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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헬스는 그만둔 지 오래였지만, 항상 그렇듯 옥스에게 끌려가 강제로 인간의 일일 최소치에 해당하는 운동을 해야만 했다.
내 체력이 걱정되는 건 이해하나 이미 매일 일어나 무거운 거 두 개씩 달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바다.
아무튼.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방에 누워 있자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줘!”
굳이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특징적인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야, 옷은 좀 입고 다녀라.”
“여기서 뭘 더 입어요. 방 더운데.”
이미 봄 넘어서 이른 여름인데 뭘 더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나가느라 대충 걸쳐 입었던 빨간 점퍼를 다시 장롱에 넣고선 스트라이크를 방 한쪽의 테이블에 앉혔다.
“그래서, 이 오밤중에 왜 왔어요?”
“오밤중은 무슨. 솔랭 돌리기 딱 좋은 시간인 거지. 그나저나 방송 안 해?”
“한 십 분 쉬었다가 켜려고 했는데 오셨잖아요.”
“아하.”
이 인간.
슬슬 말 돌리는 거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가 보다.
평소에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살더니, 이럴 때는 또 굼뜨다.
“빨리 말해요. 안 그러면 기숙사 관리하시는 분 부를 거니까.”
“야. 야. 그건 아니지.”
지나치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내 성향을 파악한 플루크나 옥스와 달리 아직 놀리는 맛이 남아있다.
“솔랭 돌릴 시간 뺏는 사람이 제일 나빠요.”
아무튼, 이렇게까지 말하니 결국 스트라이크는 입을 다시 열었다.
“나 좀 가르쳐 줘.”
“제가요?”
“응.”
“뭘요?”
“전부 다.”
흠.
이건 좀 의외인데.
혹시나 고백이라도 할까 봐 걱정한 내가 무색해질 정도로 비장한 모습이었다.
“근데 제가 원딜한테 뭘 가르쳐 줘요?”
“맵 리딩, 시야 싸움, 한타 각 보는 거, 그리고 승리 방정식.”
원딜답게 딜각 잡는 거나 딜하는 방법은 뺀 걸 보니, 역시 이 인간은 숟가락이란 말이 이리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백지수표 못 받아서 분해요?”
“......어느 정도는?”
“팔십 퍼센트?”
“구십...구십오 쯤?”
원래 인간이란 게 인정 욕구가 특히 강한 동물이니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최소한 솔직한 걸 보니 그 인정 욕구만큼 발전하고 싶은 마음도 강해 보였다.
“근데 코치 분들은 두고 왜 저한테 와서 그래요?”
난 미드라이너지, 원딜이 아니다.
그리고 ST가 어디 중소 팀도 아니고, 개념이나 필요한 기술을 주입시켜 줄 코치들은 차고 넘쳐난다.
가르치는 면에서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나을지도 몰랐다.
“아니. 네가 제일 잘 가르쳐.”
“무슨 근거로요?”
“넌 나랑 비슷한 각을 보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플루크야 본인만의 플레이 근거가 확실한 녀석이라, 굳이 무언가를 더 시키기보단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방식으로 플레이하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선수들 중 내가 낸 한타 견적에 호응이 가장 빠른 건, 다름 아닌 눈앞의 스트라이크였다.
가끔씩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각 보고 혼자 들어갔다가 폭사해서 문제긴 했지만.
“물론 네가 더 정교한 건 알아. 근데, 네가 생각하기에 내가 진짜 못 써먹을 원딜로 보여?”
“......”
여기서 장난으로라도 아니라고 하면 온갖 추한 꼴 다 보여줄 거 같아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약간 고민했지만, 결국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떤 원딜이 되고 싶은데요?”
싹수는 보이니.
ST의 선배로서 내가 할 일은 키우는 거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실력 키우고 나서 외부에서 제안 들어오면 휙 떠날 거 아니죠?”
내 질문에 그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봤다.
“그거 다 배우면 내가 최고가 될 텐데, 다른 데를 왜 가.”
“합격.”
ST 선수라면 이래야지.
역시 원딜은 낭만 있는 라인이 맞나 보다.
같은 시각.
새벽 한 시가 넘은 만큼 상주하는 직원들조차 찾아보기 힘든 ST의 사옥에 몇몇 선수들—옥스, 플루크, 벨—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었다.
과자 하나와 음료수 둘, 그리고 얼음물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모습에, 24시간 상주하는 셰프는 그저 말없이 속으로 응원만 했다.
“부럽다.”
“뭐가.”
“창현이 형 백지수표 제안받은 거. 따지고 보면 실력 있다고 증명 받은 거잖아.”
벨은 어디로 사라진 원딜을 유기하고 이곳에 와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그렇게 말했다.
