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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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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일에는 스크림 할 팀도 안 남는다.

결승 진출전을 치러야 하는 KTT와 밀키웨이랑은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마스터 리그의 절대다수의 팀들은 이미 시즌이 끝나서 선수 개개인부터 제각기 살길 찾아 떠나는 중이니까.

결국 결승 진출전이 열리는 오늘은 솔로 랭크 방송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나만 오늘 있을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무더기로 왔다.

참고로 결승전을 제외한 플레이오프 경기가 치러지는 아레나 건물 내부에는 여러 부대시설이 있는데, 피시방도 그중에 하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우리 또한 그렇게 홀려서 들어가 록 하는 중이었다.

“오, 이걸 넘기시네.”

능숙한 콤보와 함께 넘어오는 네 명의 상대 팀 챔피언들.

그리고 합을 맞춘 지 한 시즌이 다 되어가는 만큼 나머지 넷이 그대로 넘어온 챔피언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그래. 이거지. 아직 이 정도는 한다고. 짬이 얼만데.”

나는 VR 기기는 벗고 오랜만에 헤드셋만 낀 채 피시방의 컴퓨터 화면으로 관전 중이었고, 오늘 한정으로 ST3 미드는 감독님이셨다.

“근데 이거 자랭이라서 당해준 거 아닌가?”

“솔직히 솔랭 플래티넘 정도면 반응하고 다들 플 썼을 듯.”

“야, 그것만 해도 궁 하나에 플래시 4갠데 이득이지. 아주 안 되겠네 이 녀석들. 개념 공부부터 다시 할까?”

“아뇨...”

스트라이크는 질색팔색을 하며 감독님의 뛰어난 플레이—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에 찬사를 보냈다.

아무튼, 아부를 떠나 방금 아제르로 4인 토스해 주는 모습을 보니 최소한 숙련도 하나는 어디 안 간 모양이다.

“근데 왜 아직도 마스터세요.”

“...너희들도 나중에 감독해 봐. 게임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아, 그러고 보니까 감독님 은설이한테 아제르 진짜 안 가르쳐 주셨어요?”

문득 떠올랐는지, 플루크 녀석은 감독님께 그렇게 물어왔다.

“가르쳐주긴. 난 은설이가 정규 시즌에 뜬금없이 상대 조합 보고 아제르 좋다고 픽 박았을 때 식겁했다.”

“진짜 좋긴 했잖아요.”

뚜벅이 원딜에, 뚜벅이 미드 메이지를 들고 덤벼오면 아제르 콤보 한 번쯤은 겪어 봐야지.

물론 한 번보단 많이 하긴 했지만.

“좋은 게 문제가 아니고, 유망주 소리 들어도 안 이상한 나이인데도 내 전성기 실력보다 좋은 거 같아서 그렇지.”

“감독님 영상 보고 많이 배우긴 했죠.”

“그게 본다고 됐으면 프라우드 녀석이 알려달라고도 안 했지...”

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내게 챔피언 숨겨둔 거 더 없다고 은근슬쩍 찔러보려다, 이내 다른 팀원의 목소리에 묻혔다.

“감독님, 프라우드한테도 가르쳐 줬어요?”

“원래 LOCK 미드들 아제르 다루는 거 다 나한테서부터 걸러 내려온 거야 이 녀석들아.”

아무튼 그렇게 감독님의 추억을 되짚고 있자니, 주변에 사람들은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희 들킨 거 같은데요.”

“벌써?”

“그, 솔직히 눈에 안 띄길 바라는 게 더 양심 없는 거 같아요.”

한 라인 쭉 차지한 그룹인 것만으로도 한 번씩 확인할 때 눈이 갈 텐데, 다 같이 ST 바람막이 점퍼 걸어놓고, 가운데에는 내가 앉아서 관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일단 이 아레나까지 올 정도로 마스터 리그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이라면 지금 앉아있는 여섯 중 하나라도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 너희들 굿즈샵에서 살 것도 있다면서.”

“관계자 할인은 해줘요?”

“우리 팀 굿즈는 해줄 텐데, 다른 게임 관련 굿즈는 모르겠다.”

“까비.”

이럴 때는 죽이 잘 맞는 바텀 듀오는 낄낄대며 게임을 종료하고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사람이 뭐 이렇게 많아.”

그리고 바로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듯이 달걀형의 타원형 의자에 몸을 숨겼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확인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크랑 벨 선수 맞네.”

“그럼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트루 폼 미쳤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자, 자. 질서를 지켜주세요!”

다행히 어디 동네 피시방도 아니고,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니만큼 자체 경비원들이 능숙하게 통제를 하니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나 갑자기 스타 된 거 같은데.”

“아서라. 저거 안 보이냐. 다 트루 보러 온 거지.”

“...그래도 1군 되면 나도 저거 반 정도는 가능하겠지?”

“일단 이번 시즌 우승부터 해.”

나는 바텀 듀오의 만담을 들으며 내게 이리저리 내미는 종이들에 사인을 휘갈겼다.

“경기 때도 많이 와 주세요!”

예전의 그 인파 가득한 LOC 월드컵의 결승전에 비하면, 지금 내게 몰리는 관심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경기장 내부.

“이 쿠폰 쪼가리가 십오 만원이라니.”

전생이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한결같은 부분이 있다면 게임사의 돈독이리라.

나는 자리에 앉아 굿즈샵에서 산 ‘두 개의 검’ 전자 피규어 등록을 위한 쿠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쿠폰에 적힌 코드를 입력하면 내 로비룸에 은빛의 검과 검붉은 검이 교차하는 피규어 하나를 배치할 수 있게 된다.

내게 있어서 의미가 없진 않지만, 솔직히 일반인이면 안 살 가격이긴 하다.

