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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화로운 ‘한국 고교야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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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고교야구를 다루는 커뮤니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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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상당한 네임드를 자랑하는 유저가 있다. 그 유저의 닉네임은 ‘갤주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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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고교 야구 선수의 플레이 움짤을 떠서 게시글에 올리고는, 제목마다 ‘갤주 떴냐?’라는 글을 쓰며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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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항상 높은 조회수를 자랑했는데, 이게 나름 갤러리의 유구한 전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갤의 추앙받는 존재, ‘갤주’를 감별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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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이야기를 하는 유저들답게 그들은 성인이 된 선수를 ‘상폐’취급하는데, 파릇파릇한 고교생들에게서만 갤주를 찾기엔 그들의 조건은 한없이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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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갤주 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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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불합격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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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예능감은 있는데 갤주에는 모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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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실력을 더 키워서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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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ㅋㅋㅋ 실력 더 키워서 오면 상해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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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실력이 좋으면 더 기준이 후하냐? 그것도 아니었다. 세종기 진출을 걸고 싸우게 될 한청고의 에이스이자 현재 고교 탑 3선발, 류한울 조차도 갤주는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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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갤주 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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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와, 졸라 잘하는데? 불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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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한청고 류한울 이 새낀 너무 잘해서 인간미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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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그냥 실력충 놈들이나 빨 법한 노잼캐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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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실력과 예능감이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갤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고교야구에서 두 가지 모두 갖춘 선수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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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감이 있으면 실력이 구렸고, 실력이 좋은 선수는 너무 노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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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몇 년간 황금세대라 불리며 엄청난 포텐셜의 선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한국 고교야구 갤러리’의 유저들은 갤주를 찾아서 늘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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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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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갤주 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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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은 게시판에 뜬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했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뒤에 물음표나 느낌표를 딱 하나만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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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인지 싶어 글을 클릭한 갤러리 유저들은 하나같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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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고를 노히트 노런으로 씹어먹는 야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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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묵직해진 상태로 야구를 한다는 미친 어그로 능력까지. 그들이 찾는 완벽한 갤주의 자질을 가진 게 금성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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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런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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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씨11발!!!!! 갤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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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호우!! 어디서 이런 개또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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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지금까지 당신 같은 인재를 기다려 왔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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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갤주 호소인 이 씹새들 당장 방빼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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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압도적 지지 하에 갤주에 취임한 금성묵. 한 경기 가지고 갤주로 모시는 건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 하는 소수의 의견이 있었지만, 고인물 유저들의 탄압으로 쉽게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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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등장한 신입 갤주 금성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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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타난 그를 위하여, 유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한가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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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별명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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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 엄청난 개성을 가진 성묵이다. 별명 만들 껀덕지는 차고 넘치기에 유저들 앞다투어 아이디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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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주님 묵직하시니까 ‘묵직좌’ 어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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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흠 무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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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쁘지 않네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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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무난한 별명이 가장 먼저 통과 사인을 받게 되었다. 그 다음은 영어를 활용한 별명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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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주님 이름에서 ‘금’이랑 ‘성’이 영어로 뭔지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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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Gold'와 ‘Sex’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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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을 합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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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골드짹스묵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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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아니 너무 천박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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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담기엔 너무 수위가 높은 탓에 순화하자는 의견이 다수 나왔고, 그 결과 ‘야스묵’으로 타협하는 데 성공한 유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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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별명은 성묵이 삼진을 잡고 외치는 ‘우효’에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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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효광 어떠냐? 우효 외치는 미친놈이란 뜻에서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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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갑자기 중국인 행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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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나름 ㄱㅊ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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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묵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사연이 뜬 뒤, 글 작성자는 댓글 폭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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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너어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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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가정사 가지고 장난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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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건 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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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나도 몰랐다고 시11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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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타날 뻔한 별명 하나는 그대로 묻혀버리고, 큰 임팩트를 가진 별명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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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갤주, 남자한테 벌떡 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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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어, 그러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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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거, H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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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 게이 어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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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성묵ㅋㅋㅋㅋㅋ 게잌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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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착착 감기네 개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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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심지어 들박선언까지 함 ㄷㄷㄷ 개통 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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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실과는 다르지만 게이 타이틀을 얻게 된 성묵. 금성묵 본인 선정, ‘가장 좆같은 별명 1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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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앞두고 나는 야구부 부실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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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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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성묵 게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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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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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신혜지가 내게 도무지 넘길 수 없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둘도 없는 상남자인 내가 게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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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취소해라. 