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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일에는 스크림 할 팀도 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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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진출전을 치러야 하는 KTT와 밀키웨이랑은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마스터 리그의 절대다수의 팀들은 이미 시즌이 끝나서 선수 개개인부터 제각기 살길 찾아 떠나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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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승 진출전이 열리는 오늘은 솔로 랭크 방송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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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만 오늘 있을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무더기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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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결승전을 제외한 플레이오프 경기가 치러지는 아레나 건물 내부에는 여러 부대시설이 있는데, 피시방도 그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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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우리 또한 그렇게 홀려서 들어가 록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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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걸 넘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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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콤보와 함께 넘어오는 네 명의 상대 팀 챔피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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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합을 맞춘 지 한 시즌이 다 되어가는 만큼 나머지 넷이 그대로 넘어온 챔피언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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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거지. 아직 이 정도는 한다고. 짬이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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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VR 기기는 벗고 오랜만에 헤드셋만 낀 채 피시방의 컴퓨터 화면으로 관전 중이었고, 오늘 한정으로 ST3 미드는 감독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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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자랭이라서 당해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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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솔랭 플래티넘 정도면 반응하고 다들 플 썼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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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것만 해도 궁 하나에 플래시 4갠데 이득이지. 아주 안 되겠네 이 녀석들. 개념 공부부터 다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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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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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는 질색팔색을 하며 감독님의 뛰어난 플레이—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에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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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부를 떠나 방금 아제르로 4인 토스해 주는 모습을 보니 최소한 숙련도 하나는 어디 안 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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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아직도 마스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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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도 나중에 감독해 봐. 게임 할 시간이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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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까 감독님 은설이한테 아제르 진짜 안 가르쳐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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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올랐는지, 플루크 녀석은 감독님께 그렇게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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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주긴. 난 은설이가 정규 시즌에 뜬금없이 상대 조합 보고 아제르 좋다고 픽 박았을 때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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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좋긴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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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원딜에, 뚜벅이 미드 메이지를 들고 덤벼오면 아제르 콤보 한 번쯤은 겪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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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번보단 많이 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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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문제가 아니고, 유망주 소리 들어도 안 이상한 나이인데도 내 전성기 실력보다 좋은 거 같아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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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영상 보고 많이 배우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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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본다고 됐으면 프라우드 녀석이 알려달라고도 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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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내게 챔피언 숨겨둔 거 더 없다고 은근슬쩍 찔러보려다, 이내 다른 팀원의 목소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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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프라우드한테도 가르쳐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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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LOCK 미드들 아제르 다루는 거 다 나한테서부터 걸러 내려온 거야 이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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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감독님의 추억을 되짚고 있자니, 주변에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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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저희 들킨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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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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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솔직히 눈에 안 띄길 바라는 게 더 양심 없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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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인 쭉 차지한 그룹인 것만으로도 한 번씩 확인할 때 눈이 갈 텐데, 다 같이 ST 바람막이 점퍼 걸어놓고, 가운데에는 내가 앉아서 관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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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아레나까지 올 정도로 마스터 리그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이라면 지금 앉아있는 여섯 중 하나라도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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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슬슬 일어날까? 너희들 굿즈샵에서 살 것도 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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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 할인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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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굿즈는 해줄 텐데, 다른 게임 관련 굿즈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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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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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죽이 잘 맞는 바텀 듀오는 낄낄대며 게임을 종료하고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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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사람이 뭐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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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듯이 달걀형의 타원형 의자에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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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확인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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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랑 벨 선수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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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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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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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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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질서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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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어디 동네 피시방도 아니고,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니만큼 자체 경비원들이 능숙하게 통제를 하니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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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갑자기 스타 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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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저거 안 보이냐. 다 트루 보러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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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군 되면 나도 저거 반 정도는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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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시즌 우승부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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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텀 듀오의 만담을 들으며 내게 이리저리 내미는 종이들에 사인을 휘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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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때도 많이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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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그 인파 가득한 LOC 월드컵의 결승전에 비하면, 지금 내게 몰리는 관심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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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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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쿠폰 쪼가리가 십오 만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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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이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한결같은 부분이 있다면 게임사의 돈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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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 앉아 굿즈샵에서 산 ‘두 개의 검’ 전자 피규어 등록을 위한 쿠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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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쿠폰에 적힌 코드를 입력하면 내 로비룸에 은빛의 검과 검붉은 검이 교차하는 피규어 하나를 배치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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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의미가 없진 않지만, 솔직히 일반인이면 안 살 가격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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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아직 떡밥도 거의 안 나온 챔피언 굿즈는 대체 왜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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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중에 이해하게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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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크의 핀잔에도 나는 꿋꿋하게 쿠폰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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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이란 게 한정판 굿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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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마침 검신도 빨개서 내 ST 굿즈 가득한 로비 데코레이션이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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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편하게 보고. 