건에 흔적을 이렇게 진하게 남겨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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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평범한 인간이라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수인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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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나… 유니온의 다른 수인이 맡는다면 단번에 알아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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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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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재빠르게 두 번째 세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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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를 두 배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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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리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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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가 끝나는 알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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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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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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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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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리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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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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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빠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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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돌려드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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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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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절망에 빠져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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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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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가 하품을 하며 세탁실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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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암… 언니 뭐해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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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동생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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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엘리스는 나보다 더 성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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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큰일 났어! 혹시… 페로몬 지우는 법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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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엘리스도 모르는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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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몬? 언니가 페로몬을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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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루나의 손에 들린 가운으로 코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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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번 킁하고 냄새를 맡더니 그대로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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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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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언니의 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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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짙고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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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구별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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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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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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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언니의 방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그녀는 몰래 세탁실로 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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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나가 자는 내내 한참 동안, 아주 한참 동안 킁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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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된 공간에서 그러고 있다 보니 그녀의 향이 완전히 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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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향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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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가운에 코를 깊게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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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훨씬 더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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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확인했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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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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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너무 진하지? 너무 노골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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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루나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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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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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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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즘 미쳤나 봐… 몸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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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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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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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차마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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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언니가 자신이 한 변태 같은 일을 전부 뒤집어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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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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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언니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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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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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결국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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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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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그런 언니의 등을 아주 복잡한 표정으로 토닥여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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