방금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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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응 보니 모르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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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하고 내게 핸드폰을 내미는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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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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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봐봐, 여기서 너 완전 인기스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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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보이는 수많은 별명의 향연. 하룻밤 사이에 지어진 수많은 별명을 마주한 나는 그 수많은 정보량의 홍수에 뇌정지가 오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누가 봐도 날 대상으로 하는 것 같은 별명들만큼은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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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좌, 야스묵, 우효광, 묵신, 이게 다 내 별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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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역시 '성묵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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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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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여러 개가 땅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해서 보니, 박스채 야구공을 들고 오던 노아가 입을 틀어막은 채 나를 보고 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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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묵 오빠.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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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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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게이라니, 그러면 제 계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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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까지 헛소리냐. 혼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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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헛소리를 내뱉는 요망한 볼을 주욱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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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헤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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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명불허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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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말랑하니 촉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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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마, 나 여자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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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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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풀렸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노아. 그런데 아까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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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뭔데? 네 계획이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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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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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는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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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저 갑자기 급한 일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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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야구공을 휘리릭 박스 안에 쓸어 담더니 황급히 도망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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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싫은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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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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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마침 우르르 들어오는 부원들. 최아담이 나와 신혜지가 뭔가 대화하고 있자 궁금했는지 중간에 쓱 끼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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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이야기 하냐, 나도 좀 끼워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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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쨈민이 왔구나. 뭔 이야기 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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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대며 설명해주는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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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들은 동료들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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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부럽습니다 성묵 형님…! 벌써 별명도 생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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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대중이 금성묵 시주에게 가진 관심의 표현, 긍정적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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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지수용과 석운강,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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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막상 붙은 별명이 거지같으면 내 기분 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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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라도 붙으면 감지덕지지.나같은 무명한텐 배부른 소리다 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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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별명을 얻고 싶은 듯한 최아담은 닭벼슬 머리를 빗으로 쓱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오!'하는 표정을 짓는 신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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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최아담. 너도 별명 붙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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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뭣, 나한테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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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콧김을 내뿜는 최아담. 녀석은 신혜지 옆에 착 붙어서는 커뮤니티 글을 같이 읽기 시작한다. 그리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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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 최아담 스미스...!? 완전 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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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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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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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도진이 뭔가 알아챈 듯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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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라면 그거 아닌가요, '보이지 않는 손'이론을 창립한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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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런 유명한 사람이 내 별명? 대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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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쁜지 부실을 이래저래 스프린트하고 다니는 녀석. 그러나 진실은 사실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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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담? 얘는 공 보는 눈이 아예 없는 거임? 9구 3삼진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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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최'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공'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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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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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작은 신장 탓에 역으로 경기 중에 눈에 띄는 최아담인데, 타석에서 마저 공을 전혀 못 고르고 붕붕 대다가 3삼진을 먹은 게 꽤나 임팩트가 컸던 모양. 진실을 알게 된 최아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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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같은 자식들…!! 니들이 뭘 알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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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다던 녀석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데굴데굴 굴렀다. 지켜보는 우리에겐 마냥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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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우리 팀 영국인 용병도 생겼네.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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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라면 홍콩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아주 든든합니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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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씩 거드는 류지와 석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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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이도 팀에 꽤 융화되어선 이럴 때 농담 한마디씩 툭툭 던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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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부실에 전부 모인 야구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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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명감독은 성묵의 입을 통해 모두에게 '지옥 훈련'을 예고한 바 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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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은 금강고 전 승리 이후 들뜨지 말란 내 말을 잘 이행하고 있다. 군기가 빡 잡힌 모습을 보니 주장으로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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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모두 모여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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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명신우 감독. 나는 부원들에게 신호를 주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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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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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들 수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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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이고는 뒷짐을 진 채 부실을 걷기 시작한 명감독. 어느덧 선수단 장악을 꽤 해냈는지, 선수들의 눈빛에서 신뢰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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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무명 팀 이끌고 금강고도 때려잡은 감독인데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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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지만, 선수들의 굳건한 신뢰도 오늘 어쩔 수 없이 흔들리게 될 예정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직전, 명감독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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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성묵아. 3차전 직전 훈련 프로그램은 네가 직접 짜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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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색이 되어서 반기는 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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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하자고 해서 잘못된 게 없으니 믿음이 갈 수밖에.