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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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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잘해야 할 텐데….”
도도연은 문혁고의 경기를 보며 그 누구보다 긴장했다. 그녀 또한 데이터 분석이라는 형태로 문혁고의 뒤를 돕고 있었기 때문.
사실 그녀는 당일에 들어서, 문혁고와 성묵의 승률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꽤나 부정적인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상대 분석팀에도 실력자가 있는 게 분명해. 장태산 선수가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게 피칭하고 있어.
류지의 타구가 파울 홈런이 됐을 때도 그녀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 한방으로 안 그래도 하강하던 승률이 10%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
4회 초 수비에 무사 12루 상황에 4번 타자를 맞이한 순간엔, 승률이 절망적으로 떨어졌다.
15% 언저리…, 일까.
그것도 어찌 보면 온정으로 잘 쳐준 것일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웅이 등장했다.
뻐엉--!!
“스트라잌 아우웃……!”
“………!!”
아산에서 보여준 그날의 모습처럼, 묵직한 모습으로 적들을 압살하기 시작한 성묵. 그녀가 세워둔 확률 공식이 모조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데이터와 숫자로 꽁꽁 묶여있던 도연의 세계. 그 촘촘한 숫자의 행렬은 결코 큰 범위의 오차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금성묵이란 존재는 그걸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의 힘으로 확률을 10%, 20% 올리는 것은 예사요. 두세배까지도 뻥튀기시켜버리는 것도 일도 아니다.
“아아…….”
도연의 세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세계를 망치러 온 구원자, 금성묵.
견고한 벽을 뚫고 온 성묵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당신에게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리라고.
삑, 삐익!
“게임 셋! 승자는 문혁고…!!”
“우와아앗……!!”
경기가 끝나는 순간, 도연만이 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부들부들 떨리는 도연의 몸.
온갖 감정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 정말로…?”
무너진 그녀의 세계 위에 태양이 떠 올랐다. 얼굴이 주체할 수 없이 화끈하다. 이 감정은 분명, 성묵에 대한 강한 이끌림이 아니고선 설명하기 힘들었다.
‘미쳤어 정말…!!
나이 차이가 무려 4살 차이.
게다가 아직 고등학생인 성묵이다. 그런 성묵에게 흑심을 품고 뭔갈 하는 건, 사회 통념상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
그러나 땀에 촉촉하게 젖은 성묵의 우람한 근육이 도연의 눈에 들어왔다. 저런 외모에 저 근육을 가져놓고 미성년자라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수컷의 향취를 느낀 도연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렇게 끙끙 앓는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
동생 도진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도연.
“한참 찾았네, 어디 있나 했더니.”
“아, 도진아 미안. 생각을 좀 하느라….”
“……….”
누나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도진. 그는 야구만 아니면 누나를 따라 서울대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는 대번에 일련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는 툭 한마디를 던졌다.
“누나, 성묵 형은 저쪽에서 기자회견 중이야.”
“……!?”
화들짝 놀라는 도연.
동생에게 속내를 그대로 읽힌 도연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냐, 나는 도진이 너 데리러 가려고…!!”
“난 선수단 버스 타고 가려고. 버스에서 다 같이 마피아 게임을 한다고 그래서.”
“아….”
사실 도진은 그런 거에 어울리느니 다음 경기 데이터를 더 보자는 주의지만, 일단은 최적의 변명거리를 던졌다. 그리곤 쐐기를 박는 도진.
“성묵 형은 기자 회견이 길어져서 버스에 못 탈거 같은데, 이따가 누나가 태워주면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
“………!!”
도진의 말에 급 화색이 되는 도연. 같은 야구부 소속인 도진의 말이니만큼, 틀릴 리는 없으리라. 그녀는 다소 삐걱대며 도진의 말에 끄덕였다.
“그치, 내가 태워주지 않으면 돌아가기 곤란하겠지…?”
“응, 부탁할게 누나.”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로 뛰어나간 도연. 도진은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단하네 성묵이 형. 누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남자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물론 눈이 높은 게 정상일 정도로 그녀 또한 대단한 외모와 능력의 소유자지만, 그녀가 남자를 보는 눈은 다소 일반인과는 다른 차원의 기준이 여럿 있었다.
그걸 다 충족시킨 것에서 존중을 보내는 도진. 그는 지금 이 순간,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성묵 형이라면, 내 매형이 될 자격이 있어.”
누나인 도연을 전력을 다해 성묵과 이어주기로 말이다. 문혁고 제일의 ‘악질 우결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꺄아, 오라버니~!!”
“오, 노아…!!”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아래쪽에서 재회한 타카히나 남매. 둘은 오늘 경기의 소감을 나누며 시시덕거렸다.
“오늘 바빴겠는데 노아, 성묵이 녀석이 삼진을 엄청나게 잡아버려서.”
