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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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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유니온 길드의 꼭대기 라운지, 구석진 곳에 놓인 공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임무가 없는 오후는 지루하다.

퇴근까지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턱을 괸 채 컴퓨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냐고?

“…….”

그녀는 진중한 표정으로 검색창에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헌터 갤러리.]

저번에 언니가 첫 상담 때 선생님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된 인터넷 공간.

당연히 자신이 뭇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으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때 보았던 그 정도의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따라서 가끔 엘리스는 그 사이트에 들어가 구경하고는 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스는 망설임 없이 엔터키를 눌렀다.


✪ 이번 분기 최신 길드 랭킹 [221]

작성자: ㅇㅇ | 조회: 98,139 | 추천: 1156 | 댓글: 221


저번주쯤에 나온 분기별 길드 랭킹임

10대 길드 자체는 변화 없는데 안에서는 순위가 좀 바뀐 듯?

[1위][대해(大海)]

[2위][군주]

……

[5위][유니온]

[6위][에스더]

[7위][해태]

……

[10위][창천맹]


엘리스는 자신의 길드인 유니온이 5위에 랭크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전 분기 6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꽤나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10대 길드 내부의 서열은, 한번 정해지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길드 내에서도 축하 파티가 열렸던 기쁜 소식이었다.

루나와 엘리스의 활약이 좋았다.

라고 정보팀 쪽에서 판단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해태 길드가 7위까지 추락한 것은 의외라면 의외였다.

물론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헌터의 전력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고.

압도적인 S급 헌터 진세아와 그 외의 탄탄한 A급 라인업을 고려하면 쉽게 떨어질 만한 랭킹은 아니었기 때문.

엘리스는 턱을 괸 채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은… 댓글 창에서도 아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 ㅇㅇ: 신 대 해

  • 구조대원함: 근데 해태는 뭘 쳐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랭킹이 꼬라쳐박는거임?

└ ㅇㅇ: 길드에서 납치 범죄자가 나왔는데 뭘 하지도 않은 게 맞냐? 해태 주식샀음?

└ 구조대원함: 알아서뭐하게씨발아

└ ㅇㅇ: 아 ㅈㅅ

  • 분석가: 백시은 사건도 이유긴 한데, 해태가 진세아 원툴이잖음? 근데 최근에 내부 팀 개편이 ㅈ같았나봄 공개 스크림 보니까 평균 멤버는 전보다 나아졌는데 팀끼리도 계속 합이 안 맞더만

└ 분석가: 그리고 평균 멤버는 애초에 의미가 없는게 진세아 원툴이라 얼마나 진세아 서포트 얼마나 잘하냐 마냐라서 지금 팀이 걍 더 별로라고 봐야 할 듯?

└ luka14: 팀을 갑자기 왜바꾼거임?

└ 분석가: 나야 모르지

  • 퍼리가아니라수인: 걍 꼴림 순위대로 정상화 되는거지 애초에 수인밭인 유니온이 1등이맞음

  • ㅇㅇ: 창천맹주 젖탱이가 세상을 구한다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스크림을 공개했는데….

오히려 평가가 안 좋았다고?

공개 스크림.

길드 내에서 모의 던전 공략을 리플레이로 녹화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주요 공략 스크림 같은 경우는 극비에 부쳐지지만

때로는 길드의 주가 부흥이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 공개하기도 한다.

나름, 해태 길드 입장에서는 새로운 팀을 꾸린 것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영상일 텐데….

엘리스도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동영상 사이트를 켰다.

[해태 최신 프론트라인 공개스크림]

가장 위에 익숙한 해태 길드의 로고와 함께 영상 하나가 떠 있었다.

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여 재생 버튼을 눌렀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HAETAE'S NEW FRONTIER]라는 인트로가 떠올랐다.

화면이 전환되며 모의 던전의 입구 앞에 서 있는 헌터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영상은 빠르게 진행됐다.

늘 그렇듯 진세아의 압도적 캐리.

그녀가 휘두르는 번개가 던전을 쓸어버리고.

다른 팀원은 잔해를 정리하는 청소부에 가까워 보였다.

“…….”

뭔가 이상했다.

공략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어딘가 기묘하게 삐걱거린다.

엘리스는 바로 해태 길드의 과거 공개 스크림 영상을, 재생했다

“…… 그러네.”

확실히 다르다.

새로운 팀과 예전의 팀. 두 영상의 흐름 자체는 비슷했다.

진세아의 원맨 캐리.

그러나 예전의 팀은 진세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면….

그에 비해 새로운 팀은, 진세아라는 거대한 말이 이끄는 짐마차처럼 보였다.

엘리스는 두 개의 영상을 띄워놓고 그 차이의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엇?”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발견했다.

예전 팀의 영상.

그 전선의 가장 중앙.

A급 탱커와 S급 헌터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 있는 한 명의 남자.

그는 화려한 어빌리티도 압도적인 무력도 보여주지 않는다.

동료들의 뒤에 서서 간결한 손짓과 함께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계속 지시할 뿐.

그리고 그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헌터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해태 길드 소속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셨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화면 속 전투복 차림으로 전투하는 그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 멋있당….”

이건 집에 가서 다시 봐야겠다.

엘리스는 아쉬운 마음으로 영상을 끄고, 다시 갤러리 화면으로 돌아왔다.

뭐, 해태의 랭킹 하락 원인은 대충 알겠다.

아마 시간이 지나 팀의 합이 맞게 되면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어도 뭐, 딱히 상관은 없고.

“다음 글은….”

“엘리스 헌터님!”

“네?”