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명감독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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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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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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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이런 훈련은 좀 아니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훈련이 맞긴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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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간절한 표정으로 사정하는 명감독. 납득이 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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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반응이 정상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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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면 좌로 구르고 우로 굴러야 할 입장인 명감독조차 ‘아, 이건 좀….’이란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인 훈련을 강행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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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 훈련법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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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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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를 끌고 연병장을 달리거나, 흠집이 난 공으로 변화구 훈련을 하면 더 효과가 가미되는 것 등이 거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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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것들은 어디까지나 '상식'의 영역. ‘비상식’의 영역에 해당하는 히든 피스 훈련의 효과는 훨씬 더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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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상인이라면 도무지 제정신으로 할 수가 없는 짓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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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피스들은 야구계의 밈을 차용하여 만든 이스터 에그 느낌의 요소인데, 그 훈련 방식들이 범인의 사고로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기행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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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른 동료들에게 ‘이 훈련 해보쉴?’하고 설득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안 그래도 촉박한 대회 일정에 주인공의 미친 짓을 선뜻 시간 내어 해줄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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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훈련법들 자체는 ‘게임이 어려우면 주인공 캐릭터로 혼자 꿀 빠세요~’느낌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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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동료 전체에게 시킬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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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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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팀이라면 시도도 못 했겠지만, 문혁고는 내가 이사장에 감독까지 모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팀. 여기선 결코 불가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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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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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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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표정을 짓는 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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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독 자리를 두고 무언가 말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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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한마디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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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이번에 이사장님이 경기 결과에 꽤 만족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익명의 후원금 덕분에 예산 사정도 꽤 풍요롭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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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얼핏 들은 것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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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님한테 슬쩍 귀띔 해드릴게요. 감독님 보너스 좀 드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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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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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소리에 눈알이 팽그르르 돌아가는 명 감독. 그는 넙죽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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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아, 이 훈련!!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행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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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물도 팔아먹을 기세로 열의를 불태우는 명감독. 내가 혹시 협박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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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의 명감독. 그 열의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부원들 또한 긴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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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은 오늘 있을 훈련에 대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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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많이들 궁금했을 거다. 오늘 하게 될 훈련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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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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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직접 해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다. 정말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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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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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침 넘기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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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훈련이 너희들을 한단계 더 성장시킬 것임을! 여러분은 이 훈련을 통해 한층 향상된 선구안을 갖게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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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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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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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금강고 전을 통해 선구안의 부족을 특히 체감했을 터. 특히 영국인으로 국적이 바뀐 최아담이 제일 반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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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번 훈련은 경기장 바깥에서 받을 예정이다. 이른바 영외 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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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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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를 가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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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낭만 넘치는 훈련 장소를 떠올리는 선수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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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이 훈련받을 장소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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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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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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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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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눈가에 ‘?’가 뜨는 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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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는 척 손을 들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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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동물원에서 무슨 훈련을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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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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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답하고는 심호흡을 하는 명 감독. 아무래도 이 세계관이 받아들이기엔 좀 이른 수련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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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고증인 걸 어떻게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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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광주에 연고를 둔 모 야구 구단은 동계 훈련 기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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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의 비결이 뭡니까!? 혹시 구단만의 특별한 훈련법이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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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감독과 선수들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특별한 말 없이 기자를 동물원으로 부르더니,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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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훈련법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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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부터, 호랑이와 눈싸움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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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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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원의 눈이 다시금 ‘?’로 물들었다. 다들 자기 귀를 의심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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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눈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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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그 눈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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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부원들. 사실 어제 내가 선수들에게 ‘힘들테니 각오해라.’라고 한 것은 ‘자괴감 때문에 힘들 거다!’라는 의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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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괜찮은 거냐며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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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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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씩 웃으며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이게 바로 책임 없는 쾌락인가. 나쁘지 않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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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눈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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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가장 병신같은 훈련법 TOP3'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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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가장 사기적인 효과의 훈련법 TOP3’에 항상 랭크되는 훈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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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막상 할 때는 자괴감이 들지만, 하고 난 뒤에 이것만큼 차이가 큰 훈련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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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호랑이 기운 좀 받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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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안이 문혁고의 약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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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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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 위해 이런 개지랄도 소화해낸 우리 팀은 크게 강해질 거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짓거리를 종종 해야한다는 건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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