“그러니까요! 심지어 막판엔 도와드리려고 음악도 끄고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틀라고 하실 줄은…!!”
“하하, 맞아. 나도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 알고 보니까 자기가 대기록 세우는 줄도 몰라서 그랬던 거지만.”
“네에…!? 진짜요?”
“응, 그럼그럼.”
그렇게 화기애애 대화를 나누는 둘.
그러다 류지가 문득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성묵이 녀석은 지금 기자회견실 쪽에 있거든.”
“네, 네에? 그걸 왜 저한테….”
“가서 축하라도 한 번 해줘. 은근 기다리고 있을걸.”
“엣, 제 축하를요…?”
“그럼, 당연히 기다리겠지. 이렇게 귀여운 후배인데.”
그 말에 다소 부끄러워하는 노아.
류지는 여동생이 성묵에게 정확히 무슨 감정을 품은 지 까진 모르지만, 적어도 나쁜 분위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와 교제한 경험이 없는 여동생을 위하여, 류지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녀석 꽤 인기 많아질 걸. ‘그런 걸’ 보여준 이상, 이상한 여자들이 가만 두겠어?”
“앗……!!”
화들짝 놀라는 노아.
그의 말대로 이미 익명의 커뮤니티에는 성묵의 인스타 주소를 찾는 여성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생태를 얼추 아는 노아 역시 그걸 바로 이해했고 말이다.
“오라버니, 먼저 가볼게요…!!”
“그래그래~.”
후다닥 뛰어가 버린 노아.
류지는 코를 쓱 매만지며 웃었다.
“흠, 역시 감정이 좀 있기는 한가 본데?”
집안에서 남성미 넘치는 조직원들에 부대껴 살던 노아다. 맹물처럼 밍밍한 동급생들에겐 그 어떤 남성적 매력도 못 느낄 거라고 류지 역시 어느 정돈 예상했다.
물론 금성묵이란 인간을 갑자기 툭 던져놓는다면 류지도 당장 달려가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지만, 어느덧 돈독한 우정을 쌓고 나니 그만한 녀석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성묵이 너라면 노아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아무리 류지에 비해서 묽다고는 하지만, 노아 역시 타카히나 가의 핏줄.
용혈(龍血)을 물려받은 계승자다.
헤까닥 돌면 눈 앞에 뵈는 게 없단 소리다.
‘스위치 켜졌을 때 노아는 뭐, 장난 아니지….
겉으로는 세상 긍정적이고 해피한 노아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이 절대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진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류지.
그는 조용히 성묵의 건투를 빌었다.
######
올리비아는 성묵의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위태위태 해 보이더니, 어느새 각성해선 상대방을 압살해버렸다.
[올리비아, 네 도시락 진짜 좋더라. 지켜봐,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까.]
그녀의 도시락을 극찬하며 경기장에 들어선 성묵. 경기 막판에 쭈그러든 청현고 전과 달리, 지금은 경기 막판까지 힘이 넘쳤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우웃…!!”
“우효………!!”
경기를 마친 뒤 포효하는 성묵.
그는 동료들과 잠깐 회포를 풀더니, 관중석 주변을 돌다가 올리비아와 눈이 마주쳤다.
“…….”
멀리 있어 말을 섞지는 못했지만, 맑은 웃음을 지은 성묵.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미소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두근!
‘뭐, 뭐지…?!
올리비아는 당황스러웠다.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처음 느끼는 묘한 감정.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다.
‘언젠가 네 요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찾는다면, 너는 한명의 요리사로서 오롯이 설 수 있을 것이다.
“………!”
갑자기 떠오른 아버지의 말.
이 감정은 그녀가 늘 찾던 ‘누군가를 위한 요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올리비아의 마음속에 강한 충동이 일었다.
‘…성묵 씨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
그리고는 직접 칭찬을 듣고 싶었다.
‘올리비아, 네 도시락 덕분에 오늘 힘낼 수 있었다.’라는 말을.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느냐에 따라, 그녀는 지금 기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리비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성묵이 곧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게 될 회견장 근처로 말이다.
######
회견이 끝나고 혼자 남게 된 뒤, 성묵은 보지 않고 쌓아둔 알림창을 켰다.
띠링!
[경축! 강적 금강고를 상대로 승리하였습니다!]
[MVP는 문혁고 3학년, 금성묵입니다!]
[MVP에게 추가적인 스텟 보너스가 제공됩니다]
[구속 스텟이 B+ -> A로 강화됩니다!]
[변화구 스텟이 B+-> A로 강화됩니다!]
[커브 스텟이 B->B+로 강화됩니다!]
“오…!!”
드디어 구속 A를 뚫었다.
이제 태양신맥 없이도 150km를 쉽게 던질 수 있게 됐다. 저점이 높아진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이제 강발(強勃)이 되면 160km를 뚫을 수 있겠군.