바로 그때, 라운지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길드의 매니저였다.

“저번에 찍으셨던 화보 건으로 미팅 연락이 왔어요! 지금 바로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저번에 찍었던 수영복 화보.

그곳에서 연락이 온 듯했다.

엘리스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갈게여~”

그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라운지를 나서려던 순간.

문이 열리며 루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루나가 엘리스에게 물었다.

“어디 가?”

“아, 언니. 나 화보 미팅 좀. 금방 다녀올게.”

“응. 잘 다녀와.”

엘리스는 언니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대로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루나는 라운지의 소파에 앉으려다가…환하게 켜져 있는 모니터를 발견했다.

“얘도 참….”

전원은 끄고 가야지.

루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기 위해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헌터 갤러리]

  • 흠칫.

모니터에 떠 있는 그 두 단어에, 루나의 뻗었던 손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리고 이 넓은 라운지에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본 적이 있다.

아니, 엘리스에게 강제로 시청 당한 적이 있다.

그때는 면역이 전혀 없어서 그대로 기절해버렸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

선생님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치료의 일환일 수도 있다.

루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마우스를 잡았다.

그리고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그때, 루나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을 발견했다.


✪ 헌터 전문 상담사 납치사건 분석 [75]

작성자: ㅇㅇ | 조회: 51,441 | 추천: 956 | 댓글: 75


이번에 새롭게 생긴 상담사 한 명 납치당한 건 알거임

근데 정보도 아예 없고, 그냥 구출됐다더라~ 정도로만 아는 애들이 많던데 그거에 대해서 좀 자세히 이야기해볼까 함

기본적으로 용의자는 다들 알다시피 헤스티아 출신의 해태 길드원 백시은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진짜, 조금만 구조 늦었어도 좆될뻔했음

그러니까 헤스티아는 애초에 여초 세계인데….


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루나는 정확히 헤스티아가 어떤 세상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글쓴이가 분석한 헤스티아의 문화와 그들의 약탈혼이라는 풍습, 그리고 그들의 능력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

선생님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우스를 쥔 루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순수한 분노 때문이었다.

루나는 댓글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 완장: 헤스티아 출신 헌터들 대부분 서포터잖아 능력도 도핑 계열이고. 걍 존나 위험했던 건 맞는 듯?

  • Xmas: 글 자체가 헌들갑, 내가 헤스티아 출신 헌터랑 사귄적있는데 딱히 그 정도 아님

└ dasbade: 아 ㄹㅇ? 지금은 헤어짐?

└ Xmas: ㅇㅇ 지금은 내 주인님임

└ dasbade: 뭔 개소리야 이 미친새끼야

└ KAL: 이새끼 컨셉 아닌데? 싸지른글 보셈. 진짜 좆될뻔한거같다

└ Xmas: 몇분만 지나면 걍 기분 좋아질수잇던데

  • 유아독존: 윗댓글보고 확실히 이해했다


글?

루나는 Xmas라는 아이디를 클릭했다.

그가 과거에 썼던 글들의 목록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하소연 글이었다.

[Xmas: 요즘 여친이랑 자꾸 싸우는데 ㅈ같네걍]

[Xmas: 결국 헤어지기로 했음 니들은 이방인이랑 연애하지 마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Xmas: 요즘 저녁마다 좀 피곤한데 비타민 뭐먹어야되냐?]

[Xmas: 잠이 존나온다]

결국.

[Xmas: 내가 잘못했던 거였음… 요즘 걍 깨달은 게 있다]

[Xmas: 니네 남자가 사는 목적이 뭐같냐?]

[Xmas: 내가 무슨 삶을 살고싶어했던건지 알겠어]

[Xmas: 기분ㅈㄴ좋아]

루나는 더 읽는 것을 포기했다.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선생님은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이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루나 또한 신경을 써야만 한다.

선생님을 보호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 백시은이라는 여자를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

“후….”

루나는 뜨거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다음 글로 시선을 옮겼다.


✪ 엘리스 수영복 화보 B컷 공개 [121]

작성자: 완장 | 조회: 86,995 | 추천: 1012 | 댓글: 121


(사진)

(사진)


그곳에는 엘리스의 수영복 차림이 있었다.

저번에, 그녀가 이벤트로 촬영했었던 그 잡지와는 또 다른 사진들이었다.

아마 잡지에 실리지 못한 B컷들인 듯했다.

이번엗도 역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ㅇㅇ: 잘썻어요

  • ㅇㅇ: 손잡이 튼실하네

  • 가니안: B컷이 아니고 G컷 아님?

└ dasbade: ㅋㅋㅋ 미친새끼

  • mercy: 여성 헌터들 성상품화 걱정되긴 하네 ㅠ

└ dasbade: ㅗ

└ ㅇㅇ: 지랄말고 헌갤에서 꺼지셈

└ ㅁㅁ: 남자라면 싫어할 수가 없잖아


남자라면 싫어할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선생님도 남자인데….

만약 선생님도 엘리스의 저런 모습을 보면….

“……”

‘나도 찍어야 하나…?

루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만인에게 공개되는 저런 노골적인 화보 같은 것 말고….

선생님에게만 살짝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루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엘리스가 미팅하러 갔었던 게 생각났다.

과거 그 화보사에서는 루나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했었다.

이벤트성이라 공개를 안 해도 좋으니, 찍을 수만 있게 해달라고.

전 직원이 여성이니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며, 엘리스가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것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단칼에 거절했었다.

누군가에게 사진이 찍힌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사진 몇 장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것도 선생님 전용이라면….

“미팅… 끝났으려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