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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에게 합숙은 거의 반 필수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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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스크림과 솔로 랭크, 그리고 때론 경기 일정까지 소화해야 하는 터라 매일 각자 집에서 출근하는 건 못 할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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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집에 인터넷 연결 이슈라도 생기면 그날은 통으로 날리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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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로, 아카데미를 지나 엄연히 ‘프로’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되는 마스터 리그부터는 합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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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모님이 내 프로 생활에서 가장 걱정한 것도 비슷한 부분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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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방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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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도어록에, 빨래 같은 건 고용한 분들이 해주십니다. 당연히 여성분들이고요. 개인 시간은 당연히 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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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2부 리그나 3부 리그, 혹은 해외 리그에서는 여성 프로게이머가 간간이 있었기에 팀마다 나름의 규정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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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모님이 보시기엔 ST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성별이 여자인 프로게이머를 영입한 적이 없으니 더 극성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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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 짐이 이렇게 단출해서 어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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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있는 굿즈들이라도 챙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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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무슨. 보니까 구단에 널려 있던데 뭘 그런 걸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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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단에서 마음껏 쓰고 선물도 좀 하라고 십수 만원은 호가하는 자켓이나 유니폼을 세트로 한 무더기 주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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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한 시즌 내내 같은 옷으로 돌려막기도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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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짓을 했다간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상황 파악하러 온 우리 장 여사님이 나를 다시 집에 끌어다 놓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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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는 단출하디 단출한 짐을 가지고 ST의 사옥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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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바로 옆에 마련되어있는 숙소는 달라진 LOC의 위상과 더불어 한층 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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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 안 했으면 그냥 고급형 오피스텔인 줄 알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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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은설이구나? 듣던 대로 참하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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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ST3 담당 매니저님은 푸근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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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단 은설이 방 카드키. 잃어버리지 않는 게 제일 좋은데, 잃어버려도 로비로 오면 재발급해 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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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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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일단 짐부터 놓으러 가자. 오늘부터 바로 바쁘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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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방에 풀 시간도 없이 첫 스크림을 하러 가야 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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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방에 내 물건을 가져다 둘 수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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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동료들끼리 인사할 시간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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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마스터 리그 개막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약체라 평가받는 우리팀이 스크림 시간을 임의로 정할 수 없어 발생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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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라도 성적이 좋아지면 우리 맘대로 편한 시간에 스크림을 잡아 사소한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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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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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카드키에 적혀져 있는 번호를 확인하고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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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벽에 붙어있는 각 층별 용도를 확인하니, ST3는 5층, ST2는 6층, ST1은 7층에 머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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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는 카페부터 아카데미 교실, 연습실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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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실 여기 여자애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어. 알다시피 다들 남자애들에다 사춘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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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대가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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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보니까 은설이는 딱 느낌이 와. 어른스러워서 문제없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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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기준에서 보면 프라우드를 제외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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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프라우드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대하기 힘든 거고, 사석에서야 언제나 격 없이 지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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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이 괴롭히면 말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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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이, 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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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굴을 들고 담당 매니저님을 웃으며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 말을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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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 괴롭힌다는 말 취소. 은설이 두고 안 싸우면 다행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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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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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쓸모 있는 구석이 많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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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규정상 팀 내에서 연애는 금지인 건 알지, 은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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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님은 왠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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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저 그런 성격 못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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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매니저님이 걱정이 성립조차 하지 않는 이유야 차고 넘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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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 제가 찍어 누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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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팀에서는 게임 잘 하는 놈—년—이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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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1군이면 모를까, 마스터 리그 녀석들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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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원래 그런 곳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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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됐든, 모든 스포츠 구단의 기본은 경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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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 멤버끼리 경쟁해봐야 뭐하나 싶겠지만, 오더 하나에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반드시 팀을 휘어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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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팀 상태도 심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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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님이 미리 건네준 스크림 영상을 보면, 플루크를 제외하면 사람이 안 보였고, 심지어 그 녀석조차도 독박 이니시를 맡으면서 과부하가 많이 걸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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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약속 지키려면, 열심히 해야 할 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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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군에 있을 때 리빌딩한답시고 나 빼고 2군 선수들만 즐비했던 스쿼드에서조차 LOCK 우승을 해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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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지금 ST3에서 풍기는 구린내 정도면 재활용이 불가능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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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땐 은설이는 진짜 잘될 거 같아. 분명히 다른 애들이랑 비슷한 나이인데, 생각하는 게 다르네. 천방지축인 녀석들이랑 어떻게 붙여 놓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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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정말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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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느새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는 내 방이 있는 층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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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원룸 오피스텔 형식의 방 하나, 화장실 하나의 단출한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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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만 놓고 바로 연습실로 가자. 지금 가면 인사는 하고 스크림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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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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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주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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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저녁에 천천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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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성격이면 대충 해놓고 지낼까 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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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 여사께서는 태평한 내 모습에도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되시는지, 몇 번이고 내게 당부의 말을 건네며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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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만 집 갈 것도 아니고, 시간 나면 항상 집 갔다 올 수 있잖아.