물론 기본 스텟이 높아진 만큼 발동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겠지만, 강적은 앞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할 필욘 없으리라.
“어, 잠깐. 변화구도 A?”
순간 놓치고 넘어갈 뻔했는데, 변화구 스텟 역시 A등급에 도달했다. 그 말인즉슨, 이제 A등급 아래 변화구인 스위퍼, 커브 등의 숙련도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단 뜻이다.
‘아마 다음 선발쯤이면 스위퍼도 A를 찍겠는데.
커브 역시 B+까지 올라왔으니, 그 다음 순번으로 A등급을 찍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적어도 피칭 바리에이션이 적어서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띠링!
#금성묵
투수 능력치 (*포텐셜)
/좌투 스리쿼터
체력: A+ (*S)
제구: B+
직구: A (*S+)
구위: A (*S+)
변화구: A (*S)
ㄴ커브: B+
ㄴ스위퍼: B+
ㄴ써클체인지업: A
‘오케이, 이 정도면 만족.
오늘 인상을 빡하고 박아넣은 덕분에, 스카우터 들의 주목은 물론 말석이나마 청소년 대표 후보로도 언급이 될 게 분명한 상황.
이 정도면 최상의 스타트.
의심의 여지 자체가 없다.
그런데 왜일까.
“……….”
분명 최상의 결과인데 가슴이 허한 기분을 느끼는 성묵이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많은 선수가 가족들에게 축하받으며 그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눈다.
과거엔 그에게도 기쁜 일들을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할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
이젠 영영 볼 수 없지만 말이다.
“후우….”
성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 길이 먼 상황에 괜한 감상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성묵 씨…!”
“…?”
성묵은 복도의 삼거리 중앙에 서 있는데, 오른쪽 멀리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올리비아?”
“축하해요!”
다소 상기된 얼굴로 팔을 크게 휘저으며 축하하는 그녀. 뭔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답지 않은 행동을 하니 뭔가 귀여워 피식 웃은 성묵.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올리비아는 몸매는 몸매대로 도드라지고, 외모 또한 여전히 빛이 났다. 시기적절한 방문에 성묵은 기분이 나름 풀렸다.
‘그래, 뭐. 이런 미소녀의 축하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성묵 선배니이임…!!”
“……!?”
그때 삼거리 왼쪽에서 투다다 발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쾌활한 목소리. 그는 이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여성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
응원복을 입고 있는 노아는 오늘도 특유의 발랄함을 뽐내고 있었다. 방금 경기에서 승리한 덕분인지, 한층 더 높은 텐션을 자랑했다.
“선배님, 선배니임!! 오늘 너무 좋은 경기…!”
그렇게 재잘대려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친 올리비아와 노아. 둘은 서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올리비아 선배?”
“……….”
먼저 알아보며 놀란 노아.
그러나 올리비아는 곧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
사실 그녀는 노아가 누군지 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걸 티 내봤자 좋을 게 없을 거란 걸 본능적으로 느낀 올리비아. 그래서 선택한 게 ‘모른 척하기’다.
“하하…….”
그 전략이 먹힌 것인지 노아의 스마일 페이스에 순간 금이 갔다. 다소 억누르고는 있는 듯 보이지만, 꽤 긁힌 건 분명한 모양.
“재밌는 분이었네요, 올리비아 선배님.”
“방송에서 절 보셨나 보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하하,하.”
빠직! 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 성묵. 그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싸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거 가만히 두면 안 될 거 같은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수습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성묵.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앗, 성묵아…!!”
‘젠장, 설마…?
또 다른 여자가 성묵의 이름을 부르며 등장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흰색 셔츠와 검은 치마라는 무난한 조합에도 빛이 나는 몸매와 외모의 소유자는 좀처럼 없다.
오늘 성묵을 차에 태운 뒤, 맛있는 걸 잔뜩 사주며 점수를 쌓으려 했던 도연.
그녀는 성묵의 가까이에 와서는 멈칫했다.
이미 성묵의 옆에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두 소녀가 있었기 때문. 그중에서도 올리비아와 도연은 서로를 알아봤다.
‘저 아인 그때 분명히…!
‘…아산에서 봤었던!
관중석에서 같이 청현고 전을 봤던 두 여성. 문혁고를 응원하는 쪽인 건 눈치를 챘지만, 성묵과 관련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한 둘이다.
“………….”
“………….”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 올리비아와 도연. 그리고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표정이 돌변한 노아 역시 껴있다.
곧 대치 상태를 유지하던 그녀들은, 의문을 해결해줄 유일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성묵 씨.”
“성묵 선배님”
“…성묵아?”
꿀꺽!
목 너머로 침을 삼킨 성묵.
그의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
“누구예요?”
“누구야?”
“………!!”
성묵의 등에 우수수 닭살이 돋았다.
그는 지금, 사나이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