어느 팀이 특히 더 잘해도 너무 걱정하진 말자. 우린 우리대로 준비할 거니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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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자 쓰고 진지한 걱정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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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띠모 모자를 쓰고선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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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 보면 띠모 한 서른 마리는 그대로 갈아 단백질 대용으로 삼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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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것만 쓰면 바로 중립팬 코스프레가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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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래 중립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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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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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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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팬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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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는 결승에 오지도 못하고 떨어져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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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KTT 올라오면 객관적으로 편한 것도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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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LOC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상태에서 반대편 4강에서 북미팀이랑 LOCK나 중국 1부리그 1위팀이 붙는다고 하면 북미팀 응원할 거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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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평소에는 누구든 다 패고 다닐 것처럼 말하고, 실제로도 패면서 이럴 때는 냉정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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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이성적인데? 그리고 내가 언제 사람을 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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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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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아, 원래 가해자들은 기억 못 하는 게 맞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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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는 왠진 모르겠지만 플루크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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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많은 팬 분들이 와주신 마스터 리그 플레이오프 4라운드, 결승 진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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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분들의 입장 거의 끝났고, 이제 슬슬 저희도 입을 가동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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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은 가볍게 결승전에 먼저 진출하신 ST3의 선수들과 안재훈 감독님으로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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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과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려한 조명이 우리가 앉은 자리를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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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벤트 얘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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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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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스파이짓 하러 왔냐 따위의 폭언보다는 박수 소리가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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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 대다수가 다른 팀 팬들일지라도 한 시즌 내내 우리 팀을 보면서 뭔가 느낀 게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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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새 옆에 도착한 직원이 건넨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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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보통 감독님이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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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주장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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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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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언제부터 내가 주장이었는지는 차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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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이크를 옆에 있는 스트라이크나 옥스에게 넘기는 것도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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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그냥 마이크를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그대로 캐스터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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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트루 선수. 오늘 이렇게 오셨는데, 승부 예측 한 번 시원하게 하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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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질문을 할지 뻔하긴 했는데, 캐스터님이 분명 '시원하게'라고 했으니 지금부터 하는 말에는 내 잘못이랄 게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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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개인적으로는 밀키웨이가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풀꽉 가서 어떻게든 아득바득 밀키웨이가 기어 올라오실 거 같네요. 느낌상 패승승패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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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KTT가 1세트 준비는 더없이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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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만 안 나면 분명 훌륭한 비수가 되어 밀키웨이에게 꽂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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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계속 밀리다가, 중간에 다시 각성해서 긴장 풀린 밀키웨이 한 번은 더 잡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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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ST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트루 선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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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라이벌 팀이 결승전이고 뭐고 눈앞에서 안 보이는 게 최고인 게 바로 팬들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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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졌지만 잘 싸웠다랑 싸워보지도 못했다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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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와 해설이 열심히 내 말을 포장해 줬지만, 오늘은 내 경기하는 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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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말을 하든 게임 끝나면 5꽉까지 간 KTT와 밀키웨이의 얘기로 도배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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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말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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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발언은 결승전 종료까지 책임 없는 쾌락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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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누가 올라오든 우승은 저희 건데, 라이벌 팀이 좀 먼저 탈락하는 게 보기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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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양 팀 팬들이 많은 곳에서 이렇게 대놓고 발언해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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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선수는 됩니다! 오늘 경기만 해도 반반으로 나뉜 게 아니라 트루 선수 순수 체급으로 삼분지 일은 ST 유니폼, 그것도 트루 선수의 닉네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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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그것도 내 개인 팬들로 둘러싸인 나는 그 자체로 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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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 열심히 싸우세요. 올라오시면 누구든 박살 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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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해맑은 미소에, 이번만큼은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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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참 특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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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오래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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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생에 먹을 욕 다 들어서 이미 오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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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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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LOC 월드컵 결승전—내 데뷔전—때 그 누구보다 오래 사는 게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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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삽십 년 정도는 더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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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소한 부작용으로 인생에서 뭐 하나가 바뀌긴 했는데, 록 실력은 그대로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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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냥 오늘 여기서 구경하면서 팝콘이나 먹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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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기장 입구 쪽에서 팔던 팝콘 봉지를 뜯으며,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선수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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