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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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언제 이렇게 독립심이 강해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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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는 프로니까. 돈값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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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님이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이라, 나도 입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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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봉 받고 팬서비스도 안 할거면 팀에서 꺼져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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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속 처 던지니까 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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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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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ST에서 배운 게 록 하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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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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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내려놓은 뒤, 마음 같아서는 거대해진 숙소를 좀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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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니? 그럼 바로 스크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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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지도 않고 바로 연습실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건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했던 ST3의 감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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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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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은설이 왔구나. 다행히 스크림 미룰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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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들 게임에 접속했는지 조용한 연습실에는 코치님만이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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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보다 왜 여기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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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리그팀 스크림까지 관여하실 정도로 한가하시진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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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내가 이번 시즌 ST3 공식 감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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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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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별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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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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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훈 코치님 밴픽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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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최선, 불가능하다면 차선, 최악의 상황에서는 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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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에서도 밴픽과 관련해 문제가 나온 적이 없었으니 3군이야 말할 것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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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확률 좀 상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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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밴픽을 잘해도 인게임 내 선수들의 퍼포먼스보다 영향이 크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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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낼 기반과 더불어 실수했을 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쥐어주는 건 밴픽에서 고른 챔피언의 성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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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1부 리그에 비해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그랜드 리그에서는 역설적으로 감독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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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의 실수를 잡아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그거야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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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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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간 없으니까 먼저 스크림 한 판 하고 나서 팀 동료들하고 소개 시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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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선 이기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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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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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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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나서 우중충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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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미드 진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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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유튜브에 영상도 올라왔는데 구라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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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아, 네가 좀 말이나 해봐. 같은 반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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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있던 미드라이너가 사라졌지만, 채 반 시즌도 같이 안했던 데다 라인이 다른 만큼 그들의 관심은 이미 새로운 미드라이너에게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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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은설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접점이 있는 지환을 닦달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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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관심은 당사자가 나타나자 그대로 그녀에게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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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 첫 판인데 잘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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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바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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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커스텀 스킨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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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냐. 우리 연습실에 그런 기능이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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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공간의 모습이 송출되는 게임 중계 특성상, 연습실 기기에는 그런 기능이 모두 제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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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금 튀어나온 트루의 모습은 현실과 똑같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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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로 온 팀원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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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본인이 LOC 월드컵 우승해봤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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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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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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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설의 급발진에 익숙한 지환을 제외한 모두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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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앞으로 다물고 제 말에 따라 오세요.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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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 소리야. 너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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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이...말대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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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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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언사였지만, 스크림 시간이 곧인 관계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반박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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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은설의 외모에 정신 팔려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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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준비된 밴픽으로 바로 시작한 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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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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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 True -> WD Merl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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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는 라인전 솔킬을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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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기 갱 와서 킬 주워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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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포지션 킬 챙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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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빼. 삼 초 내로 빼야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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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D Londo -> ST Stri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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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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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있으니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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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끝낼 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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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팀이 항복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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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트루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인지한 WD는 다음 스크림을 위해 빠르게 행복해지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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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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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화면에는 이겼다는 사실을 알리는 단어가 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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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 몇 달 간 상대의 항복은 커녕 승리조차 거둔 적이 드물었던 ST3의 선수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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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하나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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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했죠? 제 말 들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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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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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삼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었지만, 저 말에 반박할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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