“증명은 무슨. 난 요즘도 게임을 어떻게 이기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옥스는 트루를 운동으로 갈굴 때와 달리 한숨만 푹푹 내쉬며 얼음물만 들이켰다.
“트루 말만 잘 들으면 되잖아요.”
“그게 비정상적이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하는 말이지.”
벨의 말에, 옥스는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지금이야 문제 없는데, 너도 알잖아. 트루가 없거나 내가 다른 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ST2의 다른 멤버들과 달리, 옥스—오창현—은 올해로 성인이 된다.
초조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학이야 안 가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평생 반쪽짜리야.”
피지컬 하나는 발군이 맞다.
하지만 결국 선수로서 제 기능—1인분 이상—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특히나 헌터라는 포지션 특성상 뇌지컬적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코치님들은.”
“동선 짜는 거나 조건에 따라 플레이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사실 대다수의 경기는 헌터들이 서로 뒤틀린 숲의 몬스터들 반씩 나눠 먹고, 갱 가거나 오브젝트를 위한 한타에서 죽고 죽인다.
그런 만큼 후반 헌터들의 동선은 수많은 변수가 있고, 그런 건 코칭으로 완전히 커버가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절대적인 시간이나, 록이라는 게임의 이해 측면에서 천재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옥스에겐 둘 다 부족했다.
“그러면 그냥 트루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죠?”
“해봤지.”
사실 그건 실패한 지 오래다.
‘여기서 상대가 무조건 동선을 트니까 지금 들어가서 몬스터 캠프 하나 털고 바텀으로 역갱각 잡으면 되잖아요?’
‘무조건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
‘안 그러면 이 상황에서 상대 미드랑 탑이 은근슬쩍 위쪽으로 몸을 쏠리게 할 이유가 없거든요. 소위 말하는 페이크죠.’
‘......’
트루의 길고 긴 선수 생활을 모르는 옥스는 저 말에 정신이 대략 혼미해졌다.
저런 순간적이고 찰나의 움직임과 분석만으로도 전 맵의 시야를 밝힌 것처럼 게임하는 트루를 따라잡는 건 옥스가 생각하기엔 솔직히 무리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예요 형.”
“ST1에서 트루가 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좀 많아져서.”
인게임 보이스만 들어도 트루는 마스터 리그 때보다 말수가 적었다.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임과 동시에, LOCK나 LOCC 등 1부 리그에서 옥스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상위권 팀들과의 경기는 결국 한 명의 오더보다는, 모두가 1인분 이상을 해내야만 한다.
세심한 케어와 지시가 실시간으로 필요한 옥스가 설 자리는 없다는 의미였다.
1군에는 분명 자신의 피지컬에 필적하면서도 머리를 훨씬 잘 쓰는 헌터들이 존재할 테니까.
“여기서 만족하긴 싫어.”
옥스의 목표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의 손으로 LOC 월드컵 트로피를 쥐는 거다.
“그리고 내가 볼 땐, 트루 옆에 붙어있는 게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거든.”
그런 만큼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고 더욱 날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옥스는 스스로 발전해야만 했다.
특히, 지금까지야 트루의 말만 무작정 들으면 됐다지만, 당장 이번 시즌 각국 그랜드 리그의 팀들이 모여 하는 국제전만 하더라도 쉽진 않을 터다.
트루라는 비대칭 전력이 있긴 해도 어찌 됐든 게임은 다섯 명이 해야 하는 거고, 국제전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선수들의 본 실력을 위축시키는 법이니까.
그녀가 드는 통나무를 더 무겁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생각하는 걸 내게도 알려줘.”
트루는 이미 팀원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옥스로선 그게 불가능하니 직접 듣고 하나하나 머릿속에 욱여넣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반복 작업은 옥스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 KTT Dito -> ST Strike ]
KTT와의 맞대결에서 평화롭게 상대 미드를 집에 보내고 다시 라인으로 복귀하고 있던 와중 뜬금없는 킬 로그가 떠올랐다.
[으아아악! 아니 스트라이크 선수 왜 가만히 있나요!]
[이러면 말렸던 디토 선수가 기분이 좋아지죠!]
[라인전 잘 하고 있었는데 이게 전부 무위로 돌아가는 ST 바텀!]
“아, 미안. 맵 리딩하다가 부쉬에서 나온 걸 놓쳤어.”
“......”
한숨을 쉴 새도 없이, 뜬금없이 탑에서도 비보가 들려왔다.
[ KTT Medic -> ST OX ]
[아니 옥스 선수는 왜 탑에 가서 킬을 대주나요!]
[이러면 라인이 묶여 있던 메딕 선수의 고달팠던 시간이 보상이 되죠!]
“여기서 분명히 상대 헌터가 내려가야 맞는데?”
“......”
뭐지.
내가 아직 ST1에서 뛰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