“애초에 아직 떡밥도 거의 안 나온 챔피언 굿즈는 대체 왜 사는 거야?”

“너도 나중에 이해하게 될걸.”

플루크의 핀잔에도 나는 꿋꿋하게 쿠폰을 지켰다.

원래 사람이란 게 한정판 굿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게다가 마침 검신도 빨개서 내 ST 굿즈 가득한 로비 데코레이션이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자, 다들 편하게 보고. 어느 팀이 특히 더 잘해도 너무 걱정하진 말자. 우린 우리대로 준비할 거니까. 알겠지?”

“...이 모자 쓰고 진지한 걱정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요?”

옥스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띠모 모자를 쓰고선 그렇게 말했다.

겉모습만 보면 띠모 한 서른 마리는 그대로 갈아 단백질 대용으로 삼킨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것만 쓰면 바로 중립팬 코스프레가 가능하다고.”

“우리 원래 중립이잖아.”

“언제? 난 아닌데.”

“......”

중립팬은 무슨.

밀키웨이는 결승에 오지도 못하고 떨어져야 제맛이다.

“그리고 KTT 올라오면 객관적으로 편한 것도 맞잖아.”

막말로 LOC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상태에서 반대편 4강에서 북미팀이랑 LOCK나 중국 1부리그 1위팀이 붙는다고 하면 북미팀 응원할 거 다 안다.

“...넌 왜 평소에는 누구든 다 패고 다닐 것처럼 말하고, 실제로도 패면서 이럴 때는 냉정하냐.”

“난 항상 이성적인데? 그리고 내가 언제 사람을 팼다고.”

“......”

“지환아, 원래 가해자들은 기억 못 하는 게 맞다니까?”

옥스는 왠진 모르겠지만 플루크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를 건넸다.

[자! 많은 팬 분들이 와주신 마스터 리그 플레이오프 4라운드, 결승 진출전!]

[팬분들의 입장 거의 끝났고, 이제 슬슬 저희도 입을 가동해야겠죠?]

[그럼 시작은 가볍게 결승전에 먼저 진출하신 ST3의 선수들과 안재훈 감독님으로 시작해볼까요?]

해설과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려한 조명이 우리가 앉은 자리를 비췄다.

“이런 이벤트 얘긴 없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다행히 스파이짓 하러 왔냐 따위의 폭언보다는 박수 소리가 훨씬 컸다.

오늘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 대다수가 다른 팀 팬들일지라도 한 시즌 내내 우리 팀을 보면서 뭔가 느낀 게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나는 어느새 옆에 도착한 직원이 건넨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이런 거 보통 감독님이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에이, 주장이 해야지.”

“......”

일단 언제부터 내가 주장이었는지는 차치했다.

이 마이크를 옆에 있는 스트라이크나 옥스에게 넘기는 것도 문제니까.

결국 난 그냥 마이크를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그대로 캐스터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자, 트루 선수. 오늘 이렇게 오셨는데, 승부 예측 한 번 시원하게 하고 가시죠!]

무슨 질문을 할지 뻔하긴 했는데, 캐스터님이 분명 '시원하게'라고 했으니 지금부터 하는 말에는 내 잘못이랄 게 없는 거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밀키웨이가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풀꽉 가서 어떻게든 아득바득 밀키웨이가 기어 올라오실 거 같네요. 느낌상 패승승패승?”

일단 KTT가 1세트 준비는 더없이 잘 했다.

사고만 안 나면 분명 훌륭한 비수가 되어 밀키웨이에게 꽂히겠지.

그 뒤로는 계속 밀리다가, 중간에 다시 각성해서 긴장 풀린 밀키웨이 한 번은 더 잡을 거다.

[하하, ST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트루 선수군요!]

[기왕이면 라이벌 팀이 결승전이고 뭐고 눈앞에서 안 보이는 게 최고인 게 바로 팬들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졌지만 잘 싸웠다랑 싸워보지도 못했다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캐스터와 해설이 열심히 내 말을 포장해 줬지만, 오늘은 내 경기하는 날이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게임 끝나면 5꽉까지 간 KTT와 밀키웨이의 얘기로 도배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인즉.

오늘 내 발언은 결승전 종료까지 책임 없는 쾌락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애초에 누가 올라오든 우승은 저희 건데, 라이벌 팀이 좀 먼저 탈락하는 게 보기 좋으니까요.”

[아! 이렇게 양 팀 팬들이 많은 곳에서 이렇게 대놓고 발언해도 되는 겁니까!]

[트루 선수는 됩니다! 오늘 경기만 해도 반반으로 나뉜 게 아니라 트루 선수 순수 체급으로 삼분지 일은 ST 유니폼, 그것도 트루 선수의 닉네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ST, 그것도 내 개인 팬들로 둘러싸인 나는 그 자체로 군단이다.

“그러니까, 오늘 열심히 싸우세요. 올라오시면 누구든 박살 내버릴 테니까.”

내 해맑은 미소에, 이번만큼은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성격 참 특이해.”

“넌 진짜 오래 살 거다.”

“사실 전생에 먹을 욕 다 들어서 이미 오래 살고 있어.”

“......”

내 인생은 LOC 월드컵 결승전—내 데뷔전—때 그 누구보다 오래 사는 게 확정됐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삽십 년 정도는 더 살지 않을까.

물론 사소한 부작용으로 인생에서 뭐 하나가 바뀌긴 했는데, 록 실력은 그대로니 그걸로 됐다.

“우린 그냥 오늘 여기서 구경하면서 팝콘이나 먹으면 돼.”

나는 경기장 입구 쪽에서 팔던 팝콘 봉지를 뜯으며,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선수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